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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웅 님의 서재입니다.

롱 리브 더 데블킹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신현웅
작품등록일 :
2019.06.10 02:12
최근연재일 :
2020.01.06 14:45
연재수 :
90 회
조회수 :
8,653
추천수 :
142
글자수 :
510,676

작성
19.10.18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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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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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58화 어쩌기는. 도망쳐야지.

DUMMY

실크는 곰으로 변했던 모습을 풀어 두 다리로 일어섰다. 그는 왜 미겔이 이런 말을 내뱉는 걸까 이해하려 애쓰고 있었다.


“뭐, 단번에 믿을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어. 게다가 나는 초대마왕이 아니라 그의 이름 마법에서 파생된 사념체 같은 거니까. 가끔 마족과 계약한 인간들이 흑화하는 거 봤지? 그게 나야.”


“그런가.”


“그보다도 지금까지 한 얘기 들었어. 마왕이라고 했지? 비록 사념체이긴 해도 초대마왕으로서 현 마왕의 실력을 보고 싶어.”


아직도 실크는 미겔이 질 나쁜 농담을 하는 것이라 믿었고, ‘결국 대련을 할 빌미를 꾀어낸 것인가.’라고 치부해 버렸다.


미겔의 공격 스타일은 자세를 갖춰 상대의 공격을 흘려내거나 반격하며 장타를 갈기는 품새였다. 하지만 지금 선대마왕이라 주장하는 사념체는 허리를 굽힌다 싶더니, 순식간에 실크의 얼굴 앞까지 다가와 무릎을 찍으며 날아왔다.


실크는 기본적으로 싸움꾼 출신이라, 전투 스타일이란 게 갑자기 바뀌는 일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미겔의 몸을 움직이는 게 초대마왕인지 어떤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도 그와 몇 합을 나눈 결과, 적어도 자신이 알고 있던 미겔은 아닌 게 분명했다.


실크는 곰의 모습을 본떠 육체를 강화했다. 그의 마력으로 팔과 어깨에 털이 자라며 가죽이 두꺼워졌다. 결국, 등이 굽으며 고개가 앞으로 꺾인 모습이 되었지만, 맷집 하나만큼은 튼튼해 보였다.


“한 대라도 맞으면 너는 쓰러질 거다.” 실크가 말했다.


“날 따라올 수 있다면 말이지.” 해골이 대꾸했다.


스켈레톤은 어깨를 앞세워 돌진하는 실크의 머릴 짚어 넘어갔고, 실크의 뒤를 잡아 발로 차버렸다.


실크는 넘어져 버렸지만, 큰 타격을 받은 기색은 아니었다. 그는 어깨를 한번 돌리고 말했다.


“당신은 약합니다.”


사념체는 실크의 말투를 따라 빈정거렸다.


“그리고 후배는 둔합니다.”


킬킬 웃는 그가 마음에 들지 않아, 다시 실크가 어깨를 앞세워 돌진했다. 또다시 사념체가 그의 머릴 짚어 등 뒤로 넘어가려 했을 때였다.


“두 번은 안 통한다!”


별안간 두 다리를 멈춘 실크가 몸을 뒤집어 스켈레톤의 넓적다리뼈를 잡아채 바닥에 메쳤다. 설원 위에 강한 힘으로 내리꽂힌 탓에 해골 모양대로 눈이 패여 자국만 남아있었다. 실크가 털 난 팔뚝으로 얼굴에 튄 눈을 훔치고 말했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너는 약하다.”


대답하는 목소리는 뒤에서 들렸다.


“다시 한번 말해도 너는 둔하다니까.”


해골은 자신의 왼팔을 떼어내 오른손으로 검을 쥐듯, 뒤돌아보는 실크의 목을 겨누었다.


“이게 진짜 검이었다고 생각해봐. 내가 이겼어.”


“······어떻게?”


“눈 속을 기어서 움직였지.”


검처럼 쥔 해골 팔이 실크의 턱을 간질였다.


실크는 신경질적으로 해골 팔을 치우고 자리에 주저앉았다. 덩치가 산만한 후배가 앉자, 해골도 실크를 마주 보며 앉았다.


“그래서 원하는 게 뭡니까, 초대마왕님.”


“왜 내가 원하는 게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야 지금 제 앞에 나타나셨잖습니까.”


실크는 퉁명스럽게 말했고, 해골은 능청스럽게 답했다.


“난 원하는 게 없어. 나는 그냥 내가 걸었던 이름 마법에서 태어나, 미겔의 몸에서 깨어났을 뿐이지. 원하는 게 뭐가 있겠어. 그보다도 계약의 내용을 참 웃기게 정해놨더라? 집으로 돌아가라고? 그래서 마왕성으로 돌아가는 중이다. 이거지? 훗날에 내 마법으로 이렇게 어이없는 내용의 계약이나 하고 다닐 줄 알았다면 그 뭐냐, 평범하게 세계멸망 같은 걸 노려볼걸 그랬나 봐.”


그는 잠시 주위를 둘러보더니 다시 이어서 말했다.


