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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용감한황소 님의 서재입니다.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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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한황소
작품등록일 :
2024.05.02 12:59
최근연재일 :
2024.05.21 20:05
연재수 :
20 회
조회수 :
175
추천수 :
20
글자수 :
92,147

작성
24.05.02 13:14
조회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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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4쪽

DUMMY

그녀가 수영을 배워보고 싶어 한다.

그녀는 수영이 배우고 싶나 보다.

그녀가 수영을 배우고 싶어 한다.

그녀는 수영이 배우고 싶다.


이 주 전부터, 관절이 약한 어른에게 필요한 운동이라며 떠들어 되더니 여지껏 투정을 부렸다. 그러나 그 투정은 이뤄줄 수 없는 소원이다.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그녀는 그릇을 닦는 내내 부정을 토해냈다. 아무래도 여자란, 설거지할 때 유독 입이 가벼워지는 존재가 아닌가 싶다.

쉴 새 없이 떠들던 중 제 풀에 진이 빠졌는지 잠시 입을 다물었다. 물줄기가 거품을 씻어내며 싱크대를 강타하더니 그렇게 그녀를 대신해 소리의 여백을 메워줬다.

‘저놈의 집구석에 핀 얼룩은 어떻게 안 되나.’

그녀의 요구에 별다른 대꾸 없이 멋쩍게 웃어만 보였다. 얼버무려 넘기는 태도가 아쉬운 모양인지 그녀가 빨래장갑을 벗으며 읊조렸다.

“나중에 후회한다.”

낚싯바늘이 심장을 턱! 하고 걸고넘어지듯, 걸고넘어지듯 가슴을 찌르고 갔다. 이는 협박이다. 먼 훗날 그녀의 영정사진 앞에서 무릎을 꿇은 채 후회하고 있는 모습을 미끼삼아 효도를 강요하는 것이다. 마치 그녀가 친히 효도할 기회를 주는 것처럼 말하는 뽐새가 불쾌했다. 그녀의 의도가 어떠하건 그렇게 들렸다. 짜증이 밀려온다.


계좌잔고 758,440원, 기초생활 수급비 300,000원

건강하게 늙어가는 그녀의 모습보다 당장에 이번 달을 나고 살아야 할 통장 잔액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어떻게 하라고요.” 그녀에게 퉁명스럽게 말했다.

“됐어, 그냥 말해본 거야.” 그녀가 쏘아대며 말했다. “가장한테 말 안 하면 누구한테 말해.” 또 읊조렸다.


지랄 맞은 세상이다. 허나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다. 비록 그녀 한 명뿐이지만 책임져야 할 가족이 있는 가장이다. 가장의 경제적 능력은 곧 가정의 형편이므로 가능과 불가능은 전적으로 가장에게 달렸다. 이 얼마나 탓하기 좋은, 듣기 좋은 직책인가.


계좌잔고 758,440원, 기초생활 수급비 300,000원


통장잔액이 여전히 지랄 맞게 맴돈다.


“네가 부정수급자로 걸리지만 않았어도 네 몫까지 계속 지원해줘서 지금보단 여유롭게 살았을 거 아니야.”

“걸리긴 뭘 걸려요. 나이 제한 때문에 정부에서 수급비 끊어버린다는 거, 어떻게든 한 번이라도 더 타먹겠다고 소득 속여 가며 빌빌거릴 만큼 했잖아요.”

“그래도 네가 조금만 더 신경 썼으면...”

“먹고 살아보겠다고 밖에서 돈 벌어오면 도로 가져가 버리는 걸 어떻게 하라고요! 언제까지 쥐새끼처럼 보조금이나 받아먹으려고요? 그리고 은근히 책임 돌리시는데 같이 해먹었으니까 공범인 거 아시죠?”


의미 없다. 서로를 헤아릴 생각이 없다. 눈만 마주치면 듣는 사람 없이 말하기만 한다. 이럴 땐 자리를 피하는 게 상책이다.


그녀와 눈조차 마주치지 않고 무심하게 말했다. “도서관 갔다 올게요.” 아마 그녀는 무심한 어투에 상처받을 것이다. 허나 이렇게라도 잡친 기분을 들려주고 싶었다. 아무래도 한동안 티 나지 않게 그녀를 낯설게 대해야겠다. 말 한마디 함부로 하지 않게끔 눈치를 살피게 하고 쥐 죽은 듯 살게 해야지.


현관문을 열고 나가 계단을 올랐다.

‘이제야 햇빛 좀 보네.’

낡은 중고차가 주차된 공터로 걸음을 옮겼다. 가는 내내 수영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반평생 홀로 집안을 일궈 온 공로는 인정받아 마땅하다. 허나 지금은 팔자 좋게 집에서 여생을 보내는 노인네가 아닌가. 떠밀리듯 가장이 된 처지가 불쌍하지도 않은가.’


속 좁은 심보를 인정하기 싫어 애써 한탄했다.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은 후 엔진을 예열할 겸 담배를 태웠다. 분이 풀리지 않는다. 그까짓 돈 얼마나 한다고 수영 좀 배우고 싶다는 말에 열을 올렸을까, 곱씹을수록 못나보였다. ‘없는 형편에 분수도 모르고’, 속 좁은 심보를 인정하기 싫어 애써 원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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