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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차임의 글 공장입니다.

싱글벙글 고시원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드라마

완결

홍차임
작품등록일 :
2015.10.23 23:35
최근연재일 :
2016.04.02 21:40
연재수 :
38 회
조회수 :
69,266
추천수 :
969
글자수 :
181,952

작성
16.02.08 20:20
조회
813
추천
19
글자
10쪽

16화. 나는 당신 편이예요.

DUMMY

며칠 있으면 해가 바뀐다. 분홍은 봄에 난 아버지 교통 사고 이후로 한 시도 쉰 적이 없었다. 집에서 하루종일 시간을 보낸 적도 있긴 하였지만, 마음이 불편하였다. 변호사나 법을 잘 아는 사람을 한 명이라도 더 만나봐야 하는 것은 아닌지,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당장 아버지 문병을 가야 하는 건 아닌지, 집에 이렇게 있는 건 불효가 아닌지, 노심초사했다.


개인레슨을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한 이후로는 레슨할 연습실 알아보랴, 분홍 자신의 노래 연습을 하랴, 캐시 뮤직의 독특한 무인 시스템에 적응하랴, 늘 쫓기고 바빴던 시간만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분홍 같은 강사는 멋을 내어 말하면 '프리랜서'이지만, 항상 원하는 만큼 일이 있는 것이 아니어서 일이 나타나면 생각할 것도 없이 잡아야만 하는 처지이다. 그러다보면, 일년을 살아도 방학도, 휴가도, 휴식도 없는 삶이 되곤 한다. 그래도 노래만 할 수 있다면 어떤 일이든 좋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아버지의 교통사고와 가해자 왕경자에 대한 추억은 심신의 고통을 극단으로 치닫게도 했다. 왕경자의 휴대폰 번호를 통해 몇 번 문자를 주고 받았었다. 합의를 하느냐 마느냐의 문제였다. 그때 분홍의 띵동 메신져에 왕경자의 아이디와 사진들이 뜨기 시작했다. 그녀는 분홍의 아버지가 그녀의 차에 치이셨을 무렵 손녀를 보았고 사진 속의 그녀는 손녀와 행복한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메신져가 분홍에게 친절히 알려주었다. 반 년이 더 지났지만 여전히 분홍의 마음 속에는 왕경자 손녀의 행복과 분홍이네 가족의 행복을 맞바꾼 거라는 이상한 논리가 남아 있었고, 그로 인한 증오심이 자리잡고 있었다.


새해 휴가로 일 주일이라도 쉬고 싶었다. 그 시간만큼은 레슨도 쉬고 노래 연습도 쉬고 싶었다. 세 명의 레슨생 모두에게 알렸다. 일 주일 간 겨울 방학이야, 라고. 학생들은 개인 레슨에도 겨울 방학이 있느냐며 신기한 표정을 지었다. 또한 레슨생들은 나이를 불문하고 방학이란 말을 반겨했다.


일 주일 동안 분홍은 이 검은색 건물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고, 관리자에게 그 사실을 말해 두어야 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누구한테 말하지? 남자에게? 아니면 아주머니에게?’


가는 해의 마지막 날, 분홍은 밥을 먹을 것도 아닌데 6층 식당에 올라갔다. 마침 슬리퍼 아주머니가 자신의 윗도리를 끌어내리면서 자신의 방문을 열고 나왔다. 누워 있느라 티셔츠가 위로 올라가버린 모양이었다. 그녀의 방은 식당 층인 6층에 있었다.


“언니, 어디 아프세요?”

“아니야...”


강한 말투와 지나치게 검은 눈동자로 인해서 젊고 팔팔해 보이던 아주머니가, 옷을 주섬주섬 매만지며 다소 꾸부정한 자세로 나오는 그때 만큼은 원래 자신의 나이로 보였다. 그녀는 자신이 내일모레 환갑이라고 했다.


“안색이 좀 안 좋으세요.”


아주머니는 자신의 안부를 염려하는 분홍의 말에 놀란 듯이 눈과 동공이 커지더니, 다시 아무렇지도 않은 척 표정을 새로 고쳤다.


