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x용감한황소 님의 서재입니다.

나 아포칼립스에서 전당포 한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완결

용감한황소
작품등록일 :
2024.04.02 22:15
최근연재일 :
2024.04.14 22:35
연재수 :
11 회
조회수 :
209
추천수 :
3
글자수 :
76,713

작성
24.04.09 22:30
조회
12
추천
0
글자
12쪽

자주 듣는 플레이리스트.

DUMMY

오늘의 손님은 나이 지긋한 신사였다.


"손님 죄송합니다만 전자기기는 양품만 받고 있습니다."

"이상하다,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물건인데.."

"거래는 힘들 것 같네요. 뒤에 계신 분들이 기다리고 계시니 이만 자리를 비워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노신사는 뒷사람들의 눈치를 못이기고 대기석으로 몸을 옮겼다.


그렇게 차례차례 자기보다 늦게 온 손님들이 거래를 끝마치도록 노신사는 보고만 있었다.


"손님 이제 곧 문 닫을 시간이라서요."

"미안해요. 미안합니다. 내가 젊은이한테 부탁할 입장은 아니지만 물건을 한 번만 더 봐줄 수 없을까요."


나직이 한숨을 토하고는 노신사의 물건을 받아들였다.


결과는 똑같았다. 역시나 작동되지 않는 불량이다.


그는 미련이 남았는지 좀처럼 가게 밖을 나서지 못하고 담보물을 매만졌다.


"사장님 제가 당장 먹여살려야 할 손녀가 있습니다. 값은 깎아도 좋으니 고물값이라도 내어주면.."


거래가 마음처럼 안 될 경우 손님들은 곧잘 동정 마켓팅을 활용했다.


용 쓰는 꼴이 기특하다만 내겐 너무 익숙한 래퍼토리다. 한편 질릴 대로 질린 술수이기도 하다.


"말씀드렸다시피 양품이 아니면 물건을 받지 않습니다."

"손녀가 나흘을 굶고 있습니다. 한줌이라도 좋으니 먹을꺼리를.."


눈앞의 노신사조차 살가죽이 말라 비틀어져 있었으므로 굶주림이 거짓말은 아닌 것 같았다.


무엇보다 노신사의 체구에 비해 과도하게 큰 양복이 그동안의 허기를 증명했다.


대체 살이 얼마나 빠져야 양복이 망토마냥 나풀거릴 수 있는 걸까.


"늙은이가 주책 맞게 젊은이 바짓가랑이 붙잡고 늘어져서 미안해요."


노신사가 등을 돌렸다. 힘없이 출입문을 열어 젖혔다.


나는 망에 담긴 고구마와 노신사를 교차해가며 바라봤다.


머지않아 내 머릿속의 계산기가 산수를 끝냈다. 역시 수지타산이 안 맞는다.


"조심히 들어가십쇼, 손님."


문이 힘 없이 닫혔고 그를 빈손으로 떠나 보냈다.


***


시발 여기가 분실물 신고 센터도 아니고 왜 자기 물건을 안 가져가서 내가 구태여 찾아주러 돌아다녀야 하는 거냐고.


"혹시 이 근방에서 품이 큰 양복을 입은 노신사를 보내셨습니까?"


"혹시 손녀와 함께 나다니는 노인을 보셨습니까?"


"혹시... 아, 못 보셨나요."


마음 같아서는 놓고 간 물건을 꽁으로 먹고 싶다만 내게도 신념이란 게 있다.


비록 남들에게는 고금리 불법 사채꾼이라 손가락질 받지만, 적어도 값을 치르지 않은 물건은 수중에 들이지 않는다.


그것이 전당포 주인장으로서의 순정이니까.


"어르신!! 어르신! 물건 놓고 갔습니다!! 어르신 사람이 부르면 대답을 쫌!!"


늙은이가 귀가 먹었는지 좀처럼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대신 그의 손을 붙잡은 자그마한 손녀가 고개를 돌렸다. 노인은 그제서야 나의 존재감을 인지했다.


"전당포 사장님 아니십니까. 여까지 무슨 일로?"

"별일은 아니고 두고 가신 물건이 있어서요. 받으십쇼."

"이거 본의 아니게 또 실례를 범했습니다. 제가 나이를 먹었더니 모든 깜박 깜박 하네요."


손녀가 게슴츠레한 눈으로 나를 올려다봤다.


탐탁지 않다는 그 표정이 참으로 아니꼽게 다가왔다.


"할아버지 이 아저씨 누구예요? 왜 엄마아빠 카세트를 들고 있어요?"

"응. 할아버지 친구인데 잠깐 맡아준 거야."


부모님이 물려주신 카세트인가 보네. 그럼 부모님은 어디간 거지.


"요즘 같은 시대에 눈치 체셔겠지만 아이 부모가.."

"할아버지!! 그거 말 하지 말라고 했잖아요!"


안 봐도 뻔하다. 죽었거나 도망갔거나. 둘 중 하나겠지.


아무렴 어떠랴. 내 알빠도 아닌데.