“보아하니 마족들의 개체가 많이 줄어든 걸 보면, 우리 튼튼한 마왕이가 한번 크게 말아먹은 모양이야.”


실크는 백인 대장에게 질책을 받는 병사처럼 고개를 숙였다.


“면목 없습니다.”


“아니, 아니. 나에게 사과해봤자, 난 별로 아무 느낌 없는걸? 난 그저 사념체일 뿐이야.”


해골이 두 손바닥을 펼쳐 흔들었다.


“계약이 끝나면 난 사라질 거라고. 저 산만 남으면 마왕성이잖아. 그럼 도착까지 길어야 이삼일 남았겠네. 내 목숨. 목숨이라고 표현해도 되나? 아무튼.”


해골의 말투는 마치 토스트가 새까맣게 타버렸다는 사소한 불행을 말하듯 가벼웠다. 그는 자신의 턱뼈를 긁었다.


실크는 너무 늦은 질문을 건넸다.


“실례지만 성함이 어떻게 됩니까.”


사념체는 의외라는 듯, 이를 부딪치는 소리를 냈다.





“꺼져.”


레오나가 말했다.


고작 루가루 따위가 엘프를 천대할 줄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던 그는 저절로 뒤틀린 웃음이 지어졌다. 신선한 기분이었지만, 불쾌했다. 재판관인 하이페리온은 레오나의 검을 막았던 손등을 뒤집어 칼날을 집었다.


“확실한 건 너는 우리가 찾는 게 뭔지 전혀 모르고 있군.”


레오나가 검을 거두려 했지만, 하이페리온이 겨우 세 손가락으로 집은 검이 단단하게 붙잡혀 움직이질 않았다.


“엘프가 왜 여기에 나타난 것이지?”


레오나가 물어봤지만, 하이페리온은 얼굴에 비웃음이 사라지질 않았다.


“네가 내게 줄 정보가 없는데, 나라고 네게 정보를 제공해야 할 이유는 없지. 그러니 말을 다시 돌려주마.”


그는 일부러 천천히 말했다.


“꺼져.”


하이페리온이 집었던 검을 튕겨내고, 그대로 무방비한 레오나의 품속으로 들어와 그녀의 복부에 거센 장타를 갈겼다.


“그헉!”


다행히 뒤로 날아가는 레오나를 르댕고트가 무사히 받아내었지만, 레오나는 낯익은 전투에 적잖이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이색적이지만 아주 익숙한 공격. 미겔의 전투방식과 매우 흡사했다.


“그, 그 공격은?”


하이페리온은 그녀의 질문을 무시했다. 대신 마왕성을 수색하던 부하 엘프가 지하에 강한 봉인이 걸려있는 걸 확인하고, 재판관에게 그 사실을 알림에 재판관이 입을 뗐다.


“그 봉인을 뜯어 볼 필요가 있겠군.”


하이페리온이 부하의 인도를 따라 지하로 내려갈 참에, 허공에서 귀에 그토록 찾던 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오늘따라 손님이 많네?”


그 말은 허공에 그려진 포탈에서 오스먼드가 떨어지며 하는 말이었는데, 그는 하이페리온을 보자마자 다시 발밑에 포탈을 만들어 사라지려 했다.


“네 녀석!”


하이페리온이 바닥을 향해 씨앗을 흩뿌리자, 씨앗들이 부풀어 서로 엉겨 붙기 시작했다. 당연히 바닥의 포탈은 막혔고, 끈끈한 수액을 두른 식물에 오스먼드의 발 또한 같이 묶이고 말았다.


“하하! 정말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이네요? 오백 년인가? 육백 년······?”


“육백 년 하고 서른두 해, 그리고 사 개월과 이틀이 지났지.”


하이페리온은 다시 씨앗을 한 움큼 쥐었다.


“이렇게 나만 생각하고 사는 스토커가 여기에 있었을 줄이야. 그래도 시간까지 세고 있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아홉 시간에 사십 오 분을 지나고 있군.”


“······언제나 그렇듯이 완벽하네.”


“그동안 하등 한 것들과 섞여 살았으니 재미있게 지냈겠지. 이제부턴 다시 우리들의 성지에 갈 시간이다. 다만, 이번에 들어가면 두 번 다시 못 나올 것이다.”


오스먼드의 주변에 마치 꽃이 피듯 마법진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헤실헤실 웃으며 답했다.


“그 동네에서 내가 갇혀 살았다고 생각해? 내가 왜 포탈을 배웠는지 모르는 거야? 난 거기서 살 때도 심심하면 놀러 바깥에 나오곤 했잖아.”


“리치가 된 건 네 실수야. 마나홀이란 약점이 생겼으니까. 우린 널 속박할 필요 없지. 네가 소중히 숨겨둔 마나홀만 본국에 가져가면 되는 일이다. 마침 본인이 눈앞에 있으니 잘됐어.”


그는 한 차례 숨을 쉬고 다시 말했다.


“부활의 오브는 어디에 있지?”


