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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현웅 님의 서재입니다.

롱 리브 더 데블킹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신현웅
작품등록일 :
2019.06.10 02:12
최근연재일 :
2020.01.06 14:45
연재수 :
90 회
조회수 :
8,686
추천수 :
142
글자수 :
510,676

작성
19.09.04 12:07
조회
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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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글자
12쪽

39화 인간들만 절실한 게 아니란 말이야.

DUMMY

레오나는 기분 좋은 꿈을 꾸고 일어났다. 상큼한 풀냄새가 몸에 밴 듯 희미한 허브 냄새가 났으며, 그 향이 가슴 속에서 뭔가 간질거리는 애타는 마음을 불러왔다.


그녀가 눈을 뜨니 이해 못 할 마법진들이 주변을 둘러 쌓아, 눈앞에서 천천히 어지럽게 회전하고 있었다. 어지러운 빛무리 탓에 편두통이 온 레오나는 지끈거리는 눈을 손으로 비비려 했다. 그런데 손에 눈두덩이가 아닌 하관에 붙은 살덩어리가 먼저 만져졌다. 누군가 자신에게 가면을 씌어놓은 듯 두툼한 촉감이 느껴졌는데, 털이 난데다 딱딱했고 그러면서도 축축한 짐승의 코가 만져졌다.


얼굴뿐만이 아니라 손등에도 털이 숭숭 나 있고, 발톱 하나하나가 커다란 짐승의 송곳니처럼 박혀있었다. 레오나는 두통을 애써 무시한 채, 잔뜩 찌푸린 눈으로 주변 상황을 둘러보려고 노력했다.


“······디언의······, 복귀······, 그의 권한을······.”


“실크라고 하는······.”


“역대 마왕을 되살린다.”


레오나의 주변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지만, 제정신을 차리지 못한 레오나가 그 내용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으, 머리 아파······.”


드디어 레오나가 입을 열자, 주변의 인물들이 모두 그녀를 주목했다. 짐승의 모습을 본뜬 반인반수의 용사를 보며,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생각은 제각기 달랐다.


설리반은 용사를 마왕으로 즉위시켜 얻을 아크리치의 속내가 궁금했고, 서러브레드 남매는 용사에게 막연한 두려움을 품었다. 카그라는 용사가 스탕달의 실질적인 집권을 깨트려주길 기원했으며, 오스먼드는 자신의 계획의 한 조각이 완성되었음을 기뻐했다.


정신을 차린 레오나는 자신이 곧 루가루로 변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다만 꿈을 꾸며 맡은 풀냄새 탓인지, 그녀의 기분은 당황스럽거나 놀랍기보단 나른해서 다시 졸음에 빠질 것 같았다.


그녀의 앞으로 오스먼드가 달려와 물었다.


“기분은 좀 어때? 마족으로 다시 태어난 첫날이야.”


“몸이 무기력하고, 나른하고······.”


그녀의 배에서 꼬르륵하는 소리가 크게 울렸다.


“굶어서 그런 거야. 밥부터 먹자구.”


오스먼드가 일축하며 정리했다.





오스먼드가 마왕성 주방에서 쓸만한 그릇이 있나 뒤져볼 때, 설리반이 따라와 말했다.


“프로메테우스. 너 무슨 꿍꿍이야. 바른대로 말해.”


“내 이름은 오스먼드라구, 프로메테우스라니? 누굴 말하는 거지?”


오스먼드는 시치미를 뗐지만, 그 정도 거짓말로 설리반을 속일 수 없다는 건 본인이 더 잘 알았다.


“프로메테우스, 버번, 구스탕트, 뭉툭한 송곳니, 까미유, 라이왕, 스미스. 그리고 이번엔 오스먼드란 말이지? 내가 모르는 이름이 또 있어?”


오스먼드는 콧노래를 불렀다. 그는 “어머, 이 그릇 예쁘다. 자기야 우리 이거 한 세트 사 가자.”라고 푸른 물결무늬의 그릇을 꺼내 들었지만, 설리반은 씨앗을 던져 그릇을 깨트리곤 제 할 말을 이어갔다.


“그래서 소생의 오브를 써먹었다고 쳐. 그럼 되살린 녀석은 어디에 있는데? 용사를 마족으로 만드는 과정에 오브가 필요한 게 아니잖아. 저 마족 용사를 마왕으로 만들어 줄 선대 마왕이 필요한 거잖아! 그 선대 마왕이 어디에 있냐고!”


