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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너와 나의 대결은 끝나지 않아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7.08 21:59
최근연재일 :
2016.12.25 23:33
연재수 :
68 회
조회수 :
41,249
추천수 :
493
글자수 :
552,862

작성
15.03.27 19:41
조회
734
추천
6
글자
20쪽

13화 - 2

DUMMY

예나와 명인이는 나란히 걷는다. 예나는 키가 그리 크지 않고 덩치도 아담한 편이지만, 옆의 명인이도 못지 않게 아담한 사이즈라 뭐랄까 모양이 잘 안 산다. 꼭 남자애가 여자애보다 키가 크고 그래야 하는 건 아니지만, 뭐든 적당한 지점이란 게 있잖아. 그나마 명인이가 예나보단 간신히 몇cm 크니 다행이지.

“봐, 아무 말도 안 하잖아 저거저거.”

“뭐 그렇지, 아무래도.”

나라 해도, 첫 데이트 첫 걸음에는 긴장돼서 무슨 말을 할지 머릿속이 새하얘져 버릴 것 같다. 미지는 비꼬듯이 말하며 불퉁한 시선으로 명인이와 예나를 쳐다본다. 맞장구 치는 나에게, 미지는 ‘시끄러!!’ 하고 신경질적으로 말한다. 아니 왜.

“아. 근데 이렇면 쟤네 뭐라고 얘기하는지 하나도 못 듣잖아.”

“그렇지, 뒤에서 모습만 보는 거니까.”

“그럼 안 되지! 그게 제일 중요한데!!”

그럼 미행이 대체 무언데. 음성까지 듣고 싶다면 영화에서나 나오는 첨단 장비 같은 걸 동원해야 하는데. 도청장치? 그런 거 있잖아. 그런 게 우리에게 있을 리가 없잖아. 백보 양보해서, 있다 해도 어떻게 명인이나 예나 몸에 부착시키는데. ‘그럼 뭘 어떡해.’ 하고 말하니 미지는 앓는 소리를 내며 골똘히 생각한다.

“이렇게 된 이상, ‘그 방법’ 밖에 없겠군.”

“……?”

심각한 표정으로 말하며 일어나는 미지. 나는 의아한 표정으로 그런 미지를 쳐다본다. 대체 뭘 하려고.


“명인이 넌, 크레이프 좋아해?”

“……안 먹어봤어.”

“아 그래. 되게 맛있어.”

예나의 질문에 묵묵히 대답하는 명인이. 무표정한 얼굴로 저래 말하니 꼭 화난 것 같다. 결코 그런 게 아니지만. 아주 평범한 상태다, 저 모습의 명인이는. 예나는 그런 명인이의 눈치를 보며 대답한다. 다시금 둘 사이엔 침묵이 감돈다.

“헉…… 헉…….”

“숨소리 내지마, 들켜.”

벅찬 심호흡을 하며 숨을 고르고 있자니 미지가 신경질적으로 말한다. 미지 너야 수많은 체육활동으로 단련된 강철체력이 있겠지만, 난 아니란 말이다. 다시금 미지를 따라 움직인다.

미지가 고안한 방법은 아슬아슬한 미행방법. 뒤에서 쫓아가며 숨는 것이 아닌, 앞으로 달려가 적당한 곳에 매복(?)하고 있는 방법. 말로만 들어도 몹시 위험해보이는 방법이다. 앞에 숨어서 지나가는 명인이와 예나의 모습과 대화를 몇 조각 수집하고 다시금 골목길로 돌아 앞서 가는, 희대의 뻘짓. 다 좋은데 너무 힘들다.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겠어?!”

“겁내 엄살피우네, 오기 싫음 오지 마!”

힘들기도 하고, 대체 이런 짓을 왜 하는가 싶기도 해서 짜증스럽게 말한다. 그것도 차마 명인이와 예나에게 들킬까봐 작게 말할 수밖에 없다. 미지는 굳건한 의지를 보이며 나를 버리고 간다. 한숨을 쉬고 다시금 미지를 따라 나선다. 기왕 나왔는데, 그래도 같이 행동해야지.


“크레이프 두 개 주세요!”

