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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용감한황소 님의 서재입니다.

나 아포칼립스에서 전당포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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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용감한황소
작품등록일 :
2024.04.02 22:15
최근연재일 :
2024.04.14 22:35
연재수 :
1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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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76,713

작성
24.04.10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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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버려진 과거 Ⅰ

DUMMY

사진 속에는 구형 군복을 갖춰 입은 군인들이 K2 소총을 들고 나란히 서 있었다.

저 중 가장 끝자락에 서 있는 양반의 얼굴이 낯이 익었다.


파구스.

시대가 잊혀지기를 바라던 전사. 미소 짓고 있는 그의 얼굴이 애틋했다.


남의 추억을 엿본다는 게 양심에 걸리지만 나는 파구스의 신원을 확보하려 앨범 한 장 한 장을 넘겼다.


가장 마지막 장을 넘길 때쯤 메모를 발견했다.


[20XX.07.19]

[상부에서 명령이 하달 됐다. 헌터가 또 사고를 친 걸까. 사람을 상대하는 것도 지겹다. 애초에 괴물이 아니라 왜 사람끼리 다투고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20XX.09.23]

[이번 작전에서 우리가 상대한 적은 기존 헌터와는 그 기조가 달랐다. 마치 실험실에서 탈출한 짐승을 보는 것 같았다. 짐승이란 표현이 어쭙잖은 비유가 아님을 덧붙인다. 변신형 이능도 아니다. 말 그대로 짐승의 형상이었다.]


[20XX.12.24]

[크리스마스 이브에 작전이라니 지휘실에 앉아 있는 새끼들 싹 다 조지고 싶다.]


[20XX.12.29]

[또 그 짐승형 헌터가 출몰했다. 그의 허리춤에 걸려 있는 복장이 눈에 띄었다. 저건 누가 봐도 연구소에서 실험체가 입을 법한 하의였다. 하의 실체는 불타 사라졌지만, 대신 작전 중에 찍은 사진을 첨부한다.]


[20XX.03.01]

[짐승형 헌터의 출처를 밝히고자 비밀리에 움직였다. 모르는 게 약이라는데 내가 주제넘은 짓을 한 걸까.]


[20XX.11.02]

[짐승형 헌터의 추척을 그만두려 한다. 대신 연구소의 주소지를 남기고 간다. 이것이 내 최후의 양심이다.]


주소지를 적어놓은 글씨가 훼손되어 있었다. 그나마 알아볼 수 있는 것은 연구소의 위치가 충청권이라는 것쯤.


하지만 납득이 가지 않는다. 충청권이라면 새 수도 세종시가 있는 곳이다. 대가리에 빵꾸가 난 게 아닌 이상 어떤 머저리들이 수도 인근에서 비밀리에 실험을 할까.


"20XX년.. 20XX년.."


메모지에 적힌 날짜로 추측건대 아직 서울이 무너지기 전이다. 아마 비밀리에 연구하기 위해 그 당시엔 지방이면서도 수도권에 접근성이 좋은 충청도에 연구소를 둔 것이겠지.


"냐냐옹."


히즈가 무릎 위에 앉자 내 손이 자연스레 짐승의 머릿결을 쓰다듬었다.


"짐승형 헌터라면 내가 아는 그놈들인가."


다 잊고 살기로 했다.


그래서 도망쳤다.


고로 이제 와서 들추지 말자.


***


"저것도 가져다가 키우려고?"

"구경만 하는 겁니다."

"하나 들인 김에 집 안에 하나 더 들지 그래."

"하나면 충분합니다."


딸배와 나란히 앉아 들고양이를 구경하고 있었다.


"주인장아 웃기지 않냐."

"네 얼굴 말입니까?"

"내 얼굴 말고 저 고양이들 말이야. 한순간에 인생이 걸리잖냐. 주인 잘 만난 고양이는 호사를 누리고, 선택받지 못한 길고양이는 겨울이고 여름이고 길바닥 전전하며 하루살이 신세고."


들고양이가 우리 곁으로 왔다. 녀석은 털북숭이 얼굴을 들이밀며 아양을 떨어댔다.


과연 생사를 건 구애일까 아니면 단순한 애교일까.


아무렴 들고양이가 뭔 짓을 하던 변화는 건 없다. 너는 여전히 굶주리고 내일을 걱정해야 한다.


"주인장아~ 짐승은 결국 사람 만나기 나름인가 보더라."

"사람이라고 다릅니까. 사람도 결국 사람 만나기 나름이겠죠."


