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가이하의 서재입니다.

100가지 소원

웹소설 > 작가연재 > 현대판타지, 판타지

완결

가이하
작품등록일 :
2013.07.21 10:58
최근연재일 :
2014.08.14 17:16
연재수 :
9 회
조회수 :
252,863
추천수 :
4,645
글자수 :
42,354

작성
13.07.21 12:57
조회
27,581
추천
551
글자
12쪽

취직

DUMMY

익일.

지석은 평소보다 느긋하게 움직였다.

출근시간이 오후 다섯 시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화동에서 파고다공원을 거쳐, 종로 3가를 거닐었다.

단성사와 피카디리 극장 앞엔 많은 인파가 모여 있었다. 일대에 영화를 볼 수 있는 극장이라고는 드물었던 까닭이다.

젊은 연인들이 특히 눈에 많이 띄었다.

부럽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몸과 마음은 스무 살이었으니까.

‘사치고 낭비다. 쳐다보지 말자.’

연애도 했었고, 결혼도 했었다. 하지만 두 가지 모두 금전을 동반하게 만들었다는 걸 지석은 기억했다.

앞만 보고 걷다보니 어느새 종로 2가였다.

어학원 사거리 앞에서 횡단보도를 건넜다. 젊음과 낭만의 거리라는 수식어답게 오가는 사람들의 얼굴엔 미소와 웃음이 만발이다.

‘마음껏 놀아라. 그 여유가 언제고 너희들의 인생을 훔쳐간다.’

지석 역시 저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인생을 살았다. 그러나 모자란 놈은 여유를 버려야 한다.

여러 상념에 빠져 걷다보니 밀집된 유흥가가 드러났다.

오락실과 술집, 커피숍 등이 행인들을 유혹하는 중이었다.

‘그리고 보니 여긴 아직 노래방이 안 생겼군.’

단란주점이나 가라오케 등은 있었다. 그러나 초창기의 노래방은 술을 팔지 않는다는 데에서 용도 자체가 달랐다.

‘가만, 내가 노래방을 처음 가본 게 대학에 들어가는 해부터였나?’

23년 전의 기억이니 가물가물하긴 했어도 아마 맞을 것이다. 지석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렇게 놀고 다닌 게 어쩌면 손해는 아니었던 지도….”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정면 카운터에 사장과 새로 온 2층의 지배인인 정상영이 눈에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는 지석을 사장이 고개를 비틀며 빤히 쳐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보기 좋아.”

“감사합니다.”

칭찬을 듣고 기분이 안 좋을 사람은 드물 것이다. 지석이 보답으로 입가에 미소를 머금자, 그녀가 무정하게 일렀다.

“가봐.”

지석의 무안함을 덜어주고 싶었던지 정상영이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어주었다.

지석은 간단한 미소로 그에게 화답한 뒤, 그대로 카운터를 지나쳐 2층으로 통하는 계단을 올랐다.

모퉁이를 돌려는데, 마침 내려오는 중인 김진숙을 발견했다.

그녀는 지석을 보며 눈을 크게 치떴다. 주의를 잃어버리고 계단을 살피지 않았던 탓에, 다리가 멋대로 꼬여버리며 몸이 균형을 잃어갔다.

그녀의 얼굴에 낭패한 기색이 스칠 때였다.

지석이 한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그리고 다른 한손으로는 벽에 부딪치려던 목을 받치고서 물었다.

“괜찮아?”

김진숙은 말도 잊은 채 겨우 고개만 끄덕거렸다.

지석은 그녀를 바로 세워주며 입꼬리를 말아 올려 웃음을 보인 뒤, 자리를 떠났으나 김진숙은 한동안 그 자리에서 움직이질 못했다.

그런 김진숙에게 문영미가 다가가서 조금 전 자신과 2층에서 인사를 나눈 지석의 뒷모습을 보며 물었다.

“지석이 맞지?”

“그, 그런 것 같아.”

대답을 들은 문영미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정장 입으니 사람이 달라 보이네. 옷빨이 저렇게 잘 받는 애였나?”


***


그로부터 다섯 달이 흐르며 해가 바뀌었다.

