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징비님의 서재입니다.

선인과 악인

웹소설 > 일반연재 > 일반소설

투뿔
작품등록일 :
2022.05.12 17:08
최근연재일 :
2022.06.02 20:20
연재수 :
23 회
조회수 :
466
추천수 :
4
글자수 :
81,001

작성
22.05.20 18:10
조회
17
추천
0
글자
7쪽

09.

DUMMY

“계십니까?”

아침 일찍 경찰들이 집으로 찾아왔다.

지영이는 아직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PC방에서 바로 학교로 가려나. 엄마한테 걸리면 뭐라고 둘러대지. 온갖 변명 거리를 생각하느라 머리가 욱신거렸다. 엄마는 부엌에서 아침 식사를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누구시죠?”

엄마 대신 내가 경찰들을 맞이했다.

“부모님 계시지?”

제복을 입은 그들은 미성년자 따윈 볼일 없다는 듯 집안을 살폈다. 웅성거리는 소리에 엄마가 나왔다.

“무슨 일이시죠?”

엄마는 아침부터 찾아온 제복 입은 사나이들을 보자 의아해했다.

“김지영 학생 어머니 되시죠?”

경찰은 정중하게 물었다. 얼굴에 근심이 서려있는 걸로 봐서는 지영이가 뭔가 큰 사고를 친 같았다.

“네. 우리 딸한테 무슨 일이라도... 지영아!”

엄마는 지영이를 불렀다.

경찰들은 적잖이 당황한 눈빛이었다.

“얘가 아침잠이 좀 많아요. 지영아!”

엄마는 지영을 깨우기 위해 방에 들어가려고 했다. 그 순간, 난 엄마의 손을 잡았다. 텅 비어 있는 방. 엄마에게 지영의 방황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동생은 학교 갔어요.”

엄마를 위해, 지영이를 위해 내가 먼저 핑계를 대야만 했다.

경찰들은 그런 나의 답변에 당황한 눈치였다.

“오늘 주번이라 일찍 갔거든요.”

거짓말은 또 다른 거짓말을 불러왔다.

“몇 시에 나갔지?”

나이든 경찰이 물었다.

“그게.. 정확히는 저도 잘 몰라요.”

“확실한 거냐? 거짓말 하면 못써.”

나이든 경찰의 얼굴이 점점 험악해져갔다. 지영이가 무슨 죄를 지은 걸까. 난 죄인마냥 고개를 숙였다. 나이든 경찰의 두 눈을 보고 똑바로 말할 자신이 없었다.

“지영이는 왜 찾으시죠?”

엄마가 위기의 순간에서 날 구해줬다.

나이든 경찰은 뒤로 물러섰다. 진실을 말해줄 사람. 젊은 경찰은 엄마와 나에게 방문의 목적을 알려줬다.

“지영 학생은 오늘 새벽, 주검으로 발견됐습니다.”

엄마와 난 그 말에 피식 웃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어젯밤에 살해된 거 같습니다. 지영이 오빤가?”

젊은 경찰이 내게 물었다.

“동생이 어젯밤에 누구를 만났는지 알고 있나?”

경찰들의 표정은 진지했다.

“학교 갔다잖아요. 주번이래요. 말도 안 돼. 호영아, 지영이 학교 간 거 맞지?”

엄마는 내게 동의를 구했다. 경찰의 말이 거짓이라는 걸 확인받고 싶어 했다. 난 털썩 무릎을 꿇었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호영아, 똑바로 말해봐. 지영이 새벽에 나간 거 맞지. 엄마의 절규가 내 귓가에 맴돌았다. 숨이 막혔다. 엄마가 절규를 하고 기절을 했다. 난 멍하니 앉아 쓰러진 엄마를 지켜만 봤다. 움직일 수 없었다. 엄마의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희번덕거리는 눈동자가 보였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놀이터 살인사건.

지영이는 놀이터에 있는 정글짐에서 주검으로 발견됐다. 동네신문은 또다시 우리 가족을 주인공으로 대서특필했다. 동생의 속옷이 반쯤 벗겨지고, 범인의 머리카락이 발견됐다는 경찰들의 중간보고를 그대로 옮겨 놓았다. 속옷이 벗겨졌다는 기사 한 줄에 머리가 띵해졌다. 성폭행. 여동생이 성추행을 당했다. 누군가 내 동생을 겁탈한 후 죽여 버렸다. 아빠는 동네 창녀의 품에서 죽고, 여동생은 성추행 범에게 죽었다. 놀이터는 지영의 죽음을 구경하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경찰들은 검시관이 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지영의 몸피를 놀이터에 방치하고 있었다. 학생부 선도위원이 놀이터를 지나다가 지영을 발견했다고 했다. 청산고 학생이라면 누구나 아는 쌍둥이 남매이기에 지영의 신원 조회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엄마와 난 흰 천에 덮인 지영의 얼굴을 확인했다. 하룻밤 사이에 지영의 얼굴은 하얗게 변해있었다. 냉장고의 고깃덩어리마냥 차가웠다. 웃지도 울지도 않은 감정 없는 얼굴. PC방 알바를 한다고 할 때 말렸어야 했다. 여동생의 두뇌를 시기하지 말았어야 했다. 슬픔에 빠진 엄마에게 알렸어야 했다. 엄마는 지영의 얼굴을 보자마자 의식을 잃었다. 아빠를 잃은 지 1년도 지나지 않았다. 신은 왜 우리 가족을 시험 대상으로 삼았을까. 대단한 행복을 누렸던 것도 아니고, 대단한 부귀영화를 누렸던 것도 아니다. 도대체. 왜. 나의 분노는 하늘을 향해 삿대질했다.


