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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웅 님의 서재입니다.

롱 리브 더 데블킹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신현웅
작품등록일 :
2019.06.10 02:12
최근연재일 :
2020.01.06 14:45
연재수 :
90 회
조회수 :
8,656
추천수 :
142
글자수 :
510,676

작성
19.08.30 11:40
조회
66
추천
2
글자
12쪽

37화 저게 뭐람, 무서워라아…….

DUMMY

스탕달은 루가루 마을에서 빠져 나와, 인적이 없는 숲속에서 석고 반지를 비벼 창백한 토르소를 소환했다. 토르소는 커다란 숨을 마시고 뱉더니, 곧 알폰스의 얼굴로 변했다.


알폰스는 고개를 숙여 예를 갖추었다.


“후작님을 뵙습니다. 마침 제가 후작님께 보고드릴 것이 있었습니다.”


스탕달은 부하의 보고를 듣지 않고 말했다.


“바크만은 죽었다. 아니, 바크만을 죽였다.”


허탈하게 말하는 그의 표정이 얼마나 창백한지 대리석보다 더 푸르슴해 보였다. 알폰스는 주인에게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라고 물을 법도 하지만, 피에 젖은 그의 옷과 피로해진 표정을 알아보곤 다음 말을 꺼냈다.


“악사들을 소집하겠습니다. 캔버스와 물감, 그리고 향초를 준비하겠습니다.”


평소 주인의 취향을 본인보다 잘 알고 있는 알폰스였다. 오케스트라와 그림만 생각했던 스탕달은 향초가 떠오르자, 기분이 많이 누그러졌다. 하지만 스탕달 본인의 기분을 풀자고, 예술가들을 마계까지 끌고 오는 건 옳지 못했다.


“아니 괜한 걸음은 하지 말아라. 그보다 보고할 것이 있다고?”


“예.”


알폰스는 딱 부러지게 대답했다.





아직 오비디언이 출정하기도 전 왕성에 있을 때, 줄리엣이 갇혀있는 결정석을 바크만의 침소에서 발견한 스탕달은 알폰스에게 하나 지시한 것이 있었다. 그 내용은 차기 왕권 주자를 매수하라. 즉, 섭정으로 이끌어가던 권력이 위태로워지니 새로운 인형을 꺼내라는 이야기였다.


물론 스탕달이 미리 점찍어둔 인물 또한 물론 있었다. 새롭게 왕의 자리에 앉을 인물은 바크만의 사촌 동생으로, 이름은 거츠였다. 그는 시골에서 과수원을 하는 양반이었는데, 정숙한 아내와 결혼하며 목가적인 생활을 누리고 있는 모양이었다.


사과를 보살피던 부부가 하루아침에 이 왕국의 국민을 보살펴야 한다면 얼마나 놀랄까. 하지만 정작 국무는 스탕달이 할 것이며, 거츠 부부는 호화로운 식사와 잠자리에 적응만 하면 될 것이다. 누구도 손해가 없는 상황이니 거절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거츠의 즉위는 바크만의 폐위가 이루어지고 난 뒤, 진행되어야 했다. 게다가 어째선지 몰라도 방금 바크만은 이번 출정 길에 따라 나갔는데, 그동안 그의 폐위를 준비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동안 문서를 조작하고, 그의 악행을 샅샅이 헤집으면 되는 일이었다. 금화의 순도라던가, 세금 등으로 국민을 긁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알폰스는 자신이 그린 바크만의 초상화를 찢었다. 찢은 초상화가 가루로 흩어져 알폰스의 피부에 달라붙어 살이 되었고, 심술이 그득한 인상을 만들었다. 알폰스는 초상화를 이용한 변신 마법을 구사할 줄 알았다.


알폰스는 바크만의 몸으로 왕성 이곳저곳을 들쑤시기 시작했다. 원래 호위 없이 방치되다 싶었던 왕이라, 수상하게 보는 이는 없었다. 그런 알폰스는 제일 먼저 집무실로 들어갔다.


바크만이야 원래 국무에 관심이 없었고, 스탕달이나 카그라 후작마저도 왕성에 없으니 나랏일이 진행되려야 진행될 수가 없었다.


텅 빈 집무실의 가득한 서류를 정리하던 비서가 한숨을 쉬더니, 국왕으로 변신한 알폰스를 뒤늦게 발견하고 마치 와서는 안될 사람이 온 것 마냥 의아해 했다.


“이만 나가봐.”