땀내 나는 아저씨들끼리 나란히 앉아 있는 것도 서러운데 대화 소재마저 떨떠름하다.


여기서 시간이나 낭비할 바에 집에 가서 히즈나 놀아주련다.


"나 혼자 냅두고 어디 가? 또 그놈의 고양이 놀아주러 가냐?"

"그냥 뭐 네."

"그냥 뭐 네? 뭐라고 주절거리는 거야."

"그냥 장사하러 갑니다."

"오늘 쉬는 날이잖아."

"마음 바뀌었습니다. 이제부터 연중무휴입니다."

"그럼 나도 같이 가."


전당포까지 따라온 딸배가 또다시 보따리를 풀어 헤쳤다.


"대체 이 많은 군용품은 어디서 가져오신 겁니까."

"저번에 말했잖아. 버려진 군부대를 찾았다고."

"조심 좀 하십쇼. 남의 호주머니 털어먹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꼬리가 길면 밟힙니다."

"꼬리 밟은 사람도 없다 이눔아."

"군부대잖습니까. 나중에 지역 방위군에서 꼬투리 잡으면 어쩌려고요."


보따리 속에서 쓸만한 물건을 뒤적거리던 중 낯익은 의류가 보였다.


"그건 감정 안 해줘도 돼. 다 헤져서 누가 사겠냐. 집에 뒀다가 걸레 대용으로나 써야지."

"이거.. 어디서 가져온 겁니까?"

"금붕어 새끼세요? 방금 말했잖냐, 버려진 군부대에서 가져왔다고."

"그러니까 그 군부대가 어디 있습니까."


낯익은 의류.


파구스 앨범에서 본 실험실 하의였다.


"내가 말할 입장은 아닌데 거길 들어갈 생각은 하지 말아라. 대체 군부대에서 뭔짓을 한 건지 동물 똥냄새가 말이 아니야. 내 살다 살다 그런 악취는 처음 맡아본다니까."

"얼마입니까."

"보따리 안에 든 요것들? 에헤이~ 이 양반아 엿 가격을 내가 알겠나, 엿장수가 알지. 주인장이 값만 잘 쳐준다면야 전량 매각하고 싶은데 어땨?"


책상 위에 담배 한 보루를 올려놨다.


"에헤? 내일 모래 서울로 올라가게? 곧 뒤질 사람도 아니고 뭘 이리 많이 줘."

"물건은 가져가셔도 좋습니다."

"돈을 줬으면 물건을 받아야지 돌려주는 게 어딨어?"

"주소지나 불러주십쇼."


***


헌터는 세 갈래로 나뉜다.


초상관리부 산하 이능 조합원에 소속되어 국가의 충실한 개가 된 헌터.


민간 헌터 길드에 가입하여 개 같이 돈을 벌어대는 헌터.


공식적인 등록을 거부하고 개썅마이웨이의 길을 걷는 부정 등록자.


대 이능 특임대는 대체로 부정 등록자 혹은 헌터 범죄자를 상대한다.


[20XX.09.23]

[이번 작전에서 우리가 상대한 적은 기존 헌터와는 그 기조가 달랐다. 마치 실험실에서 탈출한 짐승을 보는 것 같았다. 짐승이란 표현이 어쭙잖은 비유가 아님을 덧붙인다. 변신형 이능도 아니다. 말 그대로 짐승의 형상이었다.]


실험실에서 탈출한 것 같은 짐승형 헌터.

파구스가 상대한 놈들이 만일 그 녀석들이라면..? 아니야, 요점은 녀석들의 정체가 아니다.


애초에 그 실험이 왜 최근까지 자행된 거냐고.


"냐옹."

"추워, 점퍼 밖으로 나오지 마. 주머니 속에 들어가 있어."


실험의 전위를 파악해야 한다. 모르는 게 약이라지만, 아는 게 힘이라는 얘기도 있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간 자칫 내게도 불똥이 튈 수도 있다.


"냐옹."

"답답해도 들어가 있어. 이제부턴 위험해질 수도 있으니까."


만일 버려진 군부대가 그 실험의 연구소라면? 난 제 발로 호랑이 굴에 찾아가는 꼴이다.

여차하면 죽음에 직면할 수 있다.


그래서 히즈를 데려왔다. 내가 아니면 아무도 돌봐주지 않을 테니.


처량하게 홀로 죽는 것보다 보호자의 품에서 죽는 게 낫겠지.


[관계자 외 출입을 금지합니다.]


