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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계의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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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물감
작품등록일 :
2012.11.26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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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24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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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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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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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1.30 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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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9.사북-6




붕어 없는 붕어빵, 시계 없는 시계의 아이







DUMMY

날이 밝았다. 팔라스는 간단한 짐을 챙겨 방에서 나왔다. 새벽 어스름이 채 걷히지 않아 복도는 푸르게 젖어 있었다. 팔라스는 애검을 찾으러 마법사들의 숙소로 찾아갔다. 마침, 마법사들도 짐을 챙기고 나와 있었다.

"왔군."

현후가 말했다. 뒤에 선 소년이 고개를 숙였다. 현후는 팔라스에게 검집째 검을 던졌다. 팔라스는 한 손으로 검을 낚아챘다.

팔라스는 검을 뽑아보았다. 은색으로 빛나야 할 검은 검녹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독이라도 바른 건가?"

"그럴 리가. 괜히 그딴 거 발랐다가, 어린 애가 손가락이라도 베면 어쩌려고."

"어린애?"

말본새가 좋지 않았다. 팔라스는 어이없는 눈으로 현후를 바라보았다.

"다룰 줄이나 알아?"

현후는 무심하게 물었다. 팔라스는 검을 빼들었다. 휘리릭. 공기를 가르고 거침없이 롱소드가 현후에게로 파고 들었다. 현후는 손가락으로 검날을 잡았다.

"위험하잖아."

현후의 손 주위에는 바람이 돌고 있었다. 검날을 잡은 것은 현후의 손이 아니었다. 현후의 손 주위에 떠도는 바람이었다.

"나 정도도 어찌 못하면서, 용인과는 어찌 싸울 생각을 했을까."

현후의 말에, 팔라스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나는 여태껏 변방을 돌면서 용인들을 베어왔어. 마법사, 당신의 말은 부당해."

"변방이라. 변방을 떠도는 자유기사들이 대부분 별 볼일 없지. 그것처럼 용인들도 마찬가지야. 떠도는 용인 몇 베었다고 해서 자랑하지 마. 내가 벤 용인들 수가 당신보다 많을 걸?"

"당신이 누군데!"

"첫날에 소개받았잖아. 카라의 두 번째 제자, 현후. 칭호는 검은 비다."

"너무 거창한 칭호네. 어울리지 않아."

팔라스의 말에 현후는 얼굴을 찌푸렸다.

"지금 이야기에 맞는 이야기인가? 내게 칭호를 준건 카라 할망구이니, 그녀에게 따져."

"스승님보고 할망구라니, 제정신이에요?!"

옆에서 로그가 발끈했다. 엉뚱한 데서 불똥이 튀었다.

"검은 비라니. 당신이 세상의 재앙이라도 된다는 거야? 검은 비가 내리는 땅은 밟기나 해봤어?"

"정말 누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할망구라는 말을 입에 담아요? 저번에 스승님을 음해한 것도 모자라서 이제는 타인 앞에서 욕보이다니."

정신이 없었다. 양쪽에서 두 사람이 다다닥 말을 쏘아 붙여대니, 말을 알아듣기도 힘들었다. 현후는 잡았던 검날을 쳐냈다. 팔라스는 뒤로 물러섰다.

"대체 뭘로 오제를 잡을 생각을 했는지, 궁금하네."

팔라스는 이마의 가운데를 두드렸다.

"이곳. 이곳을 치면 대부분 용인들은 행동이 느려지지. 그래서..."

"경험으로 안 건가."

현후는 팔라스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그래. 틀린 말은 아니야. 그곳도 용문이니. 내가 용인을 죽일 때 주로 공격하는 곳이기도 하고. 용인들에게는 약한 부위지. 하지만....그만큼 방어도 강해."

현후는 씨익 웃었다.

"가까이 접근할 수 있겠어? 오제의 피어를 듣고도?"

