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x들보얀 님의 서재입니다.

그 세계의 이름은 악몽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일반소설

들보얀
작품등록일 :
2022.10.08 17:10
최근연재일 :
2022.11.13 23:00
연재수 :
12 회
조회수 :
186
추천수 :
9
글자수 :
58,448

작성
22.11.05 22:00
조회
11
추천
0
글자
12쪽

8

DUMMY

‘내가 죽인 거야.’


정민은 충격에 몸을 떨었다.

믿을 수가 없었다. 분명히 괴물이라 생각했었는데.


‘이제 어떡하면 좋지?’


여자가 죽었다. 만약 사람들이 알게 된다면 자신은 살인자가 되어 처벌을 받게 될 것이다.

사실 그런 것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정민에게 더 크게 다가온 것은 ‘상실감’이었다.


정민은 고개 숙여 우는 남자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자신의 앞으로 다가온 것이 괴물이었다면 오히려 다행이었을지도 모른다.

무섭다는 공포보다도 이제는 믿을만한 존재가 사라져버린 것에 대한, 그것도 자신의 잘못 탓에 그랬다는 것이 무척이나 슬펐다.


남자가 정민의 몫까지 울어주고 있었기 때문일까. 웬일인지 눈물이 나오지는 않았다. 오히려 눈은 메말라버렸고 머릿속은 공허해서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난 지금 어떻게 해야 할까.’


정민은 자기 자신에게 물었다. 대답은 없이 의문만이 반복될 뿐이었다.


잠시 뒤 정민은 한껏 풀린 눈으로 자리에서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언제까지나 이곳에 머무를 수는 없었다. 밖으로 빠져나가야만 했다. 쓰러져있는 여자의 시신도 더는 볼 수가 없었다.

정민은 울고 있는 남자를 달래기 위해 그에게 다가갔다.


“가야 해요.”


하지만 남자는 울음을 멈추지 않았다.


“가야 한다고요.”


정민은 조금 지친 목소리로 말했다.


“일어나요.”


남자는 정민의 말을 듣지 않았다.


“일어나라고. 일어나란 말이야!”


정민이 소리치자 남자는 겁을 먹은 듯 몸을 떨었다.


“언제까지 멍청하게 울고 있을 거냐고.”


‘이렇게 된 건 네 탓도 있어.’


정민은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울화가 치미는 것을 느꼈다.


“이게 다 너 때문이야. 네가 주저앉아서, 말을 안 들어서 결국 이렇게 된 거야. 저 여자는 너 때문에 죽은 거야. 이 쓸모없는 개자식아.”


‘이 자식 때문에 내가 패닉에 빠져서 결국 이런 사달이 난 거야. 나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래서 나는···’


정민은 남자에게서 이렇게 된 이유를 어떻게 해서든 찾고 싶었다. 그러나 아무도 듣지 않는 변명은 헛수고일 뿐이었다.


“마음대로 해. 여기서 그러고 있다가 확 죽어버리던지.”


언제까지나 이곳에 머무를 수는 없었다. 정민은 결단을 내린 듯 가운데 길로 들어섰다.

남자의 울음소리는 점점 더 멀어져갔다.


'이 길이 맞는 걸까?'


정민은 슬슬 걱정되기 시작했다.

얼마나 걸어야 하는지도 몰랐다. 만약 이 길이 아니라면 다시 되돌아가야만 했다.


길은 점점 어둡고 좁아져만 갔다.

정민은 벽에 손을 집고 아까보다 현저히 떨어진 속도로 걸었다. 울퉁불퉁한 벽은 차갑고 축축했다.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난 헤엄을 못 쳐.'


정민은 걱정하기 시작했다. 만약 웅덩이가 있고 그 깊이가 깊다면 건너가기 힘들 것이다.


똑-

똑-


천장에서 물이 떨어지는 소리에 정민은 놀라 몸을 떨었다.

얼마나 걸어왔을까, 아직도 탈출구는 보이지 않고 그저 어둡고 좁은 길만이 아득히 늘어져 있었다.


터벅터벅


한껏 예민해진 정민은 동굴 안에 울리는 발걸음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그런데 걷다 보니 조금 이상했다. 자신의 발자국 소리 뒤로 또 다른 누군가의 발걸음 소리가 따라붙고 있었다.

정민은 놀란 얼굴로 재빨리 뒤돌아 손전등을 비춰보았다.


"너 뭐야?"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남자가 고개를 푹 숙인 채 정민을 뒤따라오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오지 마."


남자는 요지부동이었다.


"따라오지 말란 말이야. 이 등신아."


남자는 아무 말 없이 움츠린 채 온몸을 미세하게 떨었다.

정민은 그런 남자를 무시하고 다시 몸을 돌려 걷기 시작했다. 그는 남자와 최대한 멀어지고 싶어서 조금 더 속도를 내어 걸었다.


그러다가 정민은 저 멀리 보이는 크고 시커먼 무언가를 보고 발걸음을 멈췄다.


'저게 뭐야···?'


