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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의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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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물감
작품등록일 :
2012.11.26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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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24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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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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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1.31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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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사북-9




붕어 없는 붕어빵, 시계 없는 시계의 아이







DUMMY

환한 햇살이 몸에 닿자, 상처가 쓰라려왔다. 방금 잠시지만 햇볕을 쬔 게 문제가 된 듯 했다. 카라는 품속에서 연고를 꺼냈다. 카라는 연고를 내려다보고는 피식 웃었다. 로제인의 섬세한 성격은 변하지 않았다. 설사 자신이 죽도록 미워하는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로제인은 항상 상냥했다. 내일 정적이 되어 죽일 상대라고 해도 그랬다.

카라는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햇살 때문인지, 현기증이 일었다. 카라가 막 모퉁이를 돌려고 할 때였다. 갑자기 통증이 전해졌다. 카라는 통증의 진원지를 움켜잡았다. 날카로운 한 자루의 비수였다. 비수를 던진 이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카라는 벽에 몸을 기댔다. 화끈한 통증이 전신을 뒤흔들었다. 불에 지지는 듯한 기분이었다. 정신이 점차 몽롱해져왔다.

‘방금 전의 현기증은 탑의 경고였나.’

카라는 헛웃음을 흘렸다. 도서관 근처라 지나가는 이는 없었다. 카라는 하크리를 열었다.

“애비게일에게로.”

카라는 피 묻은 손수건을 던져 넣었다. 툭, 카라는 벽에 몸을 기댄 채 쓰러졌다. 환한 햇살과 그늘이 함께 어우러져 빙글빙글 돌아가고 있었다.


호른은 양피지문서를 돌돌 말았다. 호른은 땀을 닦으면서 양피지문서를 원래 있던 장소에 밀어 넣었다. 호른은 하루 종일 내내 이곳에 처박혀 있었다. 스승이 내준 숙제를 하기 위해서였다. 호른은 마법주기율표를 적고 계산하라는 로제인의 명령에 한숨을 내쉬었다. 덕분에 어제 밤을 꼬박 새웠다. 호른은 뻑뻑해진 눈을 문질렀다.

열다섯. 비록 저 카라의 제자, 로그에게 뒤처지기는 했으나 이 정도 나이에 견습마법사의위치에 오른 것만으로도 천재라 불릴 수 있었다. 그리하여 다들 호른이 술법사의 옷을 벗었을 때, 천재니 뭐니하면서 입에 바른 아첨들을 해댔다. 곧 영지를 얻을 것이니 어쩔 것이니 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스승은 고개를 가로 저으며, 호른을 탑 안에 가두었다. 호른으로서는 뜻밖의 일이었다.

‘내가 너를 너무 늦게 찾았구나.’

첫 만남, 로제인은 한탄하듯 중얼거렸다. 호른은 당황했다. 그저 자신은 아비가 싫어서 이곳을 선택한 것뿐이었다. 로제인의 태도는 호의라고 해도 좀 당황스러웠다.

‘그 때문에라도 너를 좀 더 곁에 두어야겠다.’

호른이 바란 것은 아비에 대한 복수였다. 마법사로서 경험과 지식을 쌓고 위명을 떨치는 것, 그것이 아비에 대한 유일한 복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스승은 그것을 막고자 했다.

호른은 멍한 얼굴로 로제인을 올려다보았었다.

‘스승님. 저는, 저는...’

‘천재 마법사, 그 말에 책임질 수 있니?’

로제인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가 뛰어난 아이라는 건 안다. 하지만 지금 당장 세상에 나가면 어떻게 될 것 같으냐? 사람들은 매순간순간마다 네 행동을 지켜 볼 테지. 네가 조금 잘못해도 크게 잘못한 것으로 볼 것이며, 네가 조금 잘하면 그냥 잊어버릴 것이다. 엄청나게 잘해야 그제야 만족할 것이다. 네가 그런 것을 감당할 수 있겠니?’