"어느 정도 피어에는 내성이 있어. 내가 무슨 장식으로 검을 들고 다니는지 알아?"

"이런 바보 같은 기사를 봤나. 오제의 피어는 차원이 다르다. 단지 땅 몇 번 진동시키는 수준이 아니야. 소리만으로 대지를 가르고, 사람의 머리를 터트릴 정도야. 순발력과 근력 등등, 무엇이든 인간보다 앞서. 수천 수백의 용인을 죽이고 그 자리에 오른자야. 네가 여태껏 다뤄본 용인들은 그 앞에서는 피라미 수준도 못돼. 적을 만만하게 보다니. 제 정신이야?"

팔라스는 발끈하는 표정을 지었다가 웃었다.

'이 사람들, 날 기사로 보네.'

현후도, 로그도 팔라스를 여기사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저 기사라고 부를 뿐이었다.

"기사님. 현후 누님의 말을 고깝게 듣지 마십시오. 그래도 용인 사냥꾼이라는 별명이 붙은 사람이니까요."

"흥. 마법사잖아. 마법 같은 사술을 부려 잡은 건데, 그런 별칭이 자랑스러워?" 팔라스는 팔짱을 꼈다.

"사술? 이 기사 양반, 말하는 본새 좀 보라지. 같은 탑의 일원인 주제에 사술이라니."

현후는 툭툭 말을 던졌다. 팔라스는 푸훗 웃었다.

"당신도 결국은 살인자면서."

팔라스의 웃음이 일그러졌지만, 팔라스는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기에. 현후는 팔라스의 웃음을 보고 불편한 표정을 지었지만 가타부타 말하지 않았다. 대신, 걸음을 옮겼다.

"한 달 정도 걸리는 거리라고 하더군. 로바크가."

"그래."

"하지만 치하크에 가서 용인을 잡아타면 좀 속도가 빨라질 거야."

팔라스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체 이 여자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용인들은 하늘을 날아. 가까운 거리는 새처럼 날지만, 먼 거리는 좀 다른 방식으로 날아. 그 속도로 날면 그곳에 도착할 때까지 보름 남짓한 시간이 걸릴 거야. 리엔이 게으름만 안 핀다면 더 빠를 수도 있고. 덕분에 시간을 버는 거지."

예전에 얼핏 치하크에 대해 들은 기억이 났다. 용인 마법사가 다스리는 영지라고 했다.

“설마, 당신이 말한 리엔이 그 리엔?”

“그 리엔이다. 카라의 세 번째 제자지.”

“용인과 협력한다는...”

“무슨 소리야. 용인을 ‘교화’한 것이지.”

팔라스는 현후의 뻔뻔함에 할 말을 잊었다. 하기야 리엔이 마법사가 되었을 무렵, 풍문에 의하면 성탑에서 일대 토론이 벌어졌다고 한다. 이즈라펠이 점잖게 한 마디하는 바람에 토론이 정리되었다고 한다. 그때 이즈라펠이 한 말이 ‘용인의 교화’였다.

"그럼 치하크로 가는 건가? 거기까지 거리가 얼마나 되지?"

"여기서 샨까지 가는 거리의 반 정도밖에 되지 않아. 문제는 산맥 속에 있다는 거지. 그래도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어. 일주일 정도 걸릴 테니까."

"다행이네."

팔라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현후를 따라나섰다.

"그런데 인사 안하고 떠나도 돼?"

현후의 말에 팔라스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 편지를 남겼으니까. 나중에 밀리아가 전달해 줄테니까."

"설마, 제이드가 기사님 일을 모르는 건 아니겠죠?"

로그가 따라붙으며 물었다. 팔라스는 대답대신 쓴웃음을 지었다.

"뭘 그런 걸 묻고 그러냐."

현후가 딱콩, 로그의 이마에 손가락을 튕겼다.

"아씨. 아프잖아요."