“네~”

예나는 귀여운 말투로 가게 앞에서 말한다. 가게 아저씨는 그런 예나가 귀여운지 미소 지으며 사람 좋은 말투로 말한다. 아아, 저 귀여움, 녹는다 녹아. 결코 꾸며내거나 지어낸 것이 아닌, 순수한 어린아이 같은 귀여움. 그게 예나의 매력이지. 아─ 아직 나는 예나에게서 헤어 나오지 못했구나. 슬프게도.

명인이는 뭔가 별로 기분이 안 좋은 듯 뚱한 표정으로 어기적 예나 옆에 서 있는다. 예나는 계산을 하려 지갑을 꺼낸다. 명인이는 ‘아.’ 하고 자기 지갑을 꺼내지만 예나는 고개를 저으며 괜찮다고 말한다. 큭, 최명인 이 복 받은 자식. 거기선 네가 내겠다고 해야지!! 여자애가 먼저 데이트 신청하고 먹을 것까지 사다니!!

“저 봐 저저. 반씩 뿜빠이(?)해야 할 거 아니야!”

“의외로 아저씨 같은 말 쓴다 너.”

“닥쳐! 자꾸 이상한 거에 태클 걸지 말고 펙트를 봐 펙트를!”

나와 미지는 더 이상 앞서 숨을 필요 없이 적당한 자동차 뒤에 몸을 가린 체 두 사람의 동태를 살핀다. 미지는 명인이가 무슨 짓을 하든 헐뜯을 기세로 잔뜩 아니꼬운 표정으로 혀를 끌끌차며 말한다. ‘뿜빠이’라니, 50대 아저씨들이나 쓸 법한 어휘를. 참 올바른 언어생활이다. 미지는 아까부터 이어지는 태클에 견디지 못하고 벌컥 화를 낸다. 아니, 원래 명인이랑 놀 때엔 이런 게 일상이라. 서로 태클 걸고 노는 거. 미지는 의외로 버티질 못하는 모양이다.

“자, 여기있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아…… 가, 가자!”

“응.”

크레이프가 나오고, 예나는 양손에 크레이프 두 개를 받는다. 얼른 명인이에게 하나 주고 조금 난처한 표정으로 주위를 살피는 예나. 가게는 테이크 아웃 전문점인지 딱히 앉아서 먹을만한 장소가 마땅히 없다. 예나는 조금 망설이다 곧장 가자고 말한다. 고개를 끄덕이며 예나를 따르는 명인이. 어째 정상적인 데이트라기보단, 그냥 사촌누나 손 붙잡고 유원지 놀러 온 사촌동생 같은 느낌이다. 뚱한 명인이의 표정이 더욱 그런 느낌을 강화한다.

“그래도 아직까진, 딱히 별다른 일은 없네.”

“……그게 문제인 거야! 저기서 점수 딸 만한 기회가 몇 번이나 있었냐! 안 그래?!”

“그렇기야 한데.”

나는 딱히 연애에 대해 모르지만. 개인적인 감상이라면, 미지의 말에 동의하는 편. 패기가 있다면 덥썩 손을 잡을 수도 있겠고, 먼저 크레이프를 받아서 건네준다거나, 걸을 때 재치 있는 말로 예나를 기쁘게 해준다거나. 책으로 배운 연애 이론이라면 상당히 할 게 많지. ……그런 걸 최명인에게 바라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긴 하지만. 나도 마찬가지로 여자애들 앞에 서면 병X이 되는 보통 남자애라, 딱히 나은 건 없다. 미지는 여전히 별로 좋지 않은 기분으로 자동차 뒤에서 나와 걷는다. 예나와 미지가 걸어가니, 쫓아 가야지. 미행하고 있는 거니까.

“자. 크레이프 두 개 사. 나는 쫓아갈 테니까.”

“응?”

“남는 돈은 너 사먹던가. 사서 나 쫓아 와.”

“이거 모자라.”

“미친, 얼마나 비싼건데?!”

미지는 선심쓰듯 천원짜리 몇 장을 던지듯이 나에게 주고 황급히 예나와 명인이를 쫓아가려 한다. 잠자코 말하니 미지는 화들짝 놀란다. 평소 이미지대로 이런 거 전혀 안 사먹어봐서 가격을 잘 모르는구나. 그보다는 분명히 가게에 가격표가 버젓히 써 있는데, 바깥에서도 볼 수 있게. 주의력이 모자란 건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내가 알아서 사 올게.’ 하고 말했다. 의도대로, 미지는 애들을 쫓아가고 나는 크레이프를 산다. 이제는 내가 알아서 호구를 자처할 정도가 됐구나.

