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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들보얀 님의 서재입니다.

그 세계의 이름은 악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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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보얀
작품등록일 :
2022.10.08 17:10
최근연재일 :
2022.11.13 23:00
연재수 :
12 회
조회수 :
181
추천수 :
9
글자수 :
58,448

작성
22.11.06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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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9

DUMMY

"기억이 안 난다고?"


정민은 소녀의 옆으로 가 쭈그려 앉았다. 소녀는 정민의 물음에 작게 "응."이라고 대답했다.


"그럼 눈 떠보니 여기였단 말이야?"

"아니. 내가 맨 처음 있던 곳은 동굴 안이었어."


정민은 동굴에서 있었던 일을 회상했다.

소녀는 자신의 얘기를 계속했다.


"주변을 둘러보는데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어. 난 무서워서 귀를 막고 주저앉았어. 근데 갑자기 동굴 벽이 허물어지기 시작하고, 결국 이곳으로 오게 된 거야."

"왜 여기에 숨어있었어? 아파트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문이 잠겨있어. 비밀번호를 몰라서 들어갈 수가 없어."

"비밀번호?"

"응. 나는 여기에서 숨어서 누군가 아파트 안에서 나오기만을 기다렸어. 그런데 아무도 나오지 않더라고."


정민은 우울한 얼굴로 고개를 떨궜다. 그러자 소녀가 물었다.


"왜 그래?"

"여기에서 꼼짝없이 머물러야 하잖아. 우린 갈 곳이 없어."


소녀는 정민의 말에 어두운 표정으로 바닥을 내려다보다가 고개를 돌려 다시 입을 열었다.


"이름이 뭐야? 나는 임서은이야."

"내 이름은···이정민이야."


정민은 순간 자신의 이름이 무엇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마도 너무 지쳐서 그런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저 아저씨는 누구야?"


서은은 손가락으로 허리를 굽히고 주저앉은 울보를 가리키며 물었다.


"우연히 만났어. 아마 말은 못하는 거 같고, 하도 울어대서 나는 그냥 울보라고 불러."


서은은 말없이 울보를 바라보다가 말했다.


"저 아저씨 지친 것 같아."


울보는 곧 울음이 터질듯한 슬픈 표정으로 바닥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보이네."

"여기에서 조금만 쉬자."


서은은 맨땅바닥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다. 정민은 그 모습에 조금 놀라며 말했다.


"벌레가 있을지도 모르잖아."

"여기는 벌레 없어."


서은의 단호한 말에 정민은 의아한 표정으로 바닥을 살펴보았다. 그녀의 말대로 개미 한 마리도 보이지 않자 정민은 그제야 서은처럼 양반다리를 하고 앉았다.


정민은 울보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분홍빛 하늘과 구름, 조용한 주위, 친구··· 잠시동안 평화로운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단지 괴물만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러나 잡초가 흔들림과 동시에 그런 평화로운 기류는 사라져버렸다.


"뭐지? 잡초가 흔들렸어."


정민은 서은에게 속삭이며 재빨리 일어났다.


"어디 말이야?"


어리둥절해하던 서은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물었다. 정민은 손가락을 들어 한 곳을 가리켰다.


"바람 때문이겠지."

"그렇다면 왜 저곳만 흔들리는데?"


정민의 말에 서은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두 사람은 침을 꼴깍 삼키며 그곳을 바라보았다.


"숨어야 해."


정민은 서은의 손목을 잡고 끌어당겼다.


"아저씨는 어떻게 해?"


서은은 울보를 뒤돌아보며 물었다.


"어쩔 수 없어."


정민과 서은은 미끄럼틀 뒤로 다급히 숨었다.

잠시뒤 잡초가 흔들리며 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시커멓고 큰 덩치에 갈고리 모양을 한 손을 가진 괴물은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정민과 서은은 등을 바짝 붙이고 서로의 손을 꽉 잡은 채 숨죽였다.


몇분후 주변은 고요했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정민이 상황을 살펴보기 위해 고개를 빼려 하자 서은이 그의 손을 붙들었다. 정민은 서은을 돌아보며 입술 위로 검지를 가져다 대고는 다시 슬며시 밖으로 얼굴을 내밀었다.


"으악!"

"꺅!"


미끄럼틀 옆으로 갑자기 튀어나온 무언가에 두사람은 짧은 비명을 내질렀다.


"놀랐잖아!"


정민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울보에게 소리쳤다.

