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용봉지회(龍鳳之會)(13)-
마삼보는 눈앞에서 펼쳐지는 두 고수와 괴물이 되어버린 황보현동의 난투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수십 다발의 강기가 난무하고 연무장 주변 삼십 여장이 완전히 폐허가 되어 초토화되었다.
‘저 괴물도 지독하게 강력하지만 그런 놈에게 전혀 밀리지 않는 강북쌍협(江北雙俠)의 무위야말로 인간의 범주를 벗어났구나!’
'천둔검법(天遁劍法) 인둔세(人遁勢) 청룡회수(靑龍回首)'
마삼보의 혼잣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모용현의 버들가지가 낭창이며 강기가 뻗어나왔다. 모용현의 강기는 괴성을 지르며 달려드는 황보현동의 발을 묶기 시작했다.
그는 엄청난 풍압을 일으키며 자신에게 날아드는 황보현동의 주먹을 흘려내며 그의 주변을 맴돌았다. 그가 흉포하게 발악하면 할수록 공간이 줄어들어 결국에는 발디딜 곳을 찾지 못하고 바닥으로 굴렀다.
쿵!
'천둔검법(天遁劍法) 천둔세(天遁勢) 철추쇄옥(鐵鎚碎獄)'
주저앉은 황보현동 위로 모용현의 검강이 쏟아져 내렸다.
콰과광!
순식간에 검강으로 난자당한 황보현동의 온몸에서 검은 피가 줄줄 흘러내렸다. 고개를 든 그는 흉포한 눈을 번뜩이며 괴성을 내뱉았다.
“으허어어어엉!”
그의 괴성에 실린 힘은 실로 엄청나 연무장 구석으로 피신한 세가의 무인들이 휘청였고 모용현 역시 다섯 걸음이나 뒤로 밀려났다.
‘엄청난 공력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 강해지고 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황보현동의 발길질이 그를 향해 날아가는 순간, 바닥에 꽂혀있던 거룡도가 혼자서 쑥하고 뽑히더니 빙글빙글 돌며 날아가 황보현동의 머리통을 강타했다.
퍽!
그의 머리에 맞고 튕겨저 나온 거룡도를 잡아챈 팽도상은 길이가 무려 오십촌에 달하는 거룡도를 황보현동을 향해 몽둥이처럼 휘둘렀다.
땅!
거룡도에 가격당한 황보현동의 거구는 연무장 한구석으로 날아가 처박혔다.
팽도상은 거룡도를 어깨에 비스듬히 걸치고는 모용현에게 물었다.
“괜찮은가?”
“아니. 아무리 생각해도 오늘은 일진이 사납구만.”
팽도상은 자신이 들고 있는 거룡도와 모용현의 버들가지를 번갈아 보더니 낄낄거리며 웃었다.
“낄낄!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버들가지가 뭔가? 적어도 이 정도는 돼야지”
“흥! 그렇다고 누구처럼 제자에게 넘겨준 걸 도로 뺏을 수는 없지.”
팽도상은 기가 막힌다는 얼굴로 친우를 바라보았다.
“아니! 누가 뺏었다고 그러나? 바닥에 떨어진걸.. 아닐세! 내 말을 말지!”
“비저(肥猪)야. 더 큰 문제가 있다.”
“그렇지? 이제는 더 이상 강기도 놈에게 크게 통하지 않는 것 같다.”
모용현은 자신들의 뒤에서 언제든지 출수할 준비를 끝낸 도왕(刀王)과 대도(大刀), 그리고 장용을 힐끗 쳐다보더니 팽도상에게 말했다.
“우리가 그 방법을 써야 할 때가 되었네.”
팽도상은 오랜만에 진지한 표정으로 모용현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거룡도에 맞안 날아간 황보현동이 연신 머리를 흔들며 몸을 일으켜 세웠다.
모용현은 그들에게 전음을 보냈다.
