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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뒹또

[개정판] 아라그린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로맨스

데뒹또
작품등록일 :
2024.02.19 10:46
최근연재일 :
2024.05.08 23:30
연재수 :
6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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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83,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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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07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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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2장: 생존] SOS (4)

DUMMY

<강민엽 & 이예지>


어느 날 강민엽은 길을 지나가다가 우연히 목격한다. 이예지가 괴롭힘 당하고 있는 장면을 말이다. 그녀는 건물 뒤편에서 여선배 생도들한테 둘러싸인 채 그저 무력하게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먼 거리였지만 강민엽은 알 수 있었다. 그녀가 눈물짓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강민엽이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여자들의 일에 남자가 개입해서 해결해 줄 수 있는 방법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대로 보고만 있을 수도 없었다. 일부러 크게 인기척을 내며 이예지가 있는 쪽으로 지나가는 척을 한다. 이예지를 괴롭히던 여생도들은 사람이, 그것도 강민엽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는 아무 일도 없었던 척하며 황급히 흩어진다.


“.. 고마워요.”

무슨 일인지 자초지종을 들어보자 그녀는 불합리한 이유로 혼나고 있던 다른 동기 생도를 도와줬다고 한다. 발등에 불이 붙어있는 건 본인임에도 말이다.

“또야?”

“.. 해야 되는 일이니까요.”

고지식했다.

“그런 마음가짐도 좋은데 그보다는 본인의 주제를 아는 게 더 중요해. 자기 힘도 제대로 파악 못하고 아무 때나 나서는 건 만용이야.”

“상대가 나보다 강하면 참고 약하면 그때 싸우라는 거예요? 만약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선택적으로 나서야 한다면 대체 군인이 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죠. 민엽 선배는 눈앞에서 누가 괴롭힘 당하고 있어도 이길 수 없을 거 같으면 참을 거예요?”

“그런 상황이면 나는 길게 볼 거야. 필사적으로 힘을 길러낸 다음 마침내 그 불의에 저항할 수 있을 만큼 강해졌을 때, 그때 싸울 거야.”

누가 봐도 이겨낼 수 없는 상황일 때는 무턱대고 덤벼들어 봤자 그저 피해자가 한 명 더 생기는 것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기보다는 열심히 노력해서 강한 힘을 기른 다음 나중에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을 돕는 게 합리적인 선택이다. 그리고 강민엽은 그것이 그저 무턱대고 덤벼들고 보는 것보다 더 어렵고 고통스러운 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럼 그동안 고통받을 사람들은 그냥 못 본 셈 치는 거예요?”

“어쩔 수 없어. 세상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차고 넘쳐. 정 그러면 당장 아프리카라도 가서 봉사활동이라도 하지 그래?”

“.. 그건 달라요.”

“뭐가 다른데?”

“만약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눈앞에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못 본 척하지 않는다면 제가 굳이 아프리카까지 갈 필요도 없을 거예요.”

“세상은 그렇게 아름다운 공간이 아니야. 세상은 불공평해. 이기적인 사람들 투성이고. 너무 이상적으로 생각하지 마. 때로는 불가능한 일도 있는 거야.”

“그건 해보지 않고는 모르는 거예요.”




어느 날이었다. 김영희가 대대장생도 자리에서 해임된다. 누군가가 김영희가 그동안 편법적으로 자행해 온 악의적인 행동들에 대한 증거를 모아서 익명으로 상부에 보고했던 것이다. 게다가 혹시나 김영희의 연줄로 무마되지 않도록 대자보까지 사방에 붙여 이 사건을 공론화를 시켰다. 결국 모든 학생들이 들고일어났다. 그렇게 김영희는 그동안 쌓아온 영향력을 한순간에 잃는다. 그리고 김영희로부터 괴롭힘 당하던 약자들은 모두 고통에서 해방되었다.


이예지는 아무 말 안 했지만 강민엽은 눈치챘다. 그녀가 그랬다는 것을 말이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증명되는 건 없어.”

“증명하려고 한 거 아닌데요.”

이예지는 무심히 말했다. 이에 강민엽은 미소 짓는다.

“잘했어.”

강민엽은 이예지가 대견했다. 그녀는 각종 괴롭힘과 핍박, 비난을 홀로 외롭게 견디고는 마침내 부당함을 바로잡았다.

“근데 뭘 그렇게 맨날 먹어?”

강민엽이 물었다. 이예지는 볼 때마다 항상 입에 무언가를 물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탕이요. 드실래요?”

이예지는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강민엽에게 건넨다. 그것은 왕포도 사탕이었다.

“너 많이 먹어. 나는 사탕 별로 안 좋아해.”

