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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물감 님의 서재입니다.

시계의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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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물감
작품등록일 :
2012.11.26 22:54
최근연재일 :
2013.03.24 0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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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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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0,623

작성
13.01.24 2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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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가리사니-8




붕어 없는 붕어빵, 시계 없는 시계의 아이







DUMMY

밤은 어두웠다. 달이 떴지만, 배가 막 차오르기 시작한 초승달이라 빛은 미약하기만 했다.

현후는 품속의 야명주를 꺼내들었다. 야명주는 푸르스름한 빛을 주변에 뿌렸다. 시체들의 검은 얼굴이 유령처럼 희미하게 떠올랐다.

타 버린 시체들은 조용했다. 현후가 알기로 이들 중에는 갓 기사가 되어 꿈에 부풀던 청년이 있었다. 전장에 나서면 제일 먼저 앞서 싸우던 기사도 있었다. 구빈원에서 순결을 짓밟힌 여자들을 받아다 뒷골목에 팔던 자도 있었고, 그 돈으로 딸의 새 옷을 사주던 아비도 있었다.

모두가 나란히 누워 있었다.

로그는 묵묵히 그들의 신원을 확인하고, 살점을 떼어내 병에 담고 꼬리표를 달았다.

“좀 춥네요.”

로그가 문득 말했다. 현후는 시체 보관소를 둘러보았다.

“그래, 그래야 보관이 쉽거든.”

“그럴까요.”

로그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현후는 시체들을 짚어가다가 끝에 이르렀다. 체구가 작은 것으로 보아, 십대 중반에서 후반으로 보였다. 그 것도 확실치는 않았다. 일반 나이와 기사의 나이는 또 다르니까. 어찌되었건 머리는 없었다. 고슴도치처럼 비죽비죽 솟아난 비늘들만 어깨에 붙어 있었다.

“여자의 시체가 없어.”

현후가 말했다.

“네?”

로그는 작업을 멈추고 다가왔다.

“없어요? 분명....”

“그래, 팔라스가 죽였지. 그 여자가 죽은 건 나도 확인했고.”

현후는 시선을 날카롭게 빛냈다.

“한 명 도망쳤지?"

"라이안, 그 기사는 끝끝내 찾지 못했어요.”

"....그래서였던가.“

현후는 목이 없는 시신을 내려다보았다.

“교활한 놈.”

현후는 피식 웃었다.

“끝내 숨긴 거로군. 우리에게 보여주는 척 하고는.”

현후는 생각을 헤아려보았다. 용인과 인간의 융합이 어느 정도까지 이루어진 걸까. 지안과 이리는 실험용이었을 가능성이 컸다. 제이드를 한 번 찔러보는 척 한 것이다. 그들을 어떤 말로 구슬렸을지는 모르겠으나, 제이드와의 싸움을 통해 그들의 실력을 측정한 것이다. 라이안은 기록자로서 함께 딸려 보낸 것이고.

지안은 비록 응용력이 뛰어났고 피어도 어느 정도 쓰는 모양이었으나, 무언가 결함이 있는 개체였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버리고 갈 리 없었다.

용독(龍毒). 코렐이 치하크에서 콘스탄트와 론에게 실험했다가 실패로 끝난 이유가 바로 이 부작용 때문이었다. 용린은 인간의 것이 아니다. 인간에게 이식했다가는 온 몸에 독이 퍼져 죽어간다. 죽어가면서, 자신의 신체 조직을 마구 뿌리게 되는데 거기서 감염이 일어난다.

“죽지 않는 병”이라고 했으나, 실상 “반드시 죽는 병”이었다. 그들 모두, 일주일간 생존하다가 용독으로 몸부림치다가 죽는다. 그 일주일간이 문제였다. 그 일주일간, 변형이 왕왕 일어났다.

“우리가 안가에서 본 그 것들이 바로 감염된 개체들이지. 보통 식인을 하는데 특이하게도 이번에는 서로 융합을 했단 말이야.”

아마도 그러한 현상의 원인은 그 여자, 이리일 것이다. 분명히 라이안은 여자가 “알”을 뿌렸다고 말했다. 여자가 뿌린 “알”이라는 것. 어쩌면 “용독”의 부산물이 아니라 성공작일지도. 그 생각에 미치자 현후의 얼굴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그것 외에도 현후의 신경을 거스르는 점이 또 있었다. 이리는 머리에 있는 용문으로 주변의 마나를 빨아들여서 기로 전환시켜 자신의 동료에게 전달했다. 스승에게서 받은 기가 아닌 한, 타인의 기를 받아들이면 괴사해야 정상이었다. 인간 뿐 아니라, 용인들도 각기 타고난 기의 성향이 있었다. 그 성향을 거스르고 아무의 기나 받으면 그들도 죽음을 면치 못했다.

“기분 더럽군. 여자의 시신은 반드시 회수했어야 했는데. 탈출하는데 급급해서 잊었다.”

“현후 누님. 지금이라도 여기 시체보관소를 출입한 사람들을 확인해볼까요?”

로그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현후는 고개를 저었다.

“기사의 출입증까지 가진 놈이야. 이미 빠져나갔을 거야.”

라이안. 현후는 그의 얼굴을 떠올려보았다. 커다란 체구에 서글서글한 눈매를 가진 남자였다.

“다음번에 만나면 그 자를 갈가리 찢어버리겠어.”

