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8. "하, 카, 그리고 타"
“뭐야, 갑자기.”
“...잠시 놓고 온 게 있어서요. 잠깐만 들어갔다 올게요.”
“누가 멋대로 움직이라고 했습니까. 지금 당장...”
“에이~ 안 도망가요. 진짜 얼른 다녀올게요!”
하카이트의 말에도, 아인은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동굴 안으로 뛰어 들어간다.
“저 자식이... 푸요, 너가 가서...”
“...아닙니다, 장군. 곧 나오겠지요.”
나의 말을 가로막는다 하카이트.
“하지만...”
“괜찮습니다. 저는 먼저 가 있을 테니, 나오면 데리고 펠리온차 있는 곳으로 오세요. 어디인지는 알고 있으시죠?”
“네, 넷! 제가 알고 있습니다. 바로 뒤따라가겠습니다.”
대답하는 푸요.
“그럼 잠시 뒤에 뵙죠.”
하카이트는 숲속을 향해 걸어간다.
하카이트의 대담함이야...
차도스의 그 누구도 알고 있어.
아무리 그래도, 명색이 포로인 아인을...
저렇게 스스로 행동하게 내버려둬도 되는 건지...
그래도 하카이트의 말씀이니, 믿는 수밖에.
분명, 믿는 구석이 있으니까.
저렇게 행동하시고 말씀하셨을 테지.
“진짜로 금방 걸렸죠? 빨리 가시죠!”
...진짜 본인의 말대로, 꽤나 빨리 돌아왔군.
하카이트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
아인은 숨을 몰아쉬며, 동굴 밖으로 뛰어 나왔다.
“...너, 진짜로 수상한 행동 한 건 아니겠지?”
“에이~ 전 지금 몹시 기대감에 차 있는 상태라고요.”
“...무슨 말이야. 넌 지금 포로라고. 도대체 무슨...”
“아이, 시간 없는 것 같으니까 이동하면서 얘기해요. 가는 길에 시간 많을 거 아니에요~ 빨리 갑시다!”
...어이 없네.
누가 보면. 같은 편끼리 소풍가는 줄 알겠어...
...
“여기입니다... 응?”
“어?”
!!!
허리 높이의 턱을 올라서자.
숲 한가운데에서, 조그마한 원형의 들판이 나왔고.
그 가운데에서, 우리에게 등을 진 채로 서 있는 하카이트.
하지만 정말로 우리의 시선을 끈 건.
하카이트가 아니다.
하카이트의 손동작에 맞춰,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회색 천으로 덮여 있는 커다란 덩어리다.
“때마침 잘 오셨습니다. 걷어내는 걸 좀 도와주시겠어요?
“네, 알겠습니다!”
“우와...”
푸요와 아인은, 나를 바닥에 얌전히 앉힌 후에.
천 한 쪽 면의 두 모퉁이를 각각 잡는다.
카이트가 신기했던 모양인지.
놀란 기색을 숨기지 못하는 아인.
둘이서 한 방향으로 덮개를 끌어내자.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건...
우리의 펠리온과 펠리온차.
그리고 우리와 싸운, 아인의 펠리온이다.
사물을 투명화하는 카이트였던 건가.
무궁무진하구나, 카이트의 세계란...
“이제 일어날 시간이에요.”
다시 한 번, 카이트를 시전하는 듯한 하카이트.
얼핏 봐도...
동작이 조금 전의 카이트와는 전혀 다르다.
으르르르...
눈을 슬며시 뜨기 시작하면서.
특이한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사람으로 따지면 하품을 하는 것 같았다, 아마도.
너무나도 특이한, 아인의 동물...
우리 펠리온과, 펠리온차를 끌고 있던 펠리온들도.
같이 깨어나기 시작한다.
“카슘! 무사해서 다행이야! 잘 지냈지?”
아인의 말에, 벌떡 일어나더니.
아인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비비는 카슘.
...흐음.
나를 물어뜯어 버린 존재라 그런지...
저항할 수 없는 거부감이 든다.
조심해야겠어.
아인은 훌륭한 인재라고 생각하시니까.
그렇다 치더라도.
저 동물은, 하카이트께서 어떻게 조치하실지...
카슘...이라고 했지?
이름까지 붙어있는, 괴상하게 생긴 펠리온.
“미리 말해두는데, 당신은 당신의 펠리온을 타고 가는 게 아닙니다.”
“네? 무슨 말이에요?... 아~ 아저씨, 저 안 도망간다니까요!”
“그건 이제 그만 말해도 됩니다. 안 도망갈 거라는 거, 저도 알고 있습니다. 그게 문제가 아니라서 그러는 거예요.”
“그럼 뭐가 문제인 거예요?”
“음. 말하자면 복잡하지만... 딱 잘라 말한다면, ‘저 동물은 사람들의 눈에 안 띄는 게 좋겠다’ 정도가 되겠네요.”
“...그 말은, 카슘을 또 재운 다음에 펠리온차에 태울 거란 말인가요?”