[정지 정지 정지]


[멈춰]


가는 길목마다 외부인의 출입을 저지하는 푯말로 가득했다.


난 경고를 무시하고 전진했다.


[732 탄약 중대]


네들이 탄약 대대라고? 구라를 칠 거면 좀 성의껏 쳐야지.


주변에 왕릉 같은 탄약고라곤 일절 안 보이는데 뭔 놈의 탄약 중대야.


***


버려진 군부대.

사실 키워드 자체가 모순이다.


애초에 군부대는 철수할 때 외/내부 시설을 모두 철거하고 떠난다.


만일 군부대가 형태를 유지한 채 버려지 있다면, 그건 철수가 아니라 포기다.


[이 곳 --- 몸 담은 - 자-- 지옥--]


[우린-- 벌을 받아-- ㅁㅏ땅-- ㅎ - ㅏ-- 다]


내부로 들어가자 기괴한 문구가 붉은색 스프레이로 떡칠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 모양새가 상당히 인위적이다. 마치 연출된 기괴함이라고나 할까. 철수 직전까지 외부인의 출입을 막고자 쇼를 벌인 느낌이다.


"통신선, AN/PRC 무전기, KMARK-5.. 어쭈 총기함에 개인 화기까지 두고 갔어?"

"냐옹?"


부대 철수 결정이 갑작스레 이뤄졌는지 A급 군용품이 본래 그 자리에 방치되어 있었다.

이래서 딸배가 군부대에 갔다 오는 족족 노다지를 캐온 건가.


"냐옹!"


암만 감각이 예민한 인간이라도 짐승의 감각만 할까.


돌연 히즈가 비명횡사하며 가슴 품속으로 들어가자, 머지않아 실내 깊숙한 곳에서부터 악취가 풍겨왔다.


그 악취는 축축하게 젖은 닭똥이 오랜 기간 숙성되었을 때나 날법한 냄새였다.


코끝이 저리는 것은 당연하고 입조차 벌리기 힘들었다.


마음 같아서는 전신의 구멍이란 구멍은 죄다 틀어막고 싶었다. 아 시발 눈물까지 나오네. 아 시발 눈물에서 생선 썩은 내가 나는 것 같아.


『인공 이능화 실험 시작하겠습니다.』


『6974번 질문에 대답합니다. 6974번, 본인의 테스트 코드를 불러주세요. 6974번--』


『실패한 것-- 같- 습-- 새로운 실험체가-- 필요--』


지독한 악취 속에 병실에서나 맡을 법한 익숙한 향기가 있었다.


그 향기를 맡자, 과거에 묻혀뒀던 기억이 떠오른다.


『69--7-- 번 폐기 검토-- 부탁드립ㄴ--ㅣ--다-』


내 나이가 몇인데 이제 와서 지랄 맞은 학창 시절 추억이 떠오르는지 어이가 없다.


과거는 묻우독 앞만 보고 나아가자.

응? 낌새가 이상하다. 저곳에 무엇인가 있다.


"끼끽끼기끼기 끼기기기기끼!!!"


"끄곽구곽 끄구거가까아!!"


"아악 아앜앜아 악악아가아가!!!!"


짐승의 악취에 이은 짐승의 포효가 들려왔다.


내 정신 좀 봐라. 딸배가 깊숙이 들어가지 말라고 그렇게 일렀건만 학창 시절 추억에 잠겨 무의식적으로 걷는 바람에 너무너무 깊숙이 들어온 것 같다.


"침팬티, 까마귀, 호랑이, 낙타.. 어라? 고라니도 있었네."


햇빛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실내. 어렴풋이 윤곽으로나마 구분할 수 있었다.


철창 속에는 갖은 동물들이 유기되어 있었다.


설마 그 실험. 설마 그 실험체인가..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이겠지. 그래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이라면 인사 정도는 괜찮을 거야.


"인사가 늦었습니다, 선배님들. 아니지요. 후설된 연구 시설이니 저의 후배님 되시겠습니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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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버려진 과거 Ⅱ 24.04.11 8 0 15쪽
» 버려진 과거 Ⅰ 24.04.10 12 0 11쪽
6 자주 듣는 플레이리스트. 24.04.09 13 0 12쪽
5 애미 없는 둘리들. 24.04.08 12 0 25쪽
4 동네 바보. 24.04.06 17 0 15쪽
3 췤지피티. 24.04.04 26 0 25쪽
2 약육강식. 24.04.03 32 1 15쪽
1 나 전당포 한다. 24.04.02 73 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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