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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웅 님의 서재입니다.

롱 리브 더 데블킹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신현웅
작품등록일 :
2019.06.10 02:12
최근연재일 :
2020.01.06 14:45
연재수 :
90 회
조회수 :
8,652
추천수 :
142
글자수 :
510,676

작성
19.09.09 12:08
조회
53
추천
1
글자
12쪽

41화 그 케이크는 가짜니까, 먹을 생각하지 않는 게 좋아.

DUMMY

지하 감옥의 독방에는 서늘한 한기가 자욱했다. 알폰스는 횃불을 쥔 손에 힘을 주었지만, 그렇다고 한기가 사그라드는 것은 아니었다. 독방은 아무것도 없이, 오로지 의자 하나가 전부였다. 혹시나 의자를 제외한 바닥을 꼼꼼히 살폈지만, 약초담배처럼 덩그러니 물건이 떨어져 있는 우연은 두 번 다시 일어나지 않았다.


알폰스가 살필 것은 결국 의자 하나뿐이었다. 의자는 나무로 만들었고 그다지 편해 보이지 않았지만, 꽤 큰 체격의 죄수도 앉아있을 만큼 앉는 자리가 넓은 편이었다.


‘가만······. 교도관들은 죄수들에게 의자를 주지 않을 텐데, 누가 독방에 넣은 거지?’


감옥에서 교도관이 앉아있을 의자를 제외하면, 딱 하나 의자가 필요한 일이 있긴 했다. 알폰스는 고개를 들어 의자 위 천장을 바라봤다. 천장이 높은 편이었지만, 죄수를 걸어둘 올가미는 없었다. 의자는 정말 죄수가 앉아있기 위해 둔 것 같았다.


이쯤 되니 의자에 앉아있을 죄수가 누구였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아마도 간수장에게 죄수들 목록을 정리해둔 서류가 있을 것이다. 알폰스가 밖으로 나가려고 했을 그때였다.


쾅!


누군가 독방 문을 닫고 잠가 버렸다. 그 탓에 횃불마저도 꺼져버렸고 알폰스는 어두운 감옥에 갇힌 꼴이 되었다.


“이봐! 무슨 짓이야! 당장 문 열지 못해?”


하지만 공허하게 울린 알폰스의 목소리는 그대로 왕성 지하 속에서 흩어져 버렸다. 대답 없는 바깥쪽이 순순히 문을 열어 줄 리가 없으니, 이 안쪽에서 무언가 해야 했다. 하지만 독방 안은 조금 전 둘러본 것과 같이 의자 하나 덜렁 있을 뿐이었다.


물론 가능성이 전혀 없진 않았다. 그는 갑작스럽게 예술적인 영감을 잡아채기 위해 도화지와 콩테를 늘 가지고 다녔다. 눈앞이 보이지 않는 상태로 무언가 그려서 변신한다면, 이 독방을 탈출 할 수 있을 것이다. 벌레나, 뱀으로 변신하면 충분할 것이다.


하지만 결국엔 암적응을 하기 위한 시간이 필요했기에, 알폰스는 결국 의자에 앉아 기다리기로 했다. 나무의자로부터 등골에 한기가 박혀오는 느낌이 들었지만, 그의 머릿속엔 약초담배와 의자 사이에 어떤 연관이 있는지 정보들이 조합되고 분리되었다. 그저 왕성 인사들에게 해코지하려는 마법사의 심술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어찌 됐든 거짓을 말하는 태도는 아닌 건 확실했다. 예술가 연맹의 수장인 알폰스의 직감이었다.


그러다 팔걸이 아래쪽에 손가락이 닿았을 때, 알폰스는 손가락에 닿는 부분에 이상한 촉감이 느껴졌다. 팔걸이 아래쪽은 마감이 덜되었는지 울퉁불퉁했지만, 톱으로 썰어 나무 가시가 돋아있는 거친 느낌이 아니라 누군가가 손톱으로 찍어 새긴듯한 모양이었다.


마족어였다.


