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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님의 서재입니다.

선인과 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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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뿔
작품등록일 :
2022.05.12 17:08
최근연재일 :
2022.06.02 20:20
연재수 :
23 회
조회수 :
464
추천수 :
4
글자수 :
81,001

작성
22.05.29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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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쪽

18.

DUMMY

난 싫다는 대웅이를 데리고 양호실로 왔다.

양호 선생님이 간단한 응급조치를 해준 덕에 대웅이의 얼굴은 일회용 밴드투성이다. 양호선생은 대웅이와 같이 있기 싫은 듯 교무실에 급한 일이 생겼다며 자리를 피했다. 대웅이는 종이컵에 침을 뱉었다. 얼마나 얻어터졌는지, 침이 아니라 핏물이었다.

“사람들이 우리 엄만 창녀랬어.”

“.....”

대웅이는 입에 고인 피를 뱉어내기만 했다.

“이 남자, 저 남자 꼬리치고 다녔거든. 남들 다 있는 아버지. 난 그 아버지가 누군지도 몰라. 죽었는지 살았는지, 뭐하는 사람인지, 결혼은 했는지, 나만한 딸이 있는지 아무것도 몰라. 그저 엄마가 돈 주고 만난 수 십 명 중의 하나가 내 아버지라는 것만 알아.”

그 누구에게도 풀어놓지 않았던 나의 가족사를 말했다. 이상하게도 마음이 가벼웠다.

“그래서?”

“....”

“그 얘긴 왜 하는 건데?”

대웅이는 투덜거렸다.

“중학교 때부터 미장원에서 일했어. 엄마처럼 살기 싫었어. 돈 모아서 엄마한테 도망치려고 했어. 근데 그 엄마란 작자는 내가 번 돈을 족족 뺏어가더라.”

대웅이는 내 얘기에 관심 없다는 듯 일어났다.

“동네 창녀 엄마가 죽어서 속편했어. 내 불행도 끝이라고 생각했어. 근데 불행은 또 다른 불행의 시작인 거 있지. 넌 그런 아버지 사랑하니?”

대웅이는 걸음이 멈췄다.

“사랑한다면... 나쁜 아버지라도 사랑한다면...”

“내가 그랬지. 우리 집엔 얼씬도 하지 말라고.”

대웅이는 마지막 침을 뱉고는 가버렸다.

난 대웅 아버지의 누명을 벗겨주고 싶었다. 나 때문에 대웅이가 더 이상 피해보는 일이 없기를 바랐다. 하지만 대웅이는 관심 없다는 듯 싸늘하게 가버렸다. 가슴이 아려왔다. 자수할 용기조차 없는 내가 한심했다.


야옹야옹.

도둑고양이만이 밤거리를 장악했다.

살인사건이 일어난 후 동네 인심이 흉흉해졌다. 신사동 치킨 집은 전염병의 근원지처럼 그 누구도 드나들지 않았다. 대웅이와 신사동 아저씨는 정문이 아닌 뒷문으로만 돌아다녔다. 그들이 언제 들어오고, 언제 나가는지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도둑고양이처럼 살던 대웅이가 오늘은 큰 길로 나왔다. 더 이상 기죽고 살지 않겠다는 의지인지도 모른다. 대웅이는 닫힌 치킨 집 문을 두드렸다.

쿵! 쿵!

원장은 시끄럽다는 듯 대웅이를 보며 혀를 찼다.

곽마담도 다방에서 나와 대웅이를 노려봤다.

쿵! 쿵!

대웅이는 계속 문을 두드리더니 포기하고는 유리문을 깨고 문을 열었다.

대웅이가 집으로 들어가자 거리에 침묵이 다시 내려앉았다.

고요한 밤.

“아빠, 아빠!”

밤의 침묵을 깬 건 대웅이의 울음소리였다. 사람들은 하나 둘씩 신사동 가게를 향해 몰려들었다. 성추행 범은 내칠 수 있어도 어린 아들까지 외면할 인간들은 아니었다. 가게로 모여든 사람들은 일제히 경악했다.

헉.

현장을 본 나 역시 숨이 막혔다.

치킨 집 바닥은 새빨간 피로 흥건했다.

