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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웅 님의 서재입니다.

롱 리브 더 데블킹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신현웅
작품등록일 :
2019.06.10 02:12
최근연재일 :
2020.01.06 14:45
연재수 :
9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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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76
추천수 :
142
글자수 :
510,676

작성
19.08.28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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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36화 내가 이겼고, 난 네가 마음에 든다.

DUMMY

오비디언에게 끊어진 미겔의 골반을 접골해 붙여놨지만, 그의 꺼진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다. 그나마 불행인지 다행인지, 스켈레톤으로 변하는 마족화는 꾸준히 진행되는걸 보아하니 목숨은 붙어있는 모양이었다.


누워있는 미겔의 왼편에는 결정석이 두 개 세워져 있었다. 왕국군이 마차로 싣고 온 줄리엣이 갇힌 결정석과 새롭게 벨라가 갇힌 결정석 둘이었다.


부상으로 치료를 받던 실크는 움직이면 안 된다는 투스의 충고를 무시한 채, 그들의 앞에 서 있었다.


“줄리엣은 어찌 된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두 사람이었네.”


줄리엣의 결정석을 지키던 스탕달이 말했다. 그는 병사들을 왕성을 지키라 돌려보내고, 홀로 그녀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오비디언의 마법일 겁니다. 오비디언은 한 사람을 둘로 나누는 마법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데, 당신은 누구십니까?”


스탕달은 옆으로 째진 눈초리를 더더욱 가늘게 뜨며 실크를 쏘아봤다.


“전쟁에서 당신의 반대편에 서 있던 사람일세. 그리고 줄리엣의 남편이지.”


스탕달은 고개를 들어 줄리엣이 갇힌 결정석을 올려다보았다. 푸르슴한 봉인 속에 갇힌 그녀는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최근의 행보 덕분에 더더욱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은 것처럼 보였다. 그녀에게 묻고 싶은 것이야 발에 채도록 넘쳐났지만, 푸르게 꾹 다문 입술에 스탕달은 아무것도 물어볼 수 없었다.


“그렇군요. 여기서 이렇게 뵐 줄을 몰랐습니다. 저는 실크입니다. 그리고 마계의 마왕이지요. 혹시 반갑다고 하면 실례가 되겠습니까?”


“흥.”


콧방귀를 뀌며 고개를 돌린 스탕달은 이어 말했다.


“······스탕달이네. 테스널 왕국의 녹봉을 먹는 사람이었지만, 이젠 후작이고 뭐고 집어치우고 한적한 곳에 가서 그림이나 그리며 연주나 듣고 싶군.”


“이봐! 움직이지 말라고 했잖아!”


매튜와 엘렌, 그리고 네드가 돌아오며 소란스러워지자, 스탕달은 조용히 자리를 비켜 떠나버렸다. 실크는 어쩐지 외로워 보이는 스탕달의 뒷모습을 바라보기만 했다.


“미겔도 미겔이지만, 자네도 얼마나 다쳤는지 알긴 해? 우선, 제 몸 하나 건사해야 남들 챙겨주는 거지. 남 좋은 일 했다가 본인만 쓰러지면 누가 챙겨줄 사람이 있는 것 같아?”


다가온 매튜가 실크에게 타박을 하자, 실크는 멋쩍게 웃다가 기침을 터트렸다. 기침에는 아직 아물지 않은 상처가 다시 터져 피가 섞여 있었다.


선발대의 뒤편에서 보다 못한 엘더 리저드맨 투스가 걸어 나왔다.


“상황이 이렇게 되었으니 오래 지체하지 않고 바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실은 도련님을 속이고 제 마나홀을 이식하려 했습니다. 마법사풀이니 동쪽의 제물이니 하는 건 거짓말이었지요. 어차피 얼마 남지 않은 목숨, 도련님께서 요긴하게 써주시면 바랄 것이 없습니다.”


“하지만 영감.”


“도련님. 모든 마족을 고루 보살펴야 한다는 것이 제 가르침이었지만, 현실을 직시하는 것도 가르쳐 드린 적이 있을 겁니다. 지금은 저 한 명이 아니라, 저분들을 지키셔야지요.”


투스는 지팡이로 미겔과 벨라, 그리고 줄리엣을 가르쳤다.


실크가 투스의 마나홀을 받을지에 대해 망설여하자, 루가루 무리에서 한 명이 손을 들고 나타났다.


“마나홀이란 것······. 혹시 투스 당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것도 가능한가요?”


