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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트럭

참피 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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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트럭
작품등록일 :
2022.10.26 23:17
최근연재일 :
2022.11.17 23:29
연재수 :
15 회
조회수 :
505
추천수 :
25
글자수 :
80,287

작성
22.11.11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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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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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1쪽

010 모르겠어요

DUMMY

010 모르겠어요



헌터는 생각했다.


지금 여기서 할 말은 정해져 있다고.


“모른다.”


그러자 원탁의 생존자들은 탄성이 흘러나온다. 하아아 거리는 한숨과 함께. 그 한숨이 안도의 한숨처럼 들리는 것은 헌터의 착각일까.


“GG.”

“역시.”

“이번 신입도 신앙이 부족하군.”

“사실 모두 크게 기대는 없었지만 아쉽구먼.”


다만, 고깔모자를 쓴 마법사가 침착하게 설명했다.


“혹시 시공 오염이 걱정이라면 자세한 방법을 묻는 게 아니야. 헌터씨. 당신의 원래 세상에서 비슷한 실마리라도 있다면···”


헌터는 고개를 저었다.


“그걸 고려하고 말하는 거다. 내가 지금 할 말은 모른다뿐이다. 시공 오염의 광화를 생각하기 이전의 문제다. 내 고향에서도 들어본 적 없는 개념이니까.”


헌터는 답을 내렸다.


“안타깝게 됐군. 나로서는 저 용을 무찌를 방법을 알고 있지 않다.”


원탁의 생존자들은 침묵에 잠겼다.


마법사는 고깔모자를 만지작거렸고. 성기사는 방패를 쓰다듬었으며. 검잡이는 올곧은 자세로 정면을 응시한다. 철제 강화복의 노인은 초로한 표정으로 천장을 바라볼 뿐이고. 아키 홀로 싱글벙글 웃었다.


적막만이 원탁의 생존자들에게 깃든다.


더 할 말이 없으니 서로 눈치만 살피는 상황에서 아키가 나섰다.


“자 그럼 이쯤에서···”


아키는 원탁 중앙의 버튼을 눌렀다.


“무저갱 생존자 회의 3만 9천 번째 회기를 종료하기로 하겠다.”


아키가 버튼을 누르자 파타모르가나 함교의 투명한 창은 어둡게 변한다. 눈으로 보일 만큼 강렬했던 지하의 마그마가 시야에서 가려졌고. 각종 조종석과 같은 기자재들은 허공으로 사라져 원상 복귀된다.


처음 헌터가 이곳에 왔을 때처럼 지하 신전 같은 텅 빈 공동으로 돌아갔다.


아키는 싱글벙글 웃으며 외친다.


“그럼 이제 먹고 마시자!”


고깔모자가 외친다.


“마시자!”


철제 강화복을 입은 노인이 외친다.


“마시게!”


방패를 멘 성기사도 외치고.


“신께 건배를!”


마지막으로 검잡이가 헌터에게 나지막히 말한다.


“마시자 헌터. 동료가 된 걸 축하한다.”


검잡이의 견고히 단련된 팔뚝으로 건네받은 술잔.


헌터는 그 축하주를 받아들였다.


“나도 반갑다 무저갱의 생존자들.”


그렇게 헌터는 그들의 동료로서 첫 축하주를 들이켰다.


첫 잔의 풍취는 극히 좋았다.


다만 그 술자리가 일주일 동안 이어지는 시작주였다는 사실을 헌터는 알지 못했다.



일주일.



무저갱의 시간기준으로 약 일주일 동안 무저갱의 생존자들은 먹고 마시는 데 여념이 없었다.


취기가 오른 아키는 시뻘게진 얼굴로 입에 처박듯이 술을 흡입한다. 입고 있던 가운에 술이 반쯤 뿜어지며 묻어나와도 아랑곳없이 지껄인다.


“내가 뭐라 그랬어. 그 용새끼 못 잡는다니까~”


-방법이 없다니까~ 있다니까~ 없다니까~


그에 지지 많게 옆자리에 앉은 고깔모자의 마법사도 술을 벌컥벌컥 마시며 아양을 떠는 목소리로 동조한다.


“아키야. 시험에 통과한 신입이 얼마나 오랜만인데. 수천 회기 동안 매번 술잔치만 하다가··· 딸꾹. 신입이 오니까 얼마나 좋아. 분위기도 살고”


고깔모자 마법사는 취기가 올라 더운지 앞섬이 풀어 헤쳐져 풍만한 몸매가 훤히 드러났지만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성기사 역시나 갑주를 벗고 파자마 차림의 평상복으로 걸즈토크에 깔깔대며 웃고 떠들었다. 파자마 잠옷 차림에 방패는 여전히 메고 있다는 어색함도 이제는 대수롭지 않다.