정민은 눈을 찡그리고 그것을 관찰했다. 꼭 박쥐 같은 것이,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려있었는데 거리가 멀어서 그 크기가 제대로 가늠이 되지 않았다.

잠시 뒤 정민은 그것이 곧 움직이기 시작하고 나서야 경직돼있던 몸을 억지로 돌려세웠다.


탁탁


가늘고 긴 발톱이 축축한 동굴 벽을 건드리며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정민은 그 소리가 자신에게로 다가온다는 것을 알았을 때, 더이상 침착함을 유지할 수 없었다.

정민은 미친 듯이 뛰었다. 남자는 그새 다시 되돌아간 건지, 보이지 않았다.


정민은 다시 갈림길 앞으로 왔다. 계단 근처로 간 그는 잔뜩 겁을 집어먹은 표정으로 자신이 지나온 길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괴물은 더이상 다가오지 않았다.

주저앉은 정민은 숨을 고르며 쪼그려 앉아있는 남자를 넋 놓고 바라보았다.


여자의 시체는 아직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그런데 복장이 달라져 있었다.

정민은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여자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 보았다.

마침내 그녀의 얼굴을 보았을 때, 정민은 놀라 뒷걸음질칠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얼굴은 문영원과 똑 닮은 듯했다. 어느새 그녀의 얼굴이 문영원으로 바뀌어 있었다.

아니, 문영원이었다. 문영원이 두 눈을 꼭 감은 채 쓰러져 있었다.


'아니야. 아니야.'


정민은 고개를 저으며 현실을 부정했다.


그리고 잠시 뒤, 두눈을 몇 번 깜빡이자 그녀의 얼굴은 다시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이게 어떻게 된 거지?'


무엇인가에 홀린 게 분명했다. 정민은 혼란스러운 얼굴로 남자를 쳐다보았다.


"넌 알고 있지? 어디로 가야 하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말하라고!"


남자는 말이 없었다. 정민은 그에게 울부짖었다.


"제발 길을 가르쳐줘. 이곳을 빠져나가게 해달란 말이야!"


곧 남자는 몸을 천천히 일으켜 세웠다. 정민은 조금 놀란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남자는 속내를 알 수 없는, 어쩌면 조금 안쓰럽다는 듯한 표정으로 정민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어디로 가야 해? 넌 알고 있지? 가르쳐줘. 제발 부탁이야."


남자는 팔을 들어 올려 맨 왼쪽 길을 가리켰다.

정민은 남자가 가리킨 길을 바라보다가 이내 몸을 일으켰다.


"저 길이 맞는 거야? 저 길로 가면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거지?"


남자는 다시 팔을 내리고 말없이 정민을 쳐다보았다.

정민은 그에게서 왠지 모를 동질감을 느꼈다.


"좋아. 가보자."


정민은 다시 정신을 차리고 남자가 가리킨 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남자도 정민을 뒤따랐다.


길은 전과 다를 바가 없었다. 똑같이 축축했고 어두웠으며, 좁았다.

정민은 문득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걸음을 멈추고 뒤돌았다. 그는 따라오던 남자의 뒤로 손전등을 비춰보았다.


탁탁


동굴 천장을 두드리는 그 발톱 소리.

괴물이 오고 있는 것이다.


"지금 뭐하는 거야?"


정민은 귀를 막은 채 주저앉은 남자를 보며 말했다.


"어서 일어나. 가야 돼."


정민은 남자의 팔을 잡고 그를 일으켜 세우려고 했다.


'젠장.'


하지만 남자는 쉽게 일어나지 않았다. 그는 양손으로 두 귀를 틀어막은 채 겁에 질려 떨고 있었다.


"일어나라고! 제발!"


정민이 소리치자 남자는 그제야 몸을 일으켰다.


"뛰어! 뛰어!"


정민은 남자의 옷자락을 잡아끌며 소리쳤다.

그들이 도망치는 와중에, 설상가상으로 손전등이 깜빡거리기 시작했다.


'하필이면 지금···!'


정민은 제발 손전등이 꺼지지 않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하지만 그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곧 암흑이 찾아오고 정민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길을 무작정 내달렸다.

뒤에서는 괴물의 소름 끼치는 발톱소리가 여전히 진행 중이었다. 그러나 길의 끝은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온통 암흑뿐이었다.


'계속 도망칠 수는 없어.'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고 심장은 터질 것처럼 쿵쾅거렸다.

정민은 울음소리를 내뱉듯이 허리를 굽히고 잠시 숨을 토해냈다.


잠시 뒤 그는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뒤돌았다.

괴물이 몸을 할퀴고 갈기갈기 찢는다 해도 이제는 감수해야만 했다. 어차피 죽을 몸이라면 되도록 빨리 찢기는 게 나았다.


'마음대로 해. 마음대로···'


정민은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타닥타닥


발톱소리가 점점 더 가까이 다가왔다.

정민은 자기도 모르게 숨을 참았다.

이제는 후회해도 늦었다.