로그는 이마를 문질렀다. 현후는 비죽 웃었다. 셋은 항구를 향해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다.



밀리아는 눈 앞의 여자를 바라보았다. 아주 오래전의 기억이 여자의 얼굴에 스쳐지나갔다.

'어때, 나한테 오는 게. 저 거지같은 녀석보다 내가 더 낫다고. 원한다면 영지도 내리겠어. 미동들도 붙여주지.'

'왜 싫은가? 더 어린 애들을 원해? 꼭 마법사들철머 구는 군. 몇 살 정도의 아이를 원하는 거야?‘

'필요 없습니다.'

밀리아는 그날, 눈 앞의 여자에게 사브르를 겨누었다.

'이 정도면 충분한 거리입니다. 더 다가오지 마십시오. 제게는 제이드 한 사람만 주군입니다.'

'웃기지도 않아. 그 따위 애송이를 섬기다니.'

에이린은 조소하며 떠났다.

'나를 거절한 건 당신의 실수야. 난 거절당하는 데 익숙하지 않거든.'

파네스가 한바탕 휘젓고 간 뒤였다. 밀리아는 지쳐 있었다. 밀리아는 제이드에게 말했다. 차라리 자신이 에이린에게 가는 게 좋지 않겠느냐고. 제이드는 렌의 다친 상처를 치료하고 있었다. 제이드는 고개를 들어 생각에 잠겼다.

'하긴. 저와 함께 있는 게 너무 힘드시겠죠. 이해합니다. 떠나셔도 원망은 하지 않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당신을 포기하지 못합니다. 언젠가는 돌아오실 거라고 기약없는 약속이라도 하고 떠나주십시오.'

그 말을 듣고, 밀리아는 떠나겠다는 마음을 접었다.

'언젠가.'

밀리아는 제이드의 앞에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당신을 무탑의 주인으로 만들겠습니다.'

제이드는 웃었다.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지금은 당신과 함께 있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그때가 되면, 단지 한 가지 청만 드리겠습니다.'

'무엇입니까?'

제이드는 밀리아의 말을 듣고 웃었다. 제이드는 그 자리에서 그러겠노라며 약속했다.

다음날 에이린이 보낸 자들이 찾아왔다. 밀리아는 그들의 목을 베어 에이린이 다니는 길에 뿌렸다.

"그 후로 오랜만이지요?"

에이린은 싱긋 웃었다.

"그때 만약 당신이 제게 왔다면, 지금 제이드의 자리에 제가 있었을까요?"

에이린의 말에, 밀리아는 피식 웃었다.

"그런 일은 없었을 겁니다.“

”왜죠?“

”당신은 내게 있어 제이드만큼 절실한 사람이 아니니까요.“

"어머. 푸하하하!"

에이린은 웃음을 터트렸다.

"정말 솔직하기도 해라."

에이린은 눈꼬리에 맺힌 눈물을 털어내며 밀리아를 바라보았다.

"제이드의 어디가 좋아서 그런 선택을 했는지, 한 가지만 물어보고 싶은데요."

"제이드는 저를 이용하고 버릴 사람이 아니란 걸 알아서겠지요. 그리고 그 질문은 제가 할 것인데요. 이곳에 왜 오셨습니까?"

제이드가 중상을 입고 쓰러졌다는 건 에이린도 알고 있을 터였다. 그런 제이드를 선뜻 선택하기란 어려웠을 것이다. 기사들의 세계란 약자는 철저히 밟고 올라가는 것이었으니까.

"음. 일단 보내준 기사가 너무 귀여웠어요."

멜. 밀리아는 속으로 한탄을 흘렸다.