울보는 정민에게 무언가를 내밀었다.


"이게 뭐야?"


정민은 울보가 건네준 흰 종이를 조심스럽게 살펴보았다. 종이에는 '3'라는 숫자가 연필로 적혀있었다.


"이게 도대체 뭔데? 어떻게 구한 거야?"

"......."

"제발 말 좀 해. 어서!"


서은이 다그치는 정민을 말렸다.


"그만해. 겁먹은 것 같아."


주저앉아 또 울기라도 했다가는 곤란해지므로, 정민은 서은의 말을 들었다.


"혹시 어디서 줍기라도 한 거에요?"


서은이 묻자 울보는 입을 쭉 내밀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옆에서 보고 있던 정민이 입을 열었다.


"아까 그 괴물은 어떻게 된거야?"


울보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자 서은이 다시 물었다.


"그 괴물은 어디론가 가버린 거야?"


울보는 고개를 끄덕였다.

정민은 울보의 답답한 태도에 짜증이 났지만, 아무튼 괴물이 지나갔으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울보한테 너무 그러지 마."

"내가 뭘?"

"우리가 미안해해야 해. 울보만 두고 우리끼리만 숨었잖아."

"어쩔 수 없었어."

"그래도 그건 너무한 거야. 게다가 울보가 이것까지 주워줬잖아."


서은은 숫자가 적힌 종이를 들어 보였다. 듣고보니 정민도 울보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아무튼 아무 일도 없어서 다행이야. 그런데 이 종이에 적힌 숫자는 무슨 의미일까?"


정민은 그저 쓰레기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도 잘 모르겠는데. 그냥 아무 의미도 없는 것 아니야?"

"글쎄. 그래도 뭔가 있지 않을까? 어쩌면···"


서은이 잠시 생각하더니 멀리 아파트의 입구를 쳐다보며 다시 입을 열었다.


"이 숫자가 비밀번호 중 한자리일 수도 있어."

"이것처럼 숫자가 적힌 종이가 더 있을까?"

"글쎄. 찾아보면 나오지 않을까? 울보가 그냥 어디서 주웠다고 그랬잖아."

"그야 모르지."


두 사람은 종이를 더 찾기 위해 주변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울보 또한 두 사람을 따라 땅바닥을 이리저리 훑었다.

놀이터를 살펴보던 정민은 다른 곳도 찾아보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뒤쪽으로 서은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디 가? 같이 가!"


서은은 정민이 있는 곳으로 헐레벌떡 뛰어왔다.


"나랑 같이 가."


숨을 고르던 서은은 이렇게 말하며 정민의 손을 잡았다.


"멀리 갈건 아니었는데. 아무튼, 알겠어."


두 사람의 뒤로 울보도 따라왔다.

세 사람은 아파트를 돌며 무언가 떨어진 것이 없는지 찾아보았다.


"뭐 좀 찾은 거 없어?"


어느 덧 반 바퀴 정도를 돌았지만 특별한 소득은 없었다.


"여긴 아무것도 없어."


'종이에 적힌 숫자가 정말 비밀번호가 맞기는 한거야?'


정민은 점점 의구심이 들었다.

그렇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잡초를 헤집으며 열심히 땅에 떨어져 있을 지도 모를 무언가를 찾았다.


나무 밑을 찾아보던 정민은 울타리 너머로 익숙한 느낌의 남자가 아파트 뒤편으로 뛰어가는 것을 보았다.


'저 사람···'


아마도 아파트 주민일지도 몰랐다. 정민은 울타리를 넘어 그 남자가 있던 곳으로 뛰어갔다.


정민은 자신을 지켜보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문득 오래전에 잊혔던 얼굴이 떠올랐다.


'아버지.'


정민이 다가가려 하자 남자는 다시 뒤돌아 도망치기 시작했다.


정민은 남자를 뒤쫓아 어느새 낯선 풀숲 안으로 들어섰다. 주변에는 나무들과 길게 자란 풀들이 무성했다.

정민이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헛것이라도 본 것일까. 남자를 찾아 바쁘게 몸을 돌리던 정민은 마침내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며 섰다.


'어지러워.'


나무와 풀들이 흔들거리며 급기야 정민의 주위를 돌기 시작했다. 나무는 새로 나타났다가 없어지기를 반복했고 풀들은 정민의 몸을 점점 조여오기 시작했다.

마치 약에 취한 듯 정민은 강한 피로와 현기증을 느끼며 푹신한 풀들 사이에 몸을 던졌다.