“신이 내려주신 기회는 언제나 소중하지. 마치 이 피처럼 붉은 술처럼. 그런데 술잔이 비어? 안되지 안돼.”


-술이 들어간다. 술이 들어가.


깔깔대는 소리.


여성 셋이서 깔깔대는 소리와 다르게 남성 셋은 비교적 조용했다. 하지만 술의 대작은 멈추질 않았다.


“자네 세계에서는 어떨지 몰라도 말이야. 이 무저갱에서는 술맛이 일품이란 말이지. 술이란 결국 증류와 발효아니겠는가.”


쪼르륵, 바닥날 리 없는 술탱크에서 잔에 따라져 가득 차는 술.


“온갖 세상에서 온 짬통 같은 이 무저갱만큼 끝내주는 발효가 어디 있겠는가. 백 년마다 깨어나서 먹는 술이지만 매번 감탄하고 먹게 되는 걸게. 마시게.”


입고 있던 철제 강화복은 그대로지만 고주망태 할아범이 된 수다스러운 노인네가 된 메카닉이 헌터에게 연이어 술을 건넨다.


헌터는 묵묵히 그 술을 질릴 때까지 들이켰다.


맞은편의 검잡이도 헌터와 비슷했다.


“알코올분해장치를 써서 해독하며 먹을 만큼 가치가 있지.”


그들은 정상적인 사람이 마실 허용량을 아득히 넘었다. 그것은 파타모르가나 함선의 메디컬 센터 기능인 해독장치를 통한 알코올 분해를 이용한 것이다.


헌터가 말했다.


“우리 세상에서도 비슷하게 만찬을 즐기는 방법이 있지. 이렇게 고아한 편한 방법은 아니지만···”


위장이 터지도록 먹은 다음. 아마 새의 깃털로 위장에서 음식을 게워내 토한 다음 다시 먹는 바보 같은 행위였던가.


그에 비하면 이는 참으로 간편하다. 그저 구슬처럼 생긴 의료기기 위에 손바닥만 올리고 있으면 알아서 해독되니까.


그러니 숙취나 뒷걱정 없이 이렇게 맘껏 퍼마시는 것이다.


헌터는 취기가 단번에 사라지자 순간 냉정한 사냥꾼의 심정으로 어지러운 번뇌가 떠오른다.


‘압도적인 강자들이다. 본래 내 힘을 발휘하고도 이길 수 있을지 짐작도 가지 않는 그런 초인들···.’


헌터 앞의 남녀노소 5명.


제각각 다른 분야, 다른 생김새, 다른 세상, 다른 이세계 사람들이지만 그 풍기는 강함의 기도는 아찔할 만큼 강했다. 시공 오염의 척도를 광기의 빛으로 확인할 필요도 없다.


헌터 자신이 생명을 걸고서도 이길 수 있으리라 자신할 수 없는 그런 초인들.


그 초인들의 말로가 이런 무한하게 이어지는 술잔치라니···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고. 무려 3만 9천 회기.


한 회기가 수십 년, 수백 년이라고 하니 이들은 사실상···


‘수만 년··· 수십만 년을 버텨온 정신력을 지닌 초인들···’


그런 초인들마저도 포기한 채로 술잔치에 매진하는 곳이 이 무저갱이란 말인가.


물론 설명을 듣자니 3만 9천 회기의 대다수는 짧게 하루나 이틀만 깨어났기에 이들이 무저갱에서 보낸 순수한 시간은 한 명당 길면 십여 년 짧으면 몇 년에 불과했다.


그 긴 세월 동안 파타모르가나 호의 시공간동결 콜드 슬립 장치에 들어가 시간을 정지한 채 다음 회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것을 수만 번 반복한다. 이 무저갱에서 드래곤을 무찌를 방법을 기다리면서···


‘그런 초인적인 정신력으로도, 술이 아니면 버틸 수 없다···’


헌터는 잠시 화장실에 간다고 말하고 자리를 벗어났다.


심연잠수선 파타모르가나.


총 7개의 분리 함선이 도킹된 무저갱 생존자들의 정식기지.


현재 위치를 특정 당하지 않기 위해 지각 속 마그마가 출렁이는 지저세계를 항해하듯 떠도는 함선.


헌터는 이 파타모르가나 함이 유령선처럼 느껴졌다.


‘그토록 오래 돌아다녔다면 유령이 아닌 원령이나 마찬가지겠지···’


사람이 견디기 힘든 억겁의 세월이다. 제아무리 시공간을 동결했다고 해도 말이다.


하지만 헌터는 알고 있다. 그런데도 저들은 분명히 다음 회기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그렇지 않다면. 나를 반길 리 없지.’


처음 환영회에서 반짝이던 생존자들의 열망을 읽었기에 헌터는 잠깐의 향락에 마음껏 동참할 수 있었다.


