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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용감한황소 님의 서재입니다.

나 아포칼립스에서 전당포 한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완결

용감한황소
작품등록일 :
2024.04.02 22:15
최근연재일 :
2024.04.14 22:35
연재수 :
1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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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수 :
76,713

작성
24.04.14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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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내막

DUMMY

우리 동네에는 불문율이 있다.


[누구의 것도 아니며, 누구의 것이기도 한 재산은 함부로 손상시키지 않는다.]


대표적으로 우물이 있다.

대 생존의 시대에 식수의 중요성은 두말하면 입 아프고 생수 보급이 일정치 않은 실정인지라 우물의 존재감은 가히 생명수에 버금간다. 주민 구성원들의 관심과 보호가 우물에 집중될 만하다.


또 다른 대표로는 매춘이 있다.

다소 불쾌한 진실이다. 욕정을 매매한다는 건 시대를 불문하고 천박하고 볼품 없는 행위에 지나지 않았으므로.

그런데 고작 창녀 따위가 모두의 관심 아래 보호받아야 할 성역 대우를 받는다니 가소롭기 그지 없다.


하지만 법망이 무너진 오늘날 그녀들의 가랑이가 사회가 제 구실하는데 일조한다는 건 틀림 없는 사실이다.


만일 창녀들의 헝그리 정신과 '열려라! 허벅다리'가 없었다면 짐승들은 암컷을 찾아 무차별적인 경쟁 체제에 들어갔을지 모를 일이다.


내재된 욕망이 역치를 깨부수는 순간 괴물이 된다. 고로 누군가는 받아줘야 한다, 언제 분출될지 모를 짐승들의 원초적 본성을.


이것이 우리 동네 창녀를 수호하는 이유다.


과거의 영광-삼권이 분리되고, 정의를 흉내라도 내며, 야간의 일상화가 이뤄지던 그 옛날-을 기대하는가?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고 헛된 바람은 현실을 왜곡시키려 할 뿐이다.


하루 아침에 부산이 피바다로 물들고, 수도 서울이 괴물들의 극락이 되어갔고, 개발불능 지역으로 손에 꼽히던 강원도 산자락이 천혜의 요새로서 부익층의 선택을 받는다.

하루가 다르게 천지가 개벽하는 마당에 질서가 보편타당하게 존립하기를 바라는 건 욕심이다.

치안이 그렇다. 군경은 개개인의 인권을 수호하기보다는 시-동-면-읍-리 단위의 공동체를 통솔하는 데 주력한다. 이 탓에 개인의 안전은 조직의 군기에 밀려 뒷방 늙은이 신세로 전락, 노인, 아이 그리고 여자들의 안전은 사치품이 된지 오래다.


늙은이는 버려지고 일쑤요. 아이들은 착취의 대상이니. 여자들은 어떻게 되는가?


당신들의 고고한 가랑이를 보존하는 건 오늘이 마지막일 수 있다. 내일 밤에도 순결할 것이라 장담한다면 당장 내일 오후를 조심해라.

욕정에 메마른 짐승들은 낮과 밤을 구분하지 않으니, 당신들은 언제라도 쾌락의 배출구 신세로 격하될 수 있다.


자, 평화의 시대에서 누렸던 치안은 이제 역사의 페이지에서나 볼 법한 옛일이다.


과연 당신들은 어떻게 생존할 것인가.


「똑똑」


노크 소리를 못 들은 건가. 아니면 아직 분칠이 끝나지 않은 건가?


「똑똑」


노크를 두 번하고서야 "네~"라는 대답을 들을 수 있었다.


이윽고 경첩에서 '끼이' 소리가 나며 현관문이 열렸다.


"어...?"


문을 열어준 장본인이 손님 맞이할 생각은 안 하고 다짜고짜 놀라고 있다.


그 리액션을 보잖니 내가 오면 안 될 곳에 온 것 같아 미안하다. 환영받지 못하는 손님의 기분이란 이런 것일까.


"아저씨가 여긴 어떻게 알고 왔어요?"

"다 알만하니까 찾아왔겠죠."


160cm 초중반 대의 아담한 키와 적절한 볼륨감.