로제인은 호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넌 정말 카라의 어린 시절을 빼다 박았구나. 오만하고 자신감에 넘쳐 있던...그렇지만 상처받기 쉬운 그런 아이였지.

자, 가만 있자. 네 호칭을 지어줘야 하는데 뭐로 짓지? 금안은 이미 있으니 안 되고....그래, 피닉스라고 하자.’

덕분에 그날 이후로 호른은 새대가리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별명과 상관없이, 호른은 자신의 뜻이, 복수가 꺾인 것에 분노했다. 사제가 된 아비에게, 자신에게 무관심하고 죽은 어미만 바라보는 아비에게 복수하고 싶었다. 마법사가 되어 찾아가서 아비의 성미를 뒤틀어놓고 말겠다고, 그렇게 바랐었다.

‘꼭 그것 때문에 카라를 찾은 건 아니다만.’

일부러 멀리했던 조모를 찾아, 이곳에 왔다. 아비는 카라에 대해 어떤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어쩌다가 혈연이 되어 잠시 함께 지냈고, 어쩌다가 그것이 또 인연이 되어 제자가 된 것 뿐. 아비, 아힘은 그 이상의 말은 하지 않았다.

호른은 로그를 떠올렸다. 밝은 보라색 머리카락의 머리카락과 그 눈이 떠올랐다. 자기보다 한 살 적을 뿐인 또래 소년이었다. 한 살 더 많다는 이유로 형처럼 굴지 않았으니, 로그도 호른을 친구로 대했다.

“젠장. 진작 그 녀석 따라 야반도주했어야 했는데.”

그 친구는 벌써 현후인가 하는 여자를 따라 대륙을 돌아다닌다고 했다. 호른으로서는 부러울 뿐이었다. 자유방임하는 카라의 성격 탓에 밖으로 쉽게 나갈 수 있었으리라. 물론 카라는 현후니까 괜찮아라는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덧붙였지만.

“할 수 없지.”

호른은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은 이곳에 남아 있어야 할 이유가 있었으니. 호른은 문서고의 책상에 수북이 쌓여 있는 양피지를 바라보았다.

“내가 그 할망구와 닮았다니 대체 무슨 망발이야. 대체 숙제는 왜 남보다 배로 내주냐고. 덕분에 성장기에 잠을 못자잖아, 잠을. 내가 못 크면 책임질 거야?”

호른은 천장을 올려다보며 화를 삭였다.

“진짜 끝까지 도움이 안 돼요, 도움이. 특히 아힘 이 인간은!”

진작 아힘이 로제인이 어떤 사람인지 호른에게 얘기해줬다면 이런 실수는 저지르지 않았다.

“그런 식으로 말하면 못쓴다. 그래도 아힘은 네 아버지잖아.”

툭, 누군가가 어깨를 두드렸다. 호른은 고개를 돌렸다. 테레사였다.

“황금변.”

“아씨! 차라리 새대가리라고 불러.”

테레사는 키득키득 웃으면서 옆에 앉았다. 테레사는 의자에 앉다가 머리를 움켜쥐었다.

“아아, 머리 아파.”

“머리는 괜찮아? 저번에 심하게 다쳤다면서.”

“몰라. 두통이 좀 있어.”

“그러게 누가 천방지축으로 뛰어다니래? 툭하면 싸움 걸더니 꼴좋네.”

“목걸이 잊어버렸어. 짜증나.”

테레사는 빈 목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목을 두 번이나 잘렸잖아. 두 군데 중 어디선가 잃어버렸겠지.”

호른은 여상한 말투로 말했다.

“아깝네. 나 그거 모으려고 힘들었는데.”

“그딴 건 대체 왜 모으는 거야.”

호른은 투덜거리면서 양피지 하나를 끌어왔다. 마정석이라니. 소름 돋는 목걸이였다.

