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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용감한황소 님의 서재입니다.

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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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감한황소
작품등록일 :
2024.05.02 12:59
최근연재일 :
2024.05.21 20:05
연재수 :
2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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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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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글자수 :
92,147

작성
24.05.19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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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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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2쪽

D

DUMMY

자고 일어나니 늦은 아침이었다. 그녀는 재회의 기쁨을 널리 알리고자 아침부터 교회를 갔다. 재회의 순간, 감수성이 풍부한 그녀는 예상대로 울음을 터뜨리며 반겨주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집으로 돌아온 방문객은 이성으로 모든 것을 계획하고 있었다. 그녀는 넋을 잃어가며 이유를 물었다. 어떻게 왔냐고 왜 이제 왔냐고 같은 말을 반복하며 물었다. 얼토당토 않는 변명을 급조하며 그녀에게 둘러댔다. 사실 그녀에게 있어 합리적인 진실은 중요하지 않았다. 재회에 감동하면 그만이었다. 출처 불명

14)예부터 감정의 추종자들은 아픔과 슬픔 그리고 애처로움에 사족을 못 썼다. 거기에 무조건적인 호응의 박수를 한 숟가락 곁들어준다면 아주 흡족해 하며 만족했다. 요령껏 그녀의 감정을 어루만졌다. 재회의 기쁨도 잠시 슬슬 하품이 나왔다. 우선 시간이 늦었으니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 내일 얘기를 나누자고 요청했다. 그렇게 만남의 감동을 급하게 마무리했다.

자, 이제 그녀가 돌아오기 전에 얼른 전략을 수립해야 했다. 일단 이 감동을 연장하여 그녀에게 혹시 있을지 모를 경계심을 푸는 것이 숙제였다. 너무 달라진 모습은 오히려 의심을 살 수 있기에 점진적으로 그녀의 심리에 침투해야 한다.

점심시간이면 돌아올 그녀를 위해 식사를 대접할 계획이었다. 간드러진 식사보다는 친숙한 음식으로 준비하려 했다. 얼추 그녀가 돌아올 시간에 맞춰 물을 끓였다. 마침 그녀가 현관문의 비밀번호를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그녀가 들어오는 타이밍에 맞춰 물었다.

“식사하셨어요?”

“아직 안 먹었어.”

“라면 먹을 건데 드실래요?”

“끓여주면 고맙지.”

그녀는 흔쾌히 허락하며 함정에 빠졌다. 센스 있게 파까지 썰어 라면을 장식하고 손수 김치까지 꺼내어 풍미를 더했다.

“다 끓였어요. 와서 드세요.”

그녀와 마주보고 앉아 함께하는 식사였다. 어색했다. 마치 수년 동안 남남처럼 지내다가 뜻하지 않게 길에서 우연히 마주쳐 억지로 커피 한 잔 마시는 느낌이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눈치를 살폈다. 아마 과거가 몸에 밴 듯하다. 그녀에게 웃어주며 말문을 열어주었다.

“친구한테 신세지고 있었어요.”, “밥이야 언제는 안 챙겨 먹었나요.”, “일하느라 스트레스 받아서 그랬어요.”, “주위에서 아는 분께 소개받고 편하게 일했어요.” 그동안 있었던 일들을 말해주었다. 물론 모두 꾸며낸 것이었다. 토끼굴에서의 일상을 말해주어 봤자 분위기만 흐릴 뿐이었다.

최대한 그녀의 근심을 덜어주며 안심시켰다. 오늘이 아니면 기회가 없는 것처럼 그녀는 묵혀두었던 이야기를 쉬지 않고 말했다. 한 젓가락 먹으면 10마디를 나눴고, 먹는 시간보다 말하는 시간이 더 많은 밥상이었다. 흔히 여자가 좋아할 만한 멘트를 섞어주며 그녀의 청각적 욕구를 충족시켜주기도 했다.

“내일 영화라도 보실래요?”

“무슨 영화?”

“그냥 보고 싶은 거 아무 거나요.”

아차, 돈이 없었다. 하지만 일단 지르고 봤다. 이런 의욕이라면 내일 새벽부터 나가 한 푼 벌어오면 그만이었다. 데이트 약속에 그녀는 수줍어했다. 고작 영화 한 편 보러가는 것이 뭐 그리 대수라고 강아지처럼 눈을 댕그랗게 뜨고 좋아하는지 의아했다.

