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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들보얀 님의 서재입니다.

그 세계의 이름은 악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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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보얀
작품등록일 :
2022.10.08 17:10
최근연재일 :
2022.11.13 23:00
연재수 :
12 회
조회수 :
180
추천수 :
9
글자수 :
58,448

작성
22.10.22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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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4

DUMMY

점차 사람들의 말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전히 뭐라고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들의 말에는 다양한 외국어들이 섞여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마치 외계어처럼 들리기도 했다.


'어디로 가야 하는 건지 도무지 모르겠어.'


정민은 공황상태가 되기 일보 직전이었다.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거리를 걸었고 그 가운데 정민만이 이상함을 느끼고 있었다.


'혹시 내 정신이 어떻게 돼버린 건 아닐까.'


정말 정신이 나가버려서 자신의 집이 어딘지도 잊어버리고 익숙한 거리도 낯설다고 착각하는 거라면, 정상적인 사람들의 말소리를 외계어로 인식하는 거라면···

정민은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겪었던 일들이 모두 내 망상일 리가 없잖아.'


정민은 목걸이의 펜던트를 만지작거리며 생각했다. 머릿속이 복잡했다.


'만약 내가 정신이 나간 거라면, 도움을 요청해야 돼.'


툭툭


누군가 뒤에서 정민의 어깨를 건드렸다.


"당신은···"


뒤돌아보니 빨간 털모자를 쓴 여자가 서 있었다.


"지하철이 어디인가요?"


정민은 아까와 같은 질문을 하는 여자에게 의아함을 느꼈지만, 일단 대화가 통한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아까 지하철을 타러 가시지 않았나요? 그나저나 여기가 도대체 어디에요?"

"여기 말이에요? 저도 잘 모르겠네요."


정민은 여자를 이상하다 생각했다.


"여기가 어딘지를 모른다고요?"

"네."

"혹시 저처럼 헤매고 있는 건가요?"

"아니요."


정민은 답답한 마음에 한 번 한숨을 내쉬고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여자의 빨간 입술을 바라보던 정민은 문득 여자의 인상이 어딘가 낯설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누구지?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인데···'


"혹시 저희 어디서 본 적 있나요?"

"글쎄요."


그러나 분명히 익숙한 느낌의 얼굴이었다.

곰곰이 생각하던 정민은 이내 그녀가 평소 자신이 좋아하던 연예인을 닮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혹시 문영원이라는 연예인 알아요? 그 연예인이랑 닮으셨어요."


'눈밑에 난 점도 똑같아··· 그런데 조금 전만 해도 점이 없었던 것 같은데.'


심지어 언젠가 지금 여자가 입고 있는 복장 그대로 문영원이 화보를 찍은 적도 있었다. 그때의 정민은 빨간 털모자를 쓴 그녀를 예쁘다고 생각해 그 사진을 휴대폰 어딘가에 저장해두었다. 지금 와서 다시 본다면 조금 촌스러운 복장이었지만 말이다.


"제가 좋아하는 연예인인데···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해요."


여자의 반응이 시큰둥하자 정민은 서둘러 사과했다.

그리 유명한 사람은 아닌지라 잘 모를 수도 있었고 대뜸 다른 사람과 닮았다고 하니 기분이 나쁠 수도 있었다.


"저 좀 도와주세요. 제가 지금 정신이 온전치 않아요. 집이 어딘지도 기억이 안 나요. 제발 경찰 좀 불러주세요."


도움이 절실했던 정민은 여자에게 애원하듯 부탁했다.

여자는 그런 정민에게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당신은 멀쩡해요."

"멀쩡한데 왜 다른 사람들 말이 이상하게 들리죠? 여기가 어딘지, 어디로 가야 할 지 모르겠다니까요."

"다들 그래요."

"다들 그렇다고요?"

"그냥 서성이고 있어요."


정민은 여자가 하는 말이 도통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저도 잘 모르겠네요."


정민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잠시 쳐다보다가 말했다.


"지금이 몇 시죠?"

"2시에요."


'지금 2시라고? 새벽 2시에 지하철이 운행했었나?'


따르르릉-


정민이 혼란스러워하는 와중에, 어디선가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몸을 돌리니, 그곳에 공중전화부스가 있었다.


"잠시만요."


정민은 여자를 뒤로한 채 시끄럽게 울려대는 공중전화기 쪽으로 달려갔다.

전화를 받은 정민은 수화기 너머의 누군가에게 말했다.


