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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가이하
작품등록일 :
2013.07.21 10:58
최근연재일 :
2014.08.14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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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6.27 2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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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 한 번 마련하기 어렵군요.”


불만을 내비치는 권병준 사장에게 이상일 대표는 그간의 사정을 얘기했다.


, 미리 통화로 말씀드렸듯이 어제는 중요한 골프 약속이 있어서…….”


만나는 이들의 사회적 지위가 높다 보니, 그들과의 약속은 결코 소홀히 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러나 한두 번 발걸음한 것도 아닌 만큼 권병준 사장의 입장에선 서운할 수밖에 없었다.


제가 불편하십니까?”


거두절미하고 꺼낸 그의 말에 이상일 대표는 난색을 표했다. 실제 불편하다 해도 얼굴 보겠다고 몇 번이나 발걸음을 한 양반에게 야박하게 굴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아닙니다. 그럴 리가요.”


지금 보는 권병준 사장은 확실히 전에 대할 때와는 달라보였다. 불안한 눈빛이나 상기된 표정이 어딘지 모르게 쫓기는 사람 같았으니까.


눈 밑도 며칠은 못 잔 사람처럼 검었다.


혹시 요즘 불면증이라도 있으신지?”


권병준 사장에게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후우, 어디 불면증뿐이겠습니까?”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이상일 대표의 물음에 잔뜩 구겨진 얼굴로 그가 사연을 읊기 시작했다.


금고가 털렸습니다. 그것도 믿었던 놈들에게 말입니다.”


그로서는 최대한 순화해 하는 말이다.


솔직한 심정 같아서는 두 년놈을 당장이라도 잡아다가 어디 가둬 놓고 몇 날 며칠 몽둥이로 두들겨 패도 화가 풀리지 않을 것 같았으니까.


갑작스레 권병준 사장이 양손으로 이상일 대표의 오른손을 덥석 잡았다.


저 한 번만 도와주십시오.”


단도직입적으로 꺼낸 권병준 사장의 말에 이상일 대표는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 뭘 도와달라는 말씀이신지?”


당장 급전이 좀 필요합니다. 한 이십억 정도면 급한 불은 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십억은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게다가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접근한 사람이란 의혹이 걷혔다고 해도, 신뢰할 수 없기는 과거와 마찬가지였다.


저도 그만한 거금은 없습니다만.”


개인적으로 빌려 달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대출을 부탁드리는 겁니다.”


대출이라면 저희 회사가 아니라 은행에서 하시는 게 맞을 텐데요.”


권병준 사장은 구겨지려는 표정을 억지로 참았다.


그게 되었다면 여기 오지도 않았을 터.


나이트클럽을 비롯한 부동산들로 이미 담보를 잡아 여러 사업을 벌이고 있었으니, 불가능한 것이다.


저라고 은행을 찾아보지 않았겠습니까? 지금 이 대표님 외에 달리 부탁을 할 만한 곳이 없습니다.”


회사를 경영하는 데 있어 동정심에 이끌려선 안 된다는 것을 이상일 대표는 잘 알고 있었다. 더더군다나 이 회사는 자신의 소유도 아니지 않던가.


무엇보다 불확실한 일이다. 행여 그 돈을 못 받게 된다면, 자신이 큰 곤욕을 치르게 될 것이다.


사정이 딱하신 건 알겠습니다. 그래서 더 죄송합니다만, 아무래도 그건 어렵겠습니다.”


장고 끝에 내린 이상일 대표의 결정에, 권병준 사장은 조용히 두 손으로 자신의 안면을 감쌌다.


정말 어렵겠습니까?”


한층 더 목소리가 굵어졌다.


하지만 그에 이상일 대표는 아무런 위화감도 느끼지 못했다.


그렇다는 말씀밖에는 못 드리겠군요.”


대답을 들은 권병준 사장이 벌떡 일어섰다. 그러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리를 떠났다.


인사조차 없이…….


다시 안 볼 사람처럼 말이다.


 


***


 


비록 한국투자컨설팅에 1위 자리를 내주었을지언정 아직 우일투자컨설팅은 건재했다.


언론을 통한 거짓 정보 흘리기가 아직도 통했으니까.


한국 개인 투자자들은 참 바보 같아. 그렇게 속아 놓고 아직도 속다니 말이야.”


마틴의 말마따나 신문에 호재만 실린다면 근 시일 내 상장폐지가 될 주식들도 냅다 가져가지 않던가. 덕분에 상당한 차익을 남기는 일도 가능했다.


우리가 금융감독원의 비호를 받는 걸 잊어선 안 돼. 협력자가 없으면 안 될 시스템이라고.”


릭이 한곳을 응시했다. 그곳에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한 남자가 있었다.


매번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해 달라고 하셨습니다.”


