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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님의 서재입니다.

선인과 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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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뿔
작품등록일 :
2022.05.12 17:08
최근연재일 :
2022.06.02 20:20
연재수 :
23 회
조회수 :
456
추천수 :
4
글자수 :
81,001

작성
22.05.26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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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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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15.

DUMMY

“학생인거 같은데....”

“저래 뵈도 미용사예요. 자격증도 있어요.”

신사동 아저씨가 머리를 자르러 왔다. 원장은 미용실이 만든 천재 미용사라며 나를 추켜세웠다.

“중학교 때부터 제 보조로 일했어요. 벌써 고등학교 3학년이에요.”

“우리 아들하고 동갑이네.”

신사동 아저씨가 나와의 공통점을 찾아냈다.

“어디 젊은 미용사 솜씨 좀 볼까. 원장님, 천재 미용사한테 부탁해도 되죠?”

이웃집 아저씨가 원장에게 양해를 구했다.

원장은 아쉬워했지만 그렇다고 아저씨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 마지못해 허락했다.

“단골 되실 분이니까 잘 잘라야 된다.”

“네.”

난 짧게 대답하고 아저씨의 요구대로 가위질을 시작했다.

“이름이 뭐니?”

아저씨는 거울에 비친 나를 흥미롭게 지켜보며 물었다.

“유나예요.”

원장이 주책없이 대신 대답했다.

“유나. 이름 참 좋네. 우리 아들은 대웅인데. 학교에서 만나거든 잘 부탁한다.”

아저씨는 나의 엉덩이를 툭툭 치며 찡긋 웃었다. 난 쑥스러워 그만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기분이 참 묘했다. 신사동 아저씨는 나의 결과물을 보며 칭찬했다. 신사동 헤어 디자이너들보다 훨씬 더 세련되게 자른다고 했다. 나도 가끔은 시골구석에서 썩기 아까운 재주라고 생각했었다. 원장은 시샘하듯 아저씨의 머리를 빨리 감겨드리라며 재촉했다. 아저씨는 두피 마사지도 잘한다며 계속 립 서비스를 날렸다. 죽은 지영 아버지도 그랬다. 못해도 잘했다고 칭찬했고, 실수해도 괜찮다며 칭찬했다. 헤어드라이기로 아저씨의 머리를 말리려고 하자 원장이 직접 마무리를 하겠다며 나섰다. 할 수 없이 난 아저씨 주위를 기웃거리며 바닥을 쓸었다.

“엄마만 잘 만났어도 이런 고생은 안 해도 되는 아인데. 참 안됐어요.”

원장은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나의 가족사를 늘어놓았다.

“애가 얼마나 번다고. 버는 족족 뺏어갔거든요.”

“아줌마!”

비질을 멈추고 아줌마를 향해 소리쳤다. 엄마가 죽었어도 동네 창녀 엄마는 여전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꼴에 또 엄마라고. 쟤가 저래요. 죽은 엄마 얘기만 나오면 승질부터 낸다니까요.”

“엄마가 죽었어요?”

“네. 아주 민망....”

원장은 뭔가를 더 말하려다 내 눈치를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내게 믿음을 줬던 아줌마가 남자의 환심을 사기 위해 나와 창녀 엄마를 거론하며 동정론을 펼쳤다. 지금은 함구해도, 내가 자리를 비우면 불쌍한 아이를 거둔 장본인이라며 자신의 희생을 치하할 지도 모른다. 원장은 가위질을 하며 이웃집 아저씨를 잡아두며 수다를 떨었다. 자를 머리가 없는 대로 계속해서 가위질을 하는 척 했다. 신경질적으로 비질을 하다 그만 빗자루로 아저씨의 바짓단을 건드리고 말았다. 그 순간 아저씨의 발목에 찬 검은 물체를 보았다. 아저씨는 누가 볼까 얼른 바짓단을 내렸고, 나와 눈이 마주치자 찡긋 윙크를 했다. 방금 내가 본 건 무엇일까. 비질을 하는 나의 눈은 아저씨의 바짓단을 향해 있었다. 가끔 운동부 학생들이 발목에 모래주머니를 차고 달리는 것을 본적이 있다. 아저씨도 운동을 하는 건가? 아님 만보기를 달고 하루에 몇 걸음이나 걷는지 확인하는 건가? 것도 아님 지압용 안마기? 모르겠다. 하지만 그 물체가 뭔지를 알게 된 건 지영이 죽은 바로 다음 날이었다.


“불쌍한 것. 아저씨가 닭 한 마리 튀겨줄까.”

“괜찮아요.”