"여보세요?"


그러나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누구세요?"


정체불명의 잡음만이 들려오고 있었다.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저 좀 도와주세요. 지금 여기가 어딘지를 모르겠어요."


정민은 시청역이라고 쓰여 있었던 지하철안내판을 떠올렸다.


"여기가 시청역인 것 같은데··· 주변에는 불이 켜진 가게들이 있고···여보세요?"


수화기 너머로 중저음의 목소리가 뭐라 웅얼거렸다.


"뭐라고요? 안 들려요."


그 소리가 점점 더 커지기 시작했다.

마치 바로 옆쪽에 있는 것처럼.


"젠장."


정민은 소름 끼쳐 하며 전화기를 냅다 던져버렸다.

잠시 뒤 정민은 다시 전화기를 들어 귀에 가져다 댔지만, 남자의 웅얼거림은 더는 들려오지 않았다.


'엄마한테 전화를 걸어야겠어.'


정민은 전화기에 동전을 넣으려다가 곧 현숙의 전화번호가 몇 번이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음을 깨닫고는 망연자실했다.


절망감에 빠진 정민은 공중전화부스에서 나왔다.

그런데 주변을 둘러보니 털모자를 쓴 여자는 물론이고 불이 켜진 가게들과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풍경이 완전히 바뀌어 있었던 것이다.


사람없는 길거리에 가로수만이 음산하게 서 있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저 멀리 버스정류장이 있었는데, 그곳에 줄지어 선 사람들이 보였다. 정민은 서둘러 그곳으로 뛰어갔다.


버스정류장에 도착한 정민은 안내판에 적힌 버스노선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버스노선이 이상해서 도무지 어떤 버스를 타야 할 지 알 수가 없었다.

정민은 일단 사람들을 따라 줄을 섰다.


잠시 뒤 버스가 도착하고 사람들은 그 버스에 올라타기 시작했다.

마침내 정민의 차례가 되자, 정민은 올라타기 전에 버스 기사에게 물었다.


"어디로 가요?"


기사는 정민을 빤히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혹시 노원구 쪽으로 가나요?"


기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여 대답을 대신했다.

그러나 정민은 왠지 모를 불안한 느낌에 버스에 올라타지 않고 다음 사람에게 길을 비켜주었다.


정민은 버스를 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잠시 뒤 버스가 출발하고 남은 정민은 약간 후회하며 떠나는 버스를 지켜보았다.

정류장에는 정민을 제외하고 검은색 후드티를 입은 젊은 남자가 한 명 있었다.

남자는 휴대폰을 하며 어딘가로 발걸음을 옮겼다.


"저기요. 혹시 휴대폰 좀 쓸 수 있을까요?"


남자가 정민을 뒤돌아보았다.

잠시 뒤 남자는 정민에게 말 없이 자신의 휴대폰을 건네주었다.


"감사합니다."


'다행이야. 경찰이나 119를 불러야겠어.'


정민은 이렇게 생각하며 꺼진 휴대폰을 다시 켜기 위해 전원버튼을 눌렀다.

그러나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재차 여러 번 전원버튼을 눌러보았지만 소용없었다.


"이거 어떻게 켜는 거죠? 어, 저기요!"


고개를 드니 남자는 어느새 저 멀리 걸어가고 있었다.

정민은 서둘러 남자를 쫓아 좁은 골목길로 들어섰다.

그러나 남자와 정민과의 거리가 점점 더 벌어지기만 할 뿐이었다.


"저기요! 휴대폰 가져가요!"


정민은 남자를 쫓아 뛰었다.

잠시 뒤 남자를 따라 골목길을 벗어난 정민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남자는 어느 새 사라지고 없었고 또다시 낯선 풍경이 펼쳐졌다.


'도대체 어디로 간 거야?'


정민은 혼란스러웠지만 일단 남자의 휴대폰을 뒷주머니에 쑤셔 넣고 근처의 불이 켜진 편의점으로 향했다.


딸랑-


문을 엶과 동시에 매달려있던 종이 흔들거리며 소리를 냈다.


'원래 종소리가 났었나?'


문득 의아한 마음이 들었지만 이내 정민은 신경 쓰지 않고 가판대에서 음료수 하나를 집어들었다.


딸랑-


음료수를 계산대 위에 올려놓으려는 그때 한 무리의 젊은 여자들이 편의점 안으로 들어왔다.