릭뿐 아니라 마틴도 그가 금융감독원 간부가 보낸 사람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들어올 때만 해도 든 게 없어 납작하던 서류 가방이 불룩해 있는 걸 보니 사장에게 또 적잖은 돈을 받았을 터.


그것은 몇 차례 목격했던 사실이기도 했다.


별말씀을 다하시는군. 살펴 가게.”


, 다음에 뵙겠습니다. 아무쪼록 건강하시기를.”


릭이 사장에게 깍듯이 인사하고 멀어지는 남자를 보며 중얼거렸다.


저 남자를 보낸 사람이 어떤 인간인지는 몰라도 돈만 된다면 나라도 팔아먹을 위인 같아.”


그 역시 실제로 우일투자컨설팅과 내통하고 있는 금감원 간부의 얼굴을 본 적은 없다. 항상 저 사람이 왔었으니까.


마틴은 그에 별 관심이 없는 듯 화제를 돌렸다.


그보다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군. 이렇게까지 하는데도 한국투자컨설팅에 우리 주가가 밀리다니 말이야.”


신뢰의 문제겠지.”


실제로 그랬다. 고객들의 연이은 손실은 이탈을 불러왔고, 그것은 투자금의 하락으로 직결되었다.


고객들의 돈이야 어디로 흘러가든 상관없다는 경영 방침에서 야기된 문제였다.


이따금씩 흘러 들어온 수익을 낼 수 있을 만한 알찬 정보들은 윗선에서 꽉 쥐고 있던 관계로 고객들의 귀로 전혀 들어가지 않았던 것이다.


더군다나 판단력이 떨어지는 고객들을 우일투자컨설팅의 차익을 늘리는 데 이용까지 해 왔다.


릭은 조금 전 내놓은 대답처럼 이렇게 될 걸 어느 정도 예상한 상태였다.


눈앞에 이익만 쫓았으니 당연한 결과일지도…….’


반면 한국투자컨설팅은 이와는 확연할 정도로 대비가 되었다. 고객들의 이익을 우선한 경영 덕분에 입소문까지 나 점점 더 투자자가 몰리는 추세가 아닌가.


턱을 괸 채 입을 댓 발이나 내밀고 있는 그를 보며 릭이 물었다.


네가 회사 일이라도 걱정하는 건가? 설마…… 아니겠지?”


회사를 왜 걱정해? 돈 잘 나오고 있는데.”


릭이 조소를 흘렸다.


그럼 그렇지. 결국 또 그 여자 생각인가?”


릭의 말마따나, 마틴의 머릿속 절반 이상은 실비아에 대한 생각으로 차 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누굴 생각하든 내 마음이지.”


부정을 않는다.


릭은 그런 마틴을 이해할 수 없었다.


배부른 타령인가? 원대로 여자도 실컷 만나는데 뭐가 그리 불만인 건지 모르겠군. 자고로 여자는 많아야 좋다고 네 입으로 안 그랬었나? 이젠 한국 여자들은 질리기라도 한 거냐?”


분명 그랬었다. 그러나 많은 한국 여자들을 만나오다 보니 저절로 회의가 생겼다.


질린 건 한참 됐어. 네게 말을 안 했을 뿐이야.”


?”


자고 일어난 그녀들을 본다면 너도 이해할 거야. 화장이 지워졌을 때의 본얼굴. 십중팔구 끔찍하다고. 이런 경우도 있어. 성형에 대한 부작용으로 얼굴이 퉁퉁 붓는 경우 말이야.”


릭은 마틴의 그런 태도를 헐뜯었다.


결국 문제는 네 마음에 차지 않는 그녀들의 얼굴이었군. 난 사랑은 마음을 봐야 하는 거라고 들었는데?”


마틴이 피식 웃으며 그 말을 받았다.


그래, 마음이라도 착하면 좋을지 몰랐겠어. 난 내가 겪은 현실들이 마음에 안 든다고. 힐과 화장으로 자신이 요정이라도 된 듯 착각하는 건 참아 줄 만해. 하지만 그녀들이 요구하는 건 획일적이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거야. 잠자리, 영어, 그다음은 선물이나 돈이었어. , 너도 이용을 당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어땠을까?”


……그건 조금 기분 나쁠 것 같아.”


마틴이 불만스레 팔을 들어 손바닥으로 천장을 짚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망할 지인들 때문에 괜한 환상을 품었어. ? 한국에 가서 원 없이 사랑을 하고 왔다고? 사랑이 아니라 그녀들의 액세서리로 농락을 당했겠지.”


그래도 다른 여자도 있겠지.”


다른 여자? 백이면 백, 모두 같아. 여긴 근본적으로 잘못됐어. 노래며 드라마, 영화를 보라고. 다 사랑 얘기야. 그런 것만 보고 커 왔으니 사랑도 단순하다고. 그녀들이 가장 바라는 건 뭔지 알아? 남자는 왕자여야 한다는 거야.”