“…….”

한적한 공원. 주말이라지만 아직 꽤 이른 아침이니. 그런 공원 벤치에, 명인이와 예나 둘이 덩그러니 앉아 있다. 얌전히 크레이프를 먹는 명인이. 마찬가지로 크레이프를 먹으면서, 조금 눈치를 보는 예나. 미지의 걱정은 명분뿐이고 실은 명인이를 트집잡고 싶은 거겠지만, 확실히 그 ‘명분’으로 삼은 예나에 대한 걱정은 어느 정도 사실이긴 하다. 우선 명인이가 저렇게 답답하게 행동하니. 마음 같아선 내가 선택지(?)를 골라주고 싶다.

1.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계속 크레이프를 먹는다

2. ‘진짜 맛있네. 사먹길 잘했다. 예나 덕분에 맛있는 거 얻어먹었네.’ 하고 예나를 보고 웃어준다.

3. ‘아오…… 비싸기만 더럽게 비싸고. 제기럴, 이게 뭐여.’ 하고 먹던 걸 뱉는다.

뭐, 명인이라면 1번을 고르겠지. 2번처럼 느끼하고 작업 멘트 같은 말은 명인이 성격 상 죽어도 할 리가 없지. 미지 놀릴 때라면 또 모를까. 3번처럼 격한 선택지 또한 명인이랑 어울리지 않는다. 아무리 맛없어도 일단은 참고 먹겠지.

“아오, 비싸기만 더럽게 비싸고. 제기럴, 이게 뭐여.”

“맛은 있잖아? 좀 비싸기야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이거면 차라리 밥을 하나 사 먹겠다! 어휴.”

누군가 3번 선택지를 고르는 것 같다. 명인이와 예나 벤치에서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쪼그리고 앉아 숨은 뒤 크레이프를 먹으며 둘을 감시하는 나와 미지. 너무 많이 떨어지면 대화가 안 들리니까, 그렇다고 너무 가까이 있으면 들키기 쉬우니까 적당한 자리에서 적절하게 미행을 하고 있다.

미지는 남자애처럼 털털하게 말한다. 내 대답에 그래도 납득이 안 간다는 반응의 미지. 뭔가 남자애와 여자애의 사고방식이 바뀐듯한 느낌인데. 나는 뭐, 여자애 같은 생각이라기보단, 이미 산 거 비싸다고 툴툴대면 어떡하나 하는 입장이니까. 이미 돈은 내 수중에서 나갔는데 뭐. 맛있게 먹어야지. 한 입 베어 물며 명인이와 예나를 쳐다본다.

“……맛있어.”

“정말? 다행이다. 그, 별로 안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맛있다니 다행이야.”

“아니, 맛있어. 왜 별로라고 생각해.”

“아, 아니, 그…… 표정이 별로, 조금 화난 것 같아 보여서…… 아니, 아니야!”

명인이는 연거푸 크레이프를 뜯어 먹다가 문득 정적을 깨며 말한다. 반색을 하는 예나. 자기가 만든 요리 평가라도 받듯 천진난만하게 좋아하는 표정이다. 예나의 대답에 마저 크레이프를 다 먹으며 대답하는 명인이. 별로 대수롭지 않은 질문이지만 예나에게는 상당히 껄끄러운 질문이다. 솔직하게 대답하다가도 예나는 다시금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왜 화났다고 생각해.”

“으응…… 조금, 그…… 아무 말도 안 하구, 뚱한 표정으로 있고, 그러니까…….”

“말을 안 하는 건, 원래 말수가 적어서. 뚱한 표정인 건, 음. 이건 영인이한테 들은 건데. 이게 기분 좋은 표정이래.”

“아…… 그래?”

화기애애한 분위기의 데이트에서 논리적이고 정연한 답변을 듣길 바라는 건가. 참, 최명인답다는 생각이 드는 대화패턴이다. 예나는 난처해하며 대답한다. ‘내가 왜 화난 것 같애.’ 하고 물어보면 누구라도 난감하지. 거기다 좋아하는 남자애인데. 예나는 솔직하게 말하면서도 최대한 조심스럽게 대답한다. 그 대답에 가만히 대답하는 명인이. 자기가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는 파악하고 있구나, 명인이도.