무의식 중에 떠오른 질문을.
나도 모르게 내뱉어 버렸다.
“아뇨. 아무리 안정적인 카이트라도 과잉 사용엔 항상 부작용이 따릅니다. 게다가 ‘니키리키’는 위험 요소를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 카이트에요. 불가피하긴 했지만, 저 동물은 카이트로 인해 너무 오랫동안 잠들어 있었습니다. 더 이상의 인위적 수면은 위험할 가능성이 있어요.”
...니키리키라.
강제로 잠을 자게 만드는 카이트의 이름인가 보군.
“그럼...?”
“네, 당신이 카슘을 완벽하게 조종할 수 있으니, 카슘이 순순히 펠리온차에 탄 채로 있게 해 주세요.”
“아니... 내가 아무리 도망 안 간다고 계속 말했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저를 너무 얕잡아 보는 거 아니에요?”
“아뇨, 절대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하카이트는...
양손으로 서로 다른 동작을 재빠르게 해 나간다.
요 며칠 짧은 기간 동안.
카이트가 구사되는 모습을 보니.
이제야 조금씩, 카이트의 손동작이...
눈에 익기 시작하는 것 같아.
두 손의 움직임은 서로 달랐지만.
불규칙적이면서 규칙적인 움직임이라고 해야 할까.
매번 다른 카이트였고, 그에 따라 동작도 다 달랐지만.
공통점이 있긴 있었다.
두 손이 각각, 다른 그림을 그리는 듯한 움직임.
그리고 하나의 복잡한 그림을 그리는 동작이라기보다는.
단순한 그림을 여러 개 순차대로 그려내서 조합한다.
...라는 느낌?
카이트에 따라, 양손이 각각 그려내는...
그림의 개수와 조합이 다른 것처럼 보여.
때로는 두 손이 동시에 한 그림을...
분담해서 그릴 때도 있는 것 같고...
아.
마음은 막 앞서는데, 표현력의 한계군.
쉬리릭!
“악! 이게 뭐야?!”
...짧지 않은 시간 끝에.
하카이트의 양손 사이에서 나타난, 푸른빛의 밧줄.
소용돌이 모양을 그리며 만들어 지더니.
곧바로 아인에게 날라가, 아인의 몸을 휘감았다.
“‘탄시’라는 카이트입니다. 여기에 속박되는 대상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타’나 ‘카’, 그리고 그와 관련된 특수 능력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쳇. 이러면 불편하잖아!”
“어쩔 수 없지요. 포로니까요.”
“...음. 잠깐만! 이러면 내 카가 봉쇄돼서 카슘을 아저씨 뜻대로 움직이게 할 수 없겠어요~”
“죄송합니다만, 이미 다 파악했습니다. 당신이 카슘을 움직이는 건, ‘카이파’를 구사해서가 아니라. 아예 카가 애초부터 서로 연결돼 있다는 걸요.”
“...무슨 말이지?”
“한 번에 알아먹게 설명드리죠. ‘현재 상태로도 카슘이랑 통할 수 있다’.”
“...칫. 재미없어.”
...
덜컹, 덜컹, 덜컹...
끼릭, 끼릭, 끼릭...
우리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펠리온차가 숲으로 들어온 자국을 그대로 따라 갔고.
결국, 리리 협곡의 도로가 나왔어.
현재, 펠리온을 탈 수 없는 난...
펠리온차 앞, 선탑자의 자리에 탄 상태.
노란 푸요는, 원래대로 펠리온차를 몰았고.
아인은 나와 푸요 사이에 묶인 채로 앉았다.
아인이 비록, 아이이긴 하지만.
두 명 공간에 세 명이 타서 그런가.
...조금 비좁긴 하군.
아인의 나이, 몇 개월인지는 모르겠지만.
앳된 얼굴과 분위기치고는.
키와 덩치가 작은 편은 아니야.
아인의 펠리온은, 짐칸에 탔어.
하카이트 말대로, 말썽 부리지 않고 얌전히 있는 것 같다.
내가 타고 온 펠리온은 펠리온차에 추가돼.
현재 총 3마리의 펠리온이 차를 끌고 있어.
출발 전 푸요는, 하카이트의 지시에 따라.
짐칸에 있었던 예비 마구로, 차량과 내 펠리온을 연결했다.
확실히, 펠리온차에 사람 둘뿐만 아니라.
대형 동물 하나까지 추가로 탔으니.
무게가 무거워진 만큼...
펠리온이 추가될 필요가 있었어.
이젠 오르막길이니까 하중도 더 크게 실리는 만큼.
펠리온 세 마리가 끌어야 했을 터.
“루룰루룰루~”
“...뭐가 그렇게 신났어.”
“새로운 삶이 저를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무슨 말이야?”
“용병으로 살아가는 삶은 어떨지 기대가 커요. 이제 드디어! 저도 세상이 인정해 주는 직업을 처음으로 가지는 거니까요.”
“이 아이가 착각을 아주 단단히 하고 있네... 넌 포로야, 포로.”