새벽이었다. 그녀에게 금전적인 문제에 대해 따로 말하지 않았다. 큰 뜻을 위해서는 감정조차 선별적으로 전달해야 했다. 확실히 전과는 달랐다. 몸이 가벼웠다. 고된 노동이 예정되어 있지만 거뜬히 감당할 수 있었다.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음 공터를 떠나 배회했던 그때와는 사뭇 다른 활기였다.

그때가 모험이라면 지금은 목표였다. 인력알선 사무소로 향했다. 긴장됐다. 일을 배정받지 못해 빈손으로 집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그녀와의 약속을 지키는 못할까. 걱정이 앞섰다. 평소와 다르게 의욕적으로 노동력을 어필했다.

“소장님 오늘 일이 있어서요. 일 좀 꼭 부탁드립니다.”

평소 말없이 구석에서 기다리던 모습과 대조되었는지 사장님은 신기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눈에 띄는 것이 부담스러워 나서지 않았지만 목표 앞에서 이는 허식에 불과했다. 다행히 일을 배정받고 일터로 향했다.

웬일인지 일과는 예정보다 일찍 끝났다. 모든 것이 톱니바퀴처럼 딱딱 맞아들어 갔다. 덕분에 샤워하고 꽃단장할 여유를 확보할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와 그녀에게 안부를 전했다.

“다녀왔습니다.”

“응, 왔어?”

그녀가 찌개를 끓이고 있었다. 노동 끝에 복귀한 가장에게 주어지는 가장 큰 행복이었다.

“씻어야지, 밥 차려 놓을게 와서 먹어.”

샤워를 했다. 약간 뜨거우면서도 몸을 알맞게 덥혀주는 적정한 온도였다. 물줄기와 함께 고단함이 씻겨 내려갔다. 만족, 대만족이었다.


‘이대로도 썩 괜찮은데’


되도 않는 생각이 찰나에 스쳐지나갔다. 그러나 정말 찰나였기에 금방 정신을 차렸다. 사사로운 것에 만족해서는 대의를 이룩할 수 없었다. 앞만 보고 곧장 달려야 한다.

샤워를 마치고 옷을 갈아입은 후 욕실에서 나와 곧바로 식탁에 앉았다. 그녀는 밥상을 차려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흐뭇했다. 고작 하루가 지나 몇 끼의 밥을 함께 먹었을 뿐인데 과거의 공백은 어디론가 사라져 어색함 대신 자연스러움이 자리를 차지했다. 단란한 저녁이었다. 끼니가 거듭될수록 그녀에게 더 많은 얘기를 나눠주었다. 이는 모두 계획 하에 있었다. 말이 많은 그녀의 구강적 욕구를 충족해주려는 음모였다. 그녀는 점차 대화에 중독될 것이었다. 중독은 사람을 좀먹는다. 훗날 이를 알아도 때는 이미 늦었다. 그녀는 중독된 것들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 친히 쥐어주는 모든 것에 중독되게 만들어야 했다.

식사를 끝내고 방으로 들어갔다. 졸음과 고단함이 마치 자석이라도 된 것처럼 지친 몸을 매트리스로 이끌었다. 침대에 눕자 눈꺼풀이 천 근, 만 근이었다. 자고 싶었다. 아마 이대로 자도 그녀는 별말 없이 수긍할 것이다. 아쉬움은 남겠지만 선택권이 없는 그녀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목표’


몸을 일으켰다. 엄청난 발전이었다. 본능을 이겨낸 궁극의 진화였다. 날로 성장해나가는 모습에 괜히 대견스러워졌다. 머리를 말리고 깔끔하게 정돈했다. 검은 목도리를 착장하고 그녀를 불렸다.

“영화 보러 가시죠.”

“응? 안 피곤해? 자는 줄 알았어.” 그녀는 데이트 약속이 파투나는 줄 알았는지 섭섭한 속내를 애써 감추며 말했다.

그녀는 벌어지는 웃음을 감추지 못한 채 데이트를 나갈 채비를 했다. 먼저 집을 나와 담배를 피우며 기다렸다. 그녀가 준비를 끝내고 나오는 모습을 보고 앞서 걸어갔다. 그녀가 뒤따라왔다. 앞서 가 있다가 멈칫했다. 그녀를 기다렸다가 나란히 걸었다. 그녀가 용기를 내어 팔짱을 꼈다. 역시 안 되겠다. 거부감이 들었다. 팔짱을 풀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녀에게 신뢰를 얻어야 했다.