“그릇을 깨다니? 아깝게! 정말 마음에 들었던 건데, 자기 나한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실망이야! 됐어, 그냥 우리 헤어져!”


계속 딴청 피우는 오스먼드를 보다 못한 설리반이 그의 가슴팍을 발로 차 넘어트리고, 그의 쇄골뼈를 잡아 흔들었다.


“그런데 엘프였던 네가! 죽은 자를 되살리는 오브를 훔치고! 리치로 타락하면서까지! 저 아가씨를 마왕으로 만들어서 이루려는 게 대체 뭐냐고! 미치겠네, 진짜!”


그제야 처음으로 오스먼드가 대답다운 대답을 했다.


“난 그저 좋은 세계를 만들고 싶은 것뿐이야.”


오스먼드는 턱뼈를 벌린 채였다. 퀭한 두 눈구멍은 허무해, 무엇으로 채운들 채워지지 않을 어둠만이 가득했다.





“프로메테우스! 너 또 잭프루트 장로님의 수업을 빼먹고, 종일 이 골방에 틀어 박혀있었지! ”


단풍잎 같은 붉은색의 허리 끝까지 내려오는 비단 같은 긴 머리. 매끄럽게 내려오는 콧등과 자잘하게 주근깨가 박힌 젊은 엘프가 잡동사니 안에서 엉거주춤 나왔다. 초록의 눈동자가 설리반을 올려다 봤지만, 이내 흥미가 식어 도로 잡동사니 안으로 기어 들어가려 하고 있었다.


“그런 거 재미없고, 고리타분해.”


설리반은 프로메테우스가 엘프 국가의 바깥에서 몰래 들여온 인간과 마족들의 물건을 발로 치우며 앞으로 걸었다. 설리반이 지나치는 물건마다 무슨 역사가 담겨있는지, 어떤 가치가 있든지 간에 그녀는 신경 쓰지 않았다.


만약 프로메테우스의 앞에서 발에 챈 물건에 아주 미세한 관심을 가졌단 사실을 들켰다간, 그 물건의 재료가 어느 지역에서 생산되었으며 또 그 지역의 분위기가 어떤지 알게 될 것이다. 게다가 프로메테우스의 몸 상태가 유난히도 좋은 날엔 그 지역의 무엇이 맛있고, 시장 골목 세 번째 파란 지붕의 손녀딸이 좋아하는 총각이 요새 구인 구직을 하느라 바쁘다는 얘기도 듣게 될지도 모른다. 설리반은 그런 경험을 벌써 마을 광장의 셰계수의 잎사귀만큼이나 겪어버렸다.


“그러라고 배운 공간왜곡 마법진이 아닐 텐데.”


어두운 방 안에서 예닐곱 개의 마법진 앞에 드러누운 프로메테우스가 세상 구경을 할 때, 설리반은 잭프루트에게 받아온 치료약을 잘 보이는 곳에 두며 말했다.


“수업을 안 받는 건 네 자유지만, 약이라도 꼬박 챙겨 먹기라 도해. 아무리 천년을 사는 엘프라고 해도 너처럼 살면 고블린과 다를 게 뭐야.”


“응.”


“대답은 또 잘해요.”


“설리반. 나 궁금한 게 있어.”


“뭔데.”


설리반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왜 우리 엘프들은 왜 이 좁은 땅에 틀어박혀 나가지 않는 거야?”


“장로들이 그런 걸 원하니까? 딱히 불편한 건 없잖아?”


“불편해. 많이 불편해.”


프로메테우스가 불쑥 내민 손은 그대로 마법진을 뚫고 지나가 버렸다.


“정말 불편해. 나였다면 좀 더 좋은 세계를 재구축 할 수 있을 텐데.”


도전적이고 의지가 깃든 말이었지만, 자칫 잘못 들으면 위험한 발상이 섞여 있는 말이었다. 다만 설리반은 그 속내까지 알지 못해 적당히 말했다.


“그러려면 장로가 되어야 하고, 장로는 어지간한 성적으로 넘볼 수 없는 자리란 건 알지? 게다가 장로 같은 철밥통을 노리는 엘프가 얼마나 많은지 알아? 그러니까 수업 빠지지 좀 마. 볼일 끝났으니 나 인제 간다? 꼭 약 챙겨 먹고.”


