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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트럭

참피 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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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트럭
작품등록일 :
2022.10.26 23:17
최근연재일 :
2022.11.17 23:29
연재수 :
15 회
조회수 :
507
추천수 :
25
글자수 :
80,287

작성
22.11.03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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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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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003 이상해요

DUMMY

003



아키참피는 환풍구의 좁은 틈 사이로 엿보인 끔찍함에 정신이 마비될 것 같았다.


그동안 지하 통로로만 다녀서 동경해왔던 통조림 공장. 우마우마한 맛있는 통조림이 만들어지는 곳. 어쩌다 하수도에 배출된 소시지 통조림을 주웠을 땐 얼마나 기쁘던지.


이 위의 공장은 천국이 아닐까.


그러나 천국이라 생각했던 공장이, 실제로는 동족인 참피들을 갈아 음식 재료로 만들고 있다는 끔찍한 격차에 아키참피는 정신이 나갈 것만 같았다.


“천국이 아닌데스. 도망쳐야 하는데스. 지옥인데스.”


오직 숨고 도망치는 길만을 외우고 익혔던 아키참피는 습관적으로 지하통로를 찾았다.


“안되는데스. 통로가 막힌데스. 저 믹서기씨가 가로막고 있는데스. 어쩌면 좋은데스.”


그때 다시 한번 ‘믹서기씨’가 준비된 식재료 – 참피 – 가 담긴 유리격벽을 열고 칼날을 회전하며 예열하기 시작했다.


“또 죽는 데스, 먹히는 데스, 참피가 통조림이 되는 데스.”


이제는 눈물과 침으로 범벅된 얼굴을 닦을 틈도 없이 하염없이 꺽꺽대며 오열만 하는 아키참피는, 어느새 자신이 환풍구 구석으로 슬쩍 옮겨져 있음을 깨닫는다.


“헌터씨···?”


“잠깐 거기서 기다리고 있어라.”


아래로 불쑥 뛰어내리는 헌터.


“안되는데스. 위험한데스. 죽는데스. 헌터씨도 믹서기씨한테 갈려버리는데스.”


헌터는 고개를 저었다.


“저건 내 사냥감이다.”


“···?”


헌터는 질주했다.


헌터복으로 단단히 조인 그의 육신이 목표로 한 통조림 공급 파이프에 거미처럼 달라붙는다.


헌터는 생각했다.


이성적으로 판단하면 저 믹서기씨라는 괴생명체를 뿌리쳐 각을 보고. 지하통로로 튀는게 이성적인 선택이다.


하지만 헌터는 그러지 않았다.


헌터는 환풍기 벽면 금속을 악력으로 뜯어내 금속 파편을 얻었다. 그 금속파편을 칼처럼 사용해 유연한 소재의 공급 파이프 겉면을 잘라 양손으로 원하는 만큼 찢어냈다.


헌터는 냉정했다.


그는 그동안 많은 이들을 버리고 구했다. 그때마다 이타적으로 혹은 계산적으로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생명을 저울질했고 사냥감을 사냥해 임무를 수행했다.


헌터는 기억한다.


자신은 결코 호인도 선인도 아니다. 수많은 이종족들이 피눈물을 흘리며 고통을 호소했음에도, 구할 것인가 사냥감을 선택할 것인가 상황에서조차 그는 사냥감을 택했다. 어디까지나 사냥꾼으로서.


헌터는 알고 있다.


구하고 말고는 결과적으로 나중의 일이다. 사냥에 대한 광적인 집념은 결코 이 조그마한 이종족의 울부짖음이 아닌 오직 사냥이 성공할 것인가 기준으로 결정된다는 것을.


헌터는 판단했다.


강인한 재질의 비닐 같은 유동 파이프 겉면을 마치 포댓자루처럼 사용해 금속통조림을 한가득 담는다. 원심력을 이용해 한 바퀴 휙휙 돌려 캔을 자루 끝으로 압축시키고 끝을 단단히 동여맸다.


그저 사냥할 수 있는데 쥐새끼처럼 튀는 것이 용납되지 않을 뿐이다.


이것이 헌터의 기준이었다.


길을 막고 있는 사냥감.


헌터는 자신을 믿었으나 과신하지 않는다.


'지금 나는 사실상 아무런 능력도 없는 일반인에 불과하다.'


이 세상은 헌터 자신의 진정한 힘을 쓸 수 없는 치명적인 리스크가 있다. 숨쉬듯 사용하던 이능력과 권능이 모조리 제한당한 상황이다.


그런데, 이능력을 못쓰는게 어떻단 말인가.


헌터는 잔뜩 수축한 근육을 이완시키며 몸을 진정시킨다. 사냥 전 전투감각을 끌어올리는 자동적인 과정이다. 이능력으로 했던 습관은 잊어야 한다. 이제는 손수 근육을 움직여 예열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내겐 아직 이 몸이 있다.'