심야 시간대 영화관은 한적했고 어둑한 인테리어가 유난히 폐쇄적이며 안정된 느낌을 줬다. 썩 나쁘지 않은 적막이었다.

“보고 싶은 거 있으세요?”

“TV에서 보니깐 이 영화가 나오던데.”

형사들을 주제로 한 코미디 영화였다. 무난했다. 그녀가 좋아하는 달콤한 팝콘을 샀다. 그녀가 달콤한 팝콘을 좋아하는지 어떻게 알았을까. 모르겠다. 무슨 빵을 좋아하는지도 몰랐으면서 좋아하는 팝콘을 알고 있다니 다소 어폐가 있다. 어쩌면 그녀에 대한 관심이 생각보다 많았을지도 모른다.

직원의 안내를 받아 상영관으로 들어갔다. 칠흑이었다. 하필이면 입장과 동시에 영화 시작 전 광고가 끝이나 순간적으로 상영관 전체가 암흑이 되었다. 토끼굴이 생각났다. 토끼굴에서의 경험이 트라우마가 되었는지 암흑이 불편했다. 틀림없는 억지였지만 괜스레 그녀와 토끼굴을 엮으며 속으로 분개했다.


‘모르는 게 약이었는데, 되도 않는 걸 경험해서.’


영화가 시작했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극장에 온 게 언제였을까. 오랜만이라고 하기에는 그녀에게 있어 너무 옛날이었다. 그녀는 신이나 보였다. 어린 아이 같았다. 평범하고 뻔하고 특별할 것 없는 대형 TV와 저질 코미디였다. 마치 처음 본다는 듯이 설레어하는 그녀의 모습에 미안함이 감돌았다. 이러면 안 되는데, 함께 있는 내내 뚜렷한 이유 없이 희비가 엇갈렸다. 그녀처럼 감정의 추종자라도 된 것일까.

그녀는 배우들의 희극에 푹 빠져 씬마다 웃음꽃을 피웠다. 그리도 재밌을까. 덩달아 웃었다. 영화는 진부한 코미디에 불과했지만 옆자리 동행자의 리액션만으로 충분히 즐거웠다. 영화가 끝났다. 무슨 내용인지는 모르겠지만 꽤나 유쾌했던 영화였다. 그거면 됐다.

집으로 돌아와 아쉬운 만남을 뒤로하고 각자의 방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내일이 기다려지겠지. 내일도 그녀를 만족시키기 위해 부단히 애써야겠지. 모든 것이 좋았다. 목표가 생겼음에 활기가 돋았다. 다만 하루에도 몇 번씩 희비가 오가니 혼란스러웠다. 역시 존재 자체가 무딘 개체였다. 시작한지 얼마나 됐다고 처음의 그 결의를 잊고 마음이 뒤숭숭하다니 변함없이 한심했다.

새벽의 출근과 저녁의 밥상을 반복하며 한 주가 지났다. 그녀는 대단히 만족했다. 뒤늦게 철이 든 가장에게 이제는 온전히 기대어 살 수 있다는 희망을 맛본 듯했다. 방심하기를 원했지만 막상 방심하니 뭔가 괘씸했다. 그녀가 심리적인 거리를 조금만 더 밀착해 온다면 본격적으로 그녀에게 적의를 내세울 것이다. 그때가 기다려졌다.

모처럼 쉬는 주말이었다. 곤히 잠들어 휴식을 취하려 했지만 그녀의 방에서 소란이 일색이었다. 가납사니들이 교회에서부터 신앙을 포장해 온 것이다. 짜증이 났지만 참았다. 이는 이미 익숙한 감정과 상황이기에 이겨내는데 있어 큰 어려움은 없었다. 그들의 대화가 들려왔다.

“언제 왔데?”

“어디서 뭘 한 거야?”

“그래도 돌아와서 다행이네.”

하여튼 가십거리에 환장하는 무리였다. 또 무슨 작당모의를 하는 것일까. 가납사니들이 그녀에게 용기를 심어준 탓에, 그녀에게 반박을 연습시켜준 탓에 그녀가 저항의 불을 지폈던 과거가 떠올랐다.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는 없었다. 저항의 불씨에 저들이 다시 장작을 넣기 전에 손을 써야 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됐다. 선뜻 문을 나섰다.