"밤새 내내 데리고 놀다가 보내주려고 했는데...그만 영지에서 소식이 들려오는 바람에 새벽에 내보냈지 뭐예요. 좀더 붙들려고 했는데.“

그날 멜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뭐 저런 여자가 있느냐고, 밀리아에게 울먹였다. 제이드도 밀리아도 웃음을 참지 못했지만, 멜은 생애 처음으로 맛보는 공포였다며 진지했다. 도대체 놔주질 않더라며. 협상을 하러 갔는데 왜 침대로 장소이동을 해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도대체 끝을 모르는 여자더라 등등. 멜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설마 제이드도 당한 건 아니겠죠?'

'제발. 나 지금 아픈 몸이야. 그만 웃기도록 해. 배가 댕기잖아.'

'제이드가 당할 리가 없잖아요. 침대로 이끈다고 거기까지 끌려간 멜이 잘못이죠. 힘들면 중간에 나오면 되지 여자가 하란대로 끝까지 해주다니. 멜, 혹시 마당쇠 기질 있어요?'

'마당쇠가 뭔데요?'

밀리아도, 제이드도 배를 움켜잡고 웃어댔다. 멜은 그 모습을 보고 한동안 뾰로통해했다.

"밀리아. 제 영지에 말이죠. 글쎄, 매가 한 마리 날아들었지 뭐예요?"

에이린은 붉은 색으로 색칠한 손톱을 매만졌다.

"그 매가 어찌나 큰지, 제가 기르던 병아리를 낚아채려고 했지 뭡니까. 다행히 병아리는 무사하지만 많이 놀랬나보더군요."

"심려 크셨겠습니다."

며칠 전, 에이린의 양자가 피습을 당할 뻔 했다. 습격을 시도한 자들은 곧바로 모습을 감춰 찾을 수가 없었다.

"물론 그것 때문에 이곳으로 온 건 아니랍니다. 제 직감이 속삭였거든요. 이번에 제이드의 편에 가는 게 좋다고. 사실 전 도박을 좋아하는 성격이라. 이럴 때 가야 얻는 게 클 것 같더군요."

"그렇군요."

밀리아는 만면에 얼굴을 띠고 고개를 끄덕였다. 에이린은 부채질을 했다.

"그런데 파네스는....아직 새가 안 떴나요?"

"전 잘 모르겠는걸요."

"새가 아닌, 들짐승을 보내실 건가요?"

"글쎄요."

밀리아는 그저 웃었다. 에이린은 삐친듯, 부채질 하는 속도가 빨라졌다.

"저라면 뱀을 보낼 것 같은데요."

밀리아가 나직이 흘리듯 말했다. 에이린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가 가늘어졌다. 에이린은 눈웃음을 쳤다.

"재미있겠군요. 아우가 얼마나 놀라려는지."

"에이린 님의 영지에서 일어난 일에는 심심한 위로를 표합니다. 자제분의 치료비명목으로 상단의 보호권을 드리겠습니다. 약소하나마 받아주셨으면 합니다."

"호호호. 뭐 그런 것까지야. 저번에 보내주신 귀여운 기사분 한 번 더 보내주시면 정말 감사할 것 같은 데요."

"멜은 그날 이후로 여자만 보면 무서워해요. 제발 자제를 부탁드려요."

밀리아의 너스레에 에이린은 폭소했다.

"오호호호!"

에이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참, 그 여자, 아직 안 떠났지요?"

앞뒤 자르고 하는 말이라, 밀리아는 한참 생각해야했다. 에이린은 웃으며 입을 열었다.

"팔라스. 그 여자는 어떻게 제이드의 마음을 사로잡은 거죠?"

밀리아의 웃음이 멈췄다. 밀리아는 굳은 표정으로 에이린을 응시했다. 에이린의 눈에는 경멸이나 조롱은 보이지 않았다.

"여자만의 비법...이겠죠. 아마."

"비법이라, 흠. 하긴 뭐 무슨 상관이겠어요."

에이린은 몸을 돌렸다.

"어차피 곧 죽을 여자인데."

에이린은 말을 흘리고는 응접실을 나섰다. 밀리아는 털썩 주저앉았다.








시계가 없어도 시간은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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