너구리 루가루, 루가루 장로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이왕 마나홀을 쓸 거면 리저드맨의 것이 아닌, 같은 종족인 루가루의 마나홀을 쓰는 게 훨씬 좋겠지.”


“숙부님!”


“테디. 아니, 이젠 실크라고 불러야겠군. 루가루의 긍지에 대해 폭언을 한 것은 사과하마. 오히려 오비디언이 나타났을 때 긍지를 저버리고 부리나케 도망친 건 우리 아닌가? 우리는 스스로 마나홀을 깨트리고 인간이 되어 도망친 작자들을 비난할 수가 없게 되었어. 여기서 가장 긍지 높은 루가루는 오직 실크 자네뿐이야.”


루가루 장로는 이어서 투스에게 말했다.


“그리고 이식이 가능한 건 투스 자네뿐이지 않나. 자네가 스스로 마나홀을 뽑아내고 쓰러지면, 누가 그 마나홀을 실크에게 이식하겠나? 그러니 내 마나홀을 쓰게나.”


그는 자신의 가슴팍을 당당하게 내밀었다.





“아저씨 갑옷이 원래 하얀색이었다구요?”


챠오가 게일에게 놀라 말했지만, 정작 게일은 아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보였다. 그가 중얼거리는 말이 그 증거였다.


“가렵지 않아······. 아무 감각이 느껴지지 않아······. 걸어도 걷는 느낌이 나지 않고, 용암이 튀어도 뜨겁지 않아······.”


게일의 투구 속 타오르는 눈동자가, 초점을 잃어 격하게 떨리고 있었다.


좋지 않은 느낌을 받은 챠오가 다시 한번 게일을 불렀다.


“······아저씨?”


챠오가 부르자마자 가끔 서리 앉던 게일의 갑옷에 얼음이 끼고, 그 틈새에서 냉기가 뿜어져 나와 주변을 얼리기 시작했다. 흐르던 용암은 굳어져 암석이 되고, 게일의 발자국이 찍히는 곳마다 빙판이 되었다.


“으읏! 갑자기 이 한기는 뭐지?”


슬라임을 물리치려다 실패한 만토데아의 용병단장이 고개를 들자, 새하얀 기사가 폴암을 찍어 누르려 하는 순간이었다.


챙!


가까스로 검을 다잡은 단장은 하얀 기사의 폴암을 막아내었지만, 그대로 검을 타고 흐르는 냉기 탓에 손가락이 얼어붙기 시작했다.


“으읏! 이렇게 지독한 냉기라니······!”


하지만 되려 검을 더 굳세게 쥔 용병대장은 게일을 상대로 한 걸음 한 걸음 밀어붙이며 앞으로 나갔다. 얼어버린 손가락이 터져 핏물이 흐르고, 흐르는 핏물이 방울져 얼어도 그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이렇게 되니 되려 당황한 쪽은 게일이었다. 힘에서 밀리자, 퍼뜩 정신을 차린 게일은 냉기가 서서히 사라지며 얼음이 녹아 버리고 말았다.


“으읏! 이렇게 강력한 힘이라니······!”


“하얀기사! 네 녀석은 여기까지인가 보군! 고작 이 정도 완력이라니! 이 화산지대는 우리 만토데아가 차지하겠다!”


만토데아의 용병들도 용병단장이 백의 기사를 압도하는 걸 보게 되자, 사기가 다시 치솟아 검을 들고 키클온천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달려라! 온천을 지키는 키클롭스를 퇴치하고, 우리 가족들 배불리 먹이자!”


“작위를 가져서 평생 놀고먹으며 살고 싶다!”


“돈 많이 벌어서, 시집가게 해주세요!”


각자 용병단에 들어온 이유는 달랐지만, 하나같이 절실하지 않은 이유는 없었다.


모든 용병단들이 흩어지며 돌진하는 탓에, 크리스티안과 챠오 둘이서 모든 용병을 막기에 역부족이었다. 특히 크리스티안은 보릿가루 탓에 몸의 절반을 잃어버려 방금과 같은 방어가 불가능했고, 챠오는 다수를 잡아둘 수단조차 없었다.


“으으, 우리만으로 저 인원을 감당할 순 없어!”


게일이 힘에 버거워하자, 용병단장이 호기롭게 말했다.


“나는 우리 용병단을 믿는다! 내가 비록 신성력은 없어 널 무찌를 수 없어도! 이렇게 버티기만 하면 우리 만토데아에 승산이 있다!”





