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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세상 님의 서재입니다.

마지막 귀환자는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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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감자세상
작품등록일 :
2023.05.10 11:25
최근연재일 :
2023.09.15 08:40
연재수 :
113 회
조회수 :
121,184
추천수 :
1,878
글자수 :
625,145

작성
23.08.09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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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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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처음의 인간

DUMMY

남자는 베르사유 궁전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넓은 공간은 인기척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텅 비어 있었다.

남자는 그곳에 선 채 주변을 둘러봤다.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남자가 방향을 정했다.

복도를 지나자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타났다.

남자는 거침없이 계단을 내려갔다.

점점 어둠 속으로 남자는 잠식되듯 스며들었다.


지하의 복도는 어두웠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남자의 주변에는 은은한 빛이 맴돌았다.

마치 남자가 무언가에 걸려 넘어지거나 장애물에 부딪치지 않게 막아주기라도 하듯이.


어두운 복도는 길게 이어져 있었다.

남자는 천천히 걸었다.

그때였다. 복도 어둠 저편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목소리가 들리자 남자가 멈췄다. 하지만 대답하지 않았다. 보이지도 않는 상대에게 대답할 생각은 없는 남자였다.


“누구냐고 물었다.”


무언가 앞으로 다가왔다. 아누비스였다.


“아! 아누비스?”

“나를 알고 있나? 그대는······ 신이 아닌 인간이군. 인간이 여기에 오면 안 된다는 것을 모르는 건가? 밖에 있는 놈들은 도대체 왜 그대를 안으로 들여보낸 거지?”

“날 죽여줘.”


남자가 갑자기 아누비스에게 말했다. 그리고 다가왔다.

하지만 아누비스는 신중했다.

그가 한 말을 들었지만 들어줄 생각은 없었다. 왠지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멈춰라.”


아누비스의 말에 남자가 멈췄다.


“죽여달라고? 그걸 위해서 여길 찾아왔단 말인가? 밖에 있는 놈들도 충분히 할 수 있었을 텐데?”

“아니, 그들은 실패했어.”

“실패?”


이해할 수 없었다. 인간 하나 죽이는데 신이 실패하다니.


“밖의 입구를 확인해 봐라.”


아누비스가 누군가에게 연락했다. 그리고 이내 보고를 받았는지 인상을 썼다.


“그 둘을 죽인 건가? 그대가?”


화가 나기 보다는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인지도가 떨어져도 신이다. 그런데 인간에게 그렇게 쉽게 당하다니.

그리고 지금 눈앞의 인간은 용사 같은 힘을 가진 것도 아니다.


“내가 죽인 게 아냐. 그들이 죽은 거야. 난 아무도 못 죽여.”


남자가 말했다.


“그런가? 여길 왜 온 거지? 죽여달라고 온 건가?”

“아! 사실은 누군가를 찾으러 왔어.”

“누굴 찾으러 왔지? 여기에 그대가 찾는 신이 있나?”

“신은 아니고······ 내가 찾는 건 사람이야.”

“사람? 여기엔 사람이 없다. 모두 신뿐. 잘못 온 것 같군.”


아누비스는 이 남자를 건드리지 않는 것으로 정했다. 왠지 불길한 기분이 점점 더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냐. 한 명 있어. 난 그 사람을 만나러 왔어.”

“없다. 여기에 인간은······”


하지만 아누비스는 순간 누군가를 떠올렸다.

이 안에 있는 유일한 인간을. 그리고 지금 눈앞의 남자는 그 인간을 찾아왔다는 것을.

우선 여기에 있다는 것을 알아챈 것도 놀라웠다. 아무도 모르게 은밀히 감췄기 때문이다.


“어떻게 알고 왔지? 누가 알려줬나?”


아누비스가 의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 난 그냥 알 수 있어.”

“그냥? 누가 알려준 게 아니라는 건가?”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만나게 해주지. 대신 그대가 먼저 만나야 할 분이 있다.”

“그게 누구지?”

“그 분을 얌전히 만난다면 네가 찾는 인간을 만나게 해주마. 어떤가?”

“좋아.”


남자는 순순히 응했다.


“따라와라.”


