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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웅 님의 서재입니다.

롱 리브 더 데블킹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신현웅
작품등록일 :
2019.06.10 02:12
최근연재일 :
2020.01.06 14:45
연재수 :
90 회
조회수 :
8,675
추천수 :
142
글자수 :
510,676

작성
19.10.16 13:40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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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57화 내 몸속에 초대 마왕님이 계셔.

DUMMY

알프레도가 마계를 헤매는 동안 주머니 속의 조각을 얼마나 만졌는지, 그의 손끝의 피부가 벗겨져 아릴 정도였다.


그는 무작정 거적때기를 두르고 마른 빵을 씹으며 루가루 숲으로 향했다. 원래 오비디언이 병사들을 세뇌하고 움직였던 대형포탈을 사용해볼까 찾아갔었다. 하지만 한번 포탈을 열기 위해 대량의 마나, 즉 많은 마법사가 필요했기 때문에 그 방법은 단념해야 했다.


하지만 아무 수확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길을 조금 멀리 돌아가면서 조각에 대해 생각을 해 볼 시간을 갖게 되었는데, 아무래도 비슷한 조각들이 여러 개가 있으면 한 덩어리의 물건이 만들어질 것 같았다.


하지만 검만 쥐고 살았던 알프레도가 감히 상상할 수 있는 물건은 아니었기에, 손끝에 물집이 생겨도 그 작은 조각을 놓질 못했다. 어디를 가야 이 해답을 얻을 수 있을까, 누굴 만나야 실마리를 풀 수 있을까. 일단 마계로 건너오긴 했는데, 딱히 답이 나오지 않았다.


알프레도가 상념에 빠져 멍하니 걷고 있을 때였다.


“비켜요! 비켜! 거기 인간 비키란 말예요!”


알프레도가 갑자기 들린 비명에 주변을 둘러봤지만, 사방에 아무도 없었다. 그런 알프레도의 고개가 움직인 곳은 하늘이었다.


“으아악! 떨어진다!”


쿠그그극!


알프레도가 보기에 거대한 천이 너풀거리며 떨어졌는데, 금속들이 무너지는 소리가 났다. 떨어진 흰 천 밑에 누군가 꿈틀거리며 발버둥을 치고 있어 알프레도는 흰 천을 걷어 올려 그를 도와주기로 했다. 천을 걷어 올리자, 그 밑에 크고 작은 용수철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리저드맨이 쇳조각들을 헤치고 나타났다.


“큰일 났다! 할머니 몰래 나왔는데, 망가져 버렸어! 어쩐지 오늘따라 바람이 좋더라니!”


알프레도는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마족을 보고 경계했지만, 칼을 빼 들지 않았다. 상대에게 무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손톱이나 이빨을 세우면 모를까, 어린 리저드맨 한 마리에게 칼을 내밀어봤자 모양이 안 났다. 대신, 그는 손을 내밀었다.


아폴도 상대가 아무리 혼자였어도 병사차림을 해놓고 칼 대신 손을 내민 게 영 어색했다. ‘자신이 얕보이는 걸까?’란 생각도 들었지만, 그는 상대가 가볍게 주는 친절을 무겁게 받아치면 안 된다고 배웠다.


“아폴이에요.”


“알프레도입니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친숙한 쇠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해가 중천에 떠 있었지만, 알프레도는 모닥불을 피고 앉아 아폴이 짐을 정리하는 걸 도와주었다. 용수철의 수량도 수량이거니와 함께 거대한 천이 궁금증을 안 일으키려야 안 일으킬 수가 없었다. 방금 저 작은 리저드맨이 하늘을 날아왔었다. 결국, 호기심에 못 이겨 알프레도가 물었다.


“그러니까 하늘을 날며 타고 온 저게 뭐야······뭡니까, 뭐죠?”


“말 편하게 하세요.”


볼록렌즈가 붙은 고글을 낀 아폴이 알프레도를 보았다. 안 그래도 커다란 눈이 훨씬 크게 왜곡되어 기괴하게 보이기까지 했다.


“일단 질문에 대답하자면, 이건 하늘을 나는 거예요. 정확히는 멀리 튕기는 물건이죠.”


아폴은 부서진 고철 더미에서 용수철 조각을 꺼내 들었다.


“과연 그렇군.”


“하지만 이렇게 망가져선, 돌아가기 힘들 것 같아요. 어쩔 수 없죠. 걸어서 돌아가야 해요.”


“어디까지 가는데?”


아폴은 알프레도를 쏘아봤다. 그는 왕국 병사의 차림을 하고 있었다. 그런 그에게 구태여 자신의 마을 위치를 밝힐 이유 따윈 없었다.


“알아서 뭐하게요? 따라오면 가만히 안 있을 거예요.”


아폴이 자신의 팔찌를 뜯어 휙휙 털었을 뿐인데, 팔찌는 금세 작은 송곳 같은 무기가 되었다.