“숙제나 도와줘. 이 미친 인간이 내일까지 마법 공식 하나를 풀어 오래. 마법은 감으로 하는 거 아냐? 공식이 왜 필요해, 응?”

“카라는 확실히 감성을 중시하긴 하지. 하지만 로제인은 감성보단 공식이니까. 답보다는 과정을 중시하고. 느리지만 확실한 성격이야. 그런 사람을 배신했다간 아주 호되게 당할 거야.”

테레사의 말에 호른은 움찔했다.

“그래서 숙제는 못 도와준다 이거야?”

“숙제는 스스로 하는 거야.”

호른은 쳇하고 혀를 찼다.

“게다가 너 시선을 많이 받고 있어. 로제인이 모르는 것 같아도, 너에 대한 관리만큼은 제대로 하고 있으니까.”

호른의 어깨가 살짝 떨렸다.

“우...날 감시한다는 소리잖아? 끔찍하네.”

“아힘의 존재를 알았을 때, 로제인이 화 많이 냈어.”

테레사가 중얼거렸다. 호른은 대체 왜 지금 그 이야기를 하냐며 투덜거렸지만, 테레사는 멈출 생각이 없어보였다.

“카라한테?”

“아, 카라한테도 그랬지만 주로 나한테 그랬지. 왜 알면서 말 안했냐고. 에시오나도 화를 냈고. 하여간 곳곳에서 쪼였다고, 나.”

“왜? 혹하나 생겨서? 아니면 행복한 총각 시절이 그대로 쫑나버려서? 뭐 상관없는 거 아냐? 마법사는 혈연에 연연하지 않잖아. 여자들한테는 약간 불리한 구조지만, 카라를 보니 그런 것 같지도 않던데.”

호른은 다시 한 번 마법공식에 시선을 두었다.

“로제인이 얼마나 황당했을 지 생각해봐. 갑자기 아들이 생겨버렸으니.”

“그래, 그래. 나 같아도 화났겠다.”

“카라는 대체 그게 뭐 어쨌는데? 하는 표정으로 쳐다봤고.”

“큭큭. 상상이 간다. 카라라면 그랬을 거야.”

호른은 양피지를 두고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오래된 문서인데 이러다가 침이 튀면 안되는데...호른은 걱정하면서도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테레사가 카라의 목소리를 흉내 냈다.

“아, 그래, 너한테 말 안 해서 미안하다. 그런데 내가 그러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야. 애 낳고 나서 몸조리하고 여차여차하다보니, 애 사춘기도 수습하고 그러다보니 시간이 지나버렸어. 뭐 다 지난 이야기고, 너랑은 별 상관없잖아.

응? 네가 애 아버지인데 어째서 상관없냐고? 너 지금 나한테 따지는 거냐? 나중에 따지자. 나 지금 피곤하다. 아니, 내가 잘못한 것도 없는 데 왜 나한테 화 내? 따지고 보면 네 잘못이야. 네가 그날 왜 갑자기 술은 마시자고 해서...“

테레사는 여기까지 말하고는 기침을 했다.

“우와, 카라 진짜 강심장이네. 정말 그렇게 말했단 말이야? 로제인은 어땠어?”

“볼만했어. 로제인이 카라의 뺨을 때렸으니까. 카라는 자신이 왜 맞는 지 전혀 모르는 표정이었어.”

“카라가 가만히 있지 않았을 텐데. 그 여자, 평소에도 ‘남이 나를 한 대 때리면 나는 열 대를 때려야 잠을 잘 수 있다.’고 말한다고.”

“그야...”

테레사는 어깨를 으쓱했다.

“평소라면 그랬을 텐데....”

테레사는 말끝을 흐렸다. 카라도 로제인이 그렇게 화를 내는 건 처음 봤기에 더 말하지 못했다. 카라는 그저, 테레사 이 녀석 입 조심하라고 했는데, 라고 두어 번 중얼거렸을 뿐이었다. 덕분에 그 중얼거림을 로제인이 들었고, 테레사는 로제인의 분노를 한 몸에 받아야했다.

