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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용감한황소 님의 서재입니다.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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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한황소
작품등록일 :
2024.05.02 12:59
최근연재일 :
2024.05.21 20:05
연재수 :
20 회
조회수 :
180
추천수 :
20
글자수 :
92,147

작성
24.05.11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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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9쪽

DUMMY

다시 현실이다. 등과 겨드랑이에 이슬이 맺어 있었다. 잠결에 벽면을 바라봤는지, 정신을 차린 후 눈을 뜨자 둔탁한 벽과 직면했다. 속이 갑갑했다. 평소라면 잠에서 깨어나 몸을 일으키고는 담배를 태우러 갔을 텐데 이상하게도 잠든 그 모습 그대로 계속 누워 있었다. 두근두근 거리는 박동을 이제야 인지했다. 아까부터 심장이 경박하게 뛰었고 그 진동이 귀밑에서 울렸다. 옆방에서 소리가 났다. 얇은 판막이로 방을 쪼갠 탓에 각자의 공간에서 소리가 건너왔다. 방이라고 하기에는 무색한 사생활이었다.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방금 방으로 들어왔는지 다급하게 옷을 벗고 소란스럽게 움직였다. 그는 곧바로 화장실로 가 소변을 누었다. 졸졸졸 시냇물 떨어지는 소리가 구슬펐다. 그가 샘물을 모조리 쏟아냈는지 소리가 멎었다. 건너 방에서 넘어온 대자연의 생동감을 느끼고서야 기운을 차리고 일어섰다. 고시원 복도 구석에 자리한 흡연실로 기어 들어가 음습하게 담배를 피웠다. 무거웠다. 아니 무거워보였다. 오늘따라 탁한 연기가 무거워보였다. 담뱃재를 털고 자리에서 일어나 굴로 돌아갔다. 의자에 앉아 턱을 괴고 시름을 앓았다. 요즘 들어 부쩍 자주 통장잔고를 확인했다. 분명 미래를 위해 무엇인가를 준비하고 있었지만 그 형태가 나날이 무뎌져갔다. 원체 불투명한 삶이었기에 익숙했다. 그러나 이놈의 줄어드는 숫자는 봐도, 봐도 역겨움이 가시지 않았다. 준비해야 하는 것과 챙겨야 하는 것 그리고 벌어야 하는 것, 마음이 조급했다.

그녀에게서 연락이 왔다. 전화를 알리는 소리에 흠칫 놀랬다. 언제부터인가 전화 알람음 소리가 기괴하게 느껴졌다. 알람이 계속해서 울렸으나 응답하고 싶지 않았다. 용기가 없었다.


전화를 받는다면, 그녀는 별안간 불만을 토해내며 부정을 쏟아낼 것이다. 그러고는 걱정을 빙자한 회유를 건넬 것이다. 그 정감어린 회유는 모두 그녀의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다. 무엇보다 가장 주된 목적은 부족하지만 평온했던 일상을 지키기 위함이다. 기생하며 살아온 자신의 생계가 위협받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그 동기였다.


그녀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두려웠다.

문자가 왔다.

“도대체 어디니? 그만하고 들어오렴.”


답장하지 않았다. 아직 본색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몇 분 안 되어 또 다시 문자가 왔다.

“생활비가 부족해. 돈 좀 보내줘.”


그녀가 도움의 손길을 구하자 버릇처럼 손을 뻗으려 했다. 동시에 가냘픈 그녀의 종아리가 떠올랐다. 결국 그녀의 사정에 굴복할 수밖에 없었다.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분명 떠나기 전에 기초생활수급비가 지급되는 통장과 도장을 두고 왔고 그 현금에 대한 권한을 위임했는데 왜 틈마다 사정하는 것일까. 돈이란 있으면 있는 대로 쓰고 없으면 없는 대로 아쉬워 늘 부족한 것이 맞지만 그럼에도 의문이 가시지 않았다. 통장 잔고를 확인했다. 숨이 막혔다. 아무래도 담배 한 개비를 더 피워야 할 것 같다. 연기를 뿜으러 흡연실로 걸어갔다.

흡연실은 한 개의 칸막이로 나눠져 1호실과 2호실로 구조를 이루고 있었다. 바깥쪽의 1호실에는 두 명의 사내가 대화를 나누며 버젓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안쪽의 2호실에는 한 명의 사내가 전화를 하며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비좁은 틈을 파고들어 함께 연기를 뿜기에는 민망했다. 갈 곳을 잃었다. 복도에서 조금 기다려보도록 했다. 전화를 하며 흡연을 하고 있던 사내가 자리에서 나왔다. 그 사내를 대신하며 2호실로 들어섰다. 1호실의 사내들은 여전히 만담을 주고받으며 얘기를 나눴다. 아무래도 연신 줄담배를 피우고 있는 듯했다. 중년의 두 사내들은 형과 아우를 자처하며 우애를 맺었는지 꽤나 친숙하게 서로를 호칭했다. 잠시 사내들의 대화를 엿들었다.

“학창 시절에 나름 주먹 좀 썼거든.” 형님이 말했다.

“형님은 딱 봐도 떡대가 좋아서 힘 좀 썼을 것 같아요.” 아우가 말했다.

“그런데 이 놈들이 혼자서는 안 되니깐 떼거지로 몰려와서 다구리를 놓는 거야.” 형님이 목에 잔뜩 힘을 주고 말했다.

