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x용감한황소 님의 서재입니다.

나 아포칼립스에서 전당포 한다.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공포·미스테리

완결

용감한황소
작품등록일 :
2024.04.02 22:15
최근연재일 :
2024.04.14 22:35
연재수 :
11 회
조회수 :
216
추천수 :
3
글자수 :
76,713

작성
24.04.02 22:30
조회
73
추천
2
글자
13쪽

나 전당포 한다.

DUMMY

"엄마 나 무서워."

"괜찮아~ 엄마가 꼬옥 껴안아 주고 있잖아. 엄마가 지켜줄 테니깐 걱정하지 마."


아이가 어미 품에 안겨 잠이 든 밤.

웬 다 큰 남정네들이 모자의 안식처를 급습했다. 남자들의 얼굴은 하나같이 피딱지로 얼룩져 있었고 기름때와 흙먼지로 뒤덮인 옷가지에선 찌린내가 감돌았다.

여간 꼴사납기 그지없는 모양새였다.


어미는 놀란 가슴을 쓸어 안고 아이를 품에 안았다. 그리고는 무책임한 거짓말을 속삭였다.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괜찮아."


아이는 겁에 질려 온몸을 떨어댔다. 하지만 괜찮다. 엄마가 괜찮다고 했으니까. 엄마의 품에 안겨 있으니까. 나는 괜찮을 것이라 스스로를 속였다.


"엄마가 지켜줄게."


어미가 아이를 품에 안고 도망쳤다. 그 뒤로 남정네들의 둔탁한 걸음 소리가 여러 차례 뒤쫓아왔다.


"뒤에 보지 마. 엄마 어깨에 기대고 있어. 절대로 고개 들면 안 돼."


달리기가 길어질수록 어미의 숨이 가빠왔다. 덩달아 남정네들의 호흡 또한 거칠어졌다.


추격자와 도주자가 나누는 흥겨운 돌림 노래가 복도에 메아리 치는 것이라.


"아가!!!"


오늘따라 복도가 유난히 길고 어두웠다. 어두운 탓에 앞이 보이지 않았다. 결국 어미는 의자에 걸려 넘어졌다.


바닥에 코가 꿰진 어미가 놓쳐버린 아이를 애타게 찾으며 제 몸으로 바닥을 훑었다.


"엄마 나 여기 있어."

"일로 와, 얼른 가자. 저기까지만 가면 숨을만한 곳이 있을 거야. 다 괜찮아질 거야."


어미가 또 또 제 버릇을 못 고치고 책임도 못질 말을 고한다. 숨을 헐떡일 때마다 거짓말이 튀어나온다.

자고로 거짓은 죄다.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다. 이솝우화에서 전래동화에서 우리는 그렇게 배웠다.


"뒤에 보지 말라고!!!!"


어미는 아이의 손목을 끌어당기며 달리기에 열중했다.


아이는 어미의 악에 받친 꾸짖음에 섭섭했다만 그래도 괜찮았다. 엄마랑 있으면 우린 천하무적이니까. 이번에도 살아남을 수 있을 테니깐.


힘내라. 조금만 더 가면 이 음습하고 불길한 복도 또한 끝이 있을 터이니. 모든 것엔 그에 합당한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지어니. 부디 포기 말라.

라고 신이 응원해 주기를 바랐다.


신의 응원이 닿은 걸까. 어미가 복도 끝에 난 출입구를 박차고 나갔다.


젠장. 그 앞은 절벽이었다.

하필이면 딱 한 움큼만 절벽이었다. 어른의 뜀박질이라면 어렵지 않게 뛰어넘을 수 있을 간격이었다.


다행히도 어미는 곧장 문고리를 움켜잡으며 멈추어 설 수 있었다. 하지만 수시로 뒤를 돌아보던 아이는 그만 어미 옆을 지나친 채 공중에 붕 떴다.


중력이 아이를 끌어당겼다. 그렇게 절벽 밑으로 꺼지고 말았다.


"아가.."


어미는 오도 가도 못한 채 절벽에 매달린 아이를 내려다봤다. 그리곤 손을 뻗었다.


닿지 않았다.