비서는 상황을 인지 못 하고, 허둥대다가 예절을 지키는 것도 잊고 도망치듯 빠져나갔다.


알폰스는 집무실의 자료를 뒤져보다 바닥에 지긋 밟히는 것이 있어 손에 집어 들었다.


“약초 담배?”


집무실을 드나드는 사람 중에 담배를 피우는 사람이 있던가? 스탕달 후작님은 물론이고, 카그라 후작도 담배를 싫어해서 겁 없이 이곳에서 담배를 태울 리는 없었다. 알폰스는 약초 담배를 주머니에 찔러 넣고 자료를 뒤져보다가 한 장, 석연치 않은 내용의 문서를 발견했다.





“그 내용이 극동의 나라, 엘프 국왕의 친서였다?”


스탕달은 사라질뻔한 두통이 다시 몰려오는 걸 느꼈다. 지금은 죽어버렸지만, 아직도 바크만의 뒤치다꺼리가 남아있으니 숨이 막혀오는 것 같았다.


엄지로 턱 밑을 누르고, 중지로 주름진 관자놀이를 주무르는 스탕달에게 알폰스가 조심스레 물었다.


“나중에 보고 드릴까요?”


알폰스가 스탕달을 걱정하자, 스탕달이 아예 손바닥으로 얼굴을 덮어 피로감을 토로했다.


“시간이 흘러 나중이 되면, 문제가 해결되는 종류의 것인가?”


“아마도, 아닐 겁니다.”


스탕달이 얼굴에서 손바닥을 떼고 바른 자세로 고쳐앉았다.


“그럼 지금 보고하거라.”


“엘프 국왕인 므두셀라가 저희 테스널 왕국에 본인들의 수배자가 향한 걸 확인했으니, 협력을 요청한다는 내용입니다.”


“그게 언제쯤 도착한 친서지?”


“오 년 전입니다.”


오 년 전이면 한창 전쟁으로 바쁠 때였다. 스탕달이 자리를 비웠을 때, 엘프 쪽에서 친서가 왔을 것이고 그 친서는 아마도 바크만이 치워버렸을 것이었다. 폐쇄적인 엘프 종족과 외교를 할 기회였었는데, 그걸 그대로 날려버린 꼴이었다.


“수배자는 무슨 이유로 쫓기는 것인지 쓰여 있던가?”


“지금으로부터 약 이십여 년 전에 엘프 종족이 지켜오던 보물을 훔친 모양입니다.”


“그 보물의 정체는?”


“그게······.”


처음으로 알폰스가 말꼬리를 흐리며 곤란을 겪고 있었다. 스탕달이 재촉하자, 알폰스가 이 사실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몰라 의구심을 가진 채 답했다.


“죽은 것을 살리는 오브······. 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스탕달의 구겨진 미간이 더더욱 찌그러졌다. 그는 숨을 삼켰다.


“······수배자의 이름이 뭐지?”


“프로메테우스입니다.”





실크는 회복을 위해 잠들어있었고, 미겔도 아직 눈을 뜨지 않고 있었다.


“우리는 다시 황무지로 가서 그래스호퍼 사람들을 이곳까지 데려와야겠네.”


매튜가 떠날 채비를 하며 일어서자, 엘렌이 말렸다.


“잠깐, 여기까지 마을 사람들이 오는 건 위험해. 개척은 여기까지 진행하는 게 좋겠어. 오비디언 같은 놈들을 또 볼 것 같단 말이야.”


“하지만 이제 겨우 조금 남았어. 저 산맥만 넘으면 마왕성이라고.”


“그러니까 하는 말이야. 여기까지면 족해. 저 산맥을 넘으면 도망치기도 쉽지 않아.”


물론 엘렌의 말이 맞았다. 비단 오비디언 같은 괴인뿐만이 아니라, 같은 인간들끼리도 벌써 마왕성 주변을 둘러싸고 칼만 안 들었지 치열한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서로 슬그머니 선점한 땅을 침범하고 물자를 약탈하고 있으니, 빌미만 생긴다면 당장에라도 전쟁이 벌어질 판이였다.


반면에 선발대가 운이 좋게 선점한 루가루 숲 주변은 평지가 적었지만, 땅에 영양분이 가득해 탐이 날 수밖에 없었다. 그래스호퍼는 농경 마을이지, 높은 종탑과 건물을 세우며 발전을 꾀하려는 마을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지나온 땅들은 영 농사에 필요 없는 땅들이었다.