"마감 정리를 채 못 끝내고 와서요.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사장님 여 앞이 저희집 입니다. 찾아와주신 수고가 있는데 제가 물이라도 한잔 대접해 드리고 싶.."

"아니요. 괜찮습니다."

"그럼 이거라도 받으세요. 오는 손님을 빈손으로 돌려보내서야 되겠습니까."


노신사가 내 손바닥 위에 양갱 하나를 올려놨다.


"저거 내껀데.."

"할아버지가 또 사줄테니까 이번만 양보해주렴. 우리 손녀 착하지?"

"거짓말이잖아.. 우리 또 살 돈 없는데."


선물을 거절하잖니 성의를 무시하는 꼴이고. 선물을 받아들이잖니 애 간식을 뺏어가는 꼴이다.


이렇게 챙겨줄 거면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난감하기 그지없다.


하여튼 가진 것 없는 노인네가 센스까지 밥 말아 먹었나.


옛말에 지하에는 바닥이 없다는데. 이래서 없는 놈들은 밑도 끝도 없이 여러모로 부족하다.


"제가 당뇨가 있어서요. 건강 관리 차원에서 단 건 멀리하고 있습니다. 마음만 받겠습니다."


나도 내 센스에 감탄한 날이었다.


***


"또 오셨네요. 오늘은 어쩐일로?"

"사장님 그간 안녕하셨습니까. 옛적에는 감사했습니다."


노신사의 손에 또 그 카세트가 들려 있었다.


"집에 가서 확인해봤는데 작동이 잘 되더군요. 어제는 단순 기기 오작동이었나 봅니다."

"확인해볼테니 창구 앞에 올려주시겠습니까."


노신사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이게 왜 이럴까요. 분명 집에서는 잘만 됐었는데."

"글쎄요. 그걸 저한테 물어보신들 답변드릴 말이 없네요."


집에서는 멀쩡했다.


집에서는 괜찮았다.


당신이 물건에 헛짓거리 해놓고 덤탱이 씌우는 거 아니냐.


팔기만 하면 장땡이라고, 갖은 거짓말을 해가며 모르쇠로 일관하는 놈이 어디 한 둘이었는지.


이런 상황에 당면할 때면 그나마 있는 인간애도 실종되어 갔다.


"이제 그만 나와주시겠습니까, 손님."

"사장님!! 아이가 닷새 동안 양갱 하나로 버텼습니다. 한 끼라도 넉넉하게 먹이고픈 게 부모 마음 아니겠어요? 부탁드립니다, 소량이라도 좋으니 감자를.."

"거참 싀발 진짜!"


그놈의 애들, 애들.

아이 들먹이며 제 이득 챙기려는 어른의 못난 심보는 들을 때마다 사람 꼴 받게 하는 소재다.


"나이 지긋한 양반이 언제까지 주접 떨고 있을 겁니까. 집에 있는 손녀 배 곯을까 걱정이면 가서 시민부양근로라도 하시면 될 꺼 아니에요."

"제가 나이 제한에 걸려서 고용이 안 된답니다.."

"그거야 당신 사정이고 이 사람아! 바쁜 사람 붙잡고선 몇날며칠 동안 괴롭히는 거야? 동방예의지국에서 사람 구실 좀 하려고 어르신 대우 해줬더니 사람이 아주 만만하지?"

"죄송합니다. 제가 사정이 워낙 급한지라 사장님 입장은 생각 않고 막무가내로 부탁드렸네요. 정말 정말 죄송합니다."


관절도 성하지 않은 어르신이 연신 허리를 숙여가며 굽신거린다.


시발 이러면 내 마음도 편치않다. 나는 뭐 좋아가지고 살 날보다 죽을 날이 가까운 어르신에게 윽박질렀을까.


나도 먹고 살려면 어쩔 수 없잖아. 이 바닥에서 개인 사정 봐줘가면서 장사했다가는 복이 아니라 독이 돌아오는데. 선의를 쌓을수록 입지가 만만해지는데 어떻게 하라고.


막말로다가 네들도 돈 빌려줄만한 친구한테만 찾아가서 했던 부탁 또 하잖냐. 그럼 그 새끼는 여기다가도 빌려주고 저기다가도 빌려주고, 선의는 쌓였가는데 정작 통장은 바닥나잖냐.


내가 나쁜놈 될까봐 밑밥 까는 게 아니라 세상이 그렇잖냐.


세상에 불쌍한 놈 천지인데 어떻게 볼 때마다 도와주냐고.


[치치- 치지칙- 지--민아 -- 사아-랑-츽--지-- 해]


겁에 질린 노신사가 물건을 챙기려 허겁지겁 카세트 위에 손을 올렸다.


그 순간 기계음이 들려왔다.


[어ㅁ--마-- 츽-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 칙지치- 랑해]


민망했다.


늙은이를 몰아세운 젊은놈이나 젊은이에게 덤탱이를 씌울뻔한 늙은이나.


당최 알 수 없는 상황에 서로들 말라가는 입술에 침을 발랐다.


"됩니다, 작동."

"되는군요, 작동이."


쌀 3kg.


감자 5kg.