“딱히, 안 친하니까. 서로 얘기할 말이 없어서, 그런 거야.”

“응, 응…….”

“…….”

분위기 파악이라는 것은 탑재돼 있지 않은 사양인 것 같다. 명인이에게. 예나가 좋아하나 어쩌나, 그런 것을 파악하라는 뜻이 아니다. 학교에서 만나는 친구야, 어떻게든 만나니까 상관없다. 하지만 주말에 시간 내서 따로 만날 정도의 열의가 있는 친구라면, 최소한 ‘아, 얘가 나랑 친해지고 싶구나’ 정도는 파악해야 할 거 아니야.

여자애한테 대놓고 ‘안 친하니까’ 라고 말하는 희대의 막장남, 최명인. 분석적이고 결론적인 성격은 여전하다. 미지하고 놀 때에만 그런 게 풀리고, 다른 애들 대할 때에는 여전히 그대로구나. 바뀐 모습을 기대한 내가 바보지. 예나는 안색이 어두워지며 안타까운 목소리로 대답한다. 아무렴, 좋아하는 남자애한테 ‘안 친하다’는 선언을 들었는데.

“에유, 병X. 저거저거 꼭 나한테는 저렇게 안 하던데, 예나한텐 왜 저렇게 냉정한가 모르겠어.”

“너는 좀 특별한 경우지. 예쁘니까.”

“……너까지 나 놀릴래?!”

“쉬, 쉿. 들키겠어.”

“아오…… 내가 진짜. 이것들 진짜.”

그 모습을 보며, 미지는 얼굴을 찌푸리며 말한다. 그러면서도 묘하게 즐거운 듯 명인이를 바라보는 미지. 확실히, 예나를 걱정한다기보단 명인이를 까고 싶어서 안달난 것 같은 느낌의 미지다. 명인이가 데이트를 확실하게 망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것 같달까. 조금은 명인이 친구로서 견제를 하기 위해 한 마디 던져줬다. 의미를 곱씹으며 나를 향해 사자후를 날리려 하는 미지. 손을 내저으며 얼른 그런미지를 제지한다. 가뜩이나 꽤 지근거리라서 위험한데. 미지는 주먹으로 땅을 치며 오갈 데 없는 분노를 속으로 삭인다. 아, 이 맛에 명인이가 미지 놀리는구나. 꿀잼이네.

“그럼, 내가 열심히 노력해서 말 하면 친해질 수 있는 거야?”

“그렇지. 노력으로 안 되는 게 어디 있겠어.”

“그럼, 노력할게!”

“그래.”

“……응!”

어두운 표정으로 땅을 쳐다보던 예나. 문득, 마음을 고쳐 먹었는지 다시금 밝은 표정이 돼 명인이를 보며 말한다.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는 명인이. 자기 평소의 생각을 그대로 말하는구나. ‘노력으로 안 되는 게 없다’고. 예나는 한층 밝은 표정이 돼 말한다. 다시금 단답형으로 대답하는 명인이. 딱히 대화를 이어나갈 생각이 없는 것 같다. 예나만 어색하게 대답한다.

예나도 어느 정도, 명인이와의 대화법을 찾아가는 모양이다. 여자애답지 않게 직설적으로 자기 포부를 밝히는 걸 보니. 그러는 편이, 명인이와 친해지기 좋을 것이다. 명인이가 예나를 그리 좋지 않게 보는 이유도, 소심하고 자기 생각 잘 말 안 하는 그런 느낌 때문이었으니까.

‘꾸우욱.’

“……배고프다.”

“아침 안 먹었어?”

“응.”

예나는 아직 크레이프를 먹고 있지만 명인이는 다 먹어서 우두커니 땅을 쳐다보고 있다. 문득 공원으로 퍼지는 꼬르륵 소리. 범인은 명인이. 힐끔 쳐다보는 예나를 보고 부끄러운 듯 멋쩍은 투로 말한다. 피식 미소를 띠고 물어보는 예나. 명인이는 고개를 끄덕인다. 하긴, 주말 아침은 잘 안 먹게되지. 나는 평소에도 아침을 거의 안 먹지만.

“햄버거 좋아해.”

“응??”