신사동 아저씨는 매주 미용실에 들러 머리를 정리했다. 한 달에 한번 해도 되는데 매주 같은 시간에 방문했다. 미용실에 올 때마다 닭 강정이나 프라이드치킨을 만들어왔다. 원장은 늘 부담스럽다며 그냥오라고 했지만 아저씨는 한원장만 천국에 가게 할 수 없다며 날 위해 가져왔다며 농담을 걸었다. 원장은 분명 아저씨에게 나의 가족사를 모두 까발렸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매주 두 손 무겁게 방문하던 아저씨가 오늘은 빈손으로 방문했다. 신사동 아저씨는 여전히 나를 헤어디자이너로 지목했다. 원장은 어쭙잖은 나와 겨루는 게 자존심이 상한 듯 아저씨가 원하는 대로 내버려뒀다. 머리 정리가 끝난 아저씨는 미용실을 나서다가 바빠서 닭 강정을 만들어오지 못했다며 가게에 함께 가자고 했다.

“다음에 갖다 주세요.”

난 정중하게 거절했다. 하지만 아저씨는 미용실에서 먹고 자는 내가 불쌍하다며 내 손을 억지로 끌고 나왔다. 원장도 가보라는 눈짓을 보냈다.

“아저씨가 닭 한 마리 금방 튀겨줄게.”

신사동 아저씨는 진심이라는 듯 내 손을 잡고 가게로 이끌었다.

“거지같은 년.”

치킨 집에 들어서자마자 누군가 나를 향해 욕을 했다.

대웅이었다.

대웅의 시선은 아저씨가 잡고 있는 내 손에 꽂혀 있었다. 신사동 아저씨는 반사적으로 얼른 내 손을 뿌리쳤다. 그 순간, 난 못된 짓 하다 걸린 아이마냥 두려웠다.

“혼자 산다잖니. 너랑 같은 반이라며. 서로 알고 지내면 좋잖아.”

아저씨는 아들 눈치를 보며 천의 고아를 거둬 먹이기 위해 데려온 것 뿐이라며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았다. 눈물이 났다. 내가 치킨을 원했던 것도 아니고, 분명 싫다고 거절까지 했었다. 내가 대웅에게 무시를 받을 이유 따위는 없다. 대웅은 내 멱살을 잡고 밖으로 쫓아냈다. 두 번 다시 가게에 왔다가는 죽여 버릴 거라고 했다. 영문도 모른 채 당하고만 있으려니 억울해서 눈물이 나왔다. 대웅은 냉혈한처럼 가게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나쁜 새끼.

못 돼 처먹은 새끼.

놀이터에서 패거리들에게 두들겨 맞는 날 보고도 방관했던 놈이 누구였을까. 이방인이라 그런 줄 알았다. 이사 온 첫날이기에 나서지 못한 거라 생각했다. 내가 예쁘지 않아서 목숨 바쳐 구할 의욕이 안 생겼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불의를 보면 꾹 참는 속 좁은 놈이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까지 배알이 꼬여있는 줄은 정말 몰랐다. 복수할 거다. 미용실에 머리를 자르러 오면 바리캉으로 밀어버릴 것이다.


세상에 내 편은 없었다.

아무리 기를 쓰고 살아도, 아무리 바르게 살려고 발버둥을 쳐도. 난 동네 창녀의 낙인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신사동 아저씨는 미장원을 향해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대웅이는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며 비웃었다. 내가 왜 이런 감시를 받아야 되는지. 내가 왜 이런 홀대를 받아야 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쪼매난 지영이한테 당하고 사니까 별별 놈이 꼬여든단 생각에 울화통이 치밀었다.

그날 밤.

대웅이에게 거지같은 년이라고 들었던 그날, 지영이가 나를 불렀다.

미장원으로 전화를 해서는 당장 놀이터로 뛰쳐나오라고 했다. 거절했다. 더러운 기분으로 지영이를 만날 수 없었다. 그 동안 억눌렸던 감정들이 분출할 것만 같았다. 분위기 파악을 못한 지영이는 미장원까지 나를 찾아왔다. 원장이 퇴근해버린 걸 알고는 미장원 문을 잠가버렸다.

“여기서 끝장 볼래, 놀이터로 나올래.”

지영이는 화를 누르고 침착하게 말했다.

밖에는 지나가는 사람 하나 없었다. 하루 종일 치킨 집에 앉아서 날 주시하던 대웅이도 보이지 않았다.

쨍그랑.

손거울이 깨졌다.

지영이는 미용실 집기를 집어던지며 난장판을 만들기 시작했다.

“알았어, 나갈게. 나가면 되잖아.”

휴지통을 쏟으려던 지영의 손을 막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미용실에서 쫓겨나고 싶지 않았다. 그렇잖아도 요즘 툭하면 자리를 비운다며 원장 눈 밖에 나려던 차였다. 원장은 지영이가 나를 괴롭혔다고 해도 믿지 않을 것이다. 지영이는 오히려 자신이 피해자인 척 울먹거릴 것이다. 세상이 원래 그랬다. 예쁜 것들한테 너그러웠고, 공부 잘하고 있는 것들한테 한없이 굽실거렸다.

“이제 좀 머리가 돌아가니? 주제 파악 좀 하자. 응?”

지영이는 집어던지려던 휴지통을 걷어차고는 밖으로 나가버렸다.

그날 밤, 지영이가 참을성이 뭔지를 조금만 보여줬다면 그렇게 쉽게 죽지는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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