알프레도는 자신이 괜한 걸 물었다며 양 손바닥을 보이며 모닥불 옆에 앉았다. 어째 자기가 알고 있는 마족과 느낌이 달랐다. 벨라도 마찬가지였지만, 어쩌면 마족이란 이미지가 생각보다 더 느슨한 모양이었다. 저 작은 리저드맨도 조막만 한 무기를 공구 삼아 자신의 기계장치를 고치는 것 보면······.


알프레도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아폴에게 자신이 주운 조각을 보여주기로 했다.


“혹시 조각을 보고 뭔가 알 수 있지 않을까? 난 이런 것엔 영 머리가 안 돌아가서 말이야.”


아폴이 내켜 하지 않자, 알프레도가 한 번 더 진지하게 부탁했다.


“부탁할게, 내가 꼭 구해야 하는 녀석이 있어. 그녀는 날 지켜주려다 봉인되어버렸거든. 이 조각이 그 열쇠가 될 것 같아.”


아폴은 알프레도의 손바닥을 흘긋 보고선 다시 용수철을 만지기 시작했다.


“마력 회로가 그려져 있네요. 작은 조각이지만 같은 조각이 여러 개 있으면 토템 비슷한 걸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무엇을 위한 토템이냐구요? 그건 조금 연구해봐야 할 것 같은데요.”


완전하지 않았지만, 원하는 답변을 들은 알프레도는 안색이 밝아지며 아폴의 등을 두들겼다.


“진짜? 뭔지 알 수 있는 거야? 고맙다! 나도 네 일 도와줄게! 어디 보자, 일단, 이 흰 천을 걷어줄까?”


“아니 잠깐만요! 도와준다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거길 그렇게 잡아당기면! 으악! 어른들은 왜 이렇게 섬세하지 못한 거람! 비켜요! 으악! 찢어진다!”





일단 실크와 미겔, 그리고 스탕달과 크리스티안은 두 쪽으로 갈라지기로 했다. 실크의 목표는 미겔과 계약을 끝내기 위해 마왕성으로 가서, 용사와 합의해 성을 돌려받는 것이었다. 반면에 스탕달과 크리스티안은 벨라와 줄리엣을 결정석에서 꺼내기 위해 단서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있는 챠오의 행적을 쫓는 것이었다.


크리스티안이 이의를 제기하며 외쳤다.


“잠깐, 왜 제가 인간과 같이 움직여야 하는 거예요?”


크리스티안이 반발해봤지만, 실크가 그녀의 의견을 가볍게 접어버렸다.


“나는 성을 되찾아야 하고, 미겔과 맺은 계약뿐만이 아니더라도 용사를 설득하기 위해선 미겔이 필요하다. 그리고 줄리엣과 벨라 또한 구출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선 스탕달의 아들인 챠오가 단서가 될 테지. 그래서 스탕달이 챠오를 뒤쫓는 것이다. 그리고 크리스티안은 나와 함께 챠오를 가장 마지막으로 봤으니, 스탕달과 같이 움직이는 것이다.”


크리스티안이 스탕달에게 손가락질했다.


“하지만 저자는 인간이잖아요!”


“스탕달의 처지에서도 우리는 마족이다.”


“하지만!”


“원하지 않는다면, 원하는 걸 찾아 떠나도 좋다.”


크리스티안은 부글대는 이마를 짚었다. 마왕의 행동력이 내심 반가웠지만, 진작 옛날부터 이런 식으로 일 처리를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인제야 마왕의 권위를 찾은 그가 야속했다.


“크흠.”


크리스티안이 손가락질하며 대놓고 싫은 티를 낸 탓에 스탕달이 헛기침을 했다.


“알았어요. 챠오의 뒤를 밟아볼게요. 제 아이들이 챠오를 따라갔으니 찾는 건 어렵지 않겠지요.”


크리스티안이 상황을 받아들이자, 실크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다.”


실크는 떠나려는 크리스티안의 뒷모습에 한마디 더 말을 붙였다.


“······그리고 크리스티안, 몸조심 하거라.”


“흥.”


크리스티안은 콧잔등을 찡그렸다.





미겔과 실크가 향한 곳은 다시 설원이었다. 이대로 쭉 앞으로 가면 루가루의 숲이 나오겠지만, 실크와 미겔은 숲을 들르지 않고 곧바로 마왕성으로 지나갈 예정이었다. 그러려면 저 가파른 산을 넘어야 했다.


산등성이에 올라가지도 못했지만, 여전히 눈보라는 그칠 줄 모르고 두 사람의 몸을 때려댔다. 미겔은 이제 더는 추위와 상관이 없는 몸이 되었지만, 실크는 추위에 영향을 받는 탓에 두꺼운 가죽을 가진 곰으로 변해야 그나마 추위를 견딜 수 있는 상황이었다.


미겔은 실크의 등 위에 올라탔고, 곰이 된 실크는 눈을 헤치며 뛰어가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니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얼굴이 하나 있었다.