프로메테우스는 그대로 아무것도 닿지 않는 마법진 속을 휘적거렸다.


“엘프 장로가 된다라······.”





설리반은 붙잡은 오스먼드의 쇄골뼈를 놔버렸다.


오스먼드는 그대로 바닥에 부닥치며, 마침 곁에 있던 넓은 접시를 발견했다.


“이것 봐! 넘어진 덕분에 이런 좋은 그릇을 찾았잖아?”


오스먼드는 먼지 낀 그릇을 즉석에서 만든 마법진 안으로 넣었다 빼니, 묵은 때와 먼지들이 지워져 깔끔해졌다. 아크리치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새로운 마법진 대여섯 개를 더 만들었고, 그 속에서 어딘가의 음식들을 훔쳐 그릇에 보기 좋게 담았다.


설리반은 뭐라고 쓴소리를 하려다가 그만두었다.


“너는 정말······. 이제 됐어. 넌 나에게 아무 할 말도 없는 모양이고, 나도 네 속내를 알 길이 없으니, 인제 그만 장로님들께 보고하러 돌아갈 거야.”


“그건 이제 네 자유야. 설리반.”


“아. 그리고 남매들에게 묶어놓은 속박도 풀어줘. 너한테 그들은 아무짝에도 쓸모없잖아?”


“그것도 마찬가지로 네 자유야.”


오스먼드는 한 손에 음식이 가득 담긴 접시를 들고 으쓱였다. 그리고 장난감을 빼앗기기 싫어하는 어린아이처럼 짓궂게 웃었다.


“할 수 있다면.”





게일과 키클롭스가 만토데아의 용병단장 크룩스를 내려다 봤다. 크룩스는 두 손 두 발이 모두 묶여 쉽게 움직일 수가 없었다. 크룩스뿐만 아니라 다른 단원들도 마찬가지였다.


“나, 나를······. 아니, 우리를 어쩔 셈이냐!”


크룩스가 공포에 잡아먹혀 되레 큰소리를 냈지만, 별 효과는 없었다.


게일은 주섬주섬 잘그락거리는 연장을 챙기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가만히 있어, 내가 좋은 구경시켜주지.”


게일이 낮게 깔린 어조로 말했다.





시간이 흐르고 가만히 게일의 작업을 지켜보던 키클롭스가 의문이 생겨 물었다.


“이게 무슨 짓이지.”


분노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궁금증이 생겨 묻는 말에, 게일이 대꾸하듯 말했다.


“자고로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고, 겉모습이 아름다워야 상냥한 마음씨가 생기는 법이야. 그렇다면 상냥한 마음씨가 생기면?”


게일은 면도칼과 가위에 묻은 거품을 닦으며 말했다.


“온천장을 굳이 빼앗으려 하지 않겠지.”


“그건 억지다. 인간들이 그렇게 간단히 포기할 리가 없잖아.”


“억지고 뭐고, 만토데아만 막아준다면 물값 팔십 골드라고 했나? 그건 없던 거로 한다고 약속해.”


“······온천장의 안전만 보장된다면야.”


키클롭스의 확답을 듣자, 크룩스를 제외한 모든 용병단들의 머리와 수염에 칼과 가위가 닿았다. 게일의 빠른 손놀림으로 그들의 털을 가다듬으니, 모두 인물이 훤해지며 인상이 밝아졌다.


용병단들에게 아이스 슬라임이 매끄러운 얼음 거울을 만들어 그들의 모습을 비춰주었고, 파이어 슬라임이 열풍으로 그들의 머리를 말려주고 털어주자, 용병들은 자신들의 단정한 외모를 보며 놀랄 수밖에 없었다.


게일이 만족스럽게 말했다.


“아아, 이것이 바로 <미용>이라고 하는 것이다.”


물론 용병들이라고 해서 미용이란 개념이 없진 않았다. 하지만 미용이란 게 워낙 귀족들의 전유물 같은 개념이라, 용병들은 그저 냇가에서 때를 벗기는 게 전부였다. 덕택에 산발한 머리는 물론이고, 떠돌이 이발사가 용병 마을까지 잘 오지도 않았기에 수염도 모두 덥수룩했다.


미용의 효과는 용병들 마음속에서 곧바로 나타났다.


“이, 이 모습이라면······. 나! 시집갈 수 있어!”


“작위는 없지만 마치 작위를 가진듯한 느낌이야! 아아, 난 부질없는 것을 쫓고 있었구나!”