“패스트푸드점 가고 싶어서. 딱히 싫어한다면 다른 데라도─”

“아니아니, 좋아! 괜찮아! 갈까?”

“다 먹으면……”

“웁웁! 아, 아 억어어!”

보통 사람이 말을 할 때, 의문문인 경우, 즉 ‘?’가 붙을 때엔 말 끝을 올리는 게 정상이다. 근데 명인이는 마치, 평서문을 말하듯 말끝을 내린다. 물어보는 거라면 ‘좋아해↗?’ 이런 식이 돼야 할 텐데. 무감각한 말투 탓이리라. 예나는 크레이프를 한 입 베어물며 묻는다. 명인이는 햄버거를 먹고 싶은 모양이다.예나는 호들갑스럽게, 명인이의 말을 끊으며 대답한다. 그건, 내가 봐도 확실히 그럴만한 일이긴 하니까.

명인이는 딱히 자기가 뭘 하고 싶다고 말을 잘 안 한다. 몇 년을 서로 알고 지내는 나한테도 그다지 자기 감정을 잘 밝히지 않는데. 미지한테 보이는 건, 그냥 시비 거는 거고. 그런데 그런 명인이가, ‘패스트푸드점에 가고 싶다’ 라고 자기 감정을 밝힌 대사건이니까. 예나는 모처럼만의 명인이의 감정표현에 적극적으로 나선다.

명인이는 예나 손에 들린 크레이프를 보며 말한다. 그 말도 예나는 잘라먹으며 한순간에 우걱우걱 크레이프를 다 먹어 버린다. 사랑의 힘이 대단하구나. 이미지고 뭐고 다 날리고 명인이에게 맞춰 버리니. 입 안 가득 먹을 게 있어 부정확하게 말하는 예나. 그래도 귀엽다. 명인이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예나를 보다 ‘그럼 가자.’ 하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힘겹게 입 안의 것들을 씹으며 일어나는 예나. 다시금 두 사람은 걷는다.


“아오, 짜증나게 이것들은 여기고 저기고 돌아다니는데. 그냥 영화관 같은 데 가서 짱박혀 있지.”

“그럼 애초에 미행이 의미가 없지 않을까. 그리고, 데이트인데 돌아다니는 게 맞지.”

“자꾸 태클 걸래?! 짜증나니까 말하지 마.”

“쇤내가 어찌 태클 같은 걸 걸겠습니까. 다만 대꾸할 뿐이지요.”

“말대꾸 하지 말라니까!”

“쉿.”

패스트푸드점에 들어가는 명인이와 예나를 보며, 미지는 분통을 터트린다. 미행이란 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거든. 여기저기 숨어서 다니고, 뛰어 다니고, 솔직히 좀 짜증이 나긴 한다. 차라리 아까처럼 공원에 앉아 있으면 우리도 숨어서 같이 앉아 있으면 되니까 편하긴 한데. 다른 곳도 아니고, 패스트푸드점이면 미행하기가 상당히 힘들다. 어떻게든 보일 확률이 크니까.

나는 지속적으로 태클을 건다. 그게 숙명인 것처럼. 사실 일상이다. 다만 명인이는 내가 태클을 걸어도 무심하게 0의 대미지를 입고, 가끔은 오히려 나에게 카운터를 치기도 한다. 그래도 나는 꿋꿋이 태클을 건다. 별 소득이 없어도 그럴진데, 미지는 계속 유효타격을 받으니 얼마나 재미있어. 미지는 자꾸 짜증스럽게 말한다. 그럼 적당히 비꼬다가 미지 목소리가 커지면 ‘쉿!’ 하고 우리가 미행중임을 상기시킨다. 그럼 미지는 어떻게 할 도리도 없이 짜증나는 표정을 지을 뿐. 허허, 왜 최명인이 그렇게 편집증적으로 모미지를 놀리는 지 이제는 나도 알 것 같다.

“버거 좋아하는구나, 의외야 명인이.”

“왜. 이미지가 그래?”

간신히 적당한 자리를 잡았다. 다행히 가게 구조가 적당히 은·엄폐(?)를 할 수 있는 구조여서. 몸을 최대한 숙이고 주문을 해 점원의 이상한 눈총을 받았지만. 들고 갈 때에도 첩보물처럼 몸을 숙이고 경계를 하며 가서 뭇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았지만. 어떻게든 잘 해서 명인이와 예나자리 바로 옆자리에 앉았다. 벽 같은 것으로 서로 볼 수는 없다. 대화내용만 들린다.

