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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들보얀 님의 서재입니다.

그 세계의 이름은 악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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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보얀
작품등록일 :
2022.10.08 17:10
최근연재일 :
2022.11.13 23:00
연재수 :
12 회
조회수 :
179
추천수 :
9
글자수 :
58,448

작성
22.10.29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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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6

DUMMY

정민은 종아리에 터질듯한 고통을 느끼며 경사가 심한 오르막길을 힘겹게 올라갔다.


'꿈이라기에는 너무 생생해.'


하지만 현실이라기에는 너무 이상했다.

정리하자면, 몸의 감각은 살아있었고 특유의 붕 뜬 느낌조차 없었지만, 분명히 비상식적인 일들이 가득한 기묘한 세계였다.


'아이는 어떻게 됐을까?'


멈춰선 정민은 뒤돌아 집이 있는 곳을 바라보았다.

다시 불이 켜진 집은 언제 그랬냐는 듯 평화로워 보일 뿐이었다.


‘무언가에 홀린 걸까.’


정민은 이곳이 꿈인지 생시인지 알 수가 없었다.


마침내 오르막길을 다 올라간 정민은 숨을 고르다가 고개를 들고는 깜짝 놀랐다.

전에 본 노신사가 바로 앞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어르신."


정민은 의아한 얼굴로 노신사를 올려다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정민은 무슨 말이라도 하길 기다렸지만, 노신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혹시 여기가 어딘지 아십니까? 저 좀 도와주세요 어르신."


그러자 노신사는 눈을 부릅뜨고 정민을 쳐다보았다.

정민은 그에게서 왠지 모르게 악의가 느껴졌다. 마치 자신에게 화가 났거나, 무엇인가 다그치려는 것처럼 노신사는 정민을 노려보고 있었다.


"왜 그러세요? 무슨 문제라도···"


순간 노신사의 얼굴이 구겨지며 기괴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정민은 그 광경을 얼빠진 채 바라보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뒷걸음질치기 시작했다.


"선생님, 왜 그러세요?"


노신사의 얼굴이 녹아내리고 몸이 점점 커지더니 이내 등 부분에 검은 페인트 같은 것이 터지며 그의 등에서 곧 거미의 다리처럼 생긴 것이 쑥하고 튀어나왔다.


'도망쳐야 해.'


기겁한 정민은 재빨리 몸을 돌리고 다시 길을 뛰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그극. 그어어억."


뒤에서부터 기괴한 소리가 들려왔다.

정민은 뒤돌아 볼 새도 없이 내리막길을 미친 듯이 내려갔다.

골목길을 달리던 정민은 오른쪽 길을 들어가서는 재빨리 뛰어올라 담장 밑으로 숨었다.


정민은 숨죽여 쪼그려 앉아서 괴물이 가기만을 기다렸다.

근처로 다가온 괴물은 정민을 찾는 듯했지만 정민은 다행히 들키지 않았다.

잠시뒤 주변이 고요해졌다. 정민은 괴물이 갔나 싶어 빼꼼히 얼굴을 들었다.


"으.. 으악!"


순간 정민이 마주한 것은 검은 형체 안에 흐릿하게 박혀있는 두 쌍의 충혈된 눈알이었다.

정민은 기겁하며 일어나 열린 대문을 통해 다시 밖으로 쏜살같이 튀어 나갔다.

괴물은 목을 빼고 그 광경을 쳐다보다가 이내 스멀스멀 정민을 뒤따라갔다.


"도와주세요!"


그러나 정민을 도와줄 사람은 거리에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마침내 정민은 시청역 1번 출구라고 적혀진 지하철 출입구 앞에 다시 섰다.


'너무 어두워.'


계단 밑은 깜깜하고 조용해서 들어가기가 영 껄끄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정민은 괴물이 더 가까워지기 전에 다급히 계단을 내려갔다.

혹여나 넘어질까, 난간을 잡고 내려가던 정민은 더는 괴물의 소리가 들려오지 않자 속도를 늦춰 조심조심 지하철 안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어두워서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정민은 뒷주머니에 휴대폰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그것을 켜 불빛을 비춰보았다.

통로 안을 살펴보던 정민은 그곳에 서 있던 한 남성을 불빛으로 비추며 다가갔다.


"저기요, 아저씨."


정민은 그를 조심스럽게 불러보았다. 남자는 벽을 쳐다본 채 가만히 서 있다가 이내 몸을 돌렸다. 정민은 긴장한 채로 그를 바라보았다.