일반인을 아득하게 뛰어넘는 강대한 육신. 셀 수 없는 나날을 단련과 실전으로 가다듬은 것이 바로 헌터 자신의 육체.


그리고 눈앞엔 사냥감이 있다.


사냥감은, 저 '믹서기씨'라는 괴생명체는 주방용품으로 쓰이던 분쇄기를 수평으로 달아놓은 것과 같았다. 그것이 직립보행하는 사람의 입에 달아놓는 기괴한 생김새인 것이다.


'질 낮은 취미로 얼기설기 만든 것 같군.'


참피라는 이종족을 단번에 갈아버리는 날카로운 칼날이 달린 주둥이는 사뭇 위력적으로 보인다.


'하지만 승산은 있다.'


왜냐면 녀석의 팔다리는 결코 전투용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근력을 요하는 관절기동부는 갈대처럼 허약해 보였다. 어디까지나 잘게 분쇄한 덩어리를 이리저리 휘젓기 위한 도구에 불과한 것이다.


어디까지나 식자재 가공이라는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존재.


'무기가 필요하다.'


맨손으로 격퇴할까도 생각했지만, 여러 층으로 되어있는 아래층마저도 저 믹서기가 수십여개체가 돌아다니는것을 셈하자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헌터의 악력으로 제압이야 가능할 테지만, 정면으로 쇄도하는 저 분쇄 칼날을 막으려면 자신 또한 다칠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유일한 무기인 저 주둥이를 부숴버린다면 아무런 위협도 되지 않지.'


날카로운 칼날을 짓뭉개버릴 무기. 둔기와 같은 종류.


헌터는 주위를 둘러본다. 사방에 놓인 도구들. 유연한 동물의 창자 같은 공급 파이프, 빈 깡통 캔, 그리고 내용물이 담겨 단단히 밀봉된 캔, 유리 격벽···.


헌터는 무기를 찾았다.


그것이 방금 만든 간이식 둔기, 통조림 캔으로 만든 블랙잭이었다.


헌터는 통조림 블랙잭을 원추처럼 돌리며 유리 격벽 아래로 뛰어내렸다.


원심력으로 전해진 간이 블랙잭은, 믹서기씨의 주둥이에 달린 분쇄 칼날을 단번에 짓뭉개버렸다.


회전하던 금속 칼날은 마찬가지로 금속 캔에 짓눌려 듣기싫은 소음만을 유발했다.


-팅팅,


그리고 너덜너덜해진 통조림 블랙잭을 다시한번 휘둘러 허약한 갈대같은 녀석의 관절부를 짓눌렀다. 마지막으로 통로로 쓰러진 녀석을 발로 짓밟는다.


여기까지 단 세 합.


‘이능력 없이 온전히 근력만을 사용했음에도 통했다. 역시 내 예상이 맞았어.’


전투용이 아닌 개체. 이런 놈이라면 한 다스가 몰려와도 밟아버릴 수 있다.


간이 블랙잭으로 만든 통조림 파이프가 찢어지면 금세 다시 천장의 파이프를 잘라내 만들어 재보급한다. 사방에 놓인 것이 통조림 캔이다. 무기가 마를 일은 없었다.


헌터는 희열을 느꼈다.


사냥꾼이 사냥할 기회가 왔으니 사냥해주는 게 마땅히 해야 할 일이 아닌가.


그렇게 반복작업과 같은 전투행위가 지나자 공장 안에 있던 믹서기씨는 모조리 박살 나 헌터의 발아래 짓밟혀있었다.


‘건물 안이라는 이점.’


앞서 본 청소씨라는 괴생명체처럼 열려있는 공간에서는 적이 얼마나 더 올지 예상할 수 없다. 반면 공장이라는 이점 한정된 건물 안에서는 정해진 숫자만이 존재했다.


‘물론 이런 상황을 대비한 경비 로봇 같은 게 있을 테니 서둘러 이탈해야 한다.’


경보를 울리는 통신 장치 같은 게 있다면 바로 울렸을 것이다.


어쨌든 이 세상에서 처음으로 사냥에 성공한 헌터는 전리품으로 부순 믹서기씨의 칼날 머리를 몇 개 뜯어냈다. 가방으로 삼은 간이 블랙잭 파이프에 담아 어깨에 짊어졌다.


“아키참피, 가자. 통로를 뚫었다.”


“···대단한데스···.”


아키참피는 눈앞의 헌터씨가 이뤄낸 사냥에 감탄하여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키참피의 사고로는 이해할 수 없는 괴력. 참피들을 도륙하던 괴생명체들을 박살 내는 역전의 희열이 아키참피를 휘감았다.