“게다가 루가루들과 사이좋게 지낸다면 얻을 이득을 생각해봐.”


루가루뿐만이 아니라, 잘만 하면 리저드맨들과 교역할 수 있는 곳이었다. 물론 왕성의 눈을 어떻게 피하느냐 하는 건 둘째 치더라도 당장은 왕성 측은 마왕성으로 왕성을 옮기고, 구획을 나누느라 정신없을 것이다.


“그래도 더 나아갈지 여기서 개척을 시작할지 그 어느 쪽이든, 여기까지 마을 사람들을 안내하는 건 똑같잖아. 슬슬 가자구. 눈이 더 쌓이기 전에.”


“그건 그러네.”


엘렌도 장비를 꾸려 일어섰고, 네드를 보며 말했다.


“뭐해? 너도 가야지? 눈밭을 걸어가려면 네 양털 마법이 필요하단 말이야.”


“예에?”


네드가 마치 장난감을 빼앗긴 아이처럼 대꾸했다.


“그렇지만 여기 있는 게 좋은데.”


루가루 아이들이 자신의 마법을 좋아하더라, 그들은 내가 없으면 지루해 죽을 것이다, 온갖 변명을 꺼내던 네드는 당사자들인 어린 루가루들이 답변하자마자 말문이 막혀버리고 말았다.


“하지만 하늘에서 빛이 내려오는 것보다, 벌레에서 빛나는걸 보는 게 더 재밌어. 먹을 수도 있고.”


“솔직히 매일 같은 노래를 듣는 것도 질리고.”


엘렌이 씁쓸한 얼굴을 띄며 네드를 재촉했다.


“여기 있을 이유는 없는 모양이다. 출발하자.”





미겔은 오랜 꿈을 꾸고 있었다. 물론 혼자는 아니었다.


“온통 꿈속에 풀, 풀, 풀떼기 밖에 안나오냐아······!”


“도대체 네놈 정신 속은 알다가도 모르겠다!”라고 외치는 초대 마왕은 미겔에게 하소연 아닌 하소연을 외쳤다.


미겔은 질이 좋은 파슬리라며 풀밭에 주저앉아 잎을 매만졌지만, 꿈이란 건 인지하고 있어서 그저 수확하지 못해 안타까웠을 뿐이었다. 미겔은 살며시 악수하듯 잎을 비벼 풀냄새가 묻은 손가락을 코에 가져다 대니, 채소 향과 함께 감칠맛이 느껴지는 향이 섞여 있어 절로 입에 침이 고였다.


“얼씨구?”


파슬리밭을 지나니 세이지 밭이 나타났다. 세이지는 소화에 좋아 널리 약용으로 쓰는 풀인데, 어린잎을 따서 입안에 넣어보니 매콤한 후추 같은 맛이 올라왔다.


“지금 뭐 하는 거야?”


세이지 곁에는 로즈마리밭이 있었다. 파슬리와 다른 짙은 향을 자랑하는 로즈마리는 바람결에 따라 그 향을 멀리 실어 보내고 있었다. 잠깐만 그 바람을 쬐고 있어도 입은 셔츠 깊숙이 로즈마리 향이 밸 정도였다. 아직 입안에 매운 기운이 감돌았지만, 미겔은 로즈마리를 밟지 않게 조심하며 밭 위를 거닐었다.


“내 말이 들리는 거지?”


타임. 네 구획으로 나누어진 약초밭의 마지막은 타임이 심겨 있었다. 미겔은 로즈마리와 향이 비슷한 타임을 한 움큼 수확해 한 손에 들었다. 한꺼번에 뜯은 것이 아니라, 한 줄기 한 줄기 손톱으로 끊어 냈기 때문에 미겔의 손톱에는 어느새 검초록빛의 풀물이 들어 버렸다.


타임 다발을 들고 막연히 멀리 시선을 두며 멍청히 있는 미겔의 앞에 보다 못한 사념체가 가로막아 우뚝 섰다. 체구는 실크와 비슷했지만, 팔다리가 가늘어 날렵한 인상을 주는 마족이였다.


“초대 마왕. 너는 왜 후대에 이름을 지어 계약하는 마법을 남긴 거야?”


미겔이 물었지만, 딱히 ‘네 마법 때문에 내가 스켈레톤이 되고 있다!’라고 비난하는 어투가 아니었다. 마치 눈앞에 눈송이가 내리는 걸 보며 ‘아, 눈이 온다.’라고 말하는 나른하고 나긋한 목소리였다. 다만 미겔은 딱히 대답을 바라고 말한 건 아니라, 금세 저 멀리 햇빛을 등지고 걸으며 다가오는 이에게 시선을 빼앗겨 버렸다.