손가락 끝으로 감각을 집중해 더듬거려보니, 마족어로 무어라 서너 줄이 새겨져 있었다. 알폰스는 마족어를 조금이나마 읽을 줄 알았지만, 손톱으로 찍어 새긴 조악한 글자인 데다 눈으로 읽을 수 없으니 내용을 알아내기 힘들었다.


“나는······이다. ······래스······.”


알폰스는 그 문장들을 해독하기 시작했다.





“할 수 있다면.”


오스먼드의 도발에 설리반은 인상을 구겼다. 설리반이 마음만 먹는다면 지금 당장에라도 오스먼드를 속박할 수 있겠지만, 오스먼드는 속박당한 그 상태로 마법진을 타고 또 어딘가로 숨어 이름을 바꾸고 잠적할 것이다.


오스먼드의 뒤로 음식을 훔치기 위해 열었던 마법진들이 닫혔다.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새롭게 여는 것도 한순간이었다.


게다가 지금 당장 도망치며 정체 모를 목적을 이루지 못한다 해도 그는 아쉬워하지 않을 것이다. 천년을 사는 엘프로도 모자랐는지,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리치의 몸이 되었지 않은가?


그런 설리반의 뇌리에 오스먼드의 약점이 번뜩 스쳐 지나갔다. 리치는 마나홀을 몸 밖에 숨겨둔다. 마나로 이루어진 육체는 마나홀이 깨지면 그대로 흩어지고, 죽음을 맞게 된다. 그러니 오스먼드의 마나홀을 찾아낸다면, 설득과 거래 혹은 협박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설리반의 목표가 세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래? 그럼 말지 뭐, 장로들에게 받은 명령은 ‘프로메테우스를 쫓아 그 위치를 보고하라.’였지, ‘프로메테우스를 생포 혹은 척살하라.’가 아니었으니까.”


설리반이 순순히 포기하자, 오스먼드도 나름 긴장을 한 모양인지 짧은 한숨을 쉬었다. 그러면서도 오스먼드는 설리반의 안색을 살펴 다른 꿍꿍이가 있는지 알아보려 했지만, 그녀는 아예 등을 돌려 중앙홀로 돌아가 버렸다.


머쓱해진 오스먼드는 해골바가지를 긁고는 음식이 식기 전에 레오나에게 전달하러 돌아갔다. 물론 그는 설리반이 지나가며 어떤 씨앗을 뿌렸을지 모를 길을 뒤따라가지 않았고, 마법진으로 공간을 접어 조리실에서 곧바로 중앙홀로 향했다.





“다시 한번 마족이 된 걸 축하해!”


오스먼드가 그릇에 담아온 건 케이크에 양초를 꽂은 케이크와 포도주, 그리고 소시지나 마른 과일 같은 것들이었다. 그가 어디서 생일케이크를 뺏어온 것인지 모르겠지만, 레오나는 케이크를 빼앗긴 아이에게 오스먼드 대신 미안한 마음이 생겼다.


“오늘 새로 태어난 첫날이니, 소원을 빌고 촛불을 꺼야지?”


레오나가 어린애 취급에 창피해져서 얼굴이 새빨개졌고, 오스먼드가 재촉했다. 그녀가 민망함에 가빠진 숨으로 촛불을 끄려 할 참이었다.


“왕성에 왜 아무도 없지? 들어오면 안 되는 거 아니야?”


“임마! 이때가 아니면 언제 왕성에 들어와 보겠느냐고! 구경만 하자는 거지, 구경만!”


갑자기 들린 생소한 인간들의 목소리였다. 마계 개척이 무르익어가고, 벌써 마왕성 근처까지 개척하러 온 인간들이 두 마을쯤 도착해 땅을 나눠 갖고 있었다. 개중 몇 명은 마왕성 자체에 관심을 가졌고, 그중에서도 일부는 용기를 내 그 안으로 발을 내밀며 들어온 것이었다.


오스먼드는 테일코트에게 배운 투명화 마법으로 레오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을 숨겨버렸다.


“방금 무슨 소리가 들린 것 같았는데?”


동생으로 보이는 인간이 겁을 먹은 듯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또, 또, 또! 넌 겁이 많아서 문제야! 돈 되는 것, 입을 것, 특히 먹을 것이 있어야 겨울을 버틸 거 아니야!”


