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거슬러...
지석의 모친이 눈을 크게 뜨고 있었다. 아들이 대학엘 가지 않겠다는 결심을 내보였기 때문이다.
“대학엘 가지 않겠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제 길이 아닌 것 같아서요.”
모친에겐 아들의 그 말이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처럼 들렸다.
“네 길이 아니라니. 지석아, 대학교에 가지 않으면 미래도 없어.”
지석의 인상이 찌푸려졌다.
‘어머니가 잘 모르시는 겁니다.’
남들에게는 인생의 발판이 되었을지 몰라도, 대학 4년이 지석 자신에게는 인생의 낭비였다. 비록 성적이 좋지 못해 지방대에 다녔다고는 하나, 수업에 빠지지 않고 열심히 다녀서 나쁘지 않은 성적으로 졸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공을 살릴 수 없었다. 배운 것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영업사원을 해야만 했으니까.
물론 그 시절을 겪어 봤으니 성적이 조금 더 좋게 나와서 그때보다 나은 대학에 진학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어려운 대학교 수업 과정을 쫓아갈 수 있으리라는 법은 없었다. 또한 집안의 형편도 넉넉하지 못했다.
4년 등록금에 전세로 살던 이 집을 빼야 하지 않았던가. 그것을 대학 3학년을 지내다 알게 되었다. 자식에게 걱정 끼치지 않겠다고 부모님이 감추고 계셨던 것이다.
대학을 다니며 아르바이트라도 틈틈이 한다면 등록금 걱정쯤은 덜어 드릴 수가 있을 터. 하지만 그조차 지석은 손해라 생각했다. 이 시절 대학 등록금에서 조금만 더 보태면 장사 밑천이 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어머니께서 뭐라 하셔도 전 생각을 바꾸지 않겠습니다.”
지석의 완고한 태도에 모친이 신문만 보고 있던 남편을 흔들었다.
“여보, 당신도 말 좀 해 봐요. 지금 지석이가 대학에 가지 않겠다잖아요.”
그제야 지석의 부친이 신문을 접고 아들을 주시하며 진지하게 물었다.
“그럼 무엇을 할 생각이냐?”
“일을 할 생각입니다.”
“대학도 안 나온 너를 누가 써 준다고 하느냐?”
“아버지, 대학을 안 나오더라도 일을 할 수 있는 곳은 많습니다.”
“그럼 이 아비처럼 공사판이나 다닐 생각이냐?”
금방이라도 폭발할 듯한 부친이다. 지석은 부친이 배우지 못한 것에 막심한 후회를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배우는 게 전부가 아니다. 학연과 지연, 그리고 배경이 받쳐주지 않는다면 취직조차 어려운 상황이 초래될 터.
지석은 자신의 결정에 완고한 태도를 보였다.
“절 한 번 믿어주십시오.”
평소 자식을 대함에 있어서는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부친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발끈한 부친의 손에서 재떨이가 날아와 지석의 머리를 때렸다. 그로도 모자라다 여겼는지, 그는 무겁고 큼지막한 구형 라디오까지 집어 들고 있었다.
사달이라도 날 것 같았던 나머지, 지석의 모친이 화등잔만 해진 눈을 하고 남편을 끌어안았다.
“여보, 그만해요!”
지석의 부친이 그녀를 매정하게 뿌리쳤다.
“이 못난 여편네야, 가만히 있어! 애를 똑바로 키우지도 못한 주제에!”
그는 계속 고압적인 태도를 이어 갔다.
“대학에 가기 싫다면 당장 이 집에서 나가라.”
원래부터 아들의 의견을 잘 들으시려 하지 않던 부친이었다. 비단 지석의 집안에 국한되는 모습만은 아니었다. 1990년도에 자식들에게 엄하지 않은 부모는 드물었으니까.
그럼에도 지석은 여전히 무릎을 꿇고 앉은 채 할 말을 다 하는 중이었다.
“실망시켜 드리지 않을 자신 있습니다.”
“이 애비가 살아도 너보다 몇십 년을 더 살았다. 대체 네가 뭘 안다는 거냐? 네 알량한 자신감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
“저는 등록금이라도 아껴 드리는 게 효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이놈이!”
퍽.
발길질에 지석이 나동그라졌다.
“썩 나가! 더 이상 넌 내 자식이 아니다!”
맞아서 아픈 것보다도 마음이 쓰렸다.
그렇게 지석은 쫓겨나듯 집을 나왔고, 잠시 뒤 여기저기 헤매며 목매도록 자신을 부르는 모친의 모습을 숨어서 지켜보아야만 했다.