은은한 조명 아래, 4층의 종업원들은 퇴근을 서둘렀다.

4층의 종업원은 모두 네 명으로 지석과 동갑내기인 종업원과 나이가 두 살 많은 종업원은 30분 전에 퇴근했다.

남은 종업원들은 올해로 스무 살 남자와 열아홉 살 여자로 지석보다 각각 한 살과 두 살이 어렸다.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래, 수고했어.”

남자 종업원의 인사를 받아주면서도 지석은 장부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시재를 맞추기에 여념이 없었다.

여자 종업원도 인사를 전했다.

“오빠, 갈게요.”

“응. 들어가.”

마찬가지로 눈도 마주치지 않고 하는 대꾸였다.

돌연 뺨으로 방금 인사를 전한 여자 아르바이트생의 입술이 와 닿았다. 지석이 고개를 돌리기 무섭게 그녀는 허둥지둥 돌아서며 아래층으로 향했다.

그녀는 지석을 흠모하고 있었고, 지석 역시 그 마음을 눈치 채지 못한 건 아니었다.

빤히 보는 앞에서 냅킨에 ‘사랑해’란 말을 적는가하면, 다른 종업원들이 듣는 앞에서 대놓고 ‘좋아한다고요’라고 용기내어 고백한 적도 있었으니까.

그렇다고 그녀가 못 생긴 건 아니었다. 귀엽고 예쁘장한 외모와 특유의 애교스러움으로 그녀는 이 건물에서 일하는 여종업원 중 가장 인기가 많았다.

지석이 다시 시재로 눈을 돌리려는데, 불쑥 사장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오셨어요?”

인사엔 대답 없이 그녀가 넌지시 말을 건넸다.

“저 아이가 좋아하는 것 같은데, 아닌가?”

눈치가 보통이 아닌 사장이다. 그러나 지석은 모르쇠로 일관했다.

“잘 모르겠는데요.”

“난 신경 쓰지 말고 하던 일 해.”

4층을 두루 돌아보던 그녀가 막 시재를 끝내가는 지석에게 물었다.

“오차는 없는 건가?”

“그런 것 같습니다.”

“술이나 한 잔 할까?”

지석이 깍듯한 태도로 되물었다.

“어떤 술로 준비해드릴까요?”

“꼬냑, 그게 좋을 것 같아. 안주는 과일로.”

술자리를 마련한 지석이 음악을 끄기 위해 오디오로 다가갔다. 으레 이런 자리엔 일에 대한 얘기가 오갈 것이기에.

대화에 방해가 되는 걸 지극히 싫어하던 그녀가 오늘은 웬일인지 고개를 내저었다.

지석이 자리로 돌아와 앉자 그녀가 먼저 운을 뗐다.

“4층 지배인을 바꾸길 잘한 것 같아. 그렇다고는 해도, 매상이 이렇게 많이 오를 줄은 몰랐지만….”

“별 말씀을요.”

평일 10만원에서 15만원이던 매상이다. 4층은 너무 어두침침했고 무엇보다 분위기가 별로였던 탓이다.

지석은 조명가게들이 밀집해있는 세운상가를 찾아 조명부터 바꿨고, 소파의 배치와 메뉴판까지 손봤고 화분과 여러 장식들로 내부를 꾸몄다. 그 모두가 직접 발로 뛰어 만든 결과로, 지금은 평일 매상 팔십만 원이 평균이었다.

그녀로써는 업주의 입장에서 지석의 그런 노력을 높이 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겸손할 필요 없어. 지석씨는 충분히 칭찬받을 자격이 있으니까.”

“사장님께서 지원을 해주지 않으셨다면 불가능할 일이었습니다.”

지출 영수증을 가져다주면 사장이 모두 계산해주었던 것이다.

그녀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분명한 건, 이제껏 처음 보인 모습이었다.

“지석씨는 여러 면에서 사람 기분 좋게 만드는 재주가 있네. 한 잔 받아.”

지석이 두 손으로 와인잔을 들었다.

쪼르르륵.

밑바닥에서 찰랑거릴 즈음, 그녀는 술병을 내려놓았고 지석이 다시 그 술병을 들어 그녀가 든 와인잔을 채웠다.