무더기로 침입하는 인간들 탓에 종업원들이 키클롭스 앞으로 모여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그들은 전투는 물론이고, 변변한 마법 하나 없는 사람들이라 키클롭스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어떡하죠? 인간들이 온천장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키클롭스는 종업원의 인원을 절반으로 나눠 말했다.


“너희들은 손님들을 안전하게 대피시키고, 다른 종업원들은 인간들을 욕탕 쪽으로 유인해라. 원군을 불렀다. 그러니 지금은 시간을 끄는 게 중요해.”


“시간이 될까요?”


심벌즈를 쥐던 종업원이 말했다.


“될 거다.”


키클롭스는 손바닥을 들어 보이며 온천 내에 수증기를 짙게 깔았다.





도끼를 든 용병이 짙은 수증기 속으로 사라진 고블린을 찾고 있었다. 습하고 후덥지근하고, 유황 냄새가 코끝에서 진동하며 골까지 타고 올라가 울릴 지경이었다.


“무슨 안개가 이렇게 자욱하담?”


그 말을 듣자, 곁에 있던 활을 든 용병이 지적했다.


“바보야! 안개가 아니고 수증기야! 여긴 온천이라고!”


서로 모습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짙은 수증기 속이라, 서로 목소리로 위치만 가늠하는 정도였다. 도끼 용병은 철 투구 속에 땀이 차는 까닭에 투구 속으로 손가락을 넣어 땀을 긁어내고 말했다.


“안개랑 수증기가 서로 다른 거야?”


하지만 도끼 용병의 질문은 허공에 흩어져, 활 용병의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도끼 용병은 왠지 안 좋은 예감을 받았지만, 자신의 뒤에 거인이 접근하는 것만큼은 알지 못했다.


“저기? 왜 대답이 없어?”


거인은 활 용병을 제압한 것과 마찬가지로, 도끼 용병도 수건으로 입부터 막아 묶어버렸다.


“으븝!”


용병 중 예닐곱 명이 같은 방식으로 묶이자, 키클롭스가 나타나며 말했다.


“인간들은 제대로 씻지 않아서 냄새가 나는군. 어디 빈 온천 안에 던져둬라. 단, 상처를 내지 말고. 그들의 피로 이 온천장을 더럽혀서는 안 된다.”


“네! 알겠습니다. 키클롭스님!”


고블린 종업원들이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잠깐, 내가 땀 닦던 수건이 어디 갔지?”


키클롭스는 뒤늦게 용병들의 입에 물린 수건을 보곤 말했다.

저 중의 하나가 자신이 쓰던 수건일 게 분명했다.


“뭐, 아무렴 어때.”


“으븝! 읍! 읍!”


묶인 용병들은 입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짠맛이 부디 온천수의 짠맛이길 빌었다.





검과 폴암이 부닥치고, 불똥과 성에가 긁히며 튀겼다. 게일과 용병단장의 전투는 벌써 삼십 분을 넘어갔고, 체력에 제한이 없는 게일과 달리 용병단장은 숨이 거칠어지며 움직임이 둔해지기 시작했다.


용병단장은 숨이 가쁜 와중에 허세를 부리고 있었다.


“그럭저럭 잘 버티는군!”


“너야말로 싸움 좀 하는걸!”


게일은 진심으로 용병 단장에게 감탄하고 있었다. 듀라한인 자신을 상대로 이렇게나 오래 버틴 인간은 드물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미 우리 용병들이 온천 내부로 들어가 버렸다. 우리 만토데아의 승리다!”


“만토데아의 승리. 그리고 온천장의 패배. 그게 뭐 어쨌다는 거냐? 전쟁의 여신이 미소짓는 쪽이 그 어느 쪽이든, 우리의 싸움은 결판나지 않았다!”


“읏? 네 녀석!”


게일은 폴암을 크게 휘둘러 검을 튕겨내 버렸다. 튕겨 나간 검은 여기저기에 깔린 용암 웅덩이에 빠져 녹아 버리고 말았다. 게일은 검을 잃어버린 채, 바닥에 쓰러진 용병단장에게 손을 뻗으며 말했다.


“내가 이겼고, 난 네가 마음에 든다. 왕국을 포기하고 마족이 되지 않겠는가?”


“헛소리!”


용병단장은 게일의 손을 뿌리치고 일어났다.


그가 못내 아쉬운 게일은 마지막으로 한마디 더 붙였다.


