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x들보얀 님의 서재입니다.

그 세계의 이름은 악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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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보얀
작품등록일 :
2022.10.08 17:10
최근연재일 :
2022.11.13 23:00
연재수 :
12 회
조회수 :
176
추천수 :
9
글자수 :
58,448

작성
22.10.16 23:00
조회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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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3

DUMMY

정민은 느린 발걸음으로 계단을 올라갔다. 몸이 무겁고 피곤했다.

무엇보다도, 우울한 기분이 떨치지 않았다. 면접은 망했고 며칠 뒤에는 불합격 내지는 아무 소식도 들려오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를 아무렇지도 않은 척 어머니에게 말해줘야 할 터였다.


불행 중 다행으로, 현숙은 지금 일터에 있을 시간이었다.

집안으로 들어간 정민은 양말을 벗고 침대 위에 걸터앉았다.


'혹시 또 모르지. 연락이 올 수도···'


정민은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며 실낱같은 희망을 붙잡았다가 이내 체념하며 놓아줬다.


편한 차림으로 갈아입은 정민은 침대 위에 아무렇게나 놓아둔 정장을 나름대로 정리해 의자 팔걸이 위에 걸쳐놓았다.

그런 뒤 정민은 잠시 누워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다가 이내 요기할 것을 찾으러 부엌으로 향했다.


정민은 현숙이 끓여놓은 김치찌개와 몇 가지 반찬을 꺼내어 밥을 먹었다.

식사를 하고 나니 나른함이 몰려왔다. 그러나 잠을 잔다면 또다시 그 불쾌한 꿈을 꿀 것만 같았다. 실제로, 낮잠을 자게 되면 항상 꿈을 꾸고는 했다.

그렇기때문에 정민은 휴대폰의 화면을 보며 잠이 들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


정민은 눈을 떴다.


'젠장. 또 잠이 들어버렸어.'


커튼으로 햇살이 비치는 것을 보니 아직 오후임을 알 수 있었다.


쉬이익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정민은 재빨리 부엌으로 가 소리의 정체를 확인했다.

냄비가 끓고 있었다. 놀란 정민은 서둘러 가스 불을 끄고 냄비의 뚜껑을 열어보았다.

안에는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았다. 그나마 냄비가 다 타버리기 전에 빨리 불을 꺼서 다행이었다.


'그런데 가스 불이 왜 켜져 있는 거지?'


"엄마."


의아한 마음에 정민은 혹시나 싶어 현숙을 불렀다. 하지만 현숙은 아직 회사에 있을 시간이었다.


'내가 가스 불을 켜놓고 잠이 들었나?'


분명히 밥을 먹고 잠이 든 것 같은데, 다시 가스불을 켰을 리가 없다.

그렇다면······


뒤쪽으로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정민이 몸을 돌렸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무엇인가 이상했다. 이 집에 누군가가 있는 게 틀림없었다.


"누구야? 나와!"


정적만이 맴돌았다. 하지만 누군가의 기척이 분명히 느껴졌다.

일단 집 밖으로 도망친 다음 경찰에 신고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정민은 재빨리 집 밖으로 나와 사람들이 많은 대로변으로 향했다.

그러나 아뿔싸, 휴대폰을 챙기지 않았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그는 어쩔 수 없이 행인의 휴대폰을 빌려 신고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죄송한데, 휴대폰 좀 빌려주실 수 있나요?"


하지만 대부분이 그의 말을 무시하고 지나쳐가기 일쑤였다. 거절의 의사표시조차 하지 않았다.

마치 정민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그들은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경찰서가 어디였더라?'


동네가 익숙한 듯 낯설게 느껴졌다.

직접 가서 신고하기 위해 경찰서를 찾아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지만, 항상 나오는 장소는 같았다.


"여기가··· 도대체 어디야?"


정민은 우뚝 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분명히 같은 자리를 맴돈 것 같은데, 어느새 낯선 공간 한복판에 서 있었다.


"여기가 어디에요?"


정민은 지나가는 사람들 아무에게나 물어보기 시작했다.

급기야 그는 답답한 마음에 정장을 입은 한 노인의 앞을 막았다.


"아저씨, 여기가 어딘지 좀 가르쳐 주세요. 도대체 여기가 어디에요?"


노년의 남성은 정민을 바라보다가 잠시 뒤 팔을 들어 한 곳을 가리켰다.


'말을 하면 안 되는 이유라도 있는 거야?'


정민은 일단 노신사가 가리킨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노신사가 가리킨 곳은 골목길 모퉁이에 있는 한 작은 음식점 앞이었다.

안에는 불이 켜져 있었지만, 손님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정민은 안으로 들어가 종업원에게 말했다.


"여기가 어디죠?"


그는 계산대 위에 놓인 전화기를 보았다.


"잠깐 전화 좀 쓸 수 있을까요?"


종업원은 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리를 비켰다.

계산대로 자리를 옮긴 정민은 수화기를 들고 112를 눌렀다.


"여보세요?"


이상한 잡음 가운데 정체불명의 말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오고 있었다.


"제 목소리 들려요? 신고 좀 하려고요. 여기 주소가··· 여기가 어디냐면······"


'젠장.'