신사동 아저씨가 죽었다. 처참하게 칼에 난도질당했다. 대웅이는 사람들을 향해 아빠를 살려달라고 절규했다. 아버지의 주검을 앉고 통곡했다. 인두겁을 쓴 괴물이라도, 대웅이에게는 기대고 싶은 아버지일 것이다.

나 때문이다.

이 모든 비극이 나 때문에 시작됐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경찰서로 달려갔다.

자수.

무슨 일이 있어도 자수를 해야 했다.

호영이는 경찰서 주위를 맴돌고 있었다. 지영의 살인자가 밝혀지지 않아 답답할 것이다. 호영이는 나를 보자 자리를 피했다. 추레한 자신의 몰골을 남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을 것이다.

휴.

한 숨을 길게 쉬었다.

용기 없던 과거의 나를 한 숨에 날려버렸다. 경찰서 문을 향해 또박또박 걸어가는 순간, 누군가 내 팔을 잡았다.

대웅이었다.

대웅이는 내 손을 잡고는 놀이터로 끌고 갔다.

“내일 동네를 떠날 거야.”

언제나 나를 경멸에 찬 눈으로 노려보던 대웅이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정한 음성으로 말했다. 떠난다. 나와 같은 부류인 아이가 이 동네를 떠난다고 했다.

“어디로 가는데?”

“....”

대웅이는 목적지를 알려주지 않았다. 알려줄 수도 없고 알려고도 하지 말라는 침묵이었다.

나는 고백했다.

“지영이 내가 죽였어.”

대웅에게 먼저 알려줘야 될 것만 같았다.

“너희 아버지한테 누명 씌워서 미안해.”

대웅은 태연했다. 놀랄 거라는 예상과는 달리 침착했다.

“알아.”

알아? 내 귀를 의심했다.

“지영이 죽던 날. 나, 여기 있었어.”

주위를 둘러봤다.

지영이가 죽었던 정글짐이 눈에 들어왔다.


***



다시, 대웅의 이야기


“거지같은 년.”

유나가 아빠 손에 이끌려 가게에 왔던 날.

난 이유 불문하고 무작정 유나를 쫓아냈다.

내 머리를 잘라준 아이에게 처음으로 건넨 말이 거지같은 년이었다. 유나는 분을 삭이며 미용실로 가버렸다. 부모를 여의고 혼자 힘으로 살아가는 불쌍한 아이의 가슴을 후벼 파는 말을 해버렸다. 유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아빠에게 억지로 끌려왔을 거라는 거 잘 알고 있다. 잘 알고 있기에 모진 말로 유나를 내쳐야만 했다. 우리 부자에게 관심을 갖기 전에, 호기심의 싹을 단박에 싹둑 잘라내야만 했다.

유나는 미성년자다.

아빠는 곽마담이나 미용실 원장 같은 나이든 여자에게는 눈곱만큼의 관심도 없다. 곽마담이 옷을 벗고 누드쇼를 해도 아빠는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이다. 성적 기호는 개인의 취향이라고 하지만 아빠는 늘 미성년자인 여고생을 상대로 일을 저질렀다.

아빠의 저질 본능을 알고 있기에 유나의 방문은 재앙 그 자체였다.

유나 엄마가 동네 창녀든 뭐든 관심 없다.

유나가 여왕벌의 모진 고문을 받든 말든 관심 없다.

유나가 늙수그레한 할아버지와 섹스를 하든 말든 관심 없다.

단지 그 연애 대상이 우리 아빠가 아니기 만을 바랄 뿐이다.


지영이가 놀이터에서 죽던 그 밤.

난 공교롭게도 공원에 있었다.

아빠와 유나의 부적절한 관계를 목격하자 더러운 기분이 풀리지 않았다. 불결한 아빠와 한 집에 있기가 싫었다. 아빠는 교복 입은 여학생들을 볼 때마다 먹이를 찾는 하이에나 마냥 군침을 흘렀다. 이쯤 되면 정신병이다. 징역과 집행유예를 선고받고, 전자발찌까지 채웠는데도 아빠의 몹쓸 버릇은 좀처럼 바뀌지 않았다. 섹스마저 단절된 생활을 하고 있기에 아빠의 성적 충동은 병적으로 변해갔다. 무작정 집을 나와 버렸다. 갈 곳 없는 어린 양을 받아주는 곳. 내 몸은 그렇게 공원에 안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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