“그거야 그렇죠, 지금 당장은. 하지만 전 곧 차도스의 부름을 받고 용병이 될 거에요. 랄라라~”
“아니, 그걸 어떻게 아냐고. 반대로 처형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해 봤어?”
“당연 해 봤죠. 그런데 저를 처형했을 거면 진작 했겠죠, 안 그래요?”
“...”
“그리고 그거보다 더 중요한 건, 지금 분위기상 제가 ‘고.급.인.력’으로서! 저 하얀 망토 아저씨의 눈에 들어 왔다는 거죠~”
...이 자식.
눈치 하나는 겁나 빠르군.
지난번 잠결에.
하카이트와 나 사이의 대화를 들은 건가.
어쨌든 간에, 이걸 어쩐다...?
내가 중간 책임자로서 기강을 바로 잡아야 하나.
아니면, 하카이트께서도 가만히 계시는데.
내가 나서는 건, 경우에 어긋나는 건가.
“그렇게 억지로 쾌활한 척 하면서, 자신을 숨길 필요는 없습니다.”
...아인에게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고민 중이었던 참에.
앞서 가고 있던 하카이트가.
뒤돌아보지 않은 채 말을 꺼냈다.
“무슨 말이에요, 아저씨. 난 지금 진짜로 설레고 있다고요. 솔직히 말해서, 용병이 되는 건 오래 전부터 제 꿈이었으니까요. 성인이 될 때까지 힘과 실력을 길러서, 실제로 용병단에 지원하려 했다니깐요~”
“당신의 마지막 친구, 분명히 살아 있을 겁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혼자서도 굳건히, 세상을 이겨낼 수 있을 겁니다.”
...?
내 옆에 닿아 있던 아인의 어깨가.
들썩이는 게 느껴진다...?
...고개를 돌려 보니.
아까부터 계속 웃고 있던 아인의 두 아랫눈시울에.
물이 빠르게 차오르고 있다.
“어...?”
아인도 자신의 눈물에 놀랐는지.
표정엔 아직 웃음이 남아 있었지만.
갑자기 터져 나온 눈물은, 그의 표정을 압도했다.
아인의 눈물은, 자기 자신이.
어떤 감정을 마음속에 숨겨두고 있었는지를.
깨닫게 해 주었다.
급기야 얼굴을 아래로 숙이며, 눈물을 가리려 하지만.
점점 커져 가는 흐느낌을 가리기에는.
...아인의 슬픔은 마치.
손바닥 위의 하늘 같았다.
...
한참을 울던 아인.
조금씩 마음을 가다듬는 것처럼 보인다.
눈물을 어깨로 닦아 내려고 하지만.
묶여 있어 그런지, 닿지 않는다.
“...잠시만.”
난 왼쪽 가슴주머니에 있던 손수건을 꺼내.
아인의 얼굴을 닦아 준다.
“고마워요, 아저씨.”
“부끄러워 할 필요 없어. 친구를 위해서 우는 건 자연스러운 거니까.”
“흥, 어른스러운 척 하지 말라고요... 저도 알아요...”
...참나.
기껏 위로해 주려고 말했더니.
“...하카이트 아저씨.”
“...”
“하카이트 아저씨!!”
아인의 부름에, 하카이트께선 대답이 없다.
“...쳇. 혼자 멋있는 척 다하네. 그나저나 어떻게 안 거에요, 제 마음을? 지난번에 이야기한, 카인가 카이파인가 하는 걸로 제 속을 들여다 본 거예요?”
“아뇨.”
“...말도 안 돼요. 그런데 어떻게 알아요?! 이런 경험 처음이에요.”
“...”
“나도 모르고 있었던 '나‘를 누가 이야기해 줘서!... 나의 모습에 제 자신을 주체할 수 없게 되는!... 그런 경험 말이에요!!”
“아닙니다. 그건 카이파도 카이트도 아닌.”
“...”
“...그저, 평범한 ’공감‘일 뿐입니다.”
‘공감‘.
그 단어를 들으니.
옆에서 대화에 참여하지 않고 있는 내 자신의 마음도.
...차분해지고 있음을 느낀다.
엄밀히 말하면.
차분함 반, 경외심 반, 이랄까.
아니나 다를까, 아인의 표정을 살피니.
나랑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지금은 거울이 없어서.
내 표정이 어떤지 알 길은 없지만.
아마도 내 표정이 저 표정과 비슷할 것이다.
...라는 느낌이랄까.
“타에 정진해 극에 이르면, 카에 도달하게 되며. 카에 정진해 극에 이르면, 곧 하에 도달하게 됩니다.”
느낄 수 있어.
우리 셋 모두, 모든 신경을 곤두세워.
하카이트의 말에 집중하고 있음을.
“하지만 하의 끝에는 결국, 타가 있는 것.”
“...”
“...”
“조금 전 그건, 주제넘게도... 제가 그 경지를 본의 아니게 우연히 도달한 것이겠지요.”
[하, 카, 그리고 타] 1장 끝.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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