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댈리

Re : 그림자 주인

웹소설 > 자유연재 > 공포·미스테리, 추리

고댈리
작품등록일 :
2019.09.01 18:23
최근연재일 :
2019.09.14 23:09
연재수 :
11 회
조회수 :
348
추천수 :
1
글자수 :
39,761

작성
19.09.14 23:09
조회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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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7쪽

또는, 아니더라도

DUMMY

탈출구라도 찾고싶은 심정으로 따라갔던 것 같다. 그 여자들은 내게 이상한 잡신이 달려있다고 하며 당장 떼어내지 않으면 나중에는 더 큰일이 생길거라 조언했다. 처음에는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누군가 나를 계속 지켜보고 있다고 했고 나는 맞다고 했다. 그 여자들은 내가 자신들의 말에 공감하자 서로 눈을 마주치더니 가방에서 뭔가를 꺼내들었다. 토요일에 열리는 강의가 있으니 들으러 오면 현재 상황에 도움이 될 거라고 했다.




- 그거 그냥 사이비야




한나에게 어제 있었던 일에 대해 얘기하니 더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이 내 말을 끊는다. 여자들이 준 팜플렛에 적혀있는 강의실 위치가 집에서 그닥 멀지 않아 참석해 볼까 하던 참이었다.




- 그런 사람들은 원래 그렇게 접근해, 얼굴이 안 좋아 보인다든지, 요새 무슨 일 없냐던지


" 근데 누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자신들이 그 사람을 없애줄 수도 있다고 하길래 "


- 어휴, 이거 순진한 건지 멍청한 건지. 조상신이 분노 했다는 말을 안하디?




전화기 너머로 한나의 한숨소리가 들린다.




- 그런데 갈 시간있으면 잠깐 병원에 들려, 나 오늘 당직 땜빵이라 너네 집 못 가. 할 얘기도 좀 있고




전화를 끊는다. 곱게 접어져 있는 팜플렛을 펴 내용을 쭉 한번 읽어보다 잔뜩 구겨 쓰레기통에 집어 넣었다.


거울을 보고 어색하게 웃는 표정을 짓는다. 곧 입꼬리에 쥐가 날 것 같은 느낌을 받아 크게 입을 벌리며 얼굴을 찡그린다. 내가 평소에 집에서 어떤 표정을 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한나가 말하는 ' 평소같은 표정, 아무렇지 않은 표정' 이 어떤건지 나는 잘 모르겠다.

내 집을 '내 집처럼 편하게 생각하라' 라는 말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차라리 모든 집의 통로를 틀어막고 세상과 차단되는 게 더 편할거라는 생각을 한다.

어떤 행동을 하면서도 '편하게' 라는 단어가 내 행동을 제어하며 압박한다.

문득 자신의 모든 행동이 통제되고 있다는 '진' 의 메일 내용이 떠올라 '진' 과 현재 나의 상황이 다름 없음을 느낀다.


내가 느끼는 감정은 이제 분노의 단계 중 마지막인 '수용' 에 이르고 있었다. 이 두려움과 공포속에서 벌벌 떨며 하루를 보내는 것 보다 차라리 '그들' 을 마주하고 끝을 마주하는 게 나에게는 더 좋은 해결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해결책 이라는 게 꼭 죽음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 빨리 왔네, 문자라도 한 통 남겨주지 "




진료실 밖에서 동료들과 잡담하고 있던 한나가 내 쪽으로 다가온다. 시끌벅적 떠들어 대던 다른 동료들이 날 쳐다보고는 움직이던 입을 다문다.


왜 그렇게 느꼈는지 모르겠다. 흩어져 있던 시선이 내게 쏠리자 주변이 순식간에 어둡게 변하고 날 보고 있는 동료들의 표정이 웃는 가면을 쓴 것 처럼 기괴해진다.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자 옆에 서있던 한나가 손을 들어 내 등을 받친다.




" 사람 무안하게 왜 그렇게 빤히들 보고 있어? 아까 말한 내 친구, 나 잠시 얘기 좀 나누고 올테니까 급한 일 생기면 문 두드려 줘 "




진료실에 들어가는 순간까지도 나는 그들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었다. 나를 힐끗 쳐다보며 서로 수근거리는 그 행동들이 유난히 신경쓰인다.