"당고개행이 어디지?"


남자가 물었다.


'당고개행? 당고개역이라면 4호선 아닌가?'


4호선이라면 익숙한데 웬일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래도 정민은 일단 흐릿한 기억을 더듬어 남자에게 대답했다.


"당고개역이라면 4호선을 타셔야 할걸요."

"4호선? 그게 뭐지? 열차는 하나밖에 없어."


남자의 말에 정민은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나밖에 없다니요?"

"열차는 하나밖에 없어."

“아마도 갈아타셔야 할거에요.”

“열차는 하나밖에 없어.”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정민은 남자가 지하철에 대해 잘 모르거나, 아니면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남자를 무시하고 통로를 따라 불이 켜진 플랫폼까지 도착한 정민은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플랫폼에는 다행히 몇몇 사람들이 있었다. 정민은 그들 중에서 익숙한 얼굴을 찾아냈다. 전에 마주쳤던 털모자를 쓴 여자였다.


"여기서 또 뵙네요."


정민은 그녀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고개를 돌린 여자는 정민을 보며 미소 지었다.


"그렇네요. 열차를 타러 오셨나요?"

"아니요."

“그렇군요.”

“사실은···”


정민은 미친 사람으로 볼까봐 잠시 고민했지만, 곧 사실대로 털어놓기로 했다.


"바깥에 괴물이 있어요."

"괴물이요?"

"네. 남자가 갑자기 변하더니 크고 시커먼 괴물이 돼서 절 쫓아 왔어요. 아무래도 뭔가 잘못된 게 분명해요."

"그렇군요."

"네··· 무섭지 않아요?"

"글쎄요."


정민은 크게 놀라지 않는 여자를 이상하게 바라보다가 곧 무엇인가 깨달은 듯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여자는 정민을 잠시 바라보다가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문영원이요."


'문영원? 역시 문영원이 맞았어!'


정민은 흥분을 감추고 문영원에게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그런데 전에 봤을 때는 왜 얘기하지 않았어요?"

"글쎄요."


문영원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정민은 어쨌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모델을 직접 볼 수 있어 기뻤다.


"제 휴대폰이 있었다면 사진이라도 같이 찍었을 텐데, 정말 아쉽···"

"열차를 타실 건가요?"

"지하철이요?"


정민은 천장에 있는 전광판을 올려다보았다. 하지만 전광판에는 아무 글자도 나오지 않았다.


"어디로 가는 열차죠?"

"글쎄요."


정민은 여자의 모호한 대답에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글쎄요'라니요?"

"저도 어디로 가는지를 통 모르겠네요."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데 지하철을 탄단 말이에요?"

"다들 그렇죠."


평소 좋아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시종일관 의문을 남기는 그녀의 대답에 정민은 약간 짜증이 나기 직전이었다.


"제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데요. 아까부터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건지···"

"곧 열차가 와요."


정민은 목을 빼 터널 안을 살펴보며 지하철이 오는지 확인했다. 하지만 아직 열차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저랑 같이 타요."


문영원이 말했다.

하지만 행선지도 모르는 열차를 무작정 탈수는 없었다.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데 탈 수는 없어요."


그때 지하철 소리가 점차 희미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다들 그래요."

"대체 뭐가 다들 그렇다는 거에요? 아까부터···"

"다들 어디로 가는지 몰라요. 열차가 오면 그냥 올라타는 거죠."

"그게 무슨 말이에요?"

“겁내지 마세요.”

“겁내지 말라니요? 저는···”


정민의 목소리는 곧 지하철 소리에 묻혀버렸다.

잠시 후 열차가 멈추고 문영원이 말했다.


"열차에 올라타면 그때부터 목적지가 생기는 거예요."


어리둥절해있는 정민을 뒤로하고 문영원은 느린 걸음으로 열차에 올라탔다.

정민은 의자에 앉은 그녀와 잠시 마주 보다가 저 멀리 뛰어오는 남자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거 당고개행 맞지?"


아까 통로에서 본 남자였다. 남자는 무릎을 짚고 숨을 몰아쉬며 정민에게 물었다.


"잘 모르겠어요. 아, 아저씨 잠시만요!"


남자는 정민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열차에 얼른 올라탔다.


"아저씨,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는데 올라타시면 어떡해요?"


그러자 남자가 뒤돌아서 정민에게 말했다.


"어디로든 가겠지. 이곳에 계속 머무를 수는 없으니까."