‘무엇이 옳은 것일까?’
두 번 다시 실패한 인생을 살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가정의 평화를 깨는 것 또한 옳지 못한 일이었다.
지석은 조용히 눈을 감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차차 머릿속이 정리되며 명료해졌지만, 감정까지 정리가 되는 건 아니었다.
어렵사리 걸음을 옮기자 점점 모친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저려 오는 가슴을 달래고자 하염없이 걸었다.
창경궁과 비원을 지나도록 마음의 짐은 덜어지지 않았다.
종로 쪽엔 대학생들의 시위가 한창이었다. 1990년엔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는 일이었다.
가두시위까지 벌이며 차량의 진행을 막고 있다.
분명 애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였다. 물론 그들의 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당장 불편과 피해를 주더라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정의와 진실을 알리고자 하는 목적이 숨어 있을 테니까.
그러나 저 친구들 중에도 지금의 파렴치한 정치인, 기업인들과 다를 바 없는 사람도 있다.
시위에서 유명세를 떨치던 자들이 정작 그 자리에 올라 수많은 비리를 저지르는 모습들을 언론 매체들을 통해 똑똑히 목격하지 않았던가.
곧 방패와 진압봉을 든 전경들이 배치되며 대학생들과 대치 상태에 들어갔다.
여기저기에서 화염병을 든 대학생들이 나섰다. 하늘로 포물선을 그리며 솟구친 화염병들이 전경들 인근으로 떨어지며 아스팔트에 불을 질렀다.
검고 메케한 연기가 하늘로 치솟을 즈음, 전경들이 양옆으로 일제히 비켜났다. 그리고 그 사이에 뚫린 길로 철판을 두르고 쇠창살로 창을 가린 시위진압차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상념에 빠져 아직 자리를 빠져나가지 못한 나머지 지석은 아차 싶었다.
늦게라도 걸음을 떼려는데, 시위진압차로부터 철통이 쏘아졌다.
팍! 푸슉!
여러 발의 철통은 곳곳에 떨어지며 자욱한 연기를 뿌렸다.
최루가스였다.
그것은 삽시에 사람들의 호흡기를 마비시켰다.
“으욱!”
“꺅!”
절반 이상의 시위대가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는 중이다. 지석 또한 예외가 못 되었다.
‘크흡…….’
급히 호흡을 멈추었지만, 폐부를 파고드는 최루가스에 반자동적으로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고 코와 입에서도 액체가 쏟아졌다.
실눈을 뜨고 바라본 광경은 아비규환이었다.
사방에서 헛구역질과 구토를 하는가 하면, 앞을 전혀 보지 못해 조금 전까지 함께 가두시위를 하던 동료를 치고 달아나는 사람도 있었다.
그 와중에서도 화염병을 든 인물 몇몇은 손수건으로 입을 막은 채 용감하게 전경들과 대치했다.
그러나 곧 그들조차 상당수가 전경들의 진압봉을 버티지 못하고 피를 흘리거나 쓰러져 갔다.
더는 버틸 수 없다고 생각했던지, 최후까지 남아 있던 인원들도 뿔뿔이 흩어지며 달아나기 시작했다.
최루가스가 점점 진해지고 있어, 지석 역시 시위대 틈바구니를 비집으며 정신없이 달렸다.
파고다공원에 이르러서야 지석은 겨우나마 숨을 돌릴 수 있었다. 그러나 아직 고통에서 벗어날 순 없었다. 이 당시의 최루가스는 매우 지독해서, 자리에서 벗어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게 아니었다.
수돗가를 찾아 물로 얼굴을 헹궈서야 좀 살 것 같았다. 그렇다고는 해도 아직 쓰라리고 따끔한 느낌까지 가신 건 아니었지만.
지석이 자리를 뜨려 할 때, 곧이라도 죽을상으로 얼굴을 구긴 남자가 수돗가를 찾았다. 공교롭게도 그는 지석에게는 낯익은 얼굴이었다.
“혹시 홍경익…… 씨?”
자신이 아는 그와 닮은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물은 말이었다. 하지만 그는 정말 홍경익이었다.
“누, 누구세요? 절 아시는지?”
모를 리 없었다. 홍경익은 장차 서울시장이 될 사람이었으니까.
급하긴 급했는지 얼른 수도꼭지를 틀려던 홍경익이었지만, 지석이 그의 수도꼭지를 잡아 버렸다.
“왜 이래요?”
영문을 모르는 홍경익에게 지석이 못마땅한 눈초리를 전하며 불쾌한 음성을 실어 물었다.