***


커텐 사이로 창가에는 햇살이 비치고 있었다. 침대 위에서 일어난 정민은 어딘가에 있을 자신의 휴대폰을 찾았다.

다행히 휴대폰은 베개 아래에 있었다. 정민은 지금이 주말 아침이라는 것을 확인하고는 안도감을 느끼며 다시 눈을 감았다.


문득 정민은 다시 눈을 떴다. 아무래도 이상했다.

천장이 빙글빙글 천천히 돌아가고 있었다. 잠시동안 그는 그것을 보며 시체처럼 누워 있을 뿐이었다.


'여기는 진짜일까?'


정민은 지금까지 자신이 겪었던 일들을 상기했다.

그리고 천천히 두 팔을 들어 올려 한쪽 검지를 또 다른 쪽 손바닥에 가져다 댔다. 만약 검지가 다른 쪽 손바닥을 통과한다면 이곳은 꿈일 것이다.


그런데 그때 문밖에서 고함이 들려왔다.

놀란 정민은 팔을 내리고 얼른 몸을 일으켰다. 무슨 말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두 사람이 싸우고 있다는 사실만큼은 알 수 있었다.

보다못한 정민은 거실로 급히 나가보았다.


그러나 거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정민은 얼빠진 표정으로 서 있다가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억지로 내뱉었다.


"엄마."


부엌과 화장실을 둘러보았지만, 어머니는 없었다. 그렇다면 남은 곳은 안방뿐이었다.

안방 문앞에 선 정민은 문고리에 손을 가져다 댔지만 웬일인지 머뭇거렸다.


'엄마는 일하러 나가셨을 거야.'


정민은 이렇게 생각하며 문을 여는 것을 관뒀다.


"정민아."


그때 뒤에서 익숙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놀란 정민은 문고리를 잡고 있는 그대로 몸이 굳어버렸다.


"정민아."


다시 한 번 그는 정민을 불렀다.

정민은 그가 자신에게 아무런 해도 입히지 않을 것을 알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뜻 몸을 돌릴 수가 없었다.

정민은 대신 안방 문을 열기를 선택했다. 그는 문고리를 돌려 문을 열어젖혔다.


침대 위에 올려져 있는 두 다리가 보이고, 마침내 누워있는 그를 보았을 때, 정민은 허망한 마음이 들었다.


정민은 조용히 방문을 닫고 나왔다. 그리고 다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침대 위로 몸을 눕혔다.

눈을 감고 뜨기를 반복했다.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눈꺼풀을 들어올려.'


정민은 악몽 속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


사이렌 소리가 마지막으로 귓가에 찢어질 듯 잔상을 남기며 사라졌다. 대신에 서은의 목소리가 그 공간을 메웠다.


"일어나."


서은은 정민의 몸을 흔들어댔다. 정민은 슬며시 눈을 뜨고는 서은과 울보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한참을 찾았어. 바보야."


정민은 몸을 일으키며 그런 서은에게 말했다.


"미안해."

"어딜 갈 데는 꼭 같이 가. 이건 약속이야. 그나저나, 괜찮아?"

"응."

"갑자기 어딘가로 달려가던데, 뭐 때문에 그런 거야?"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헛것을 봤어."


서은은 걱정스럽게 정민을 쳐다보다가 이내 밝은 얼굴로 말했다.


"종이를 한 장 더 찾았어."


서은은 정민에게 종이를 내밀었다. 종이 안에는 '2'라고 적혀져 있었다.

정민은 조금 놀란 표정으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어디에서 찾은 거야?"

"네 근처에 떨어져 있었어."

"그게 정말이야?"

"응. 정말 종이에 적힌 숫자가 비밀번호가 맞나 봐."


정민은 자리에서 일어나 옷에 묻은 흙과 풀떼기들을 털어냈다.

서은의 말이 맞다면 나머지 숫자가 적힌 종이들도 찾을 수 있을 터였다.


"어서 가자."


어느 새 날이 어둑해지고 있었다. 어서 움직여야 했다.


"손전등이 있니?"


서은의 말에 정민은 고개를 저었다. 동굴에서 가지고 있던 손전등을 어디에 두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고장이 나서 어차피 쓰지도 못할 물건이었다.


"내 손 잡아."


정민은 서은에게 손을 내밀었다. 서은도 울보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렇게 세 사람은 잡초를 헤치며 그곳을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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