이누비스가 앞장서 걸었고, 그 뒤를 남자가 따랐다.


***


엘로힘은 눈앞의 남자를 유심히 지켜봤다. 말 그대로 아무 힘도 없어 보이는 남자였다. 그저 평범한 남자.

남자는 허름한 옷을 입고 있었고, 자신이 누구 앞에 와 있는지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듯했다.


“내가 누군지는 알고 있는 것인가?”


엘로힘이 물었다.


“엘로힘. 아닌가?”


남자가 대답했다. 그것도 무척 시큰둥하게.


“그것을 알면서도 나에게 그런 태도를 보이는 것인가? 죽고 싶은가 보군.”


순간 엘로힘의 말을 들은 남자가 반색했다.


“정말? 정말 그래 줄 수 있어? 정말 날 죽여줄 수 있어?”


갑작스러운 감정의 변화를 보이며 남자가 엘로힘에게 다가갔다.

물론 아누비스가 그런 남자를 밀쳐내 더는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다. 하지만 무표정했던 남자의 눈에 생기가 돌았다.


“나는 신의 대리인. 신의 힘을 가지고 있다. 너 하나 죽이는 것은 일도 아냐.”

“그, 그러면 정말 날 죽여줘. 부탁이야. 죽고 싶어.”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엘로힘은 이상했다.

그저 평범한 인간이다. 그런데 죽고 싶다고 했다. 진작에 험한 세상 속에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그런 사람이었다.


“소원이라니 데리고 나가서 죽여라.”


엘로힘이 아누비스에게 명령했다.


“안 됩니다. 엘로힘 님!”


하지만 아누비스가 반대했다.


“어째서?”

“그를 죽일 수 없습니다. 보고드린 대로 그를 죽이려던 문지기가 모두 죽었습니다.”


하긴 보고를 들었던 내용이 있었다.

아무리 허접하다 해도 신으로 추앙받던 존재들이었다. 그런 존재를 인간이 죽였다. 그렇다면 이 남자도 힘을 숨기고 있는 것일까?


“어째서 죽일 수 없는 거지?”

“이 자는 신의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신의 보호를?”

“네. 바벨탑에 봉인된 신의 보호를.”


의외의 사실이었다.

바벨탑에 봉인되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신의 보호를 받는 자가 있다니.

엘로힘이 관심을 가졌다.


“재밌구나. 한 번 시험해 봐야겠다.”


엘로힘이 누군가를 불렀다. 그것은 막 합류한 신참 신이었다.

아프리카의 구석에서 신으로 추앙받던 존재라고 했으나 신이라기보다는 조금 강한 영적 존재에 불과했다.


“나를 불렀소?”


그런데도 꽤 어깨에 힘을 준 채 이름모를 신이 엘로힘 앞에 섰다.

아누비스는 당장이라도 모가지를 비틀어 버리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눌러 참았다.


“그대에게 한 가지 제안을 하지.”

“제안?”

“그렇다. 지금 저기 있는 남자를 죽이면 그대를 요직에 앉혀 주겠다.”


이름 모를 신이 남자를 봤다. 아무것도 모르는 남자의 얼굴을 보며 이름 모를 신이 인상을 썼다.


“지금 나더러 아무 힘도 없는 인간을 죽이라는 거요? 고작 이걸로 요직을 추겠다? 나를 놀리는 것도 아니고.”

“내가 그대를 놀린다고 생각하나?”


엘로힘이 이름 모를 신을 바라보며 말했다.

하긴 엘로힘이 직접 하는 말이다.

자신을 중용하지 않을 거라면 그냥 내치면 된다. 그런데 이런 일을 시키는 것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마치 충성심을 시험하는 것처럼.


“흠. 좋소. 약속을 어길 생각이나 하지 마시오.”


이름 모를 신은 호기롭게 남자에게 다가갔다.

남자는 다가오는 이름 모를 신을 보며 헤헤 웃고 있었다.


“나 죽여줘. 죽고 싶어. 진짜.”


남자가 말했다.


“그러냐? 좋다. 인간의 소원을 들어주는 것 또한 신의 임무. 내 너의 소원을 들어주마.”