“사랑하는 아내가 나를 본다면, 구박이 아니라 다시 따듯한 손길을 건네주겠지! 그동안 곡식만 벌어다 주는 인형으로 살아왔던 지난날······! 이제 안녕이다!”


게일의 미용 덕택에 마음이 가벼워진 용병들은 만토데아를 잊고 각자 살던 마을과 가정으로 돌아가기로 약속했고, 게일은 그들을 모두 풀어주었다.


이제 딱 한 명. 용병들이 모두 떠나고, 크룩스 홀로 온천장에 남았다.


“이제 내 밑으로 들어올 생각이 있는가?”


게일이 한쪽 무릎을 굽히며 그와 눈높이를 맞추며 말했다.


크룩스는 하루아침에 허망하게 해산된 용병단을 믿을 수 없어, 아무 답변도 달지 않았다.


슬라임을 보살피던 챠오가 양팔에 한 마리씩 끼고 돌아와 게일을 구박했다.


“아저씨는! 하루아침에 동료를 잃어버린 사람이 그런 결정을 쉽게 하겠어요?”


그러곤 챠오는 크룩스에게도 한마디 날렸다.


“그리고 당신이 분한 건 이해하지만, 우리도 우리의 목숨을 지키기 위해 싸운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해요. 인간들만 절실한 게 아니란 말이야.”


챠오는 크룩스가 어찌 됐든 상관없었기에, 슬라임들을 데리고 온천장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어째 어린애가 보호자보다 더 어른스럽구만.”


키클롭스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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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61화 싫거든. 내 말이거든. 내 맘이거든. 19.10.25 33 1 11쪽
60 60화 서로 사이좋게 지내기 바라. 19.10.23 32 1 11쪽
59 59화 아아! 새로운 용사의 탄생 순간이도다! 19.10.21 33 1 12쪽
58 58화 어쩌기는. 도망쳐야지. 19.10.18 32 1 11쪽
57 57화 내 몸속에 초대 마왕님이 계셔. 19.10.16 31 1 11쪽
56 56화 나는 악당이 되어야 해. 19.10.14 36 2 12쪽
55 55화 마, 마족의 침공입니다! 19.10.11 37 2 12쪽
54 54화 썩 꺼지쇼! 19.10.09 34 1 12쪽
53 53화 엘라이자는 가지 않아. 19.10.07 38 1 12쪽
52 52화 당신을 용서할게요. 19.10.04 45 1 12쪽
51 51화 나도 엘라이자, 당신을 사랑해. 19.10.02 35 1 11쪽
50 50화 동화책에서 읽었어요. 19.09.30 39 1 12쪽
49 49화 난 전설 따윈 믿지 않아. 19.09.27 48 1 12쪽
48 48화 마드모아젤, 그리고 무슈. 19.09.25 53 1 12쪽
47 47화 드래곤 잡으러 갈 겁니다. 19.09.23 59 1 11쪽
46 46화 그게 귀족의 특권 아니겠나. 19.09.20 55 1 12쪽
45 45화 사죄를 하고 싶군. 19.09.18 56 2 12쪽
44 44화 슈네트를 막아야 한다! 19.09.16 50 1 11쪽
43 43화 제발 연락이 닿기를……! 19.09.13 45 1 12쪽
42 42화 우리가 그 멍청한 마을이야……. 19.09.11 57 1 12쪽
41 41화 그 케이크는 가짜니까, 먹을 생각하지 않는 게 좋아. 19.09.09 54 1 12쪽
40 40화 남자는 가끔 홀로 씹는 고독이 필요한 법이죠. 19.09.06 64 2 12쪽
» 39화 인간들만 절실한 게 아니란 말이야. +1 19.09.04 63 2 12쪽
38 38화 믿을게 필요한 사람들 눈에 띄면, 믿음직해 보이는 법이야. 19.09.02 74 1 12쪽
37 37화 저게 뭐람, 무서워라아……. 19.08.30 69 2 12쪽
36 36화 내가 이겼고, 난 네가 마음에 든다. 19.08.28 65 1 12쪽
35 35화 또 새로운 실험체를 만들러 가볼까. 19.08.26 61 1 12쪽
34 34화 좀 더 농익거든 찾아와라, 애송아. 19.08.23 60 2 12쪽
33 33화 야, 이 망할 녀석아! 19.08.21 56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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