형으로 보이는 인간이 동생을 타박했지만, 그 자신도 역시 무서운 건 매한가지라 등을 굽히고 작은 소리만 나도 놀랄 준비가 되어있는 토끼처럼 눈을 뜨고 있었다.


“그런 건 나도 알지만······. 역시 난 여기서 나가겠어! 사람 한 명 없는 이런 곳에서 먹을 것이 나올 리가 없잖아!”


“자, 잠깐······! 가지 마! 나도 무섭단 말이야!”


모스 마을의 청년은 횃불을 들고 홀로 한참을 헤매다, 어느새 중앙홀까지 걸어들어왔다. 식당으로 의심되는 곳은 쌀 한 톨 나오지 않았고, 먼지만 쌓여있었다. 사실 그도 먹을 걸 기대하고 온 것은 아니었다. 알려진 대로라면 용사님이 홀로 마왕성을 지키고 계시다고 했는데, 우연히 얼굴이라도 한번 보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다만 이렇게 먹을게 없는 곳에서 홀로 지키고 있을 리가 없으니 실망감이 더 커졌다.


다소 실망한 청년이 횃불로 비춘 중앙홀 안에는, 횃불 말고 딱 하나 더 불이 밝혀져 있었다. 그가 홀린 듯이 그 작은 빛을 따라가자, 엉뚱하게도 케이크가 나왔다. 케이크뿐만이 아니라, 소시지와 말린 과일들도 한 접시 가득 들어있었다.


“케, 케이크!”


청년은 반색하며 음식을 향해 달려들었다. 제대로 된 음식을 먹은 지 벌써 몇 주나 지났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아무도 없는 청년의 귓가에서 낯선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 케이크는 가짜니까, 먹을 생각하지 않는 게 좋아.”


“으아아악!”


청년은 귀를 부여잡고 뒤로 넘어져 버렸다. 쥐었던 횃불도 놓쳐버리고 엉덩이가 쓸리는 줄도 모른 채, 가까운 벽까지 뒤로 발을 차며 도망쳤다.


그를 두고 허공에서 목소리들이 오가기 시작했다.


“말을 하면 어떡해? 케이크 따윈 그냥 줘버리지!”


“마왕성 안에 가져갈 게 있다는 걸 알면 더 많은 인간이 들어올 거예요.”


“그렇다면 가져갈 게 있다는 걸 알아버린 이 녀석을 어쩌지?”


“그냥 돌려보내죠, 겁먹었을 텐데. 불쌍하구요.”


“없애버려야지! 봐선 안 될 걸 봤는데!”


“케이크가 봐선 안 될 것인가? 고작 케이크가?”


“고작이라니! 저래 봬도 유명 제과점에서 산 걸 훔쳤단 말이야!”


“그게 자랑은 아닌 것 같은데······.”


각기 다른 목소리와 음높이, 그리고 억양이 섞여 혼란스러운 대화였다. 그게 너무나도 무서워 청년은 실금하는 것도 알아차리지도 못했다.


“그래! 이렇게 하는 거야!”


잠시 고요한 침묵이 이어졌다. 같은 목소리가 이어서 말했다.


“이 녀석을 외딴곳으로 보내버리는 거야. 어때? 불만 있어?”


“아니 그래도 겨우 케이크······. 아니, 굶은 배를 채우기 위해 먼 길 달려와 찾아오신 손님께 해코지를 하는 건 말도 안 된다 생각해요.”


“난, 친구한테 의견을 물은 적 없는데?”


“제게 의견을 묻지 않았어도, 이분이 손님이란 사실은 변하지 않아요.”


테일코트가 투명 마법을 스스로 해제하며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자 중앙홀의 내부도 밝아지며 멀끔한 정장 차림의 그의 모습이 드러났다. 단정한 모습에 예절을 겸비한 신사가 부드럽게 말하자, 몰래 찾아온 청년의 마음도 누그러져 테일코트가 내민 손을 잡았다.


