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댈리

Re : 그림자 주인

웹소설 > 자유연재 > 공포·미스테리, 추리

고댈리
작품등록일 :
2019.09.01 18:23
최근연재일 :
2019.09.14 23:09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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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9,761

작성
19.09.01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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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Re :

DUMMY

[저는 진이라고 합니다. 선생님을 직접 뵙고 얘기를 나눠보고 싶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이렇게 메일을 보냅니다. 메일을 확인하신다면 꼭 답장 부탁드려요. ​ 누군가 저를 따리다니며 감시하고 있습니다.] ​ ​ ​ ​ ​ ​ ​ ​ ​



메일을 처음 받은 건 일주일 전이었다. 자신을 ‘진’ 이라 소개한 남자는 며칠 전부터 누군가 자신을 따라하는 것 같다는 메일을 보냈고 나는 자세히 말해달라는 회신을 보냈었다. ​


또 다시 온 장문의 메일을 쭉 훑어보고서 메일을 읽기 전 마시려고 타놓은 커피를 홀짝였다. 이미 식어버린 커피에서는 특유의 비린내가 난다. ​ ​



“신고를 하지 못하고 있다..." ​ ​



위협을 느낄 정도의 상황에서도 신고를 하지 못한다는 그 문장에 마우스 커서를 가져다대고 주욱 따라 그었다. ​


얘기를 조금 더 들어보고 싶었다.


항상 그랬던 것처럼 걱정하지 말라는 내용을 포함해 하루하루 달라진 게 있다면 메일을 보내달라 답장 한 후 고개를 들어올려 시간을 체크한다. ​ 오후 4시가 되기까지는 10분 정도가 남았다. 매주 수요일 4시가 되면 대학 동기인 한나가 병원 off 라며 먹을 걸 잔뜩 싸들고 와 함께 수다를 떨었다. ​ ​ ​



"요즘은 별 일 없지?" ​


"넌 일주일에 한번씩 놀러 오면서 꼭 별 일 없냐 물어보더라" ​


"나야 항상 너한테 관심이 많잖아" ​ ​ ​



정신과 의사인 한나는 매주 놀러 오는 우리집을 탐색이라도 하는 것처럼 온 집안을 돌아다니다가 새로운 물건이 생기면 어디서 샀는지, 얼마인지, 꼬치꼬치 묻곤 했다. 헤집어 대는 걸 말리며 직업병이라고 놀려봐도



'안 좋은 건 아니잖아'



하며 웃어 넘기는 탓에 그냥 두기로 했다. ​ ​ ​



"이건 뭐야?" ​ ​ ​



안쓰는 물건을 모아두는 서랍장을 열어본 한나가 끙소리를 내며 아령을 꺼내든다. ​ ​ ​



"글쎄, 내가 넣어둔 건 아니야" ​


"그럼?" ​


"모르겠어, 선물 받은거겠지" ​


"이런 4kg 아령을 선물 하는 사람이 누가있어, 그것도 여자한테" ​ ​ ​



나무탁자에 콩 소리나게 조심히 아령을 내려놓은 한나가 손목을 털어낸다. 우리집에는 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물건들이 여기저기 숨겨져 있는데 기억이 나지 않을때마다 누군가 선물 했겠지, 하고 대답했다. ​


거짓말은 아니었다. 내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간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고서 고맙다며 여러가지 선물을 보냈다. 처음에야 하나 둘 정리하기 시작했지만 쌓이고 쌓이다 보니 빈공간이 생기면 대충 정리해두고서 나도 까먹어 버리곤 했다. ​ ​ ​



"무의식적으로 숨겨놓고 싶었나봐, 내가 다시 잘 숨겨줄게" ​ ​ ​



웃음기 머금은 얼굴로 서랍장 안을 정리하고 아령을 넣어둔 한나가 무언갈 발견하고 벽쪽에 가까이 붙어 손가락으로 벽을 만지작 거린다. ​ ​ ​



"이 구멍은? 언제부터 있었어?" ​ ​ ​



못이 있었다가 빠진 것 같은 작은구멍이었다. 하얀벽지 사이에서 눈에 띄기는 했지만 크게 거슬리는 정도는 아니었다. ​ ​ ​



"전에 살던 사람이 액자 같은 걸 걸어 놨었나 보지" ​



"그 때 이사 할 때는 분명 없었는데..." ​ ​ ​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던 한나가 내 표정을 보더니 어색하게 웃으며 커피를 집어든다. ​ ​ ​