한나는 둘 중에 하나를 골라 마시라며 차가운 아이스티와, 뜨거운 커피를 내민다. 아이스티를 앞으로 끌고오니 그럴 줄 알았다며 자연스럽게 뜨거운 커피를 자신의 앞으로 가져간다.




" 다른 사람들한테 내 얘기 했어? "




뜨거운 잔을 손에 들고 후후, 커피를 식히던 한나가 눈을 치켜서 날 쳐다본다.




" 아니? "




그러다가 뭔가 생각해낸 듯 커피 잔을 내려놓는다.




" 친구가 올거라고는 했지, 아무도 날 찾지 않도록 "




진료시간 이니까, 한나가 바삐 손을 움직인다. 닫혀있는 서랍장에서 종이를 꺼내들더니 머뭇거리다 내게 내민다. A4 용지 사이즈로 반이 접혀있는 이 종이가 처방전이라는 걸 알고있었다. 아마 내 이름이 적혀있을 이 종이를 왜 내게 주는지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 네 말이 맞아 "


" 뭘? "


" 미신을 믿는 것 보다, 우선 의학적으로 널 도와주기로 했어 "




아직도 허공에 떠있는 한나의 손에서 처방전을 낚아챈다. 코팩사엑스, 알프람, 그리고 다른 두개의 약들. 정신과에서 신경계 질환에 사용하는 약들이었다. 이를 꽉 깨물자 빠득, 하고 치열이 어긋나는 소리를 낸다. 내가 어떤 부정의 말을 하기 전에 한나가 선수쳐 내 입을 막는다.




" 너네 집에서 있던 일들은 분명 네 착각이 아닌 걸 알아, 그래도 네 말대로 나는 의사니까 우선 1차원 적으로 해결을 해줘야 하는 게 맞잖아 "


" ..그래, 맞아 "


" 복용하고 나서는 무기력하거나 많이 졸릴 수도 있어, 많이 힘들면 용량을 바꿔 줄게 "




한나는 내가 오해하지 않게 설명한다. 처방전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갔다는 걸 깨닫고 심호흡을 내쉬며 힘을 푼다. 나는 내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있다. 신경쇠약으로 헛것을 보거나 환청을 듣는 거 였다면 주저앉고 한나를 찾아와 처방해주는 약을 복용 했을 것이다.

약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다면.. 분명 그랬을 거다.




" 난 네편이라는 걸 잊지마, 수안아 "


" 신경써줘서 고마워 "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한다. 네가 겪어보지 않았으니 내 심정을 이해 못하는 거겠지. 밖으로 나가지 못한 말이 목구멍에 걸려 날 불편하게 만든다.


병원 앞까지 배웅해주겠다는 한나를 마다하고 건물을 빠져나온다. 바로 앞에 약국이 있었지만 지나쳤다. 얼마 걷지 않았던 것 같다.

발걸음을 돌린다. 나는 지금 내가 의존할 수 있는 그 어떤것이라도 필요했다. 물론 그게 약이 아니란 걸 알았지만 약을 복용하는 그 잠깐의 순간이라도 편했으면 했다.


현관문을 여는 내 손이 이전과는 다르게 느리다. 도어락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열지말지 고민하는 그 짧은 시간에 ' 띠리링' 하는 밝은 멜로디와 함께 다시 문이 잠긴다.



' 집에 들어가지 말까 '



잠시 생각한다. 남의 집에 몰래 들어가는 것처럼 조심히 현관문을 열고 들어간다고 해도 '그들' 의 감시를 피할 수 없었다. 마치 큰 잘못을 하고 집에 귀가하는 학생의 마음처럼 문고리를 잡고 한참이나 현관 앞에 서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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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는, 아니더라도 19.09.14 39 0 7쪽
10 조력자(2) 19.09.13 21 0 7쪽
9 조력자(1) 19.09.09 25 1 7쪽
8 악몽의 형상(2) 19.09.07 23 0 7쪽
7 악몽의 형상(1) 19.09.06 25 0 7쪽
6 REC 19.09.05 38 0 8쪽
5 그들은(2) 19.09.04 32 0 7쪽
4 그들은(1) 19.09.03 25 0 9쪽
3 3. 선물 19.09.02 27 0 8쪽
2 낌새 19.09.02 37 0 10쪽
1 Re : 19.09.01 57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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