다시금 뻗어 봤다. 결과는 종전과 같았다.


뒤안켠으로 굉음이 울려왔다. 굶주린 짐승에게서나 날 법한 소리였다.


어미는 뒤를 돌아봤다. 사람의 형체를 띠고 있지만 사람이라 부를 수 없는 것들이 코 닿을 거리에 있었다.


어미가 도로 내려다봤다. 아이가 눈망울을 글썽이며 손아귀에 힘을 주고 있었다.


어미가 앞을 바라봤다. 곧게 뻗은 길이 나 있었다. 이대로 절벽을 사뿐히 건넌다면 '살길'이 열려 있는 것이다.


"다 괜찮아. 아무 일도 없을 거야. 우리 아가 착하지. 세상에 이렇게 이쁜 아가가 어디 있어. 엄마가 사랑했어.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했어. 엄마는 우리 얘기밖에 없었어."


어미가 눈물, 콧물을 훔치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내 두, 세 발짝 뒤로 물러섰다. 몇 차례 호흡을 가다듬었다. 도움닫기를 선보이더니 지면을 힘껏 밟았다. 나비처럼 날아서 절벽을 뛰어넘었다. 완벽한 착지였다.


그렇게 여자는 절벽을 뒤로하고 살길을 질주했다. 그녀의 걸음걸이마다 통곡이 울려 퍼졌다.


"엄마.."


하늘은 어느새 새벽녘이 거치고 여명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 푸르스름한 빛이 아이를 조명했다. 마치 무대 위의 주인공을 비추듯이.


'반찬 투정 안 할게요. 밤에 잠도 잘 잘게요. 공부 열심히 할게요. 횡단보도 건널 때는 항상 차 조심할 거고요. 모르는 아저씨가 과자 사준다고 해도 따라가지 않을게요. 엄마 옆에 꼭 붙어 있을게요.'


인기척이 느껴졌다. 아이가 고개를 올려다봤다. 절벽 맡으로 누군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엄마가 다시 돌아올 거야. 날 찾으러 올 거야. 엄마랑 있으면 다 괜찮아. 걱정하지 않아도 돼. 다시 돌아와서 저 나쁜 놈들 다 물리쳐 줄 거야. 나는 괜찮아. 나는 괜찮아. 엄마가 다 괜찮다고 했어. 나는 괜찮아."


그들의 입가에서 군침이 떨어졌다. 그것은 벽을 타고 흘러 내려와 아이의 안면에 눌어붙었다.


아이가 소리쳤다.


"괜찮지 않아. 괜찮지 않다고. 괜찮다는 말 이제 안 할게요. 거짓말 안 할게요."


거짓은 죄다.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다. 이솝우화에서 전래동화에서 우리는 그렇게 배웠다.


***


나는 빌어먹을 멸망 세계에서 전당포를 운영하고 있다.


"왜 안 돌려주겠다는 건데??!"

"말씀드렸습니다. 약속한 기일이 지나면 물건은 전당포에 귀속된다고요."

"그러니깐!! 그 물건 내가 다시 제값에 이자 주고 산다니깐? 저번에 빌려 간 소주 반병 도로 가져왔잖아!"


나는 손가락으로 승리의 V를 치켜올렸다.


"두 병입니다."

"뭐?"

"물건 도로 가져가시려면 소주 두 병 주셔야 합니다."


손님이 끝내 분을 참지 못하고 주먹을 들어 올렸다. 아니나 다를까, 그 주먹은 내게로 향했다. '쾅'하는 소리와 함께 칸막이가 진동했다.


진동은 한 번으로 그치지 않았다. 손님의 분노가 삭힐 때까지 연신 계속되었다.


만일 내 앞의 칸막이가 없었더라면 이빨 한두 개는 부러졌겠지.


"지는 반병에 가져가더니, 왜 나보고는 두 병을 가져오래? 이 븅신 새끼야 원금에 이자 얹히는 것도 정도껏 해야지. 세상에 이런 엿 같은 계산이 어디 있어?!"

"제가 제시한 값은 원금과 이자가 아니라 엄연히 매도가입니다. 기한이 지났으므로 이제부턴 제 물건이니까요. 소유주가 원하는 값에 물건을 팔겠다는데 문제 될 건 없죠."