특히 은은하게 살이 오른 아래 뱃살이 남자들의 시각적 흥미를 돋운다.


저 말캉망캉한 살가죽을 침대 위에 눕혀두곤 위아래로 출렁이는 꼴을 직관할 수만 있다면 나흘치 식량을 내어줄 의향도 생긴다.


남자는 이래서 신세를 족치는가 싶다.


"나 이런 일 하는 걸 알고 있었어요?"

"이런 일이라면 뭘 말씀하시는 겁니까."

"...다 알면서 되묻지 말아요."


동네에 몇 없는 창녀, 그 이름은 이지원.


그녀의 직업을 전부터 알고 있었다.


알고 있었지만 함께 있는 내내 모른 척했다.


세상 그 어느 여자가 '매춘부'라는 직함을 공개하고 싶을까.


자고로 집창촌에서조차 매춘부에게 창녀의 '창'자만 입밖으로 꺼내도 대굴빡에 오함바가 꽂힐 수 있다.


매춘부 앞에서 직업을 운운한다는 건 가히 사회적 즉결처형과 다를 바 없다.


"뻔한 말을 뱉어야 할까요? 예를 들면 왜 이런 곳에서 이딴 짓거리를 하고 있냐. 무슨 생각으로 살아가는 거냐. 창피하지도 않냐. 사람으로서 최소한의 성적 윤리관도 없냐. 뭐 이런 흔해 빠진 말 있잖습니까."

"방금 잘도 말하셨는데요?"

"어디까지나 예를 든 겁니다."


나는 자연스레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다.


세탁되지 않은 이불보에서 여러 사람의 밤꽃냄새가 혼재되어 풍겨왔다.


남자가 맡기엔 그 어느 향수보다도 독한 냄새였다.


"그래서 왜 왓는데요. 뭐가 궁금해서 온 건데요. 무슨 이유로 온 건데요? 내가 왜 속옷바람으로 아저씨를 맞이했는지 변명이라도 해줘요?"


들려줘도 좋고, 안 들려줘도 상관 없다.


어차피 난 여자 인생 푸념이나 들으러 온 게 아니니까.


"아저씨, 제 성격 아시죠?"

"비교적 직설적인 분이라는 건 잘 압니다."

"네, 잘 아셔서 다행이네요. 그럼 그냥 터놓고 말할게요. 몸 편하게 일하면서 보상을 많이 받고 싶었어요."


눈 하나 깜짝 안하고 말했다. 그녀다운 솔직함이었다.


하지만 요지부동인 눈꺼풀과 다르게 눈동자는 규모 5.7 수준의 지진이 일어났다.


"왜 가만히 있어요? 또 다른 이유라도 들려줘요? 당장 아이고 어른이고 상관없이 길 건너다가 언제 배때지에 칼빵날지 모를 세상이에요. 그런 세상에서 여자 혼자 몸 성한 곳 없이 살려면 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데요?"

"여기라면 안전하긴 합니까."

"적어도 길바닥에 떠돌아 다니는 것보단 낫죠. 여기라면 포주가 경호원 노릇도 해주고, 또 많은 남자들이 날 필요로 하니까 함부로 헤치지 않고요."

"이곳을 이용하는 고객들의 암묵적인 룰 같은 겁니까. 당신의 가랑이는 우리 모두를 위한 것이니 닳고 닳을 때까지 온전히 보관하자는?"

"... 시발새끼."


역시 똑똑하다면 똑똑한 여자다.


최소한의 노동으로 많은 보상을 쟁취하고.


포주에게 일정한 대가를 바치는 조건으로 질 좋은 경호 서비스를 제공 받는다.


또 빅브라더스의 눈동자마냥 남자들이 서로를 견제하고 경계하는 틈사이에서 여자인 자신의 신체적 위신을 지켜낸다.


윤리적인 잣대만 걷어낸다면 생존을 위한 타당한 전략이라 평가 받아도 좋다.


"아저씨도 내가 더러워요?"

"도둑이 제발 저린다더니, 난 아무말도 안 했는데 왜 넘겨짓는 겁니까."