그런데 괴물은 오지 않고 발톱소리는 오히려 잦아들었다.

그순간 눈알을 덮은 눈꺼풀의 밖으로 서서히 빛이 스며드는 것이 보였다.


'뭐지?'


어쩌면 너무 공포에 질려 고통을 못 느끼는 것일지도 몰랐다.


정민은 천천히 눈을 떴다. 갑작스러운 빛에 주변이 잘 보이지 않았다.

마치 촛농이 녹아내리는 것처럼 동굴 벽이 점점 허물어지고 있었다.


정민은 어리둥절하여 주변을 둘러보았다.

동굴은 완전히 사라지고 허리 밑으로 길게 자란 잡초가 간질거리는 것이 느껴졌다.


'여긴 어디지?'


마치 정글처럼 오랫동안 방치된 풀과 나무들 사이에 우뚝 솟은 아파트가 정민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정민은 풀숲을 헤치며 앞으로 나아갔다. 뒤를 돌아보니 여전히 남자가 자신을 따라오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정민은 일단 저 앞에 보이는 놀이터로 향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한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다.

정민은 다시 뒤를 돌아 남자를 쳐다보았다. 어느 새 남자는 키가 자란 것인지, 잡초도 그의 허벅지 높이밖에 되지 않았다. 키가 족히 2미터는 넘어 보였다.

정민은 그를 이상하게 여기며 말했다.


"아저씨, 도대체 뭐에요?"


그러나 그는 우울한 눈빛으로 정민을 쳐다볼 뿐이었다.


"말 못해요?"

"......."

"이름은 있어요?"

"......."

"그럼 이렇게 합시다. 제가 아저씨를 이제부터···"


정민은 잠시 생각하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울보라고 칭할게요. 울보. 기분 안 나쁘죠?"


기분이 나쁠 만도 하건만 울보는 정민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사실 정민은 그가 바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정민은 그를 보면 불쾌했고 화가 났다. 그래서 그를 도발 또는 비난하기 위해 일부러 '울보'라는 별칭을 붙여준 것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울보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갑시다."


정민은 울보와 함께 다시 놀이터를 향해 풀숲을 헤치며 전진했다.

고개를 들어 바라본 아파트의 창문은 모두 어두웠다. 여기저기 보아도 사람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흑흑···"


마침내 놀이터로 온 정민은 어디선가 흐느끼는 듯한 소리를 듣고 깜짝 놀랐다.

그 소리는 미끄럼틀 뒤에서 나는 듯했다.

정민은 겁이 났지만 홀린 듯이 그곳으로 갔다.

노란 미끄럼틀의 뒤로 남색 망토를 걸친 가녀린 어깨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저기··· 부모님은 어디 계시니?"


정민은 조심스럽게 소녀에게 말을 걸어보았다.


"왜 울고 있는 거야? 어디 다쳤어?"


쭈그리고 앉아있던 소녀는 그제야 몸을 일으켜 모습을 드러냈다.


"괜찮아?"


정민은 소녀를 걱정스럽게 살피며 물었다. 그러자 소녀가 눈물을 닦더니 정민에게 말했다.


"너는 누구야?"


정민은 당황하다가 곧 황당한 얼굴이 되어 소녀를 쳐다보았다.


'어른에게 반말이라니.'


"몇 살이야?"


이에 대한 소녀의 대답은 더 황당한 것이었다.


"잘 모르겠어."

"넌 네 나이도 몰라?"

"기억이 안 나."

"그래···"


'애들까지 정상이 아니군.'


어쩌면 소녀가 정신이 나가버린 걸지도 몰랐다. 자신의 나이도 모르다니. 정민은 황당하여 헛웃음이 나왔다.


"넌 몇살이야?"


'허.'


소녀의 물음에 정민은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말했다.


"29살이다."

"그렇게 안 보이는데."

"원래 동안이란 소리를 많이 들어."

"아니. 정말이야. 많아 봤자 10살 정도로 보이는데."


정민은 두 귀를 의심했다.

이상함을 느낀 정민은 자신의 몸을 내려다보았다. 손으로 배를 훑고 팔뚝도 만져보았다. 전보다 훨씬 작고 가녀린 몸매, 심지어 피부도 조금 달라진 느낌이었다.


정민은 그제서야 울보의 키가 왜 갑자기 커졌는지 알게 되었다.

그것은 울보의 키가 커진 게 아니라 자신이 작아진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그 세계의 이름은 악몽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2 11 22.11.13 6 0 11쪽
11 10 22.11.12 6 0 12쪽
10 9 22.11.06 9 0 11쪽
» 8 22.11.05 11 0 12쪽
8 7 22.10.30 11 0 12쪽
7 6 22.10.29 11 0 12쪽
6 5 22.10.23 15 1 12쪽
5 4 22.10.22 12 1 12쪽
4 3 22.10.16 13 1 12쪽
3 2 22.10.15 17 2 12쪽
2 1 +1 22.10.08 33 2 12쪽
1 0. 누군가의 일기 22.10.08 42 2 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