여자들은 저들끼리 웃으며 알아들을 수 없는 말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저 사람들 중국인인가 봐요."


직원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


"관광이라도 왔나?"


정민은 괜스레 무안해져서 혼잣말했다.


'잠깐만. 내가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한가롭게 대화를 주고받을 것이 아니라 일단 이곳이 어디인지를 아는 것이 급선무였다.


"여기가 어디죠? 지금이 몇 시에요?"


직원은 아무 말도 없이 정민을 바라볼 뿐이었다.

정민은 조금 짜증이 나서 직원에게 재차 되물었다.


"여기가 어디냐니까요?"


직원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정민이 화가 나서 따지려는데 또 다시 종이 딸랑거리며 한 무리의 여성들이 안으로 들어왔다.

가게 안이 그리 넓지 않은 탓에 급기야 정민은 안쪽까지 밀려나고 말았다.


그때 바로 앞에 있던 분홍색 패딩을 입은 단발머리의 여자가 정민에게 뭐라 말을 하기 시작했다.


'뭐지?'


순간 기시감이 들었다.


'전에도 이런 상황을 겪었던 것 같은데.'


그러나 기억이 희미해서 확신은 할 수 없었다.

정민이 그러고 있는 와중에도 여자는 웃으며 그에게 계속해서 뭐라 말을 하고 있었다.


"한국말 할 줄 아세요?"


여자는 정민의 물음을 무시하고 계속 자기 할 말만 늘어놓았다.


'일단 여기를 빠져나가야겠어.'


"쏘리."


정민은 이렇게 말하고는 여자들을 힘겹게 지나쳐 편의점 밖으로 나오는 데 성공했다.


'관광하러 왔나?'


외국인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편의점 안 뿐만 아니라 밖에도 있었다.


정민은 잠시 숨을 돌리기 위해 펜스가 처진 곳으로 가 몸을 기댔다.

밑을 내려다보니 강물이 반짝이며 흐르는 것이 보였다. 그 위로는 거대한 달이 떠올라 있었다.


'달이 원래 저렇게 컸었나?'


정민은 들고 있던 음료수의 뚜껑을 따려다가 순간 행동을 멈췄다.


'이거 계산 안 했던 것 같은데··· 잠깐만, 이 장면 어디선가···'


또다시 기시감이 밀려왔다.


정민은 고개를 들어 달을 바라보았다.

달은 그 크기가 너무 거대해서, 마치 이곳이 지구가 아니라 또 다른 행성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끔 할 정도였다.


'이건 말이 안 돼. 이건···'


그때 뒷주머니에 넣어뒀던 휴대폰에서 전화가 왔다.

정민은 조심스럽게 휴대폰을 귀에 가져다 댔다. 그러나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엄마."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순간 어머니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판 모르는 남의 휴대폰이었지만 정민은 전화를 건 이가 어머니일 거라고 믿고 싶었다.

정민은 잡음만이 들려오는 휴대폰을 귀에 갖다 댄 채로 굳어버렸다.


문득 이 모든 게 꿈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분명히 이것은 꿈이었다. 불현듯 공포감이 들고 목뒤쪽이 서늘해지며 식은땀이 나기 시작했다.

만약 악몽이라면 깨어나야 했다.


'깨야 해.'


정민은 이렇게 생각하며 눈꺼풀에 힘을 주었다.

하지만 이상했다. 보통이라면 꿈을 인지한 순간 꿈에서 깨는 것이 정상인데, 지금은 그러지 않았다.

모든 것이 이상했다. 현실이라기엔 비현실적인 것들이 너무 많고, 꿈이라기엔 몸의 감각들이 너무 생생했다.


잠시 뒤 정민은 주변이 조용해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정민은 천천히 몸을 돌려 사람들이 지나다니던 길을 바라보았다.


'일어나. 어서 일어나.'


사람들은 모두 멈춰 서서 무표정한 얼굴로 정민을 쳐다보고 있었다. 편의점 안에 있던 사람들은 유리벽에 바짝 얼굴을 붙이고 있었다.


'눈꺼풀, 눈꺼풀을 들어 올려.'


사람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아주 느린 걸음으로 오다가 점점 빠른 속도로 정민을 향해 다가왔다.


'일어나. 빨리 일어나란 말이야.'


하지만 소용없었다. 아무리 정신을 집중해봐도 꿈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정민은 할 수 없이 다시 지나왔던 골목길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잠시 뒤 그의 뒤쪽으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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