"그야.. 사람들이 다.. 나한테.. 아저씨도 똑같잖아요."


이지원.

그녀는 평소 성격답지 않게 애처럼 질질 짜고 있었다.


"이보세요 이지원 씨."


나는 슬피 우는 숙녀에게 휴지 한 장 건네지 않았다.


대신 숨기고픈 과거를 꺼내놓았다.


"나도 죄 많은 사람입니다. 누굴 더럽다고 손가락질 할 입장이 못 된단 말입니다."


한참동안 나란히 앉아서 대화를 나눈 우린 담배를 나눠 피었다.


"사람들은 누구나 저마다의 나쁜 고리가 있습니다. 매번 끊어야 한다고 다짐하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죠. 우리 이지원 씨께서 그 고리를 끊고 싶다면 어련히 알아서 절 찾아오십쇼. 일자리를 알아봐 드리겠습니다. 그럼 전 이만 일어나 보겠습니다."


이날부로 난 전당포 '사장'이 되었고 이지원이란 부하직원을 고용했다.


***


신입 직원 교육한다고 한동안 정신이 없었다.


이것 봐라, 정신 못차리고 앞만 보고 달렸더니 달력 넘기는 것도 깜빡했다.


「똑똑」


바쁜 일상을 끝내고 커피 한 잔 내렸더니 그새 누가 또 현관문을 두들긴다.


「똑똑」


성격 급한 손님인지 연신 두들긴다.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안에 아무도 안 계시나요?"

"곧 나가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쇼."


밤 9시기 다 되어가는 시간이다.

현관문 앞에 '영업 종료' 팻말까지 붙여뒀는데 대체 어느 무례한 양반이 이 시간에 찾아오는지 어이가 없다.


"늦은 시간에 찾아봬서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이런 날도 있는 거죠."

"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복을 갖춰입은 손님이 나를 내려다봤다.


"혹시 김한상 씨를 알고 계시나요."

"김한상.. 이요?"

"네. 그분의 신원을 알고 계신 분을 찾아서요."


김한상.

딸배의 본명이다.


"김한상 씨의 이웃주민분들이 이곳에 가면 친구분을 만날 수 있다고 해서요."

"친구는 아닙니다만.."

"그럼 김한상 씨하고는 관계가 어떻게 되시죠."

"제가 사장 그리고 그분이 손님입니다.."

"지인 관계시군요."


아닌 밤중에 느닷없이 찾아온 손님의 지시에 따라 옷을 갈아입고 밤길을 걸었다.


"발길 조심하십쇼, 오늘따라 유난히 어둡습니다."

"네. 이런 날도 있는 거죠.."


하늘을 수놓아야 할 별들이 온데 간데 없을 뿐더라 짐승조차 짖지 않는 밤이었다.

심지어 달조차 야윈 탓에 그 빛이 가냘팠다.


"신기하네요. 초승달이라고 하기엔 유난히 볼품없는 것 같기도 하고?"

"네.. 이런 날도 있는 거죠."


제복의 사내가 곁눈질로 동행자를 쳐다봤다.


밤하늘이 어둑한 탓일까. 동행자가 고개를 숙이고 있는 탓일까. 그의 얼굴이 유난히 어두워 보였다.


"이곳입니다. 실제로 김한상 씨의 집을 찾아오신 적은 없다고 하셨죠."

"네."

"초행이겠군요."

"네."

"안에 들어가시면 당혹스러우실도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마음이 편치 않으시면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저희쪽 인원이 집까지 협보하겠습니다."

"괜찮습니다."


괜찮다.


괜찮고 말고.


괜찮고야 말고.


괜찮아야 한다.


괜찮다고. 괜찮다고. 괜찮다고. 괜찮다고. 괜찮다고.


난 시체를 보는데 익숙하다.


그러니까 괜찮다.


"괜찮으십니까."

"...."

"아무쪼록 죄송합니다. 살아생전 알고 지낸 지인분의 마지막을 이렇게 보여드려서."

"...."

"선생님 코피 나십니다.. 정말 괜찮으세요?"

"...."


거실 한 가운데 방치된 시체가 누워 있었다.