“내 안색이 좋게 생겼어...? 전기는 나가도 꼭 새벽에 나가서 잠도 하나뚜 못 자지, 그 인간은 일부러 그러는지 더 얼쩡거리면서 속을 긁어 놓는데.”


분홍은 이번 두 사람의 갈등을 지켜보면서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아주머니의 사람에 대한 분노와 증오는 하나의 습관이거나 성격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아주머니는 그러한 갈등에 대해서 진정으로, 온 몸으로 힘들어하고 있었다. 몸살이 날 정도로......


“추운데 방으로 들우와.”

“네.”


아주머니가 쓰는 고시원방은 창문에 비닐로 바람 막이를 해놓아 웬지 누추하게 보인다. 이 검은색 건물은 건물 자체는 좀 오래돼 보였지만, 방의 창틀이라든가, 복도 바닥 타일이라든가, 하는 것은 말끔한 편이다. 적어도 건물의 내장은 이삼 년 전쯤, 비교적 최근에 새로 한 것 같았다. 그럼에도 아주머니 방은 비닐로 방한을 해 놓아서, 어쩔 수 없이 초라함이 느껴졌다. 아주머니의 누런 개는 분홍의 냄새를 킁킁 맡더니 익숙한 냄새인듯 작은 점프로 분홍을 환영한다.


“커피 마실래?”

“네. 감사합니다.”


아주머니는 소지품이 올려져 있는 작은 책꽂이 위에 놓여 있는 백개 들이 스틱 커피 봉투에서 스틱을 하나 꺼내 분홍에게 내민다.


“......?”

“타 먹어.”

“아, 네...... 고맙습니다.”


분홍은 커피 스틱을 들고 방 밖으로 나오면서 친절을 베풀되 그 친절을 제대로 완성하지 못하는 아주머니의 성격이 아주머니를 더 고립시키는 거라고 속으로 생각한다. 그녀는 식당의 정수기 쪽으로 걸어가 철제 공용컵에 커피를 탄다. 손잡이가 없는 철제컵이라 물의 온도를 뜨겁지 않게 신경 써서 맞춘다.


철제컵에 탄 커피는 철 맛이 난다.


“언니, 제가 일주일 정도 못 와요.”


아주머니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표정을 만들며 “아, 그래?” 라고 무관심한척 한다.


“제가 그래도 캐시 뮤직 단골인데, 언니가 아셔야 될 것 같아서 올라왔어요.”


분홍은 최대한 경쾌하게 말을 한다. 캐시 뮤직의 지배자이던 아주머니는 캐시 뮤직 출입금지를 당했고, 이제 검은색 소파에서 커피를 마시거나 손님 일에 참견을 할 수가 없는 상태이지만, 분홍은 그런 아주머니에게 자신의 결석을 고하면서 그녀의 권위를 세워주고 싶었다.


“제가 사실 올해 너무 힘들었거든요. 방학이 필요해요.”

“에구, 참나, 노래하는 선생이 힘들면 뭐가 힘들다고... 학생이나 많지도 않으믄서.”


학생 수가 많지도 않다는 아주머니의 말에 분홍은 뜨끔, 하며 어딘가에 통증을 느낀다. 하지만, 아주머니의 말은 상당히 자주, 그녀도 어쩌지 못한 때에 함부러 나온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별다른 내색을 하지 않는다.


“자구 갈래?”

“네?”

“자구 가도 돼. 내가 방은 줄 수 있어.”


아주머니의 밥을 탐냈던 분홍이다. 그리고 현재 2천원에 그녀가 만드는 밥을 먹을 수 있다. 분홍은 몇 개월 간 건물 지하에서 연습을 하면서, 이 건물에 쉬흔세 개나 있다는 고시원 방의 내부가 궁금하기도 했다. 아주머니의 방에는 몇 번 들어와 봤지만, 손님들 방은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기도 했다. 더군다나 아주머니는 분홍더러 고시원에 들어와 살라고 몇 차례나 권했었다.


