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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비님의 서재입니다.

선인과 악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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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뿔
작품등록일 :
2022.05.12 17:08
최근연재일 :
2022.06.02 20:20
연재수 :
23 회
조회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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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글자수 :
81,001

작성
22.05.22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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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11.

DUMMY

원조교제.

지영이 유나의 월급을 갈취하고, 패거리들을 선동했다는 사실은 인정한다. 하지만 원조교제 할 만큼 썩어 빠진 아이는 아니었다. 나 못지않게 아빠의 불륜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아이였다. 가족이 딸린 유부남을 건드리는 여자는 천벌을 받아야 한다며 일부일처제를 옹호했다. 그런 아이가 유부남을 상대로 몸을 팔았다는 소문은 납득할 수 없었다. 아빠가 그리웠던 것일까.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난 지영의 정당방위를 해명하려고 애썼다.

성범죄자를 쫓아내자며 시위를 하던 사람들은 지영을 향해 화살을 당겼다. 내 동생이 늙은 아저씨들을 상대로 몸을 팔았다는 소문은 동네사람들의 입을 통해 기정사실화가 돼버렸다. 나쁜 소문은 금방 퍼지고 있었다. 계집애가 원인 제공했기에 변을 당한 거라며 동생의 죽음을 제 탓으로 돌렸다. 신은 죽었다더니. 신의 장례식을 본적도 없는 인간들이 신의 흉내를 내며 지영을 단죄했다. 결국 지영의 소문은 엄마 귀에 들어갔고, 엄마는 자신을 무시하는 곽마담을 비웃으며 도도하게 약국으로 들어갔다.

그 날 밤.

엄마가 동네 사람들의 멸시를 받았던 그 날 밤.

엄마는 약국에 있던 수면제를 다량 복용했다. 아들이 살아있음에도 엄마는 죽음을 선택했다. 젠장. 신이란 건, 인간의 인내심을 테스트하는 사탄이 분명했다.


***


엄마의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다.

링거에 매달려 간신히 생명줄을 움켜쥐고 있었다.

“이게 다 곽마담 때문이야.”

“내가 뭐?”

두 여자가 병실 밖에서 수군거렸다. 곽마담과 한원장이었다. 자신들의 세치 혀로 엄마를 죽였다는 죄책감에 병실 문을 열지 못하고 있었다.

“곽마담이 불난데 기름 붰잖아.”

“낸들 이럴 줄 알았나. 하도 도도하게 굴기에, 콧대 좀 무너뜨린 건데... 사실 없는 말 지어낸 것도 아니잖아. 지영이 고것이, 신사동 오사장이랑 만나는 거 봤다는 사람도 있대요. 돈 받는 것도 봤다는데 뭐. 오사장이 지영이 끌고 가는 것도 봤다니까.’

곽마담은 계속해서 입안의 혀를 날름거렸다.

내가 문을 연 것도 모르고 다방에서 주워들은 소문들을 한원장 귀에 속닥거렸다.

“병원에 있었니?”

한원장이 날 알아보고는 곽마담을 밀어냈다.

“엄마는 어떠시니?”

한원장은 병실 너머 누워 있는 엄마를 보며 안쓰러워했다. 곽마담은 자신을 노려보는 내 눈치를 보며 뒤로 물러났다.

“네가 고생이 많다. 이거 얼마 안 되지만.... 동네 사람들끼리 십시일반 한 거야.”

한원장이 내 손에 돈 봉투를 쥐어줬다.

“내 탓 아닌 거 알지? 내가 일부러 그런 거 아니잖아. 난 다방에서 들은 얘기만... 그리고 병원비도 내가 가장 많이 보탰어.”

한원장이 눈치껏 곽마담을 제지했다.

이 사람들은 병원까지 와서 병 주고 약주고 완전 쇼를 하고 있다. 난 돈 봉투를 움켜줬다. 이 여자들을 어떻게 퇴치할까. 소화기를 분사해버릴까. 똥물을 한바가지 씌워 쫓아버릴까. 그것도 아님 변기통에 쑤셔놓고 익사시켜 버릴까. 한원장과 곽마담이 병실 안으로 들어오려고 했다.

“꺼져.”

난 막무가내인 그들을 저지했다. 그들은 나의 반대말에 적잖이 당황한 얼굴이었다. 인간 같지도 않은 인간들이 인간 취급을 받고 싶어 했다. 난 그들이 준 돈 봉투를 갈기갈기 찢었다. 그리고 제멋대로 찢어진 종이 쪼가리들을 세치 혀들을 향해 집어던졌다.


아빠와 지영의 원혼이 집을 떠도는 것일까.

온기를 잃은 텅 빈 집에서 한기가 느껴졌다. 지영의 방은 지영이 죽던 그날 그대로였다. 핑크색 침대와 핑크색 커튼. 유달리 핑크를 좋아했던 아이였다.

언젠가 돌아올 엄마를 위해 지영의 방을 정리해야만 했다. 지영의 소문들을 확인 사살해줄 증거 따위를 남겨두고 싶지 않았다. 한바탕 경찰들이 휩쓸고 간 지영의 방에는 이렇다 할 물건들이 없었다. 책꽂이의 책들은 교과서와 문제집뿐이었고, 책상 위는 필기도구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책상 서랍은 스테이플러와 아기자기한 집게들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덜커덕.