그 질문에 오스먼드의 웃음이 그쳤다. 크게 턱을 두 번 부딪히던 오스먼드는 엘프 재판관의 머리 위를 가리켰다. 그의 머리 위에 마법진이 생겼고, 무언가 물체가 떨어졌다.


떨어지는 속도가 빠르지 않았기에 하이페리온은 뒤로 두 발짝 디뎌 피했다. 하지만 떨어진 것을 보고 그는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떨어진 것은 설리반의 시체였다.


하이페리온은 본인의 손을 더럽히지 않았다. 피투성이로 쓰러진 그녀를 부하 엘프가 다가와 맥을 짚어보더니 그에게 말했다.


“죽었습니다.”


엘프들 뿐만이 아니라, 서러브레드 남매와 레오나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입을 연 것은 르댕고트였다.


“어떻게······? ······왜? 너희들은 친구 아니었어?”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하이페리온은 혀를 찼다.


“생각이 바뀌었다. 피고인 프로메테우스는 이 자리에서 엘프의 지엄한 율법에 따라 추방 및 척살령을 선고한다.”


재판관은 설리반의 시체 위에 씨앗을 뿌리고 오스먼드의 뒤처리는 엘프들에게 떠넘겼다. 어차피 오스먼드는 두 발이 묶여있으니 부하들만으로 충분할 것이었다. 하이페리온은 봉인이 걸려있다던 마왕성 지하로 내려가기로 했다.





엘프들은 덩굴로 오스먼드를 옭아매고 있었다.


오스먼드는 얌전히 자신을 죄어오는 덩굴에 저항하지 않았다. 대신 엘프 병사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뜯어보고 있었다.


“다 아는 얼굴들이네. 친구들아, 나 기억해?”


대부분은 침묵을 유지했다. 그중 한 명이 용기를 내서 대꾸했다.


“너는 우리 엘프들의 수치다.”


오스먼드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이젠 고개 말고 움직일 수 있는 관절이 없었다. 그래도 오스먼드는 넉살 좋게 말했다.


“정확히 기억해주니 다행이야.”


그 말을 끝으로 덩굴에 옭아 매여있던 오스먼드가 사라져버렸다. 아크리치는 처음부터 없었다는 듯, 해골 대신 식물 덩어리가 남아있었다.


오스먼드의 목소리는 엘프들의 뒤편에서 들려왔다. 설리반의 시체가 주춤거리며 일어났고, 곧 해골이 앙상한 리치로 변했다.


“그렇다면 이런 것도 기억하겠네?”


그는 검은 망토를 펼치며 두 손바닥을 내밀었다.


“아브라카다브라!”


그들의 머리 위와 발밑에 서로 연결되는 포탈이 열렸다. 그사이에 끼인 엘프 병사들은 끝없이 떨어지는 공간에 빠져버리고 말았다.


“으아아아악!”


귀를 찌르는 비명이 끊이질 않자, 오스먼드는 마법진으로 공간을 장악해 방음벽을 세웠다.


르댕고트가 그에게 물었다.


“설리반은 어디에 있지?”


그녀의 질문에 오스먼드가 오만하게 허리를 뒤로 젖혀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그녀는 너희를 구하기 위해 자기 한 몸을 바쳤지. 이제 그녀는 돌아오지 못해.”


“그럴 수가······.”


“그러니 너희 남매는 이제 자유야.”


오스먼드가 손가락을 튕기자, 서러브레드 남매의 팔찌가 풀리며 다시 오스먼드의 갈비뼈로 돌아왔다.


설리반의 죽음에 남매는 기뻐하지 못했다. 남매가 슬퍼하고 있자, 아직 열려있던 포탈에서 설리반이 내려와 말했다.


“자기 몸을 바쳤다고? 누가? 내가? 너는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도 농담할 수 있는 거지?”


오스먼드는 배를 잡고 웃으며 뒹굴기 시작했다.


설리반은 핑거 스냅을 딱딱 소리를 내,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오스먼드. 네가 말한 대로 재판관이 지하에 내려갔어. 이제 어쩔거야?”


오스먼드는 웃음을 그치고 포탈을 열고 말했다.


“어쩌기는. 도망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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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59화 아아! 새로운 용사의 탄생 순간이도다! 19.10.21 33 1 12쪽
» 58화 어쩌기는. 도망쳐야지. 19.10.18 31 1 11쪽
57 57화 내 몸속에 초대 마왕님이 계셔. 19.10.16 30 1 11쪽
56 56화 나는 악당이 되어야 해. 19.10.14 36 2 12쪽
55 55화 마, 마족의 침공입니다! 19.10.11 37 2 12쪽
54 54화 썩 꺼지쇼! 19.10.09 34 1 12쪽
53 53화 엘라이자는 가지 않아. 19.10.07 37 1 12쪽
52 52화 당신을 용서할게요. 19.10.04 45 1 12쪽
51 51화 나도 엘라이자, 당신을 사랑해. 19.10.02 35 1 11쪽
50 50화 동화책에서 읽었어요. 19.09.30 38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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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41화 그 케이크는 가짜니까, 먹을 생각하지 않는 게 좋아. 19.09.09 54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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