‘지금부터 반 각이다. 그 반 각의 시간만 너희가 버텨준다면 우리가 놈을 기필코 쓰러뜨리마.’
어느새 거룡도를 돌려받은 왕오를 선두로 세 사람이 품(品)자의 형태로 나섰다. 팽무진은 선두의 왕오에게 말했다.
“왕아우 너무 위험을 무릅쓰지는 말게. 우린 어디까지나 반각을 버티는 것이네.”
왕오는 거룡도를 세워들고 깊은 숨을 내쉬고 말했다.
“자! 옵니다!”
쿵! 쿵! 쿵! 쿵!
어지간한 성인 사내의 곱절 정도로 온 몸이 부풀어 오른 황보현동은 또 다시 괴성을 지르며 눈앞의 세 사내에게 달려 들었다.
강북쌍협은 그들이 떠난 자리에서 자신들의 모든 내공을 응축시키기 시작했다. 그나마 형체만 남아있던 비무대가 덜덜거리며 떨리기 시작했고 바닥에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던 나뭇조각들과 파편들이 조금씩 떠오르기 시작했다.
우우우우우우우웅!
왕오는 달려오는 괴물을 향해 강룡파천도(强龍破天刀)의 강력한 초식인 혼돈일파(混沌一破)를 펼쳤다. 거룡도의 무게와 왕오의 타고난 용력(勇力)이 합쳐지자 일격에 일 장이 넘는 바위도 산산조각낼 수 있는 위력적인 초식이 황보현동의 머리 위로 떨어졌다.
꽝!
폭음과 함께 연무장의 흙과 돌들이 튀어 올라왔다. 황보현동은 두 팔을 교차해서 왕오의 공격을 막아냈다. 뢍오의 일격이 어찌나 강력한지 근육으로 부풀어오른 팔들이 뼈가 보일 만큼 깊이 패인 채 검은 피를 흘렸고 그의 발은 땅속으로 파묻혀 있었다.
그가 교차한 팔을 비틀어 왕오의 거룡도를 잡아채려 하자 왕오의 뒤에서 그림자 하나가 번개처럼 튀어나가 황보현동의 손을 베어나겠다.
'탈명검법(奪命劍法) 섬전참(閃電斬)'
쑤아앙!
그 그림자는 천망을 든 장용이었다. 장용의 검에서 뻗어 나온 강기가 황보현동의 손등을 가르자 그는 거룡도를 놓치고 말았다.
황보현동은 장용의 훼방에 화가 난다는 듯 낮게 으르렁거리며 자신을 뛰어 넘어가던 장용을 향해 주먹을 뻗었다. 순간 왕오의 뒤에서 또 하나의 인영이 달려나가 황보현동의 비어있는 허리를 향해 유엽도를 휘둘렀다.
오호단문도(五虎斷門刀) 왕자사도(王字四刀)
쓰걱! 쓰걱!
팽무진은 미끄러지듯 몸을 날려 그의 유엽도로 비어있는 허리를 향해 연참을 날렸다. 그의 옆구리가 갈라지며 검은 피가 새어 나왔다. 셋의 합공이 꽤나 거슬렸는지 발을 구르며 분노하던 홤보현동은 눈앞에서 거룡도를 들고있는 왕오에게 주먹을 휘둘렀다. 왕오는 거룡도를 휘둘러 황보현동의 주먹에 맞서기 시작했다.
쾅! 콰쾅! 쾅! 콰쾅! 쾅!
네 번의 부딪힘까지는 의연하게 버티던 왕오는 마지막의 일격에 제법 충격을 받았는지 안색이 창백해지며 입가에 얇은 핏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거룡도를 들고 휘청이는 왕오의 뒤를 팽무진이 받쳤다.
“이제 그만 빠지게! 조금만 더 버티면 되네!”
팽무진이 왕오를 받치는 사이 장용은 황보현동에게 천둔검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천둔검법(天遁劍法) 천둔세(天遁勢) 성타구진(星墮句陳)’
그는 공중으로 뛰어올라 황보현동을 향해 검강을 난사했다. 황보현동은 쉴새없이 자신의 손을 놀려 장용의 검강을 막아나갔다.