“안녕하세요.”

“어고, 오랜만이네요.”

“어디 있다가 이제 왔어.”

가납사니들은 전에 없던 환대에 놀랐는지 당황스러운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그녀는 사뭇 전과는 다른 집안의 분위기를 향유하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밖에 나가서 고생 좀 하고 오더니 사람이 바뀌었네.” 가납사니가 감히 말했다.

“집 나가면 고생 밖에 더하겠어? 이렇게 두면 알아서 기어들어와.” 가납사니가 함부로 말했다.

그들은 여전히 사람 하나 잡아다가 자신들의 허욕을 채웠다. 그녀는 사람 마음도 모르고 가납사니들에게 동조하며 맞장구를 쳤다. 덕분에 잠재된 야욕에 불을 지펴줬다.

‘변함없다. 역시는 역시다’


기다려야 했다. 군자의 복수는 10년이 걸려도 늦지 않는다고 했다. 우선은 그들에게 호의를 베풀며 경계심을 낮춰야 했다. 차츰차츰 방해물을 제거하다보면 목적지를 향해 올곧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마실 것 좀 사올게요.” 가식의 미소를 지으며 뒤로 물러났다.

혁혁한 해가 중천에 떴다. 한결같이 불쾌했다. 나무는 초록을 벗고 앙상한 뼈대를 드러냈다. 조락의 계절이었다. 나무에 가까이 다가갔다. 그때의 생기는 어디로 가고 이리도 초라할까. 딱하게 여겨졌다. 나무를 중심에 두고 한 바퀴 돌았다. 발에 뭔가가 밟혔다.


‘바닥을 기는 새’


성체인지 새끼인지는 모르겠다. 이름 모를 새가 나무 밑에 쓰러져 굳어 있었다. 발로 툭툭 건드려 봐도 반응이 없었다. 윤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깃털과 생기 잃은 눈깔, 어디에도 생명력은 없었다.



‘알을 깨고 나온 세상이다.’

D.png


작가의말

14) 출처 불명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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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16 시화란
    작성일
    24.05.19 18:32
    No. 1

    0. 정주행 완료, 잘 봤습니다.

    1. 주인공에게는 세상의 모든 사물과 현상이 너무나도 깊은 밀도를 가지고 다가오나 봅니다. 생각이 깊은 탓에 시야에 닿은 모든 곳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고, 배후를 추론하고, 비유를 통해 이름을 붙이고, 의인화시켜 자신과 관계짓고, 이야기를 만들어내는군요. 그것은 분명 시인의 자질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시선의 방향은 내내 안쪽만을 향해 있습니다. 어디에서 출발하든 자학으로 끝나고 맙니다. 주인공의 정신 상태가 많이 위축되어 있음을 보여주는 듯합니다.

    2. 사랑하는 그녀와 가납사니들. 그녀의 손에 이끌려 교회라는 이름의 커뮤니티에 출석한 전적이 있으신가 보군요. 그들은 아버지를 믿는 자들일 뿐 아버지와 같은 자들은 아닙니다. 믿는다고 해서 닮을 리가 없는데, 믿기 때문에 보통과 다르진 않을까 하는 기대가 낙차를 만들어냅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들 또한 보통입니다. 그러나 기대 속에서 그들은 보통이 아니어야 했습니다. 그 결과 추악한 것으로 보여집니다... 동일한 내용의 실망을 겪어본 입장에서, 주인공의 가납사니들을 향한 부정적인 시야에 깊이 공감하는 바입니다.