"야 이 씨팔새끼야!! 내가 카지노 좀 다녀봐서 알거든? 너 이거 불법이야. 세상에 어느 전당포가 손님 물건을 제멋대로 가져가. 네들은 담보 받고 돈 빌려주고! 나는 원금에 이자 쳐서 갚으면 되는 거잖아!"

"기한이 지났습니다."

"이 씨부랄 개새끼가 진짜!!"


화가 나면 우는 새끼들이 있다, 지금 이 손님처럼.


그는 한 손으로 눈물을 훔치는 동시에 반대 손으로 허리뒷춤을 만지작거렸다.


총? 검? 도끼?


과연 그가 꺼내려는 흉기는 무엇일까. 어떻게 공격해 올까. 공격이 막힌다면 도망칠까? 아니면 자살할까?

생사의 오지선다가 머릿속을 훑고 지나갔다.


이런 흥분이 됐는지 고추가 커졌다. 아무래도 난 수수께끼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것 같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그가 흉기 대신 꺼낸 것은 액자였다. 아버지와 아들이 나란히 서 있는 사진이 담긴 그런 액자였다.

그가 무릎을 꿇으며 말했다.


"여기 계신 분이 제 아버지입니다."

"네."

"사장님께 맡긴 물건이 다름이 아니라 제 아버지 유품이라서요. 평상시에는 애지중지하며 품에 끼고 살았는데, 이놈의 알콜 중독 때문에 제가 잠깐 정신이 돌았나 봅니다."

"네."

"아버지가 어떻게 돌아가셨냐면요. 저희 부자가 변이체에 쫓겼던 적이 있었거든요. 근데 제가 파편에 깔리는 바람에 도망칠 수가 없어서."

"네."

"... 아버지가 저를 대신해..."


자식을 위해 희생을 자처한 아버지. 그런 아버지가 남기고 간 소중한 유품.


우리의 효심 깊은 손님께서 묻지도 않은 사연을 구구절절 읊었다.


"제발 반병에 돌려주세요. 이렇게 부탁드립니다."

"네. 두 병에 돌려드리겠습니다."


동정팔이도 사람 봐가면서 해야 하는 법이다. 때를 봐가면서 해야 하는 거다.


멸망 전이나, 멸망 이후나, 시대와 상관없이 전당포라는 곳은 후회와 미련으로 먹고사는 업장이거늘.


과연 이곳을 오가는 사람 중에 사연 하나 없는 사람이 있을까.


위로와 공감을 받고 싶은 건 알겠는데 번지수 잘못 찾아온 거다.

먹고 살기 드러운 현생에서에서 내 사연을 애틋하게 여겨주는 곳은 제 어미 자궁 속밖에 없다는 걸 알아야지.


"아저씨 좀 봐주면서 먹고 살면 어디 덧나요."

"아직 앞에 계신 손님 볼 일 안 끝났습니다. 순서를 기다려주시죠."

"볼 장 다 본 것 같고만 뭐래."


난데없이 끼어든 이 여자의 이름은 이지원.


160cm 초반대의 아담한 체구. 아랫배가 보기 좋게 튀어나온 살집. 이에 상응하는 적절한 볼륨감. 전형적인 떡감 좋은 몸매의 소유자였다.


"바쁜 사람 붙잡아두고 남자 둘이서 뭐 하는 거야."


제삼자의 개입에 당혹스러울 법도 한데, 정작 내 눈을 사로잡은 건 그녀의 가방이었다.


풍족과 부유를 상징하는 그 자태.

가방 전면부에 대문짝만하게 붙어있는 로고는 누가 봐도 '나 명품이오!'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아저씨, 소주 아니어도 받죠?"

"쓸만한 건 되도록이면 다 봤습니다."


그녀는 가방을 뒤적거리더니 창구 앞에 담배를 내려놨다.


"담배 반 갑이에요. 여기 이 사람 소주 반병하고 합치면 얼추 두 병값은 나오죠? 대강대강 계산하고 얼른 돌려줘요. 아빠 유품이라는데 가엾지도 않아요."