그곳에 연인인 레오나가 있었다. 다만 실루엣이 점점 커지며 달라진 모습이 눈에 띄었다.


우선 그녀에게 짐승 같은 갈기가 자라있었다. 주둥이가 길쭉해지고, 날카로운 손톱과 째진 눈초리가 두드러져 보였다.


미겔은 긴장 탓에 타임 한 묶음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고, 저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고 말았다.


“나는 내 결정을 네가 이해할 줄 알았는데.”


레오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원망하는 삐딱한 시선으로 미겔을 노려봤다.


미겔은 주머니에 슈네트가 만들어주고, 투스가 세공해준 반지가 느껴졌지만, 차마 꺼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보다 못한 사념체가 둘 사이를 가르며 말했다.


“꿈인 걸 알면서 왜 이렇게 겁을 먹어, 네가 알던 그 아가씨잖아. 단지 조금 털이 자랐을 뿐······.”


사념체는 자신은 물론이고, 미겔마저도 삼키며 자라는 그녀의 그림자를 보며 뱉던 말을 거둘 수밖에 없었다. 그는 점점 더 커지는 그림자를 등지고 뒤로 돌아보았다. 방금까지 루가루가 된 영웅 아가씨는 온데간데없고, 커다란 사자 괴수가 혀를 날름거리며 침을 흘리고 있었다.


“저게 뭐람, 무서워라아······.”


초대 마왕은 눈가를 찌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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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61화 싫거든. 내 말이거든. 내 맘이거든. 19.10.25 33 1 11쪽
60 60화 서로 사이좋게 지내기 바라. 19.10.23 32 1 11쪽
59 59화 아아! 새로운 용사의 탄생 순간이도다! 19.10.21 33 1 12쪽
58 58화 어쩌기는. 도망쳐야지. 19.10.18 31 1 11쪽
57 57화 내 몸속에 초대 마왕님이 계셔. 19.10.16 30 1 11쪽
56 56화 나는 악당이 되어야 해. 19.10.14 36 2 12쪽
55 55화 마, 마족의 침공입니다! 19.10.11 37 2 12쪽
54 54화 썩 꺼지쇼! 19.10.09 34 1 12쪽
53 53화 엘라이자는 가지 않아. 19.10.07 37 1 12쪽
52 52화 당신을 용서할게요. 19.10.04 45 1 12쪽
51 51화 나도 엘라이자, 당신을 사랑해. 19.10.02 35 1 11쪽
50 50화 동화책에서 읽었어요. 19.09.30 38 1 12쪽
49 49화 난 전설 따윈 믿지 않아. 19.09.27 48 1 12쪽
48 48화 마드모아젤, 그리고 무슈. 19.09.25 53 1 12쪽
47 47화 드래곤 잡으러 갈 겁니다. 19.09.23 59 1 11쪽
46 46화 그게 귀족의 특권 아니겠나. 19.09.20 54 1 12쪽
45 45화 사죄를 하고 싶군. 19.09.18 56 2 12쪽
44 44화 슈네트를 막아야 한다! 19.09.16 50 1 11쪽
43 43화 제발 연락이 닿기를……! 19.09.13 44 1 12쪽
42 42화 우리가 그 멍청한 마을이야……. 19.09.11 57 1 12쪽
41 41화 그 케이크는 가짜니까, 먹을 생각하지 않는 게 좋아. 19.09.09 54 1 12쪽
40 40화 남자는 가끔 홀로 씹는 고독이 필요한 법이죠. 19.09.06 64 2 12쪽
39 39화 인간들만 절실한 게 아니란 말이야. +1 19.09.04 62 2 12쪽
38 38화 믿을게 필요한 사람들 눈에 띄면, 믿음직해 보이는 법이야. 19.09.02 73 1 12쪽
» 37화 저게 뭐람, 무서워라아……. 19.08.30 67 2 12쪽
36 36화 내가 이겼고, 난 네가 마음에 든다. 19.08.28 64 1 12쪽
35 35화 또 새로운 실험체를 만들러 가볼까. 19.08.26 61 1 12쪽
34 34화 좀 더 농익거든 찾아와라, 애송아. 19.08.23 60 2 12쪽
33 33화 야, 이 망할 녀석아! 19.08.21 56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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