"그러다가 길을 잃어버리면 어떡하시려고요?"

"난 이미 길을 잃었어."

"괜히 탔다가 완전히 돌아올 수 없으면요? 원래 가려고 했던 곳보다 더 멀어질 수도 있잖아요."

"그래도 죽치고 앉아있는 것보다야 낫겠지."


문이 닫히고 지하철이 다시 출발하자 정민은 떠나는 문영원과 남자를 바라보았다.

정민은 자신도 탔어야 하는 것이 아닌지 조금 후회가 됐지만, 어차피 다음 열차가 올 것이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하지만 주위를 돌아본 순간 그 후회는 더 크게 찾아왔다.

열차를 타고 모두 떠난 것인지, 주변에는 아무도 없었다. 건너편 플랫폼에도 마찬가지였다.


고요했다. 정민은 텅 빈 플랫폼에 덩그러니 혼자 남겨지자 불현듯 오싹한 기운이 들었다.

일단 의자에 앉은 그는 어서 다음 열차가 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몇 분의 시간이 지나도 다음 열차는 오지 않았다. 정민은 아마도 방금 떠난 열차가 막차일 것으로 생각했다.


기다리다 못한 정민은 다시 밖으로 나가기 위해 일어섰다.

휴대폰 불빛에 의지해 통로를 빠져나온 정민은 계단을 올라갔지만 출입구에 셔터가 내려진 것을 확인하고는 망연자실했다.


'모두 막혔어.'


정민은 지하철 안을 헤매며 출입구를 확인했지만 이미 모두 셔터가 내려진 뒤였다.


'이제 어떡해야 하지?'


빠져나갈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열차는 오지 않고, 출입구는 모두 막혀 발이 묶인 신세가 되고 말았다.


플랫폼으로 다시 온 정민은 고민하기 시작했다.

마냥 출입구가 열리거나 다음 열차가 올 때까지 기다리던지, 아니면 터널을 통해 다음 역까지 걸어가는 방법도 있었다.


마냥 기다리고 있을 수 없었던 정민은 후자의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고민하던 정민은 잠시 뒤 결단을 내린 듯 조심스럽게 선로 위에 발을 내려놓았다. 그러고서는 왼쪽 터널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타닥타닥


휴대폰 불빛에 의지하며 앞으로 나가던 정민은 정체불명의 소리를 듣고는 멈춰 섰다.


'잘못 들은 거겠지.'


정민은 이렇게 생각하며 다시 발을 움직였다.


타닥

타다닥


소리가 더 가까운 곳에서 들려왔다.

그것은 마치 벽에 붙어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것처럼, 소리가 좌에서 우로 또는 그 반대로 들려오기도 했다.


타다다다닥


놀란 정민은 짧게 경련을 하고는 몸을 웅크렸다. 불행히도 그 과정에서 휴대폰이 떨어지며 불빛이 꺼지고 말았다.


'젠장, 어디 있는 거야?'


정민은 바닥을 손으로 훑으며 휴대폰을 찾기 시작했다. 바닥의 차가운 기운이 손끝에 느껴졌다.


타다닥


'못 찾겠어.'


정체불명의 존재가 점점 더 다가오자 정민은 이내 일어섰다.

그는 그러고는 패닉에 빠진 채 귀를 두 손으로 감싸고 앞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터널 안에 긴박한 발소리와 호흡소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잠시 뒤 저 멀리 빛이 보였다. 다행히도 정체불명의 괴물의 소리는 정민을 쫓아오지 않는 듯, 더이상 들려오지 않았다.

정민은 안도하며 빛이 뿜어져 나오는 곳으로 달려갔다.

마침내 터널을 빠져나온 정민은 보랏빛과 주황빛, 분홍빛이 섞인 오묘한 빛깔의 세상을 둘러보았다.


뒤를 돌아본 정민은 깜짝 놀랐다. 방금전까지 지나온 터널이 막혀있었기 때문이다.

정민은 어리둥절하여 그 광경을 쳐다보다가 이내 주춤거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이곳은···.'


어디선가 본 것 같은 풍경이었다.


'내가 언제 한 번 이곳에 와본 적이 있었나?'


날이 저물기 직전의 오묘하고도 몽환적인 빛깔이 내리는 세상, 아무도 없는 길, 가로등···


문득 옆을 돌아본 순간, 정민은 확실히 알게 됐다.

바로 이곳이 이전에 반복해서 꿈속에 나왔던 그 길이라는 것을.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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