    3. 걱정하는데 비난하고, 당해주다가 공격하고, 길러줬으나 길러지고 있고, 나를 위해 울면서 나 때문에 울기도 하고, 복수하고 싶기도 하고 사과하고 싶기도 하고, 사랑스럽고도 미운 사람. 한 단어로 퉁치자면 '애증'의 존재인 그녀. 숨겨 무엇하겠습니까, 어머니네요. 어른은 지혜로워야 하는데, 지혜로운 어른답지 않게 값싼 동정에 의존하면서 연명하고 노후는 준비해놓지도 않은 그녀는 약하고 아둔합니다. 그러나 그런 약함을 가지고 그 나이가 될 때까지 꾸역꾸역 살아왔기에 강합니다. 강함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음이 강한 것이니까요. 이 논리에 따르면 그녀는 약하기에 강하군요. 주인공은 전자에만 주목하는 듯 보입니다. 그녀의 약함을 동정하기에 사랑하지만 그녀의 약함이 죽일 만큼 증오스럽습니다. 그러나 진리는 극단에 있지 않습니다. 그녀는 약하기도 하고 강하기도 합니다. 혹은 약하지도 않고 강하지도 않습니다. 주인공의 시야에 너무 오랫동안 집중적으로 포착되었기에 그녀는 그녀 존재 자체를 벗어난 너무나도 많은 의미를 지닌 기호로 변질되었습니다. 주인공의 머리 속에서 이미 '그녀는 약하다'는 결론이 내려졌기에 그녀를 조치를 취해야만 하는 대상으로 간주합니다. 그러나 진리는 극단에 있지 않습니다. 그녀는 약하기도 하지만 강하기도 하거나, 약하지도 않고 강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주인공이 너무나도 일찍 찾아온 판단에 몸을 맡겨 무슨 행동을 저질러버리지 않을까... 최신화까지 읽은 시점에서 쉽게 예상이 됩니다만, 아직 판단을 유보할 수 있는 시간은 충분합니다. 그런데 그 판단을 무르고 싶어할까요? 또, 그래야 할 필요는 있고요? 그건 다음화가 나와야 알 수 있는 일이겠군요.

    4. 심신의 아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신세, 과도한 자기비하, 나만의 작은 세상을 제멋대로 해석하는 버릇, 글이라는 배출구. 읽는 내내 '난가?' 싶었습니다. 그 유사성에 기대어 끝까지 읽을 수 있었음을 여기서 고백합니다. 이게 픽션인지 에세이인지는 모르겠는데, 뭐가 됐건 당신 재능 있습니다. '태초에 빛이 있었다. 여기에 빛이 있다. 그렇다면 이 숨의 끝에 태초가 있다.' 는 문장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페이지를 가득 채운 'ㅋㅋㅋㅋㅋㅋ' 파트도요. 내면에 들어차 있는 검고 걸쭉한 덩어리들을 문장의 형태로 정제하여 끄집어내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다른 모든 일에 비교해 봐도 결코 꿀리지 않을 만큼, 동일한 난이도를 지닌 생산 행위란 말입니다. 작가님의 다른 작품 목록을 봤습니다. 아포칼립스물에 도전해보셨군요? 먼저 동일한 장르의 다른 작품을 많이 읽어보시길 권합니다.(Ex. 임기 첫날에 게이트가 열렸다, 망겜의 성기사, 멸망한 세상의 사냥꾼. 이미 읽으셨다면 죄송합니다.) 주제 넘은 참견입니다만, 처음부터 끝까지 완독한 독자로서 이 정도 참견은 할 수 있지 않나요? 아님 말고.

    5. 본 작품에서 자주 인용된 도스토옙스키의 '미성년'은 자전적 소설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글이 작가님 자신의 이야기라는 은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주인공이 겪는 모든 고통의 묘사는 작가님의 현실이라는 것인데... 안타깝군요. 뭐라도 격려를 건네드리고 싶은데 또 만약에 이것이 자전적 이야기가 아니라면 머쓱하잖습니까? 그러니 더 이상의 참견은 하지 않기로 하겠습니다. 그럼 제가 좋아하는 글귀만 하나 남기고 가겠습니다.

    6. 도끼는 날카롭다.
    그렇다고 도끼 그 자체가 나무를 베어넘기진 않는다. 누군가가 도끼질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 도끼를 손에서 놓아라.
    도끼=고통, 나무=삶입니다. 주인공에게, 그리고 주인공과 똑 닮은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입니다. 이 댓글을 쓰면서 나에겐 이미 이 말을 해줬군요. 주인공에게도 이 말이 전해졌으면 좋겠습니다. 근데 결국 작가님 마음대로죠. 흔히 '쥐흔'이라고 해서 독자 입맛대로 글의 방향을 바꾸려는 무리가 있다고 하는데 세상에 제가 그 비슷한 짓을 하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너무 몰입해서 읽어서 그런가 봅니다. 너그러이 봐주시길.

    7. 2시간 동안 댓글을 쓴 건 이 작품이 처음이네요. 건필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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