“요즘 예민한가봐, 니 말이 맞아. 다 직업병이야” ​


“나도 그래, 서로 이해해야지” ​


“넌 어때, 이상한 사람 없었어?” ​


“..글쎄..” ​ ​ ​



매주 듣는 흔한 물음에 눈동자를 굴린다. 오늘 내게 메일을 보낸, 조금 흥미가 가는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아직은 말하지 않기로 했다. 한나는 유능한 의사이니 내 표정을 읽었을테지만 아무말도 하지 않았고 나도 더이상 얘기하지 않았다. ​


한나는 자신의 이야기를 잘 하지 않았다. 내 일상에 관심이 많았고 항상 내가 하는 시답잖은 일 이야기를 좋아했다. ​ ​



대학을 다닐 때 교양수업에서 만나 과제를 주고 받으며 친해진 그녀는 내게 친구 이상으로 소중한 존재였다. 갈 곳이 없는 나를 위해 집을 마련해 주고 본인의 명의로 된 핸드폰을 구입해주었으며, 내 전공을 살려 자리를 잡을 수 있게 해준 고마운 친구였다. 지금은 그럴필요가 없다고 몇번이나 말을 꺼내며 거절했으나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이라며 호의를 멈추지 않았다. ​ ​ ​



“나 갈게, 너무 늦었다” ​


“응, 다음주에도 올거지?” ​


“나 한가한 사람 아니야, 시간되면 올게” ​ ​ ​



가느다란 중지 손가락을 내게 보인 한나가 문을 쿵 닫고 나간다. 저렇게 말해도 다음주에 또 올 걸 알고있다. 창밖으로 소리를 내며 주차장을 빠져나가는 하얀 SUV 차량을 보고 있다가 손가락으로 이마를 문질렀다. ​ 뭔가 잊고 있는 것 같다. 함께 수다를 떠는 시간은 좋지만 이상하게 한나가 가고나면 머리가 지끈 거리며 중요한 무언가가 스쳐 지나간다.


떠올릴려고 하지만 떠오르지 않고 그렇게 일주일을 반복한다. ​ 머리를 한번 좌우로 흔들어 털어내고 노트북을 열어 혹시 그 흥미로운 남자가 내가 보낸 메일을 읽었는지 확인했다. 아직 읽지 않은 것 같다.


계속해서 심해지는 두통에 노트북을 닫는 것도 잊은 채 한나가 처방해준 수면제를 한입에 털어놓고 침대에 쓰러지듯 눕는다. ​ ​



노트북 화면이 점점 검게 어두워 지는 것을 보다가 나도 눈을 감았다. ​ ​ ​ ​ ​



[답장 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저는 지금 누군가에게 스토킹을 당하고 있습니다. 저를 항상 쫓아다니고 감시하며 제가 할 행동을 미리 알고있고 제 생각을 읽고 저보다 먼저 행동 합니다. 저는 웬만한 남자들보다 체격이 큰 편으로 그 미친놈을 단번에 제압할 수 있지만···. ​


제 생각에 이건 스토킹을 넘어선 것이라고 생각 됩니다. 몇번이나 그 놈을 찾아나섰지만 그 놈은 저의 모든 것을 알고있고 제가 어디를 가는지 까지도 미리 알고 있습니다. 제가 놈을 죽이려고 한다면 그 전에 제가 먼저 죽을 것 같습니다.] ​ ​ ​ ​ ​ ​ ​ ​ ​ ​ ​ ​ ​ ​









* * *


평소에는 알람이 없어도 같은 시간에 눈을 뜨지만 일주일 중 목요일은 유일하게 알람없이 일어나기 힘든 요일이었다. 수요일은 항상 수면제를 복용하고 잠이드니 목요일에는 머리가 지끈거리는 게 알람이다. ​