책상 서랍이 뭔가에 걸려 덜거덕 거렸다. 손을 집어넣어 붙어 있는 물건을 꺼냈다. 작은 수첩이었다. 그 누구도 찾지 못하도록 책상에 테이프로 고정해 놓았다.

‘지영이 수첩에 원조교제한 사람들 명단이 쫙 적혀 있었다니까.’

문득 소각장에서 만났던 양아치들의 말이 떠올랐다.

수첩.

설마 이 수첩에 지영의 흔적들이 기록된 건 아니겠지. 심장은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빈집이란 걸 알면서도 누가 볼까 얼른 주위를 살폈다. 수첩을 펼치는 내 손이 파르르 떨렸다. 수첩에는 남자들의 이름과 전화번호가 적혀 있었다.

오태수.

낯익은 이름이 눈에 들어왔다.

오태수 이름 옆에는 매주 50,000이란 숫자가 적혀 있었다.

숫자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지영이 고것이, 신사동 오사장이랑 만나는 거 봤다는 사람도 있대요. 돈 받는 것도 봤다는데 뭐. 오사장이 지영이 끌고 가는 것도 봤다니까.’

뱀의 혀를 가진 곽마담의 말이 기억났다.

5만. 5만원. 지영이 매주 오사장에게 5만원을 받았다는 장부가 내 눈앞에 있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날 일 없다더니, 지영의 소문들이 하나둘씩 맞아떨어지기 시작했다. 전화로 확인해본 결과, 수첩에 적힌 남자들은 하나같은 나이든 아저씨들이었다.

지영이 원조교제를 했다. 신사동 변태에게 매주 5만원을 받았다.

욕지기가 올라왔다.

사악한 늑대는 지영의 몸을 더럽힌 대가로 지영의 손에 5만원을 쥐어줬다.

더럽고 추악했다.

지영은 피해자다. 곽마담이 그랬다. 오사장이 지영이 끌고 가는 걸 봤다고. 굶주린 늑대는 싫다는 동생을 억지로 끌고 갔다.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솟구쳤다. 죽은 동생을 위해, 엄마를 위해 이방인의 죄를 심판해야만 했다.


“에이, 몹쓸 사람들. 생사람을 잡아도 유분수지. 내가 죽였어. 내가 약국 여자 죽였냐고.”

누군가 신사동 치킨집 문을 깨뜨렸다.

겸손했던 늑대는 성범죄자란 고매한 신분이 만천하에 드러나자마자 구역질나는 본색을 드러냈다. 가게 앞에서 으르렁거리는 주민들을 향해 죽이든 살리든 맘대로 하라며 온 몸에 석유를 뿌렸다. 부동산 사장의 손에 라이터를 쥐어주며 불을 지르라며 다그쳤다. 겁에 질린 사람들은 하나 둘 집으로 돌아갔다. 다시 또 찾아오겠다는 주민들을 향해 추악한 늑대는 언제든지 반겨주겠다며 소금을 뿌렸다. 눈의 가시거리인 사람들이 물러가자 늑대는 지친 듯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늑대도 많이 지쳐보였다.

뚜벅뚜벅.

난 치킨 집 뒷문으로 가게에 들어섰다.

늑대는 말없이 서 있는 내 얼굴을 뚫어져라 보고는 이내 누구인지 알아봤다.

“엄마는 괜찮으시니?”

“....”

“엄마 일은 안됐다만, 그게 내 탓은 아니잖니. 나도 엄연히 피해자야. 내가 말을 안 해서 그렇지. 죽은 네 동생, 나한테 어떻게 굴었는지 알아. 성추행범인 거 동네방네 소문 낼 거라면서 협박하더라. 그래서 소문내라고 했지. 어차피 인터넷에 공개된 거, 동네 사람들도 언젠가는 알겠지. 그랬더니 뭐랬는지 아니?”

늑대는 기도 안찬다는 듯 혀를 찼다.

“예쁘다, 예쁘다 했더니 아주 기어오르더구나. 날 성추행 범으로 신고하겠다고 하더라. 자기 옷을 찢으면서 사람을 부르겠다는데... 결국 입 다무는 조건으로 매주 5만원이나 뜯어간 게, 바로 네 동생이야.”

늑대는 생닭을 토막 내면서 푸념을 늘어놓았다.

빨간 핏방울이 바닥에 떨어졌다.

늑대는 핏방울을 보며 당황했다. 한 방울, 두 방울, 세 방울. 핏방울은 계속해서 떨어졌다. 늑대의 배에 칼이 꽂혔다. 생닭을 자르는 칼이 내 손에 쥐어 있다. 무방비 상태에서 봉변을 당한 늑대는 살려달라는 비명조차 나오지 않았다. 난 정신 나간 사람마냥 늑대의 배에 칼을 찔렀다. 내 동생을 죽인 살인자. 내 엄마를 벼랑 끝으로 떨어뜨린 악마새끼. 내가 찌른 건 인간이 아닌 악마라 생각하며 칼을 휘둘렀다. 신들을 향해 비웃었다. 신들이 벌려놓은 판을 내가 피바다로 만들었다. 늑대가 쓰러졌다. 헐떡헐떡. 늑대는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듯 거친 쇳소리만 내뱉었다. 늑대가 내 다리를 잡는 순간 정신이 들었다. 칼을 든 나의 손에서 선혈이 뚝뚝 떨어졌다. 늑대를 찌른 단 한 번의 칼질만이 기억났다. 그러나 내 눈앞에는 여기저기 난도질당한 늑대가 피를 토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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