“많이 놀랐니? 우리 사람들이 경계가 심해서 무섭게 한 걸 이해해줘. 갈아입을 옷과 따듯한 욕조를 빌려줄게, 날 따라오렴.”


그제야 축축해진 바지를 깨달은 그가 테일코트를 따라가자, 테일코트는 뒤를 돌아보며 소리 없이 큰 입 모양으로 뜻을 전했다.


‘제가 시간 벌 테니까, 어서 이 녀석 속일 궁리부터 하세요!’


그제야 투명 마법을 해제한 사람들은 서로 머리를 맞대 의논하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주변에 정착하기 시작한 인간들이 마왕성에 관심을 두고 있었다. 그런 인간 중에 아무도 없는 성을 구경할 겸, 건질 게 없나 둘러볼 겸, 마왕성에 들어오려는 자들이 더 많아질 것이다. 그들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왜 그런 걸 걱정하지? 그런 게 걱정되면 마왕성 안에 내가 있다고 알리면 되는 게 아닌가?”


카그라 후작이 계산이 끝난 만족한 미소로 말했다. 카그라의 설명은 이러했다. 용사는 반인반수의 모습이 되어버렸으니 사람들 앞에 나설 수 없었다. 그러니 인간이자 귀족인 자신이 불모지를 직접 개척하러 왔노라며 마을과 마을 사이를 중재하는 역할을 맡으면 되는 일이었다.


그러면 새롭게 개척될 마계에서 스탕달보다 카그라의 영향력이 강해질 테고, 그게 곧 권력으로 나타날 것이 분명했다.


레오나와 오스먼드는 오히려 탐욕스러운 카그라의 의견이 마음에 들었다. 심지어 합리적으로 탐욕스럽기에 배신 같은 불안한 구석이 없어 보였다. 카그라의 욕심은 새로운 마왕을 만들어내 왕성을 전복시킨다는 그들의 목적과 묘하게 어울렸기 때문이었다.


“그렇군. 이해했어. 친구야. 나는 새로운 마왕을 만드는 게 목적이고, 여기 용사는 왕궁에 복수하는 게 목적이지. 그리고 그 뒤에 남은 왕권 따위야 어찌 됐든 상관없으니, 친구가 차지하도록 해.”


오스먼드가 가볍게 손뼉을 치며 마무리했다.


“자 이제, 마왕 계승만 하면 모든 게 완벽해지겠네! 모든 게 다 준비가 끝났으니,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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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61화 싫거든. 내 말이거든. 내 맘이거든. 19.10.25 33 1 11쪽
60 60화 서로 사이좋게 지내기 바라. 19.10.23 32 1 11쪽
59 59화 아아! 새로운 용사의 탄생 순간이도다! 19.10.21 33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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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57화 내 몸속에 초대 마왕님이 계셔. 19.10.16 30 1 11쪽
56 56화 나는 악당이 되어야 해. 19.10.14 36 2 12쪽
55 55화 마, 마족의 침공입니다! 19.10.11 37 2 12쪽
54 54화 썩 꺼지쇼! 19.10.09 34 1 12쪽
53 53화 엘라이자는 가지 않아. 19.10.07 37 1 12쪽
52 52화 당신을 용서할게요. 19.10.04 45 1 12쪽
51 51화 나도 엘라이자, 당신을 사랑해. 19.10.02 35 1 11쪽
50 50화 동화책에서 읽었어요. 19.09.30 38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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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46화 그게 귀족의 특권 아니겠나. 19.09.20 54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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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43화 제발 연락이 닿기를……! 19.09.13 44 1 12쪽
42 42화 우리가 그 멍청한 마을이야……. 19.09.11 57 1 12쪽
» 41화 그 케이크는 가짜니까, 먹을 생각하지 않는 게 좋아. 19.09.09 54 1 12쪽
40 40화 남자는 가끔 홀로 씹는 고독이 필요한 법이죠. 19.09.06 64 2 12쪽
39 39화 인간들만 절실한 게 아니란 말이야. +1 19.09.04 62 2 12쪽
38 38화 믿을게 필요한 사람들 눈에 띄면, 믿음직해 보이는 법이야. 19.09.02 73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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