아주머니의 제안에 순간, 이 고시원에서 자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집에 가봐야 새해를 혼자 맞이할 뿐이다. 나가서 송을 만날 수도 없다. 송은 시골집에 휴일 전에 갔다온다며 이미 내려갔다. 새해 첫날 간다는 걸 분홍이 항의를 해서 미리 갔다오고 1월 1일에는 분홍과 만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이내 분홍은 “오늘은 안 될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아주머니와 잘 지내면 몇 가지 편의도 누릴 수 있고 좋지만, 그것은 그녀를 절친으로 받아들이는 문제와는 다르다고 생각한다. 험담을 자주 하고 분홍보다는 거친 말씨를 가진 아주머니는 때때로 분홍의 마음에 상처를 주기도 한다. 오늘처럼.


어쨌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홍은 꽁지머리 남자가 나타난 이후로 의기소침해진 아주머니에게 ‘나는 당신의 편이예요.’ 라는 메시지만큼은 주고 싶었다.


그렇다고 아주머니 편이 되어 남자와 맞써 싸울 생각은 없고 그럴 이유도 분홍에겐 없었다. 적어도 아주머니가 소외감을 느낄까봐 걱정이 되었다. 남자가 나타난 이후로 분홍은 "언니, 잘 됐네요. 어떻게 언니가 힘들게 고시원 일을 하면서 연습실까지 관리해요? 진짜 잘 되신 거예요." 라는 말을 몇 번 했었다.


그리고 다시한번 동물의 영역에 대해서 생각했다. 이제는 용서하였지만, 분홍의 파일이 몇 개 없어지고 포장지가 다 찢겨져 있을 때 느꼈던, 영역 침범으로 인한 남자에 대한 분노를 기억한다. 6층부터 지하까지 자신의 영역으로 삼고 '계단을 타는 마녀'처럼 오르내리던 아주머니가 이제 1층에서 멈춰야만 하는 것이, 지하에 자신만 보면 으르렁거리는 다른 존재가 있다는 것이, 동물적으로도, 본능적으로도, 그녀에게 스트레스일 거라고 이해했다.


“송, 내가 아줌마를 좀 위로해줬어.”

“왜 또 무슨 일 있었어?”


전화기 너머로 송의 시골집에 있는 개가 컹컹- 짖는 소리가 들려온다. 송의 띵동 메신져 프로필 사진은 그 시골개의 어렸을 때 사진으로 갸웃- 하는 귀여운 표정을 짓고 있다. 그랬던 강아지가 이제는 저렇게 가슴을 터뜨리는 우렁찬 소리를 낸다. 몇 달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말이다.


“응. 좀 안 됐어. 안 그래도 그 남자가 온 이후로 아줌마가 평소랑 달랐거든. 근데, 완전 대판 싸우고 원수가 됐어. 아줌마 말이 식당에 밥 먹으러 올 때 자기 동생들이라면서 다른 남자 세 명을 데리고 왔었대. 그러면서 사이가 더 나빠졌나봐. 더군다나 출입금지 당해서 이제 소파에도 못 앉아 있잖아.”

“자기 영역을 침범 당하면 답답하지.”


송은 분홍의 생각과 똑같이 ‘영역’이라는 표현을 썼다. 이 검은색 건물에 분홍처럼 오래 머무르지는 않는 송이지만 그가 남자이기에 영역 문제에 대해 빨리 이해하는 것이라고 분홍은 생각했다.

분홍이.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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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7화. 첫 유혹. +1 15.11.07 1,105 23 7쪽
6 6화. 캐시 뮤직. 15.11.05 1,173 25 13쪽
5 5화. 나를 훔쳐보는 너의 둥근 눈. 15.10.27 1,302 26 9쪽
4 4화. 딸랑딸랑 자판기 커피. +1 15.10.25 1,503 29 12쪽
3 3화. 보라색 쓰레빠. +2 15.10.25 1,483 30 8쪽
2 2화. 미숙 씨의 열정. +2 15.10.24 2,458 32 12쪽
1 1화. 7만원의 경건함. +6 15.10.24 5,377 48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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