“존경하는데스 헌터씨. 헌터씨도 아키씨처럼 저한테 알려주는데스. 부탁하는데스.”


아키참피의 눈이 마치 뿅간 것 마냥 질척거리며 달라붙기 시작하자 헌터는 귀찮다는 듯 녀석을 다른 쪽 어깨에 짊어졌다.


“그건 그렇고 이 남은 참피들은 어떻게 할까. 일단 구해는 놨는데 말이지.”


당장 죽음의 위기에서 벗어난 유리 격벽 안의 무수한 참피 무리. 그 참피 무리 역시 갑자기 나타난 헌터의 위용에 놀라 입만 금붕어처럼 뻐끔대고 뭐라 하지 못하고 있었다.


“데, 데려가는데스?”


“잘 모르겠군. 만약 데려간다면···.”


지하 통로로 저 수만이 넘는 참피 떼거리를 데리고 인솔할 수 있을까? 헌터는 잠시 생각을 해보며 몇 명까지 데려갈 수 있나 고민 중이었다.


그의 감각 한 쪽에 공장의 큰 문이 열리기 시작하는 비상음을 들리기 전까지만.


견고한 벽처럼 보이는 공장의 정문 격벽이다.


“...못 데려가겠군.”


천천히 공장의 격벽이 위로 올라가자 그 틈 사이로 무수한 인파의 그림자가 보였기 때문이다.


‘역시나. 금방 왔다.’


부서진 공장을 보호하러 온 녀석들이리라. 치안 유지용인가. 아직 격벽이 열리지 않아 다리만 보이지만 딱 봐도 강해 보이는 무리다.


어쩔수 없다. 이번 사냥은 여기까지다. 헌터는 뚫린 지하 배수구로 몸을 날리려 했다.


헌터가 몸을 날리려던 그 몇 초의 찰나. 격벽이 열리기 전 작은 틈새로 눈빛이 보였다.


‘사람?’


참피나 괴생명체가 아닌. 분명한 사람의 모습이다.


한 손에는 긴 장대를 쥐고 아직 열리지 않는 격벽 저편 무리를 통솔하는 듯한 모습.


아주 짙은 보라색이 인상적인···.


헌터는 느낄 수 있었다.


거기까지만 보았을 때 이미 헌터는 상대의 강함을 눈치챘다.


‘강자다.’


찰랑거리는 소리와 함께 헌터와 아키참피는 목표로 한 격자 철창 너머 다음 지하통로에 내려왔다.


“아키참피. 봤나? 보라색 인간?”


공장 내에서도 꽤 멀리 있어서 아키참피는 못 본 모양이다.


그런데 아키참피는 무언가 기억나는 것이 있는지 다시금 어깨 위에서 오돌오돌 떨고 있다.


“보라색···. 인간씨···?”


“누군지 알고 있나?”


“보라색···. 보라색···. 그건 미친인간씨인데스. 어, 얼른 도망치는데스.”


아키참피는 어깨 위에서 바둥대며 얼른 도망치라고 닦달했다.


“미친인간씨는 지하 통로도 쫓아오는데스. 죽는데스 잡히는데스.”


앞서 본 지옥 같은 광경에 버금 갈 정도로 오들오들 떠는 아키참피의 반응에 헌터는 주저 없이 질주했다.


‘체구는 작았지만, 그 강함이 느껴지는 기도는 상당했다.’


원래 세상에서도 만만치 않은 사냥감이었으리라.


그러나 지금 이능력을 전혀 쓸 수 없는 헌터에겐?


‘지금은 이길 수 없다.’


헌터는 이길 수 없는 사냥감을 사냥하지 않는다.


헌터는 지구력이 허용하는 최대치로 지하 통로를 주파하며 도망쳤다.


참피가 지시하는 방향 이곳저곳 지하 통로를 달리며 헌터는 오늘의 교훈을 되새긴다.


이 디스토피아 같은 이세계. 괴생명체 자동기계들은 각이 보이면 얼마든지 완력만으로도 사냥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저 보라색 빛의 미친인간 같은 강자 또한 존재한다.


처음 본 광장의 거대한 드래곤까지 가지 않아도 지금 헌터로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존재다.


헌터로 정점에 올라 온갖 권능과 이능을 발휘했던 그에게 이런 경험은 정말이지 오랜만이었다.


달리는 와중에도 헌터는 꽉 쥔 주먹을 통해 스스로의 힘을 가늠했다.


‘맨몸으로,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이다.’


헌터는 다시 태어난 기분이었다.


사실상 알몸에서 다시 시작하는 것과 같다.


헌터가 이룩했던 그 모든 위업과 영광은 이 세계에는 없다.


남은 것은 오직 단련된 육신뿐.


그리고 참피와 함께.


아키참피와 헌터가 최초로 후타바공원에 온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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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피 헌터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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