생수 두 병.


모르겠다. 물건 값어치에 비해 너무 과분한 대가를 지불하는 느낌이다.


"안에 있는 테이프까지 같이 판매하시는 겁니까?"

"같이 팔면 값을 조금 더 쳐주시나요?"

"네."

"그럼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그래도 챙겨주려면 적어도 명분은 필요하니까.


"쌀 3kg, 감자 5kg, 생수 두 병입니다."

"사장님 정말 감사합니다. 그런데 옆에 있는 이거는?"

"테이프 값입니다. 애들 입맛에는 양갱보다 초콜릿을 더 좋아할 겁니다."

"이렇게 많이 주셔도 괜찮으신가요?"

"뒷면에 확인해보세요. 저도 손해보면서 드리는 건 아니니깐."

"아.. 유통기한이.."


디스토피아에 유통기한이 어디 있겠냐.


죽지만 않는다면야 일단 먹고 보는 거지.


"이만 가보겠습니다. 도와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선생님."

"네."

"다음에 기회가 되면 제가 언젠 한번 대접을 해드려도 괜찮으실까요?"

"네."


없는 노인네가 센스도 없더니 눈치도 없구나. 볼장 다 봤으면 눈치껏 쫌 가라.


"너무 자책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네?"

"장사하는 사람이 바보가 아닌 이상 불량을 돈 주고 살 순 없는 노릇이죠. 연신 귀찮게 해드려 죄송합니다."

"아. 네."

"아무래도 카세트에 도깨비가 붙었나 봅니다."

"네?"

"아닙니다. 갑자기 옛날에 전해들은 설화가 생각나서요."

"네."


노인이 문 너머로 사라졌다.


***


"주인장아 너 아까전에 혼자 뭘 듣고 있었던 거냐?"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니긴 뭐 아무것도 아니야. 그짓말을 해도 성의껏 해라. 아까부터 구석에 찌끄러져서 카세트에 귀 쫑긋 세우고는 온종일 듣고있더만."

"딸배 씨."

"왜 이 새끼야."

"물건에 도깨비가 붙는다는 말 아십니까?"


딸배가 설명해주기를.


오래된 물건을 소중히 간직하다보면 도깨비가 눌어붙는다고 한다.


"나도 옛날에 십 몇년 탄 스쿠터가 있었거든."


"그놈이 키로(km)수에 비해 잔고장도 없이 멀쩡했었단 말이야?"


"아니 그런데 새 오토바이를 구매하고 오자마자 갑자기?! 스쿠터가 자기 명줄 다 한 걸 아는지 슬슬 맛탱이가 가기 시작하는 거야."


"이야~ 신기하데. 가만보면 말이야. 사람 손 때 탄 물건은 이래나 저래나 다 아는 거 같아."


"투정 부릴 때, 발악할 때, 떠나야할 때. 이 새끼들이 그 때를 알아. 으잉~! 낭만이 있어."


"진짜라니깐?! 앰창 찍어봐?"


"미친놈이 믿지도 않을 거면서 왜 쳐 물어보고 지랄이야."


"야 어디가. 너 또 골방에 들어가서 혼자 라디오 들으려고 하는 거지? 아니라고? 그럼 노래라도 듣고 있었던 거?"


"됐다~ 주인장 없는 가게에 있어봤자 뭐하겠냐. 나도 이만 가보련다."


오늘따라 장사할 기분이 아니었다. 어쩌면 당분간은 그럴 기분이다. 아무렴 일찍 문 닫는 날도 있는 거지. 안 열면 더 좋고.


[치-- 치직- 치치칙 치직]


카세트 전원을 켰다. 꺼림칙한 기계음이 들려온다.


[치-- 치직- 치치칙 치직]


혹자는 말한다. 노신사에게 너무 헤프게 준 거 아니냐고.


말했다시피 난 손해보면서 장사하는 타입은 아니다.


[어ㅁ--마-- 츽-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 칙지치- 랑해]

[어ㅁ--마-- 츽-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 칙지치- 랑해]

[어ㅁ--마-- 츽-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 칙지치- 랑해]


한동안은 즐겨 들을 것 같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나 아포칼립스에서 전당포 한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개 같이 운수 좋은 날 편을 삭제하겠습니다.. 24.04.10 15 0 -
공지 중요한 건 꺽이지 않는 마음. 24.04.02 20 0 -
11 잘 먹고 잘 살아라. 24.04.14 8 0 14쪽
10 내막 24.04.14 4 0 13쪽
9 식구 24.04.12 7 0 11쪽
8 버려진 과거 Ⅱ 24.04.11 8 0 15쪽
7 버려진 과거 Ⅰ 24.04.10 11 0 11쪽
» 자주 듣는 플레이리스트. 24.04.09 13 0 12쪽
5 애미 없는 둘리들. 24.04.08 12 0 25쪽
4 동네 바보. 24.04.06 16 0 15쪽
3 췤지피티. 24.04.04 25 0 25쪽
2 약육강식. 24.04.03 32 1 15쪽
1 나 전당포 한다. 24.04.02 73 2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