“맛있는데.”




이예지와 강민엽은 점점 더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내게 된다. 이제는 수영뿐만 아니라 식사도 항상 함께하고 공부도 항상 함께하게 되었다. 사실 강민엽이 따라다니는 것에 가까웠지만 말이다. 물론 이예지도 그게 싫지만은 않았다. 아니 오히려 그녀는 매일 강민엽이 다가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렇게 둘은 점점 더 가까워지게 된다.

“선배는 왜 군인이 되려고 하는 거예요?”

“참모총장이 되려고.”

“왜요?”

“그럼 내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을 테니까.”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권력이 생긴다. 권력이 생기면 선택지가 넓어진다. 그러면 세상을 바꿀 수 있게 된다. 강민엽은 세상을 바꾸고 싶었다. 더 좋은 곳으로 말이다.

“너는?”

“강해지고 싶어서요.”

이예지는 어릴 적 부모님을 모두 잃었다. 아버지는 사업에 실패해 매일같이 술을 마시다가 음주운전으로 사고를 내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홀로 힘겹게 생계를 이어가시다가 과로로 드러누워 결국 병사하셨다. 그렇게 그녀는 어린 나이에 혼자가 되었던 것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이예지에겐 삼촌이 있었다. 유도 사범이던 이예지의 삼촌은 그녀를 엄하면서도 사랑을 담아 길러냈다. 그리고 그녀는 삼촌을 따라 어릴 적부터 유도를 배웠다. 삼촌은 만류했지만 그녀는 어떻게든 삼촌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고 그렇게 학교가 끝나면 매일같이 삼촌의 도장에 나가 청소를 하고 일을 도우며 유도를 훈련했던 것이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된 그녀는 다음 진로로 육군사관학교를 선택하게 되었다. 학비도 없고 숙식도 제공되는 육사는 마침 삼촌에게 더 이상 부담을 주기 싫었던 그녀에게는 완벽했던 길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강해질 수도 있었다.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왜 강해지고 싶은데?”

“소중한 사람을 지키기 위해서요.”

이예지는 말했다. 그녀의 꿈은 큰 가족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이다. 모두가 행복하게 웃고 화목하고 방이 가득 찰 정도로 바글바글한 가족.

“가족을 지키려면 강해져야 돼요.”

“아니면 강한 사람을 만나도 되고.”

강민엽은 슬쩍 그녀의 손을 잡는다. 이예지는 순간 놀랐지만 손을 빼지 않는다. 그리고는 이내 강민엽의 어깨에 고개를 살짝 기댄다.




육군사관학교에는 ‘생도의 날’이라는 특별한 행사가 있다. 이 날 사관생도들은 공식 제복을 차려입고 각자의 파트너를 초청하여 함께 체육대회를 즐기고 풍성한 식사와 함께 다채로운 공연들을 감상하는 시간을 가진다. 그리고 이 행사의 대미를 장식하는 것은 바로 파트너와 함께하는 댄스 시간이다. 생도들이 각자 파트너와 함께 특별한 추억을 남길 수 있는 소중한 행사인 것이다.


매년 생도의 날을 맞이할 때마다, 강민엽은 모두의 눈길을 끄는 미모의 여성들을 초대해 데려왔었다. 그 때문에 다른 사관 생도들은 올해에는 강민엽이 과연 어떤 여자를 데려왔을까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 생도의 날, 강민엽은 뜻밖에도 아무런 파트너도 초대하지 않았다. 그 대신 그는 어디론가 유유히 걸어가더니 이예지 앞에 멈춰서 그녀의 손을 잡고는 자신의 자리로 데려갔다. 모두가 그 모습을 보고는 놀란 눈길을 보냈다. 강민엽이 이예지와 교제한다는 사실을 이 자리에서 공표한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대망의 댄스 시간이 되자 강민엽은 자리에서 일어나 이예지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예지는 수줍게 강민엽의 손을 잡고는 일어난다. 그렇게 둘은 음악에 맞춰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강민엽은 한 손은 이예지의 허리를 감싸고 다른 손은 그녀의 부드러운 손을 잡았다. 이예지 역시 강민엽에게 손을 올리고는 그의 스텝을 따라 춤을 춘다. 그리고 둘은 눈길을 교환하며 수줍게 웃는다.

“잘 추네.”

“선배도요.”

그때 강민엽이 이예지의 허리를 끌어당겨 순간 둘의 얼굴이 가까워진다. 이예지는 순간 놀라지만 이내 수줍어하며 슬며시 눈을 감는다. 강민엽은 그런 그녀에게 천천히 다가가 입을 맞춘다. 주변 생도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하지만 강민엽과 이예지에겐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 순간 시간은 잠시 멈춘 것처럼 느껴졌다.




