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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용감한황소 님의 서재입니다.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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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한황소
작품등록일 :
2024.05.02 12:59
최근연재일 :
2024.05.21 20:05
연재수 :
20 회
조회수 :
178
추천수 :
20
글자수 :
92,147

D

Comment ' 1

  • 작성자
    Lv.16 시화란
    작성일
    24.05.19 18:32
    No. 1

    0. 정주행 완료, 잘 봤습니다.

    1. 주인공에게는 세상의 모든 사물과 현상이 너무나도 깊은 밀도를 가지고 다가오나 봅니다. 생각이 깊은 탓에 시야에 닿은 모든 곳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배후를 추론하고, 비유를 통해 이름을 붙이고, 의인화시켜 자신과 관계짓고, 이야기를 만들어내는군요. 그것은 분명 시인의 자질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시선의 방향은 내내 안쪽만을 향해 있습니다. 어디에서 출발하든 자학으로 끝나고 맙니다. 주인공의 정신 상태가 많이 위축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2. 사랑하는 그녀와 가납사니들. 그녀의 손에 이끌려 교회라는 이름의 커뮤니티에 출석한 전적이 있으신가 보군요. 그들은 아버지를 믿는 자들일 뿐 아버지와 같은 자들은 아닙니다. 믿는다고 해서 닮을 리가 없는데, 믿기 때문에 보통과 다르진 않을까 하는 기대가 낙차를 만들어냅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 또한 보통입니다. 그러나 기대 속에서 그들은 보통이 아니어야 했습니다. 그 결과 추악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동일한 내용의 실망을 겪어본 입장에서, 주인공의 가납사니들을 향한 부정적인 시야에 깊이 공감하는 바입니다.

    3. 걱정하는데 비난하고, 당해주다가 공격하고, 길러줬으나 길러지고 있고, 나를 위해 울면서 나 때문에 울기도 하고, 복수하고 싶기도 하고 사과하고 싶기도 하고, 사랑스럽고도 미운 사람. 한 단어로 퉁치자면 '애증'의 존재인 그녀. 숨겨 무엇하겠습니까, 어머니네요. 어른은 지혜로워야 하는데, 지혜로운 어른답지 않게 값싼 동정에 의존하면서 연명하고 노후는 준비해놓지도 않은 그녀는 약하고 아둔합니다. 그러나 그런 약함을 가지고 그 나이가 될 때까지 꾸역꾸역 살아왔기에 강합니다. 강함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음이 강한 것이니까요. 이 논리에 따르면 그녀는 약하기에 강하군요. 주인공은 전자에만 주목하는 듯 보입니다. 그녀의 약함을 동정하기에 사랑하지만 그녀의 약함이 죽일 만큼 증오스럽습니다. 그러나 진리는 극단에 있지 않습니다. 그녀는 약하기도 하고 강하기도 합니다. 혹은 약하지도 않고 강하지도 않습니다. 주인공의 시야에 너무 오랫동안 집중적으로 포착되었기에 그녀는 그녀 존재 자체를 벗어난 너무나도 많은 의미를 지닌 기호로 변질되었습니다. 주인공의 머리 속에서 이미 '그녀는 약하다'는 결론이 내려졌기에 그녀를 조치를 취해야만 하는 대상으로 간주합니다. 그러나 진리는 극단에 있지 않습니다. 그녀는 약하기도 하지만 강하기도 하거나, 약하지도 않고 강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주인공이 너무나도 일찍 찾아온 판단에 몸을 맡겨 무슨 행동을 저질러버리지 않을까... 최신화까지 읽은 시점에서 쉽게 예상이 됩니다만, 아직 판단을 유보할 수 있는 시간은 충분합니다. 그런데 그 판단을 무르고 싶어할까요? 또, 그래야 할 필요는 있고요? 그건 다음화가 나와야 알 수 있는 일이겠군요.

    4. 심신의 아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신세, 과도한 자기비하, 나만의 작은 세상을 제멋대로 해석하는 버릇, 글이라는 배출구. 읽는 내내 '난가?' 싶었습니다. 그 유사성에 기대어 끝까지 읽을 수 있었음을 여기서 고백합니다. 이게 픽션인지 에세이인지는 모르겠는데, 뭐가 됐건 당신 재능 있습니다. '태초에 빛이 있었다. 여기에 빛이 있다. 그렇다면 이 숨의 끝에 태초가 있다.' 는 문장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페이지를 가득 채운 'ㅋㅋㅋㅋㅋㅋ' 파트도요. 내면에 들어차 있는 검고 걸쭉한 덩어리들을 문장의 형태로 정제하여 끄집어내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다른 모든 일에 비교해 봐도 결코 꿀리지 않을 만큼, 동일한 난이도를 지닌 생산 행위란 말입니다. 작가님의 다른 작품 목록을 봤습니다. 아포칼립스물에 도전해보셨군요? 먼저 동일한 장르의 다른 작품을 많이 읽어보시길 권합니다.(Ex.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 망겜의 성기사, 멸망한 세상의 사냥꾼. 이미 읽으셨다면 죄송합니다.) 주제 넘은 참견입니다만, 처음부터 끝까지 완독한 독자로서 이 정도 참견은 할 수 있지 않나요? 아님 말고.

    5. 본 작품에서 자주 인용된 도스토옙스키의 '미성년'은 자전적 소설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글이 작가님 자신의 이야기라는 은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주인공이 겪는 모든 고통의 묘사는 작가님의 현실이라는 것인데... 안타깝군요. 뭐라도 격려를 건네드리고 싶은데 또 만약에 이것이 자전적 이야기가 아니라면 머쓱하잖습니까? 그러니 더 이상의 참견은 하지 않기로 하겠습니다. 그럼 제가 좋아하는 글귀만 하나 남기고 가겠습니다.

    6. 도끼는 날카롭다.
    그렇다고 도끼 그 자체가 나무를 베어넘기진 않는다. 누군가가 도끼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 도끼를 손에서 놓아라.
    도끼=고통, 나무=삶입니다. 주인공에게, 그리고 주인공과 똑 닮은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입니다. 이 댓글을 쓰면서 나에겐 이미 이 말을 해줬군요. 주인공에게도 이 말이 전해졌으면 좋겠습니다. 근데 결국 작가님 마음대로죠. 흔히 '쥐흔'이라고 해서 독자 입맛대로 글의 방향을 바꾸려는 무리가 있다고 하는데 세상에 제가 그 비슷한 짓을 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너무 몰입해서 읽어서 그런가 봅니다. 너그러이 봐주시길.

    7. 2시간 동안 댓글을 쓴 건 이 작품이 처음이네요. 건필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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