“으응, 별로 건강에 안 좋으니까 이런 거 안 좋아할 줄 알았는데.”

“나는 네가 의왼데. ……흠, 이런 말 하긴 좀 그렇지만, 저번에 갔을 때 집 꽤 크던데. 이런 거 전혀 안 먹을 줄 알았는데.”

“아, 아니야~ 그, 그런 거! 나, 평범한 게 좋으니까!”

“흠.”

일촉즉발. 평범한 대화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명인이의 사상(?)을 몰라서 그런 것. 명인이가 말을 꺼내면서도 스스로 헛기침을 한 건, 예나네 집이 ‘부자’ 라는 말을 꺼내기가 껄끄러우니까.

명인이는, 뭐랄까. 모든 사회적 차별을 싫어하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부자들을 경멸하고 적대시하는 녀석이니까. 보통 애들은 예나네 집처럼 큰 집에 가면 ‘와, 집 크다! 잘 사나보네! 밥 사줘!’ 같이 단순하게 생각하는데 반해 명인이는 그걸 보면서 기형적 사회구조와 착취, 부익부 빈익빈, 어쨌든 어렵고 모를 말들을 잔뜩 붙여 어떻게든 부자를 까내리려고 하니까. 여기서 좀만 삐끗하면 순식간에 논쟁 분위기가 될 수 있다. 명인이와 많이 얘기를 해본 나이기에 알 수 있다.

“나중에, 만들어줄까 내가? 똑같이 만들어도 집에서 만들면 훨씬 건강하지 않을까, 해서. 감자튀김이랑, 버거랑 다 만들 수 있는 거니까.”

“……그러면 좋지.”

“그래? 그러면 언제로 할까!”

그나마 다행히, 예나의 선수로 대화주제가 다른 쪽으로 바뀌었다. 명인이도 딱히, 논쟁을 하러 온 건 아니니까 별달리 말하지 않고 넘어간 것 같다. 괜히 내가 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게 된다. 그래도 명인이, 많이 유해졌네. 예나도 많은 결심을 한 듯 굉장히 적극적으로 나선다.

“……피이, 뭐야. 제대로 놀고 있네. 재미없게.”

“마치 데이트가 파토났으면 좋겠다는 투로 말하는군요.”

“……너 오늘 시비걸러 왔어!? 같이 미행하는 주제에 왜!”

“쉿. 진짜 들리겠다 이건. 바로 옆인데.”

“아오……!!”

미지는 마음에 들지 않는 듯 감자튀김을 씹어 먹으며 불만스럽게 말한다. 햄버거는 흡입한 지 오래. 나는 버거를 한 입 베어 물며 나지막이 말한다. 똑같은 패턴의 공격에 똑같이 당하는 미지. 아이구, 재미있어라. 미지는 억울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부들부들 손을 떤다. 별로 내키지 않는 미행이지만, 미지 놀리는 것 만큼은 재미있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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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68 애상야
    작성일
    16.06.23 06:45
    No. 1

    가만히 보면 명인은 자신의 친구인 영인의 말에 귀를 잘 기울이는 듯하네요. 그 전에 자신에 대해서 말한 것도 잘 기억하고 있네요. 같은 맥락으로 영인은 "명인감정사" 1급이라도 소유하는지 친구의 기분과 상태를 자신보다 더 잘 아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6.06.25 16:57
    No. 2

    서로에게 무심한 듯 시크하지만 실은 서로 다 잘 알고 은근히 챙겨주는, 그런 친구 관계. 남자애들 사이에 은근히 많죠.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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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번외. 나와 너의 대결이 엉망진창이 된 것 같은데. +5 15.03.30 618 5 19쪽
48 13화 - 3 +4 15.03.29 531 7 23쪽
» 13화 - 2 +2 15.03.27 735 6 20쪽
46 13화. 좋아한다고 말해 +2 15.03.25 615 3 17쪽
45 12화 - 4 +2 15.03.24 554 5 17쪽
44 12화 - 3 +4 15.03.18 781 7 18쪽
43 12화 - 2 +2 15.03.10 793 7 19쪽
42 12화. 여자애 +4 15.02.20 757 5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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