가느다랗게 뜬 내 눈이 담뱃갑을 응시했다.


여자는 이런 내가 아니꼽다며 탁상 위를 툭툭 두드렸다.


"뭐해요? 계속 그렇게 보고만 있을 거예요? 싫으면 말아요. 어차피 내 일도 아닌데 자기들끼리 알아서 하든지 말든지."

"잠깐!"


나는 그녀와 손님을 번갈아 봤다.


연인? 친구? 그냥 아는 사이? 아니면 남매?


무슨 관계인지는 몰라도, 요즘 같은 세상에 좀처럼 보기 힘든 온정이었다.


나는 고심 끝에 나직이 말했다.


"500ml 생수 한 병 얹혀주면 돌려줄게요."


***


아버지의 유품을 돌려받은 손님이 현관문을 재꼈다. 세상을 다 가진 자의 표정이었다.


갈 거면 빨리 갈 것이지.

손님은 나가는 길에도 연신 허리를 숙여가며 여자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정말 복 받으실 거예요. 이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문이 닫혔다.


여자와 나.

둘만 남은 공간이 사뭇 적적했다.


"사람은 생긴 대로 논다더니 아저씨 진짜 얼굴값 제대로 하시네요."

"20xx년 3월 4일. 담배 10개비에..." "이목구비는 곱상해서 봐줄 만한데 관상만 놓고 보면 싸가지 드럽게 없어 보이는 거 알아요?"

"500ml 생수 한 병 추가. 매도한 물건은 필립 2009년 모델."

"저기요. 사람이 말을 하면 듣는 시늉이라도 하시죠. 장부는 나중에 적어도 되잖아요."


나는 대답을 뒤로 미루고 여자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왜요."

"아까 그 손님하고 아는 사이였습니까."

"모.르.는.사.이."


액면가만 봐도 내가 어른인데 이년은 빈번히 말이 짧아진다.


"그래서 전당포에는 무슨 용건으로 오셨습니까."

"뭘 새삼스레 물어요. 우리가 한두 번 본 것도 아니고."


돌연 여자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창구 위에 그대로 올려진 소주병이 의아했나 보다.


"이건 왜 안 가져가요?"

"서비스."

"서비스? 뭔 서비스?"


나는 정중한 태도로 여자를 가리키며 "단골 관리"라고 말했다.


"웬일이래. 평소에는 소 닭 보듯 봤으면서."


여자는 창구 위에 엉덩이를 걸터앉고는 병나발을 입에 가져다 댔다.


곧이어 그녀의 목구멍으로 '꿀꺽' 액체가 흘러 들어갔다.


썩 요염한 자태였다.


"아저씨."

"네, 손님."

"알고 준 거죠?"

"그야 부모 들먹이는 놈들 하는 짓거리야 뻔하잖습니까."


그녀가 마른기침을 해대며 마신 것을 토해댔다.


"하다 하다 소주에 물이나 타 오고. 진짜 지랄들이다."



어미가 자식을 팔아먹고.


아들이 아비를 들먹이고.


소주에 물을 타 먹고.


참 여러모로 빌어먹을 세상이었다.


이런 세상에서 나 전당포 한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나 아포칼립스에서 전당포 한다.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개 같이 운수 좋은 날 편을 삭제하겠습니다.. 24.04.10 16 0 -
공지 중요한 건 꺽이지 않는 마음. 24.04.02 20 0 -
11 잘 먹고 잘 살아라. 24.04.14 9 0 14쪽
10 내막 24.04.14 4 0 13쪽
9 식구 24.04.12 8 0 11쪽
8 버려진 과거 Ⅱ 24.04.11 8 0 15쪽
7 버려진 과거 Ⅰ 24.04.10 12 0 11쪽
6 자주 듣는 플레이리스트. 24.04.09 13 0 12쪽
5 애미 없는 둘리들. 24.04.08 13 0 25쪽
4 동네 바보. 24.04.06 17 0 15쪽
3 췤지피티. 24.04.04 26 0 25쪽
2 약육강식. 24.04.03 32 1 15쪽
» 나 전당포 한다. 24.04.02 74 2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