어느덧 몇 년이 지나고 강민엽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소위로 임관되었다. 그리고 강민엽은 군사경찰 병과를 택했다. 다른 병과들과 달리 군사경찰은 본인 실력에 따라 눈에 보이는 실제 성과를 낼 수 있는 병과였기 때문이다. 빠른 진급을 원하는 강민엽에게 어울리는 선택이었다.


그렇게 강민엽은 강원도로 발령을 받게 되었고 아직 육사 3학년 생도인 이예지와는 자동차로 왕복 3시간 거리의 장거리 연애가 시작되었다. 그래도 강민엽은 최소 2주에 한 번씩은 꼭 찾아왔다. 그것도 위수지역을 위반하면서 까지 말이다. 이예지는 그런 그에게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졌다. 이루고 싶은 큰 꿈이 있는데도 시간을 내서 위험을 무릅쓰고 만나러 와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세월이 지나고 이예지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할 때가 되었다. 이때 강민엽은 강원도에서 2년 동안의 근무 일수를 채운 후 수도방위사령부 군사경찰단 소속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다시 서울로 돌아온 것이다. 이예지는 원래 처음 육군사관학교를 들어왔을 때는 정보병과를 선택해 수색대나 특전사 소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되도록이면 힘들고 험난한 곳으로 가고 싶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는 최종적으로는 공보정훈 병과를 선택하게 된다. 공보정훈은 비교적 서울에 배치받을 확률이 높은 병과였기 때문이다. 이예지는 강민엽과 멀리 떨어지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결국 이예지도 서울로 발령받게 된다. 처음엔 마냥 기뻤으나 생각보다 서로를 볼 시간이 많이 없었다. 이예지는 이제 첫 소위 임관이기에 적응하느라 바빠서 그런 것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강민엽이 문제였다. 수도방위사령부 군사경찰단 소속에서도 외부에는 발표되지 않는 특수 사건만 맡는 방첩부대로 들어간 강민엽은 밤낮없이 일했으며 휴일에는 컨소지엄이나 세미나에 참석해 수사기법을 연구해야 했기에 도저히 빈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그렇게 서로 만남이 뜸해져만 갈 때 어느 날 강민엽이 고백을 한다. 같이 한 집에서 살자고 말이다. 이예지는 기뻐하며 승낙했다. 그 뒤로 둘은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가 함께 살게 된다. 물론 그렇다고 바쁜 강민엽의 시간이 많아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전보다는 더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게 되었다.


이예지는 오랜만에 일찍 퇴근한 강민엽과 함께 저녁을 먹고는 소파에서 영화를 보고 있었다.

“오빠 담배 끊으면 안 돼?”

이예지는 강민엽의 무릎에 누운 채 그를 올려다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강민엽에게서 담배 냄새가 은은하게 배어 나왔기 때문이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

군대에서 담배는 필수였다. 그의 상관, 동기, 후임들 중 담배를 줄이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있어도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은 없었다. 진급을 위해서는 인맥은 필수였고 이들과 소통하며 친분을 쌓기 위해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 것은 있을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강민엽은 어느덧 담배에 익숙해졌고 그 또한 과도한 업무와 높은 목표에서 나오는 스트레스를 피할 수 없었기에 자신도 모르게 더 자주 피게 되었다.

“걱정되니까 그러지.”

“다 필요한 거야.”

“담배 대신 이거 먹어봐.”

이예지는 테이블 위에 쌓여있는 왕포도 사탕을 하나 까서 강민엽 입에다 가져다 댄다.

“설탕이 더 몸에 안 좋은 거 알아?”

“말도 안 되는 소리. 자 ‘아’ 해”

강민엽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아’ 안 해? 진짜 안 해? 후회할 텐데.”

이예지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에 강민엽은 흥미가 생긴듯 무심히 말한다.

“왜 후회하는데?”

“‘아’ 하면 알려줄게.”

이예지는 새침하게 말했다. 강민엽은 고민하는 척하다가 이내 입을 무심한 듯 벌린다. 이예지는 그 안에 왕포도 사탕을 쏙 넣고는 입에 뽀뽀를 해준다.

“그게 다야? 실망인데?”

“나머지는 이따가.”

이예지는 수줍게 말하고는 다시 강민엽의 무릎에 고개를 대고 눕는다.

“난 지금 받아야겠는데?”

강민엽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녀를 품에 들어 올리고는 안방으로 향한다. 이예지는 짧은 비명과 함께 수줍은 웃음을 터트린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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