열변을 토했기 때문인지, 아니면 염치없는 일부 한국여성들을 만나온 데 대한 회의 때문인지 마틴은 기운이 하나도 없어 보였다.


그러나 릭은 그런 마틴을 동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속으로나마 헐뜯었다.


있는 놈이 더하다더니…….’


릭이 어떻게 생각하건 간에 마틴은 고독했다.


많은 한국 여자들을 만나고, 그보다 많은 잠자리를 가졌다 한들 지금 남은 건 공허함뿐이었다. 차라리 자신이 좋아하는 마음이라도 있었다면 이런 감정은 느껴지지 않았으리라.


……!”


속으로 한숨을 삼키며 창밖으로 고개를 돌리던 마틴의 눈꺼풀이 크게 벌어졌다.


바람에 하늘하늘하게 흩날리는 금발의 머릿결, 플랫슈즈를 신고도 사뿐사뿐한 걸음걸이, 무릎까지 내려오는 정장 치마에서는 기품이 묻어났다.


꾸미지 않은 아름다움에 청초하고 온화한 표정은 마틴의 심금을 사정없이 흔들어 놓았다.


표정이 절로 밝아졌다.


63빌딩에서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때처럼.


우습게도 그녀를 목격한 창밖의 남자들도 각자 가던 길마저 잃은 채 넋이 나간 표정으로 서 있었다.


천사가 내려왔는데 동요하지 않을 남자가 어디 있으랴.


그러나 마틴은 그들이 조금 어이가 없었다.


한국 놈들은 도무지 주제를 모르는군.’


그녀와 어울릴 수 있는 사람은 저들이 아닌 바로 자신이다.


미국 땅이라면 주목을 받지 못했을지 몰라도, 여긴 한국 땅이 아닌가. 자신은 충분히 저 남자들 사이에서 빛날 수 있다.


그녀를 보고자 벌떡 일어서 밖으로 향하려는 마틴을 릭이 붙들었다.


어디 가?”


무엇보다 급한 볼일.”


그대로 릭의 손을 뿌리치고서, 마틴은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한 채 생각했다.


인연이라는 게 정말 있긴 한가 보군. 어떻게 여길 찾았지?’


중요한 건 바로 그 부분이었다.


특수한 상황이기에 기대도 되었다. 오늘만은 그녀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막상 마틴이 밖에서 마주친 그녀는 누군가와 함께였다.


그 앞에서 그녀는 생글생글 웃었다.


마틴 자신에게는 한 번도 보여 주지 않은 미소다.


더욱 섭섭하게도, 두 사람은 마틴이 못 알아들을 얘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하하, 제가 마중을 나왔습니다.”


머리를 긁적이며 형상준 과장이 하는 말에 실비아가 화답했다.


마중까지 안 나와 주셔도 되는데……. 대표님께서는 계신가요?”


그럼요. 안에 계십니다. 그런데 잠시만…….”


양해를 구한 형상준 과장이 실비아의 귀 옆 머리카락을 짚었다.


여기 무당벌레가 앉아 있었습니다.”


! 몰랐어요.”


마틴의 가슴이 누군가 불을 지핀 것만큼이나 뜨거워졌다.


도대체 무슨 대화를 나눈 걸까?


한국어를 모르는 데다, 멀어서 자세히 보지 못한 관계로 마틴은 질투심이 일었다.


머리카락까지 만지다니…… 무슨 사이지?’


말로 형언하지 못할 패배감마저 들며 한편으로는 의문이 싹텄다.


내가 저놈보다 못한 게 뭐야? 그러고 보니 63빌딩에서 봤던 그 젊은 놈팡이와도 꽤 가까워 보였는데…….’


우습게도 저놈과 그놈, 둘에게는 동양인이란 공통점이 있었다. 지금, 마틴이 떠올리는 젊은 놈팡이란 바로 지석인 것이다.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취향이란 게 있다지만, 마틴은 그녀의 취향을 존중할 수 없었다.


말이 돼? 저런 미녀가 동양인을 좋아한다는 게?’


속으로는 끊임없이 투덜거리면서도 마틴의 발걸음은 그들을 뒤쫓고 있었다.


두 사람이 들어간 곳은 다름 아닌 한국투자컨설팅이었다.


마틴은 형상준 과장을 생각하며 이를 갈았다.


어쩐지 저 동양 놈, 낯이 익다 했어. 여기서 일하는 놈이었군. 그런데 직책이 어떻게 되지?”


모를 수밖에 없었다.


같은 건물에 입주해 있는 동일 업종의 회사라곤 해도 한국투자컨설팅에는 하등 관심을 두지 않았으므로.


혼자 남은 상황이다 보니 상념들만 많아졌다.


지근거리에서 머리를 만져 주는 관계라면, 단둘이 있는 장소에선 더한 애정 표현도 서슴지 않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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