시간을 확인하고 침대맡에 놓인 달력을 들어 실눈으로 스케줄을 확인한다. 침대에 걸터 앉아서도 잠이 깨는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


커피포트에 물을 올리고 흘러내리는 머리를 묶으며 침대로 가다가 서랍장 밖으로 나와있는 아령을 발견하고 그대로 멈춰섰다. ​ ​ ​



"칠칠이" ​ ​ ​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한나가 안 넣어뒀겠지, 싶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묶던 머리를 마저 묶었다. ​


커피잔을 들고 노트북 앞에 앉아 차곡히 쌓여있는 메일을 순서대로 읽어보지 않고 마우스 휠을 돌리며 남자의 메일을 먼저 찾는다. ​ ​ ​



[오늘은 별다른 일이 없었습니다. 제가 무언가를 하려고 하지않으면 그 놈도 아무것도 하지 않아요. 하지만 저도 만일을 대비해 이곳 저곳에 저를 지킬 수 있는 것들을 숨겨 놓았습니다. 제 걱정거리를 선생님에게 털어놓으니 마음이 편해지네요] ​ ​ ​



오전 5시에 수신된 메일을 확인하고 '진' 이라는 남자가 밤에 일 한다는 것을 추측했다. ​ ​ ​



[RE : 마음이 좀 편하시다니 다행이시네요. 사소한거라도 신경쓰이거나 달라진 게 있다면 언제든 메일 주세요] ​ ​ ​



전송 버튼을 누르고 나서 의자에 기대앉아 읽지 않은 나머지 메일들을 쭉 훑어본다. ​ '은둔형 심리상담사' ​ 한나가 붙여준 별명이었다.



대학시절부터 남들과 잘 어울리지를 않고 집에 틀어박혀 과제 하는 나를 보고 잘 어울린다며 놀려 댔었다.


사람들과 어울리기 싫어하는 내게 한나가 제안한 직업이 익명 상담사였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았다. ​



21세기에 무슨 메일을 주고 받냐, 싶기도 하겠지만 자신의 목소리, 사진, 인적사항들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사람들은 메일을 통해 상담을 요청 해왔고 나는 그들의 얘기를 묵묵히 들어주는 사람일 뿐이었다. ​ 그들은 절대 아픈 게 아니다, 약이 필요한 게 아니라 자신의 말을 들어줄 사람이 필요한거다. ​ ​



마지막 메일까지 답장을 하고나서 어지럽게 널부러져 있는 음식물과 쓰레기들이 섞여있는 식탁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제 한나와 먹어치운 음식들이었다. 커다란 봉투에 쓰레기들을 모아 담고서 슬리퍼를 찍찍끌고 집을 나선다. ​ ​ ​



"너 수연이 아니야?" ​ ​ ​



쓰레기통 멀찍이서 봉투를 집어던지고 뒤돌아 가려던 찰나, 나처럼 슬리퍼를 끌고 쓰레기봉투 들고있던 남자가 모르는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내 어깨를 잡아 당긴다. ​


나도 모르게 어깨에 얹어진 손을 쳐내자 남자가 머쓱하게 웃으며 쓰레기를 내려놓고 손바닥을 털어낸다. 내 표정이 어땠을지는 모르겠다. ​ ​ ​



"얼굴보니까 맞네, 너 여기 살아?" ​


"..누구세요?" ​


"나 김동영, 옛날에 우리 부모님들끼리 친해서 자주 봤었잖아” ​


"사람 잘못 보신 것 같은데, 저 수연이라는 사람 아니예요" ​ ​ ​



길게 들어주지 않아도 됐다. 뭐라고 말을 건네는 남자를 뒤로하고 걸음을 옮기자 뒤에서 후다닥 쓰레기 봉투를 버리고 날 쫓아오는 소리가 들린다. 덩달아 같이 걸음을 빨리해 1층에 멈춰있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