“꼭 뭣도 없는 새끼들이 그렇게 나선다니까요.” 아우가 잽싸게 품격을 높여주었다.

“크음.” 형님은 뜸을 들이며 서사에 긴장감을 불러 일으켰다.

“그래서? 어떻게 하셨어요? 도망이라도 갔어요?” 아우가 어서 말해달라며 쫄랐다.

“도망가기는 뭘 도망가. 남자가 돼서 가오가 있지. 그때는 일단 부딪쳐 봐야해. 승패가 중요한 게 아니야. 거기서 얕보이면 그걸로 먹히는 거야.” 형님의 가오는 커다랬다.

“그쵸, 머릿수에 장사 없는데 다구리를 무슨 수로 감당해요. 형님 말대로 그때는 맞아도 머리부터 들이밀어야죠.” 아우는 탁월한 플레이메이커였다.

그들은 한참을 흥겹게 과거의 명성을 늘어놓으며 서로를 품어주었다. 아, 벗과 말을 나눠본 적이 언제였을까. 2호실에서 남의 얘기나 엿들으며 초대받지 않은 1호실의 대화에 멋대로 동참했다. 사내들은 말을 끝마치고 얼마 안가 흡연실을 떠났다. 정적만이 남겨졌다. 담배를 태우며 연기를 뱉었다. 어쩐지 계속되는 허무였다. 계속해서 본 듯했다. 저번에도 읽은 듯한 서사였다. 안타깝게도 잔약한 일상이 되풀이 되고 있었다.

방으로 돌아와 짐정리를 끝내고 책상에 앉아 책을 폈다. 준비를 해야 할 텐데 손에 잡히지 않았다. 개버릇을 못 고치고 또 다시 작은 바보상자를 들추며 시간을 축냈다. 머리가 실시간으로 깡통이 되어갔다. 전과 동일한 점은 여전히 그 유흥이 즐겁지 않다는 것이고, 전과 다른 점은 양심의 가책이 느껴진다는 것이다. 즐겁지도 않고 양심 또한 저린 이 유흥을 왜 끝내지 못하는 것일까. 가여우면서도 한심했다. 머릿속으로 갖은 욕을 해가며 이 무익한 버릇을 아직도 쥐고 있는 비루함을 꼬집어 봤다. 그럼에도 멈출 수가 없었다. 5분이 쌓여 시간이 되었고, 시간이 쌓여 자정이 되었다. 허기가 졌다. 미래는 배를 채우고 가꾸기로 했다. 24시간 운영되는 구멍가게로 향했다. 저렴하면서도 든든한 한 끼가 되어줄 라면과 부족한 영양소 섭취를 도와줄 삼각김밥을 골랐다. 고시원의 공용 주방에서 간단하게 조리를 하고 배를 채웠다. 가성비 좋은 식사였다!

포만감에 그럭저럭 만족하며 방으로 돌아왔다. 목적지는 분명 책상이었지만 없던 명분을 만들어가며 침대로 향했다. 오후의 늦잠에서 깨어난지 얼마나 됐다고 또 눈이 감겼다. 기분 탓이겠지만 빈번히 졸음이 몰려왔다.


***


여기서부터는 꿈이다.


장소는 학교다. 가운데 난 정문이 내부로 들어가는 율일한 입구였다. 내부에는 위층으로 올라가는 세 개의 통로가 계단으로 나있다. 학생들인지 그저 볼일이 있어 온 사람들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많은 사람들이 정문을 이용하여 내부로 들어간다. 누가 막아선 것도 아닌데 다들 당연하다는 듯이 중앙 계단을 이용하지 않는다. 구태여 돌아서 좌·우 양쪽 끝에 위치한 계단을 통해 위로 올라간다. 평소대로라면 자연스럽게 그들을 따라 가겠지만 이상하게도 현 상황에 물음이 생긴다.


‘왜 다들 굳이 먼 길을 돌아가?’


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 사실에 순응하지 않고, 평소 안하던 의문을 재기하는 것이 현실과 동떨어져 보인다.


구급대원들이 다급하게 중앙현관으로 출입한다. 위급한 상황이 생긴 듯하다. 그들은 자연스럽게 중앙 계단을 이용한다. 빠르게 위기를 진압하러 가는 그 모습이 용맹하게 느껴진다. 찰나에 구급대원이 되었다. 저들처럼 중앙 계단을 이용하려 했다. 누군가 팔을 뻗어 길을 막아선다. 그녀였다.


그녀가 중앙 계단을 막아서며 불시에 검문을 요구한다. 그러더니 호주머니를 뒤지며 수색한다. 신발 밑창을 찢으며 다리를 뺏는다. 가진 것이 없다고 항변했지만 듣지 않는다. 말을 들을 기색이 보이지 않아 그녀에게 순응한다. 그녀가 방긋 웃는다. 목을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손을 갖다 댄다. 목걸이를 빼앗아간다. 목걸이의 펜던트는 차키처럼 보인다. 그녀는 환희에 젖어 퍼렇게 웃는다. 그러더니 목에 검은 목도리를 감아준다. 영문을 알 수 없다. 단지 해달라는 대로 복종하는 것이 최선이다. 어느새 하교할 시간이 되었나 보다. 모두들 양끝에 위치한 계단을 통해 내려온다. 어느새 1층 현관복도가 많은 인파로 어수선해졌다. 올라가보지도 못했는데 그들과 함께 밖으로 나온다. 문득 뒤를 돌아봤다.


꿈이 깨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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