맛을 음미하며 천천히 마시는 지석과 다르게 그녀는 한 번에 들이켰다. 꼬냑이 부드러운 목을 타고 넘어가는 광경이 지석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지석은 연거푸 사장의 빈 잔을 채웠다.

독한 술에 취기가 오르는 시작하는지 그녀는 걸치고 있던 얇은 재킷을 벗었다. 그러자 평소의 엄한 모습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보드랍고 얇은 팔이 드러났다.

이어 그녀는 검은 뿔테안경을 벗어 내려놓으며 물었다.

“혹시 인생이 뭔지 알아?”

“…….”

기억으로나마 한 인생을 살아봤던 지석이었지만, 그 질문엔 선뜻 대답하기가 힘이 들었다.

그녀가 실망했다는 듯, 와인잔을 들어 입속에 꼬냑을 부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구나.”

무시를 당하고 있다는 기분에 지석이 조심스레 답했다.

“돈… 아닐까요?”

돈이라면 집과 차, 땅은 물론 사랑도 살 수 있고, 명예도 살 수 있다. 당연히 사람도 살 수 있었다. 물론,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었지만.

“돈? 깔깔깔!”

그녀의 웃음이 비웃음처럼 여겨진 나머지 감정이 상한 지석이 물었다.

“그러시다면 사장님께서는 왜 돈을 벌려고 하시는지?”

“있어야지. 그건 있어야 하는 거야. 안 그러면 비참해지거든.”

지석이 그녀의 빈 잔에 재차 꼬냑을 채우며 말했다.

“아무나 다 충분한 양의 돈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습니다.”

사장이 기다렸다는 듯 술잔을 다시 들며 의미심장한 눈길로 지석을 주시한 채 입을 열었다.

“그럼 벌어야지.”

이해 못 할 소리로 치부하고 넘길 게 아니었다. 그녀의 말엔 속뜻이 담겨있었다. 사람은 평등한 조건으로 태어나지 못한다는 걸 직시하라는 뜻일 터.

지석은 단숨에 잔을 비워버렸다. 그렇잖아도 돈에 한을 품고 있었으니, 자조적인 미소가 입가에 저절로 머금어졌다.

“전 언제까지 벌어야 할까요? 십 년, 이십 년? 아니면 그 이상인가요?”

“괜찮은 길을 택한다면, 세월은 줄어들겠지.”

아무 말도 오가지 않는 상태에서도 그녀의 와인잔은 계속 비워졌고 그럴 때마다 지석은 반사적으로 꼬냑을 채워주었다.

하지만 이십 분이 지난 아직도 지석은 그녀가 남긴 말을 곱씹는 중이었다.

나쁘게 받아듣는다면, 인생을 알기 전까지 자신의 밑에서 돈이나 벌며 있으라는 얘기다. 현찰이 꽤 많은 사장이라, 지석은 거절할 생각이 없었다.

“그때까지 거둬주시겠습니까?”

“지석씨, 머리가 나쁘지 않은데.”

술자리에서 성과를 거뒀다고 생각했는지 그녀가 머리를 누르며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아우, 머리야. 너무 많이 마셨나? 지석씨가 이렇게 말이 잘 통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면 좀 적게 마셔도 됐을 텐데…. 난 먼저 가봐야겠어.”

자그마치 꼬냑 한 병이다.

지석이 얼마 마시지 않았으니, 대부분 그녀가 마신 셈. 그것도 단시간에 말이다.

취기를 억누르지 못하고 백과 재킷, 안경을 챙긴 채 높은 하이힐에 휘청거리며 계단으로 다가서는 사장은 금세라도 쓰러질 것처럼 위태로워보였다.

지석이 다가서 그녀의 팔을 자신의 어깨로 올린 채 잘록한 허리에 오른팔을 휘감았다.

“모셔드리겠습니다.”

“괘, 괜찮….”

두 사람의 얼굴이 가까워져있었다. 지석 또한 그녀를 이렇게 가까이서 본 적이 없었다.

상기된 표정을 지우지 못한 상태로 다리까지 풀려버린 그녀를 지석은 손에 힘을 줘 더 꽉 끌어안았다.