“하여간 그 때문일 거야. 로제인이 너한테 신경 쓰는 건.”

“아, 그러세요.”

그런 신경이라면 안 써주는 게 고마운데. 아니, 그렇기 때문에 나은 걸까나. 호른은 가늠해보았다. 쉽게 판단이 서지 않았다.

“그런데 그 양반 왜 그렇게 혈연에 집착하는 거야?”

“형제들 덕분에 이 자리에 올라서가 아닐까.”

호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로제인에게 형제가 많은 건 알고 있었다. 마법사도 아닌 사람들이 무시로 드나들었다. 하지만 그들 중 로제인을 닮은 이는 아무도 없었다.

“아니, 그러면 형제들에게 신경 써야지. 왜 한 다리 건너 뛴 나한테 관심을 가지는데? 혹시 그 양반 그런 취향이야?”

“그 인간 취향은 지극히 정상이야. 정상 중에 정상.”

“카라를 고른 건 정상이라고 보기 어려운데. 지난 일이긴 하지만.”

테레사는 어깨를 으쓱했다. 테레사는 호른을 슬쩍 바라보았다. 호른은 테레사의 시선에 담긴 의미를 알고는 품 속에 손을 넣었다.

“저, 테레사. 주긴 주겠는데 조심해.”

호른은 테레사에게 약병을 건네주었다.

“이런 약은 몸에만 영향을 미치는 게 아니야. 뇌에도 영향을 미쳐. 과용은 금물이야.”

“아아, 걱정 마. 그냥 두통약 건네주는 건데 호들갑은.”

“그냥 두통약이 아니니까 하는 말이지.”

용의 숨결. 즉 용인의 피를 희석시킨 것을 다른 첨가제를 넣어 가공한 약이었다. 즉, 과용하면 죽을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격일로 먹도록 해. 독이 몸에 쌓이지 않도록.”

"그래.“

테레사는 가뿐하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럼 숙제 잘해라, 황금변.”

“아이씨, 차라리 새대가리라고 부르라니까!”

테레사는 낄낄거리면서 사라졌다. 호른은 테레사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마법사. 테레사의 나이는 현후보다 조금 아래라고 했다. 못 잡아도 사십 살은 될 것이다. 탑에 속한 자들의 나이는 보통 인간의 나이와 달라, 숫자로 헤아리는 게 무의미했다. 숫자로 나이를 세는 것은 성인이 되기 전 뿐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보통 인간들보다 죽음이 덜 두렵거나, 아픔을 덜 느끼는 것은 아니었다. 보통 인간보다 수명이 길다고 해서 느끼는 삶의 길이 또한 그렇다고는 할 수 없었으니.

마탑의 전령, 마전사들은 대체로 과격한 인생을 보낸다고 알고 있었다. 테레사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곳 저곳 싸움에 끼지 못해 안달하고, 그때 입은 부상으로 힘들어하면서 약을 찾는다. 그러다가 어느 날, 싸움 때문에 혹은 약물과용으로 세상을 떠난다. 그게 그네들의 인생이었다.

사제의 신성력은 마법사들의 몸에 받지 않았다. 연금술사도 약을 갖고 있지만, 진통제를 쓰려면 엄격한 심사를 받아야했다. 결국 전령들은 엉뚱한 곳에서 약을 구했다.

호른은 연금술사 부모를 둔 친구 덕에 몇 가지 기술을 익혀두었다. 그것이 테레사의 마음을 끌었다. 약이 아닌 다른 것을 줄 수가 없다는 것, 그게 가끔은 무력감을 느끼게 했다.

테레사의 가벼운 걸음걸이는 호른에게 오히려 무겁게 느껴졌다. 왜 저렇게 생을 가벼이 여기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호른은 다시 양피지에 시선을 두었다.







시계가 없어도 시간은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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