이름 모를 신이 손을 뻗자 나무로 만든 창이 그의 손에 나타났다.

다양한 주술적 문양이 새겨진 창이었다.


“이 창에 새겨진 글자는 그대를 편안한 세상으로 인도할 것이다.”

“진짜? 드디어 나 죽는 거야?”


이름 모를 신이 남자를 향해 창을 높이 들어올렸다. 그리고 그대로 몸을 꿰뚫으려 했다.

하지만 순간 창이 바로 눈 앞에서 두 동강이 나 부러지고 말았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이름 모를 신은 놀란 표정으로 부러진 창을 바라봤다.

자신의 창은 부러지지 않는다. 그렇게 믿었다. 그런데 두 동강이 났다. 게다가 상황은 끝나지 않았다.

부러진 창의 날카로운 부분이 빠르게 회전하며 이름 모를 신을 향해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푹!


창은 그대로 이름 모를 신의 목을 꿰뚫고 반대로 나왔다.


“꺼어억······ 어억······”


이름 모를 신은 그 자리에서 아무것도 해보지 못한 채 그대로 숨이 끊어졌다.

나름 죽음에 대한 희망을 가졌던 남자는 실망했고, 엘로힘은 미소를 지었다. 정말 죽일 수 없는 인간이었다.

물론 자신이 직접 나선다면 다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신의 보호를 받는다는 점에서 괜한 무리는 할 필요가 없었다.


“정말이었군.”

“그렇습니다. 엘로힘 님.”

“그대가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엘로힘이 남자에게 물었다.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누구지?”

“릴리스.”

“릴리스를 왜 만나려 하지?”

“아내였으니까.”


의외의 대답이었다. 아누비스도 예상하지 못한 대답이기도 했다.


“그대의 이름이 뭐지?”

“나?”


남자가 되묻더니 이내 자신의 이름을 말했다.


“내 이름은 아담(Adam). 처음의 인간이야.”


***


지하에 만들어진 감옥에 릴리스는 갇혀 있었다.

양다리에 쇠사슬이 묶여있어 어디론가 이동이 불가능했고, 심지어 목에도 쇠사슬이 채워져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제외하고는 나름 멀쩡했다. 고문을 당한 흔적도, 그리고 신체를 억압했던 흔적 같은 것은 없었다.


문이 열리고 아누비스가 들어왔다.

릴리스가 힐끔 보더니 고개를 돌렸다. 아직도 도도한 표정이었다.


“식사 시간도 아닌데 무슨 볼일이지?”

“너를 만나고 싶다는 자가 찾아왔다.”

“나를? 흥. 누구든 내 매력에 빠져들기 마련이지. 하지만 날 설득하진 못할 거야. 내 마음 속에 있는 건 늘 하나 였으니······”


하지만 릴리스는 문 안으로 들어온 남자를 보며 말을 잇지 못했다. 게다가 벌어진 입도 다물지 못했다.


“당신이 여기는 어떻게······”


릴리스가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곳에 아담이 서 있었다.

아담이 뒤에 서 있는 아누비스를 돌아봤다.


“둘만 있고 싶은데.”

“그러지. 둘만 있게 해주겠다.”


아누비스가 쿨하게 밖으로 나가고 문이 닫혔다.

이제 실내에는 아담과 릴리스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고생은······ 그래도 별로 안 했나 보네.”


아담이 릴리스를 보며 말했다. 그녀는 아담의 말에 얼굴이 붉어지며 고개를 돌렸다.


“내가 여기에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았어?”

“그런 건 자연스럽게 알게 돼. 언제나 당신이 있는 곳은 늘 알고 있었어.”

“그러면 왜 전에는 찾아오지 않았어?”


릴리스가 눈을 날카롭게 뜨며 물었다.


“날 찾아올 수도 있었잖아. 다시 날 원한다면 만나러 올 수도 있었잖아.”


하지만 아담은 한숨을 쉬었다.


“난 널 만나러 갈 수 없었어. 지옥은 내가 갈 수 없는 곳이야.”

“살아있는 존재도 충분히 오가는 곳이야.”


하지만 아담은 고개를 저었다.