부드러운 가슴이 탄탄한 가슴에 닿아 뭉그러지며, 그녀에게서만 나는 체취와 향수가 정신을 몽롱하게 만들었다.

흥분으로 인해 지석의 맥박은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눈빛을 외면하지 않는다. 혹시 날 원하는 건가?’

그녀의 의사야 확인할 방법은 없었지만, 짙은 마스카라와 붉은 입술은 지석을 강렬히 유혹하고 있었다. 지석은 그대로 그녀의 입술에 과격하게 입술을 포개버렸다.

촉촉하고 매끄러운 입술이 지석의 입술을 밀어내고자 처연하게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지석은 입술을 떨어뜨리지 않은 채 그녀의 허리를 감고 있던 손을 종아리로 옮겨 번쩍 든 뒤 소파로 걸어갔다.

여체를 눕히며 그 위로 몸을 겹쳤다.

손끝으로 그녀의 뺨과 목 언저리를 부드럽게 쓸어내리자 입술이 벌어지며 더운 김이 빠져나왔다.

중년의 인생을 살았던 지석이다.

여자를 자극하는 법을 모를 리가 없었다.

연약한 귓불을 입 안으로 빨아들이자 흥분이 고조에 달하며 가녀린 신음소리가 가쁜 숨과 함께 새어나왔다.

“아….”

지석은 그녀의 입을 막고 실크블라우스에 손을 가져갔고 단추를 하나하나 풀었다. 곧 앞가리개에 반쯤 가려진 뽀얗고 봉긋한 가슴이 드러났다.

지석의 혀와 손끝은 마법처럼 그녀를 환상에 빠뜨렸다.

게슴츠레해진 눈이 서서히 감길 무렵, 지석은 치마를 걷어 올렸다. 늘씬하고 매끈한 허벅지는 때 묻지 않은 백옥을 연상시켰다.

눈을 부릅뜬 채 품에서 빠져나가려 반항하는 그녀를 보며 지석은 눈에 독기를 품었다. 가급적이면 유리한 조건이 낫다. 단순한 고용관계보다 이성관계가 얽힌다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터.

‘당신도 착하지는 않은 사람이잖아.’

지석은 그녀에게 상처 입은 사람의 수가 결코 적지 않음을 알고 있었다.

부드러운 손길이 발목과 종아리 그리고 무릎을 지나 허벅지 안쪽으로 타고 올라오자 그녀의 숨은 훨씬 뜨거워졌다. 지석은 그녀에게 민감한 부분들을 금세 파악하고 짚어나갔다.

기어이 목에 그녀의 얇은 팔이 감겼다.

지석은 확신했다.

이 여자도 자신을 원하는 것이라고!


작가의말

분량이 있어 올리긴 했는데 하루 6편 올려도 되는 건가 모르겠네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6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100가지 소원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공지가 잘려서..ㅎㅎ 14.06.27 1,840 0 -
공지 9권이 출간되었습니다. +5 14.06.27 1,883 0 -
공지 8권이 출간되었습니다 +1 14.05.20 2,296 0 -
공지 7권이 출간되었습니다. ^^ +1 14.03.31 1,742 0 -
공지 6권이 출간되었습니다. ^^; +4 14.02.13 2,082 0 -
공지 새해 즐거운 일들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 +3 14.01.01 1,563 0 -
공지 100가지 소원이 출간을 하게 되었습니다. +11 13.09.10 3,027 0 -
9 10권(완결)이 출간되었습니다. ^^ +8 14.08.14 4,058 45 16쪽
8 공지 겸 연재글입니다. +176 13.08.12 31,239 867 11쪽
7 승승장구 +19 13.07.22 28,710 559 10쪽
» 취직 +16 13.07.21 27,582 551 12쪽
5 취직 +11 13.07.21 26,169 513 11쪽
4 취직 +13 13.07.21 29,599 481 11쪽
3 시간을 거슬러... +23 13.07.21 30,551 511 12쪽
2 시간을 거슬러... +23 13.07.21 34,141 522 10쪽
1 프롤로그 +8 13.07.21 35,323 596 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