“마족이 되지 않겠다면 적어도 이름만은 밝혀라.”


“······크룩스다.”


“크룩스. 기억하겠다.”


다시 한번 게일이 크룩스에게 악수를 청했다. 이미 결판이 났으니 더 싸울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패배했단 건 크룩스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던 터라, 승자가 원하는 대로 그의 손을 잡으려 할 때였다.


“우리가 왔다, 키클롭스의 연락을 받고! 잡아라, 창을! 쓸어버려라, 인간들!”


그 순간 키클롭스가 리저드맨의 마을에 지원 요청한 병력이 나타났다.


사색이 되어 안색이 창백해진 크룩스는 온천 안에 갇혀버린 용병들에게 도망치라며 고함쳤다. 하지만 용병들이 도망치는 것보다 리저드맨이 온천 주위를 둘러 쌓아 퇴로가 막혀버리는 것이 더 빨랐다.


리저드맨들은 창 머리를 앞으로 겨누며 점점 다가와, 크룩스를 에워싸 그를 속박했다.


두 손을 들며 제자리에 무릎을 꿇고 배신감에 치를 떨던 크룩스는 게일에게 침을 뱉으며 말했다.


“정정당당한 기사라고 하나, 결국 너도 마족 나부랭이였군. 귀족만큼이나 역겹구나.”


게일은 당황해 말을 더듬었다.


“아니, 이건 내 뜻이 아니었다. 믿어 주지 않겠는가.”


다만 크룩스에게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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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61화 싫거든. 내 말이거든. 내 맘이거든. 19.10.25 33 1 11쪽
60 60화 서로 사이좋게 지내기 바라. 19.10.23 32 1 11쪽
59 59화 아아! 새로운 용사의 탄생 순간이도다! 19.10.21 33 1 12쪽
58 58화 어쩌기는. 도망쳐야지. 19.10.18 32 1 11쪽
57 57화 내 몸속에 초대 마왕님이 계셔. 19.10.16 31 1 11쪽
56 56화 나는 악당이 되어야 해. 19.10.14 36 2 12쪽
55 55화 마, 마족의 침공입니다! 19.10.11 37 2 12쪽
54 54화 썩 꺼지쇼! 19.10.09 34 1 12쪽
53 53화 엘라이자는 가지 않아. 19.10.07 38 1 12쪽
52 52화 당신을 용서할게요. 19.10.04 45 1 12쪽
51 51화 나도 엘라이자, 당신을 사랑해. 19.10.02 35 1 11쪽
50 50화 동화책에서 읽었어요. 19.09.30 39 1 12쪽
49 49화 난 전설 따윈 믿지 않아. 19.09.27 48 1 12쪽
48 48화 마드모아젤, 그리고 무슈. 19.09.25 53 1 12쪽
47 47화 드래곤 잡으러 갈 겁니다. 19.09.23 59 1 11쪽
46 46화 그게 귀족의 특권 아니겠나. 19.09.20 55 1 12쪽
45 45화 사죄를 하고 싶군. 19.09.18 56 2 12쪽
44 44화 슈네트를 막아야 한다! 19.09.16 50 1 11쪽
43 43화 제발 연락이 닿기를……! 19.09.13 45 1 12쪽
42 42화 우리가 그 멍청한 마을이야……. 19.09.11 57 1 12쪽
41 41화 그 케이크는 가짜니까, 먹을 생각하지 않는 게 좋아. 19.09.09 54 1 12쪽
40 40화 남자는 가끔 홀로 씹는 고독이 필요한 법이죠. 19.09.06 64 2 12쪽
39 39화 인간들만 절실한 게 아니란 말이야. +1 19.09.04 62 2 12쪽
38 38화 믿을게 필요한 사람들 눈에 띄면, 믿음직해 보이는 법이야. 19.09.02 74 1 12쪽
37 37화 저게 뭐람, 무서워라아……. 19.08.30 69 2 12쪽
» 36화 내가 이겼고, 난 네가 마음에 든다. 19.08.28 65 1 12쪽
35 35화 또 새로운 실험체를 만들러 가볼까. 19.08.26 61 1 12쪽
34 34화 좀 더 농익거든 찾아와라, 애송아. 19.08.23 60 2 12쪽
33 33화 야, 이 망할 녀석아! 19.08.21 56 1 14쪽
32 32화 하지만 용사와 마왕 둘 다 무사했음 좋겠지? 19.08.19 74 1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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