핏물은 고이다 못해 썩어갔고, 붉기는 어둡게 변절되어 있었다.


딸배의 익숙한 인상착의가 아니었다면 나는 그의 흘러내린 이목구비를 알아볼 수 없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그의 텅 빈 관자놀이가 속을 뒤집어 놨다.


흉측하기 그지 없다. 여지껏 보 시체 중에 가장 추잡한 육신일지 모르겠다.


"설명드리겠습니다. 듣다가 힘드시면 필히 말씀해주세요."

"...."

"사인은 자살.."


자살이란다. 자기 대갈빡에 총구를 겨냥하고 방아쇠를 당겼단다.


용기가 대단하다, 시발새끼.


"저희가 선생님을 찾아뵌 이유는 고 김한상 씨의 가족분들이.."


가족들은 이미 죽은지 오래란다. 아내는 괴물에게 잡아 먹혔고 딸은 괴한에게 살해됐단다.


그래서 생전 친하게 지낸 나를 찾아온 거란다.


친하게 지냈다고?

근데 난 왜 너의 가정사가 금시초문이냐, 개새끼야.


"보셔서 알겠지만, 집안 꼴이 쓰레기로 엉망입니다. 저희 추측으로 저장강박증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허구한 날 빈집 들어가서 이것저것 훔쳐오더니 고걸 죄다 집에 쌓아뒀던 거냐.


그동안 네 몸에서 난 악취가 홀애비의 땀 냄새인 줄 알았는데 쓰레기 썩힌 꾸역내였냐.


대체 무슨 인생을 살고 있었던 거냐.


왜 내게 한마디 어려움조차 입밖으로 꺼내지 않은 거냐.


"고인이 남기신 유서입니다. 필체가 많이 흔들려서 알아보기 힘드실 겁니다. 아마 고인께서 자살 직전에 쓰신 게 아닐까 추측합니다."


제복의 사내가 유서에 이어서 계약서를 내밀었다. 내게 서명을 바란단다.


사내의 얼굴을 바라봤다. 그의 동료들 안면도 훑어봤다. 다들 많이 피곤해 보인다. 하기야 시간이 많이 늦었으니 얼른 볼일을 끝내고 집에 들어가고 싶겠지.


살 사람은 살아야 하는 법이므로 난 산 자를 배려하여 재빨리 시체 수습 동의서에 서명했다.


얼른 퇴근들 해라. 해 뜰라.


***


여러분. 이게 그 자식 유서랍니다.


-----------------------------------------------------

여보 -~- ~- ~~-~ 미안해.

사랑하는 우리딸 -~-~ --~ 미안해.


아빠가 항상 부족해서 미안해.


배고플 텐데 제때 먹이지 못 해서 미안해.


목마를 텐데 갈증에 허덕이게 해서 미안해.


추울 텐데 옷 한 번 제대로 못 해 입혀서 미안해.


아빠가 더 열심히 살았으면 우리집 사정이 더 좋았을 텐데 매번 못해줘서 미안해.


가진 게 없는 아빠라서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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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체는 단조롭고, 표현은 진부합니다. 개인적인 소감으로는 진부하기 짝이 없는 유서라고 생각합니다.


내용은 또 어떻고요. 부족한 데 한이 맺혔는지 연신 없다는 말만 나열합니다.


그래서 부족한 집안을 쓰레기로 채웠나 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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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잘 먹고 잘 살아라. 24.04.14 9 0 14쪽
» 내막 24.04.14 5 0 13쪽
9 식구 24.04.12 8 0 11쪽
8 버려진 과거 Ⅱ 24.04.11 9 0 15쪽
7 버려진 과거 Ⅰ 24.04.10 12 0 11쪽
6 자주 듣는 플레이리스트. 24.04.09 13 0 12쪽
5 애미 없는 둘리들. 24.04.08 13 0 25쪽
4 동네 바보. 24.04.06 17 0 15쪽
3 췤지피티. 24.04.04 26 0 25쪽
2 약육강식. 24.04.03 32 1 15쪽
1 나 전당포 한다. 24.04.02 74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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