현후의 말에 로그는 움찔했다. 현후의 눈은 정말 살인자의 눈이었다. 로그는 다시 시체들에게로 돌아갔다.

“저, 시료들을 하크리에 담아 보낼까요?”

“아니.”

현후는 고개를 저었다.

“그랬다가는 마탑에 알려진다. 이건 스승님께 직접 보내야 하는 것들이야.”

“네.”

현후는 고개를 돌렸다.



용인의 땅. 키제의 노성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이 놈들은 확실한 자들이라고 했잖은가!”

실력 좋은 암살자들이니 보내면 거의 죽은 거나 다름없다고, 눈앞의 저 용인은 눈웃음을 치며 말했었다.

“제이드가 운이 꽤 좋은 모양입니다.”

오셀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네 놈!"

키제는 쾅하고 탁자를 두드렸다. 쩌억하는 소리와 함께 탁자 전체에 금이가더니, 우수수 부서져 내렸다.

”....이제 어떻게 할 거냐. 기사의 방식으로 결투를 하라니. 대체 우리들의 왕께서는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신 거냐. 그리고 네 놈은, 어떻게 책임 질 거냐?“

”제가 책임질 일이 있었습니까? 키제르께서 주체가 되어 하신 일 아닙니까?“

오셀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키제를 바라보았다. 키제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2 모타를 훌쩍 넘는 키제의 모습은 위압감이 있었지만, 오셀은 그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왕께서 너를 예뻐하신다 하여 네 주제를 모르는 구나. 네가 말하지 않았다면 나는 수천의 용인들을 이끌고 아레스로 쳐들어갔을 것이야!”

“그리고 가다가 마르실의 피어를 들으셨을 겁니다.”

“뭐라고!”

키제는 성큼 앞으로 걸어왔다. 키제는 허리를 숙여 오셀에게 시뻘겋게 달아오른 얼굴을 들이밀었다.

“키제르님.”

오셀은 키제의 이름을 부르며 웃었다.

“당시의 저로서는 최선의 해결책을 내놓은 것입니다. 마벨의 죽음에는 피로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그 피는 합당한 것이어야 합니다. 농노나 범죄자의 것이 아닌, 그만한 신분의 자의 피로 치러야 하지요.

그러나, 아레스까지 가신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습니다. 다른 용인들은 인간에게 용인이 죽으면 그저 약해서 그렇게 된 거라고 생각합니다.“

”마벨은 약하지 않았다!“

”허나, 다른 용인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지요. 그러니 용인들은 키제르님의 출병에 호응하지 않을 겁니다. 용인들은 혈족의 복수는 혈족이 해야지 타인이 해주는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키제르께서는 마르실 님의 분노만 사게 되었겠지요. 용인들을 이끌고 나가면, 마르실 님께서는 자신의 권위에 도전한다고 생각하시고 결투를 청하실 겁니다.

게다가 기사들은 또한 무탑에 이를 수록 힘이 강해집니다. 탑안의 인간들은 굉장히 강하답니다. 탑에서 멀어질 수록 그 힘이 약해지고요. 그들의 허점을 노리고 인간 암살자들을 보냈지만 안타깝게도 실패했습니다만. 아직 기회는 있습니다.“

키제는 콧김을 불었다. 뜨겁고 축축한 콧김이 불쾌하게 와 닿았다.

“팔라스, 그 년을 죽여 봐야 비웃음밖에 더 당하느냐! 그 주인을 죽여야지.”

“용인 카겔을 죽인 여자입니다.”

“카겔은 약해서 죽은 거야!"

"그렇다면 마벨은요?”

“마벨은 운이 나빴다.”

“그렇다면 증명하십시오.”

“뭐라고?”

키제는 오셀을 노려보았다. 오셀은 여전히 웃는 얼굴이었다.

“마벨은 정말 강한 상대에게 죽은 겁니다. 키제님이 나설 정도로 강한 상대에게. 그리고 키제님은 그 강한 상대를 한 달 뒤에 열릴 대결에서 해치우실 겁니다. 저 오셀은 그리 믿습니다.”

“날 놀리는 거냐.”

말과 달리, 키제의 얼굴에서 붉은 기가 가셔졌다.

“감히 누구 안전이라고 그러겠습니까.”

오셀은 허리를 숙였다.

“다만, 제가 알려드릴 것은 그 계집이 제이드의 여자라는 것입니다. 용인 식으로 말하자면 ‘애첩’정도가 되겠군요. 그 계집을 무참히 능욕하고 베어버린다면, 제이드도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감히 키제님께 결투를 신청할 것이고, 그 역시 키제님의 식사거리가 되겠지요.”

“오호라.”

키제의 얼굴에 슬며시 웃음이 떠올랐다. 키제는 허리를 폈다.

“네 놈, 네놈. 이 아첨꾼 놈.”

키제는 오셀을 향해 가리키며 웃었다.

“왕께서 왜 너를 총애하시는지 알겠다.”

“과찬의 말씀이십니다.”

오셀은 허리를 과장되게 숙였다.

“결투에 응하겠다. 하하하!”

키제가 웃음을 터트렸다. 오셀은 허리를 굽힌 채 키제의 홀에서 물러섰다. 홀에서 물러나기 직전, 오셀은 슬며시 웃었다. 비릿한 웃음이었다.







시계가 없어도 시간은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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