아직 그 자신은 모르기 때문에.


‘희망.’


무수한 세계에서 흘러들어온 이세계의 지식들. 시공 오염을 우회하여 익힐 수 있는 온갖 것들이 이곳에 존재하기 때문에.


‘내가 모르던 것들. 그것들을 익히고 배운다면, 어떤 계기가 된다면, 그 계기가 내가 알고 있지만 몰랐던 방법의 단초가 된다면···’


희망적일지도 모른다.


헌터는 스스로 이것이 지식의 골짜기의 초입 부분에서 초짜가 막연하게 가진 희망적 관측이라는 것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어쨌거나 아직 모르지 않는가.


‘시간은 충분하다.’


남는 것은 오직 흔들리지 않는 정신뿐···


헌터는 마음을 다잡고 다시 술자리로 들어갔다.


지금은 더 즐길 때인 것이다.



그렇게 일주일간의 술자리는 파하지 않고 이어졌고. 가시지 않을 것 같은 술 냄새는 아키의 선언으로 깔끔히 증발되었다.



“본래대로라면 회기가 끝나고 파티 뒤에 즉각적으로 콜드 슬립에 들어가 수명을 아끼는 게 현명하겠지만. 지금은 신입이 왔으니. 다들 명심하라고.”


아키는 생존자 대표로서 모두에게 헌터의 감독을 지시하고 부탁했다.


“무저갱의 법칙에 익숙지 않은 신입이니까. 하나부터 열까지 다 알려줘야 할 거야. 한 달 동안 남은 5명이 돌아가며 파트너처럼 달라붙어 전담하고 알려주도록.”


그 와중에도 특별한 일이 없다면 저녁 식사만큼은 모두와 함께 먹는 것이라며. 아키는 당부했다.


“첫 번째로 검잡이가 맡도록. 그다음은 마법사, 그다음은 성기사, 그다음은 메카닉, 마지막으로 나 아키텍처가 일대일 과외로 신입을 동료로서 훈육한다.”


-알겠나?


모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해산. 각자 소유함 파타모르가나 분함으로 복귀해 개인 정비를 지속할 것”


헌터는 검을 든 사내를 뒤쫓아 따라갔다.


파타모르가나 함의 구조는 거대한 모선인 파타모르가나 0호와 총 7개의 콜드슬립장치가 설치된 파타모르가나 분함으로 나뉘어져 있다.


제각각 분함 1호부터 7호기까지 도킹하여 모선과 연결되는데. 이는 회기당 한 번 뿐.


나머지 억겁의 세월 동안은 모선과 분리되어 마그마로 넘치는 지하세계를 제각각 부유하는 것이다.


“강령술에 대해 아는가?”


“강령술··· 원혼 말인가?”


“실재하는 이능력이 아니다. 그냥 다들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온 옛날이야기.”


검잡이가 말했다.


“이야기는 여러 가지가 있다. 사각형의 방에서 순서대로 꼬리물기를 하는데. 원래대로라면 끝나야 할 꼬리물기가 귀신이 와서 이어주는 바람에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든지···”


또는,


“7명의 여행자가 여행을 떠나는데, 돌아와 보니 사실 6명이었다든지···”


이런 식의 소수 집단 사이에서의 유대심과 긴장감을 보여주는 옛날이야기들을 설명하면서 헌터와 검잡이가 파타모르가나 분함 2호기에 타려던 때였다.


검잡이는 웃으며 말했다.


“파타모르가나의 분함이 나뉜건 시공 오염으로 미쳐 광기만 남은 인간을 배제하기 위해서였지만. 어찌 보면 그런 심리적인 설계도 엿보이는 부분이 있지.”


일곱 명. 소수(素數) 매미의 우화에 걸리는 시간. 천적을 피하고자 만날 확률을 낮추기 위한 자연선택.


“콜드 슬립에서 깨어나기 전까지는 자신이 누굴 깨우는지도 모르고 누가 자신을 깨우는지도 모른다. 모선 침략이라는 긴급상황을 제외하면 보안을 위해서 바로 그 소수 패턴으로 후발주자를 깨우는 무작위만 남는 거다.”


검잡이는 말한다.


“그런데 이상한 건 7명에서 6명이 되고, 6명이 5명이 되고 난 후에도. 그 소수 패턴의 꼬리 무는 술래잡기가 멈추지 않는 건 왜 일까?”


분명, 5명은 소수가 아닐 터.


이상하게 아무도 그걸 신경 쓰지 않는다며. 검잡이는 알아 듣지 못할 의문을 남기며 헌터를 그의 함선 파타모르가나 분함 2호기로 안내했다.


검잡이가 머무는 도검이 가득한 검의 무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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