-산동악가, 의약당-
한 식경 전, 왕소미는 삼 차전을 기권하자마자 극성인 아버지의 손에 산동악가의 의약당으로 끌려왔다. 설상가상으로 그곳에서 자신에게 패해 침대 신세를 지고있는 팽현지의 싸늘한 눈초리를 받았지만 아버지의 성화에 못이겨 억지로 진료를 받았다.
팽현지의 침대 옆으로 황보윤에 의해 중상을 입은 팽대현과 악화가 의식을 잃은 채 누워있었다. 악가의 의원이 그녀의 진료를 끝낼 즈음 바깥이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왕오가 의약당의 문을 열고 바깥의 동태를 살피더니 그녀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뭔가 큰 사달이 난 것이 분명하구나!”
“아버님 그게 무슨 말씀....”
왕오는 그녀의 말을 끊으며 다급하게 말했다.
“수천의 관중들이 연무장으로부터 쏟아져 나오고 있다. 소미야! 잘 들어라. 너는 꼼짝 말고 이곳에 있거라! 나는 얼른 연무장으로 돌아가야겠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내가 나가거든 문을 꼭 잠그거라!”
“예 아버지. 너무 염려 마세요!”
왕오는 말을 마치자마자 부리나케 의약당을 떠났다. 그가 떠난 의약당에는 어색한 침묵만이 흘렀다. 왕소미는 자신에게 패해 이곳에 누워있는 팽현지에게 약간의 미안함을 느꼈고 팽현지는 예전부터 깔보고 무시하던 왕소미가 어느새 자신을 압도하는 고수로 성장한 것에 대한 충격과 질투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덜컥 덜컥!
어색함이 절정으로 치닫고 있을 때, 의약당의 문이 덜컥이기 시작했다. 아무런 말소리도 없이 문만 덜컥이기 시작하자 왕소미와 팽현지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의약당의 문 앞으로 몸을 날렸다.
덜컥 덜컥 덜컥 덜컥!
하얗게 비치는 문틈을 통해 밖을 내다본 왕소미는 너무나 큰 충격에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다.
‘실...실혼인? 백... 백...백살..’
아직도 그날의 기억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그녀는 본능적인 공포에 몸을 움츠러들었다. 팽현지는 갑자기 바닥으로 주저앉은 왕소미를 무시하고 문틈으로 밖을 빼꼼히 보았다.
의약당 앞에는 십여 명의 사내가 입으로 무언가를 연신 중얼거리면서 서 있었다. 제일 선두의 사내가 계속해서 문을 열기 위해 밀고 있었는데 그의 두 눈을 본 팽현지는 자신도 모르게 '헉'하는 소리를 내었다.
“헉! 눈이... 눈이 왜 저래?”
팽현지의 목소리가 문틈으로 새어나가자 초점 없는 흰 눈동자를 가진 이들이 동시에 의약당의 문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팽가를 죽여라!”
“팽가를 죽여라!”
“팽가를 죽여라!”
“팽가를 죽여라!”
그들은 아무런 억양 없이 일관된 말투로 끊임없이 같은 말을 되뇌며 의약당의 앞으로 달려와 문을 부수기 시작했다.
쾅! 쾅! 쾅! 쾅!
팽현지 역시 일순간 공포에 질려 뒷걸음치기 시작했다.
툭!
그녀는 뒷걸음질을 치다 바닥에서 떨고있는 왕소미와 부딪혔다. 그녀는 겁에 질린 왕소미를 보자 불현듯 머릿속에서 선명한 생각이 떠올랐다.
‘이 계집애는 이들을 보자마자 이렇게 주저앉았어. 분명히 무언가를 알고 있다!’
“야! 왕소미! 정신 차려! 저들은 누구야?”
왕소미는 아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초점이 없는 눈으로 허공만을 응시할 뿐 대답이 없었다.