닫히는 문사이로 따라오다가 멈추는 남자가 보인다. ​ 혹시나 쫓아왔을까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안에 들어와 걸쇠를 걸어잠근 후에도 손잡이를 잡고있었다. ​ ​ ​



삐-삐-삐- ​ ​ ​



책상위에 두고간 핸드폰이 일정한 사이렌 소리를 내자 바닥에 주저 앉을뻔했다. 전화 벨소리를 잘 듣지 못한다며 불편해하던 한나가 멋대로 바꾼 거였다. ​ ​ ​



"여보세요?" ​



-벨소리를 바꾼 보람이 있네, 이렇게 바로바로 받잖아. ​ ​ ​



장난기 가득한 한나의 목소리에 참고있던 숨을 내뱉었다. 하지만 누군가 문을 쿵쿵 두드릴 것 같아 현관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채다. ​ ​ ​



" 방금 이상한 사람 만났어 " ​


-이상한 사람 누구? ​


"나도 모르겠어, 처음보는 사람인데 나한테 수연이냐고 하더라고" ​


-...... ​


"잘못 본거겠지, 남자였거든. 나한테 말걸고 싶었나봐" ​ ​ ​



내가 또 한미모 하잖아. 놀란 마음에 심장이 밖에까지 들릴만큼 쿵쾅거리고 있었지만 이렇게 장난식으로 넘기니 마음이 편해진 것 같다. 전화 너머로 한나는 아무말이 없었다. ​ ​ ​



-그래서? ​ ​ ​



긴 침묵을 유지하던 한나가 한 말이었다. 냉장고를 뒤적이며 목과 어깨 사이에 핸드폰을 끼워둔 채 전화를 받고있다가 무슨 의미로 물어보는지 모를 그 질문에 핸드폰을 고쳐 잡았다. ​ ​ ​



“그냥 집에 들어왔지, 나 모르는 사람이랑 얘기하는거 별로 안 좋아하잖아” ​


-따라온 것 같아? ​


“아니, 그런 것 같지는 않아” ​


-확인 해 봐. ​ ​ ​



너 오늘 이상하다,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말을 삼키고 핸드폰을 얼굴에서 잠시 떼며 조심히 현관으로 다가가 현관구멍을 들여다 본다.


당연히 아무도 없다.


괜시리 같이 긴장한 내 자신이 한심해 헛웃음을 짓는다. ​ ​ ​



“아무도 없어, 있을리도 없고” ​


-그 남자가 몇층인지 확인했을 수도 있잖아. ​


“너 왜그래?” ​ ​ ​



더 호들갑을 떨며 걱정하는 한나때문에 나까지 불안해진다. 누군가 다른 사람과 나를 착각한 것 뿐일텐데 괜한 걱정이다. 침묵이 길어지자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것 같은 환청까지 들린다.


간신히 현관에서 시선을 떼어내고 내 집이 아닌 것 처럼 집안을 서성인다. ​ ​ ​



-미안, 곧 세미나라 예민 해져서 그래


“괜찮아, 너 항상 그랬잖아” ​


-걱정돼서 그랬어, 아무래도 여자 혼자 사니까. 물론 나도 여자기는 한데



이제서야 서로 웃음이 터져 나온다. 방금까지 무겁게 가라앉았던 분위기가 한순간에 둥실 떠올랐다. 세미나를 준비하고 있어 당분간은 연락이 어려울 거라는 한나는 수요일엔 무조건 갈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얘기를 했고, 또 시답잖은 일 얘기를 주고 받았다. ​


누군가 한나의 진료실 문을 두드리고 나서야 긴 통화를 마칠 수 있었고 밀려있는 메일에 답장 할 수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계속해서 현관에 시선을 던졌지만 매일같이 고요하다. ​ ​


오늘따라 잠자리에 들던 때부터 유난히 옆집이 시끄러웠다. 분명 새벽녘에 잠에 든 것 같은데 막 잠이 들려고 하는 순간부터 벽에 못을 박는 소리에 몸을 뒤척였다. 많이 시끄러운데도 불구하고 눈을 뜰 수 없을만큼 피곤해 소음과 함께 잠이 들었던 것 같다.


작가의말

잘 부탁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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