“당신, 시위 왜 하는 거야?”
“시위를 왜 하다니? 나라 꼴이 엉망이니까 하는 거 아닙니까.”
“뭐가 엉망인데?”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채 그는 혀를 차며 지석을 나무랐다.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 여기 있었군. 이보슈, 당신네 같은 무지한 사람들 일깨워 주려고 우리가 이 고생을 하는 거요. 당신 지금 이 나라가 어떤지 모르지? 독재자들이 나라를 말아먹으려고 해. 피 보는 건 우리 같은 서민이고.”
“당신이 지금 그렇게 욕하는 사람들과 다를 것처럼 말하는군.”
“사람 모욕하는 것도 유분수지. 그게 무슨 소립니까? 내가 세상에서 제일 경멸하는 놈들이랑 같을 거란 얘깁니까?”
지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익!”
따가운 눈을 비비다 통증이 더 심해져 짜증이 치밀었는지 홍경익은 수도꼭지를 쥔 지석을 밀쳐 내려 애를 썼다. 하지만 지석은 한 발자국도 물러나지 않았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홍경익은 선천적으로 체력이 남들보다 약했던 데다, 공부만 하던 샌님이었으니까.
쓰라린 눈을 견디지 못하고 홍경익이 애걸복걸했다.
“이러지 맙시다. 이러다 눈이 멀겠어요. 장님 되면 그쪽이 책임져 줄 겁니까?”
“당신은 차라리 장님이 되는 게 나아.”
독재만 나쁜 게 아니다. 제 잇속 채우느라, 무수한 비리를 저지르며 사람들을 사지로 내모는 일 또한 몹쓸 행위였다.
홍경익.
그는 서울시장을 지낸 역대 그 어떤 인물들보다 악명이 높았다.
골목상권이나 재래시장 자체를 인정하려 들지 않았고, 개발 이익이 걸린 일엔 피도 눈물도 없이 세입자들을 거리로 내쫓았다. 뿐만 아니라, 사방에 공사를 벌여 서울시 재정을 악화시켰는데, 그중엔 불필요한 공사들도 많았던 데다 부실공사로 인해 건물이 무너져 완공 1년 만에 천여 명의 시민들이 죽거나 다쳤다.
또한, 인체에 해로운 자재들을 사용한 공사를 승인하여 서울시민의 젖줄과도 같다는 한강의 수질을 돌이키기 힘들 정도로 악화시킨 장본인이기도 하다.
“대체 나한테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이러는 겁니까?”
“왜 이러냐고? 당신은 당신이 지금 그렇게 욕하는 사람들보다 더한 종자니까.”
“말도 안 되는 소리 좀 하지 맙시다. 내가 살면서 일가친척은 물론 친구들한테도 욕을 먹은 적이 없는데, 어디서 그런 유언비어를 듣고 와서 뱉는 겁니까? 당신은 대체 뭐 하는 사람이기에?”
그의 마지막 말은 지석에게 쓰라리게 들려왔다.
제 코가 석자이지 않은가. 잘난 것 하나 없는 놈이 명문대 대학생을 가르치려 하고 있었으니까.
한편으로 지석은 자신이 너무 앞서있다는 사실을 인지했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이 아닌가.
그러나 이대로 전생, 아니 미래를 기억하는 지석은 그를 놓아줄 수가 없었다.
“당신이 많은 사람을 다치게 할 거야.”
경고를 전하는 지석에게 홍경익이 따져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그렇게 안 살 수 있어?”
“당연한 얘기를… 그보다 죽겠습니다. 이젠 좀 비켜주십시오”
지석은 그제야 수도꼭지를 쥔 손에 힘을 풀었다.
“그 마음 오래 가져가기를…….”
연거푸 물을 얼굴에 끼얹는 그에게서 지석은 천천히 떠났다.
불쑥 자신이 보았던 미래의 그가 옳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손가락질을 받고 욕과 원망을 듣더라도 결국 자신만 잘살면 그만인 게 이 나라가 아닌가.
맥없이 땅만 쳐다보고 걷던 지석은 종로2가를 지날 때서야 비로소 정신이 들었다.
보신각 근처, 관철동의 밤거리에서 조명들의 화려한 불빛이 쏟아지는 중이다. 술에 취해 어깨동무를 하며 희희낙락하는 행인들 중엔 분명 지석의 또래들도 있었다.
정처 없는 듯하던 지석의 발걸음을 붙든 건, 한 카페의 창문에 붙은 문구였다.
아르바이트 구함
- 작가의말
수정한 내용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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