“난 안 돼. 내 몸이 지옥에 간다면 그건 곧 지옥이 사라진다는 의미니까.”

“그게 무슨 말이야?”


아담이 자신의 상의를 걷어 올려 배를 보여줬다.

그곳에 어떤 표식이 새겨져 있었다.


“그게 뭐야?”


릴리스가 물었다. 그녀 역시 처음 보는 표식이었다.

아담이 웃었다.


“신의 저주.”

“신의 저주?”

“그래. 나는 신의 보호를 받고 있어. 내가 어떻게 아직까지 살아있는지 궁금하지 않은 거야?”


릴리스는 잊고 있었다. 아담은 인간이다. 인간에게는 수명이 존재한다.

자신에게는 신의 은총이 있고, 루시퍼의 권능으로 생명을 연장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담은 아니다.

아니 아담도 신의 은총이 있었다. 그러나 두 번째 부인의 실수로 은총을 빼앗겼다고 들었다. 그것이 릴리스가 알고 있는 아담의 마지막이었다.


“나는 죽지 못해.”

“죽지 못한다니?”

“신이 날 보호해주고 있지. 날 죽이려는 자가 오히려 해를 입어. 그야말로 불사가 된 거야. 정작 나 자신은 아무런 힘이 없는데.”


릴리스는 멍하니 이야기를 듣고 있다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잠깐만! 그건 당신 아들 아냐? 큰아들인 카인에게 신이 내린 형벌 아니었어? 그걸 왜 당신이?”


릴리스의 말에 아담이 짧게 웃었다.


“아이의 죄는 부모의 죄니까······ 내가 짊어졌지. 그리고 지금까지 살아왔어. 그런데 릴리스 네가 세상에 나온 걸 알게 됐어. 그래서 만나러 온 거야.”


아담은 그대로 다가와 릴리스를 와락 안았다.

그때였다. 릴리스의 발과 목에 채워져 있던 쇠사슬의 기운이 약해졌다. 그것은 릴리스도 아담도 모두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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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의 인간 +1 23.08.09 493 9 12쪽
84 전쟁의 약속 +1 23.08.08 506 9 12쪽
83 얼굴 보고 얘기하려고 +1 23.08.07 558 10 13쪽
82 타보트는 세계수로 +1 23.08.04 529 10 12쪽
81 타보트와 세 괴수 +1 23.08.03 525 12 12쪽
80 레비아탄 +1 23.08.02 505 12 12쪽
79 타보트 +1 23.08.01 569 10 13쪽
78 경매장 +1 23.07.31 554 12 12쪽
77 win win +1 23.07.28 643 12 13쪽
76 다시 모인 사고뭉치 형제들 +1 23.07.27 549 11 12쪽
75 지옥의 혈투(2) +1 23.07.26 548 13 11쪽
74 지옥의 혈투(1) +1 23.07.25 556 14 11쪽
73 헬(Hel) +1 23.07.24 566 11 12쪽
72 지옥 투어 +1 23.07.21 570 11 12쪽
71 더블 제안 +1 23.07.20 594 12 12쪽
70 형제들은 다 똑같다 +2 23.07.19 618 14 13쪽
69 끼어들면 죽어 +1 23.07.18 612 12 12쪽
68 펜리르의 분노 +1 23.07.17 634 11 13쪽
67 신을 죽이는 늑대 펜리르 +1 23.07.14 644 12 12쪽
66 형제를 찾는 여행 +1 23.07.13 669 11 12쪽
65 두 조직 +1 23.07.12 696 12 13쪽
64 진정한 쇼고스 +1 23.07.11 701 13 13쪽
63 어울리는 죽음(2) +1 23.07.10 684 16 12쪽
62 어울리는 죽음(1) +1 23.07.07 718 15 12쪽
61 누가 이딴 걸 여기에 둔 거야? +1 23.07.06 718 14 12쪽
60 조용한 곳으로 갈까 +1 23.07.05 702 14 12쪽
59 상대가 누구인지는 알아야지 +1 23.07.04 734 14 13쪽
58 통치한다는 의미 +1 23.07.03 734 17 13쪽
57 뒷정리 좀 하자 +2 23.06.30 770 15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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