“네드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음. 그렇다.”


“우리가 왕국을 떠날 때 가장 걱정이 많았던 선발대의 대원이었는데, 어느새 선발대에서 빠지면 섭섭할 중요한 사람이 되었어.”


실크는 부정하지 않았다.


미겔은 실크의 등가죽을 쥐었다. 달리는 곰의 등이 워낙 요동치는 바람에 자칫 잘못하면 튕겨 나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미겔은 막상 실크가 마왕이란 것이 실감 나지 않았다.


“그런데 마나홀을 물려받고 마법을 다시 얻었다고 하지만, 그다지 마왕의 느낌이 없네.”


“그저 직위만 마왕이었기 때문이다.”


“아, 맞아 실크는 이름이 없었던 마왕이었지.”


“나는 이름뿐만이 아니라, 검도 계승 받지 못한 마왕이다.”


실크가 무언가 미겔에게 말하려고 했다. 그리고 그 내용의 서두만 들었을 뿐이었지만, 짧은 이야기가 될 것 같지도 않았다.


“어, 잠깐만. 분위기가 무거워지는데, 갑자기 이렇게 털어놔도 되는 말이야?”


“어차피 오랫동안 눈밭을 걸어야 하니 적적한 것보단 낫지 않나 싶다.”


미겔은 자신의 두개골을 집어 들어 손을 쭉 뻗어 둘러보았다. 저 멀리 루가루의 숲이 이어지는 상록 숲을 제외하곤 하얗지 않은 것이 없었다. 그나마 색이 있는 것은 등에 자신을 태우고 있는 실크뿐이었다.


“······그러네. 어쩔 수 없지. 그런데 검이라니? 무슨 말이야?”


“선대마왕은 후대에 이름과 함께 검을 물려준다. 마왕의 검은 초대 마왕으로부터 대대로 내려온 검이지. 검을 쥔 마왕의 힘을 몇 배는 증폭시켜주는 대신, 자격이 없는 이가 잡으면 그대로 주인을 태워버린다.”


미겔은 실크가 검을 잡고 벼락에 맞은 듯 까맣게 그슬린 이미지를 떠올렸다. 그가 막연히 상상한 이미지는 코믹한 상황이었지만, 당사자에겐 큰 충격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최대한 담담하게 말하려 애썼다.


“아, 검을 잡지 못했나 보네.”


“몇 주 동안 팔을 영 쓸 수 없어서 고생이었다.”


“하지만 굳이 검이 없어도 실크는 잘 해왔잖아.”


미겔의 말을 끝으로 실크는 입을 닫아버렸다.


“······실크?”


미겔이 몸을 뻗어 실크의 얼굴을 거꾸로 내려다보았다. 털이냐고 주둥이가 튀어나온 곰의 얼굴이지만, 그런데도 창피해한다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나는 미겔에게 여러 번 말했다. 나는 마왕의 자질이 부족하다.”


‘또 시작이다.’라고 미겔은 생각했다. 미겔은 화제를 바꾸기로 했다.


“나도 실은 털어놓을 게 하나 있어.”


하지만 미겔이 화제를 바꾼답시고 꺼내는 이야기도 절대 가볍지 않았다.


“내 몸속에 초대 마왕님이 계셔.”


“뭐!”


설원을 달리던 곰이 결국 멈춰서고 말았다. 실크는 등 위에서 미겔을 내리게 했다.


“미겔, 그런 농담은 재미없다.”


미겔은 막상 설명하자니 막막했다. 이걸 어떻게 증명해야 할까. 역시 직접 만나게 해줄 수밖에 없었다.


미겔의 안광이 잠시 흔들린다 싶더니 곧 과장된 몸짓으로 실크를 반가워했다. 두 팔을 벌린 스켈레톤은 마치 허수아비 같았다.


“그래, 네가 내 먼 후임이구나!”


물론 실크가 믿을 리는 없었다. 그저 미겔이 목소리 톤을 좀 더 낮춰 말하는 것으로 보일 뿐이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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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58화 어쩌기는. 도망쳐야지. 19.10.18 32 1 11쪽
» 57화 내 몸속에 초대 마왕님이 계셔. 19.10.16 31 1 11쪽
56 56화 나는 악당이 되어야 해. 19.10.14 36 2 12쪽
55 55화 마, 마족의 침공입니다! 19.10.11 37 2 12쪽
54 54화 썩 꺼지쇼! 19.10.09 34 1 12쪽
53 53화 엘라이자는 가지 않아. 19.10.07 38 1 12쪽
52 52화 당신을 용서할게요. 19.10.04 45 1 12쪽
51 51화 나도 엘라이자, 당신을 사랑해. 19.10.02 35 1 11쪽
50 50화 동화책에서 읽었어요. 19.09.30 39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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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45화 사죄를 하고 싶군. 19.09.18 56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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