삐뽀삐뽀.

경찰차가 ‘신사동 닭 강정’ 가게 앞에 세워졌다.

지영의 죽음을 전언한 경찰들이 치킨 집으로 들어갔다.

엄마는 식음을 전폐하고 약국 문을 닫았다. 배달 올 약품들이 있기에 엄마 대신 내가 가게를 지켰다.

“번지수를 잘못 짚었어. 난 아니라니까.”

약국 밖으로 어수선한 소리가 들려왔다. 경찰들이 수갑을 채운 신사동 아저씨를 경찰차에 구겨 넣었다. 동네 사람들이 치킨 집으로 몰려들었다.

“신사동 아저씨 전과범이래요.”

곽마담이 몰려든 사람들을 향해 주저리주저리 떠들었다. 사람들은 무슨 국가비밀이라도 들은 것 마냥 경악했다. 구경 나온 유나는 미용실 안으로 들어갔다. 어른들의 쓰잘머리 없는 잡담에 끼어들기 싫은 모양이다. 나 역시 그들 사이에 끼고 싶지 않아 약국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성범죄자라면서요.”

댕기미용실 원장이 곽마담의 풍월을 거들었다.

“지영이도 저 사람이 죽였대요.”

내 발이 얼어붙었다. 지영이를 죽인 범인이 잡혔다. 동생의 속옷을 벗기고 머리카락을 남기고 도망친 성추행 범을 잡았다. 부동산 사장은 신사동 부자가 이사 올 때부터 알아봤다며 동네를 공포 분위기로 몰아갔다. 신사동 아저씨는 전학생의 아버지였다. 치킨을 주문할 때마다 닭 강정을 무료로 서비스해준 인심 좋은 아저씨. 엄마가 약국 셔터를 닫을 때마다 한 걸음에 달려와서 도와줬던 친절한 아저씨. 친절한 아저씨는 <빨간 모자>에 나오는 늑대였다. 발목에 찬 전자발찌를 차고 신선한 먹이를 통째로 집어삼키려는 사악한 늑대. 늑대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가락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가게 문을 닫았다. 테이블을 정리하고, 불을 끄고, 쓸쓸하게 방안으로 들어갔다.


“우리 동네에 성범죄가 사는 거 알아?”

몇 달 전, 지영이 지나가는 말로 내게 말했다. PC방에서 들은 소문이라도 우리 동네에 전자발찌를 찬 성추행 범이 산다고 했다. 그때는 쓸데없는 가십이려니 하고 핀잔만 줬다. 그날, 지영의 말대로 인터넷으로 성범죄자 조회만 해봤어도 지영이 이런 험한 꼴은 당하지 않았을 텐데. 나의 무지가 죄였고, 나의 무관심이 화를 불렀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선인과 악인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23 23. 22.06.02 14 0 11쪽
22 22. 22.06.02 13 0 8쪽
21 21. 22.06.01 15 0 8쪽
20 20. 22.05.31 15 0 7쪽
19 19. 22.05.30 19 0 8쪽
18 18. 22.05.29 15 0 7쪽
17 17. 22.05.28 16 0 8쪽
16 16. 22.05.27 16 0 8쪽
15 15. 22.05.26 15 0 8쪽
14 14. 22.05.25 16 0 7쪽
13 13. 22.05.24 16 0 9쪽
12 12. 22.05.23 16 0 7쪽
11 11. 22.05.22 17 0 9쪽
10 10. 22.05.21 16 0 9쪽
» 09. 22.05.20 18 0 7쪽
8 08. 22.05.19 15 0 7쪽
7 07. 22.05.18 15 0 8쪽
6 06. 22.05.17 24 0 8쪽
5 05. 22.05.16 25 0 9쪽
4 04. 22.05.15 28 1 7쪽
3 03. +1 22.05.14 30 1 8쪽
2 02. +1 22.05.13 42 1 8쪽
1 01. +1 22.05.12 51 1 6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