“빌어먹을!”
팽현지는 왕소미를 내팽개치고 자신의 침대맡으로 달려가 베게 아래에서 자신의 연도를 꺼내 들었다.
쾅! 쾅! 쾅! 빠직!
의약당의 두꺼운 문은 쉽사리 부서지지 않았지만, 경첩이 그들의 힘을 견디지 못해 부서지기 시작했다.
쿠우웅!
경첩이 부서지자 결국 의약당의 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팽현지는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괴인을 향해 도를 내리그었다.
서걱!
제일 선두에서 달려오던 괴인의 팔이 끊어지며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그는 자신의 팔이 잘려져 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중얼거리며 팽현지에게 달려들었다.
그녀의 연도가 그의 목을 스쳐 지나가자 그는 달려가던 자세 그대로 엎어졌다. 쏟아지는 핏물 사이로 그의 머리가 데굴데굴 굴러가고 있었다.
“하! 뭐야? 별거 아니잖아? 괜히..”
팽현지의 콧방귀가 끝나기도 전에 서너 명의 사내들이 의약당의 입구로 다가왔다. 그들은 손에는 검이 들려 있었고 그냥 보아도 기도가 심상치 않았다. 팽현지는 크게 심호흡을 한번 하고는 자신이 가장 제대로 펼칠 수 있는 오호단문도(五虎斷門刀)의 초식들을 도에 실어 나가기 시작했다.
깡! 깡! 퍽!
의약당의 좁은 문을 지키고 선 그녀는 결국 삼 초 만에 떠돌이 상인 복장을 한 사내의 발길질에 가슴을 맞아 뒤로 굴렀다.
“이! 제길!”
팽현지가 안으로 굴러가자 사내 넷이 불쑥 들어왔다. 그리고는 침대에 누워있는 팽대현과 악화를 향해 두 사내가 성큼성큼 걸어갔다. 나머지 두 사내는 각각 그녀와 왕소미의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저벅저벅 걸어온 괴인은 팽현지의 복부를 그대로 걷어찼다.
콰쾅!
배를 가격당한 그녀는 그대로 튀어 올라 천정에 닿고는 이내 바닥으로 떨어졌다.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고통에 바닥을 뒹굴던 그녀에게 다가간 괴인은 자신의 두 손으로 팽현지의 목을 잡고 번쩍 들어 올렸다.
“커..컥..컥..컥”
그는 팽현지의 가녀린 목을 잡은 두 손에 힘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의식이 희미해지는 가운데 얼핏 그림자 하나가 어른거리는 것을 보았다.
자신의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괴인이 뒤를 돌아보려 하자 은빛 섬광이 그의 팔다리와 머리를 관통했다.
후두둑!
그의 머리와 팔들이 떨어져 나가더니 다리와 함께 몸통마저 쓰러졌다. 팽현지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드니 왕소미가 피가 흥건한 쌍월을 들고 그녀 앞에 서 있었다.
“컥컥! 이 빌어먹을 왕가 계집애야! 너 일부러 그랬지?”
왕소미는 그녀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자신의 쌍월을 팽대현과 악화를 향해 검을 찔러 넣으려는 사내들에게 투척했다.
퍽! 퍼벅!
원앙월에 실린 힘이 어찌나 강했는지 그 사내들은 원앙월이 몸에 박힌 채 벽으로 날아갔다. 그들은 벽에 꽂혀 몸을 벌벌 떨더니 이내 축 늘어졌다. 왕소미가 벽으로 걸어가 자신의 원앙월을 쑥하고 뽑으니 그녀의 온몸은 사내들의 피가 튀어 엉망이 되었다.
왕소미는 얼굴에 튄 피를 무심하게 소매로 쓱 닦고는 팽현지에게 물었다.
“언니! 아까 제대로 못 들었는데, 다시 한번 말씀해 주시겠어요?”
재밌게 읽어 주셨다면 추천과 선작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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