정민은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기억나지 않아. 여기가 어디지? 내가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됐지? 도무지······"


정민은 고개를 들어 종업원을 바라보았다.


"기억이 안 나요."


종업원은 자신의 뒤쪽에 있던 식탁을 가리켰다.

시선을 돌리니 그 식탁 위에는 큰 놋쇠그릇에 담긴 음식이 놓여 있었다.


"이게 뭐죠?"


정민은 홀린 듯이 그 식탁에 자리를 잡고 음식을 내려다보았다.

건더기는 없고 마치 사골처럼 우려낸듯한 뿌연 국물이 한 대접이었다.


'나보고 먹으라는 건가?'


정민은 말없이 자신을 지켜보는 종업원을 바라보다가 이내 숟가락을 들어 올렸다.


위이잉


그때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지고 한 중년의 남성이 뛰어들어왔다. 뒤이어 남자를 따라 들어온 한 무리의 괴한들이 들어오고 가게 안은 난장판이 되었다.


'무슨 시위라도 하는 거야?'


바깥을 살펴보니 연기가 자욱하고 사람들은 도망치고 있었다.


"아악!"


괴한들에게 붙잡힌 남자가 비명을 질렀다.


'저 사람··· 목소리가 들리잖아.'


"도와줘!"


질질 끌려가던 남자는 정민을 보며 소리쳤다.


'심지어 말까지 하고 있어.'


그러나 정민은 혹시나 불똥이 튈까 입을 다물고 그 상황을 지켜보았다.


가게 밖으로 나간 무리는 어둠 속 어딘가로 사라졌다.

안개가 자욱했던 길도, 도망치던 사람들도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지고 없었다.


'나가야겠어.'


정민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밖으로 나가니 길가에는 사람이 없었고 가게들의 불도 모두 꺼진 상태였다.

불현듯 공포감이 들어 그는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뒤돌았다.


어찌된 일일까?

분명히 조금 전까지 있었던 식당이었는데, 어느새 문은 잠겨 있었고 안은 어두컴컴했다.

뒷걸음질치던 정민은 그곳을 벗어나기 위해 뛰었다.


뛰면 뛸수록 길이 점점 더 좁아지는 느낌이었다.

유일하게 불빛이 나오는 곳은 가로등이었지만, 정민은 무엇인가를 비출지 모르는 그 불빛이 오히려 더 무섭기만 했다.


마침내 가로등 불빛마저 모두 꺼지고, 정민은 암흑 속에서 멈춰 섰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정민은 비틀거리며 벽을 찾기 위해 옆으로 조금씩 이동했다.


저벅 저벅


정민이 움직일 때마다 희미한 발걸음 소리가 났다.

그가 잘못 들었나 싶어 귀를 기울이면 그 소리는 더는 나지 않았다. 그런데 움직일 때마다 다시 발걸음 소리가 시작됐다.

이것은 분명히 자기 자신의 발걸음 소리가 아니었다.

정민은 그 소리가 멈추지 않고 점점 자신 쪽으로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 망설이지 않고 뛰기 시작했다.


'제발 여기서 벗어나게 해줘!'


정민은 마음속으로 이렇게 외치며 간절히 탈출구를 찾았다.

그를 쫓는 발자국 소리가 뒤로 바짝 따라붙었다.

도대체 누구일까? 붙잡히면 절대로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얼마나 뛰었을까, 드디어 저 멀리 불빛이 아른거렸다.

조금 더 뛰어가니 길가에 지나다니는 몇몇 사람들과 아직 불이 켜진 가게들이 보였다.


'제발··· 조금만···.’


그 길을 몇 m 앞에 두고서 다리가 마비된 듯 잘 움직여지지 않았다.

마치 다리가 허공에 붕 떠서는, 헛발질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정민은 젖먹던 힘을 짜내어 몸을 던졌다.

인도를 넘어 차도까지 굴러간 정민은 비틀비틀 일어나 자신이 방금 지나왔던 골목길을 뒤돌아보았다.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냥 주택이 밀집된 평범한 골목길일 뿐이었다.


정민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분명히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것을 보았는데, 어느 새 사람들이 모두 사라져 있었다.

도로를 지나다니는 차도 없었고, 가게들은 불이 켜져있었으나 그 안에는 사람도 물건도 없이 텅 비어있었다.


'젠장, 왜 아무도 없는 거야?'


정민은 천천히 걸으며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벗어나야 할지를 생각해보았다. 그러나 마땅히 떠오르는 해답은 없었다.


그때, 앞에 지하철 입구가 보였다.

정민은 시청역 1번 출구라고 적힌 안내표지판을 보며 의아함이 들었다.


'이곳에 사람들이 모두 모여있을지 몰라.'


그러나 정민은 혹시나 싶은 마음에 안으로 들어가 보기로 했다.

정민은 계단을 내려가다가 잠시 멈춰 섰다.


'너무 어두워.'


지하철 안이 너무 어두컴컴해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순간 불길한 느낌이 엄습한 정민은 다시 위로 올라왔다.


다른 길을 찾아보기로 한 정민은 뒤돌았다가 주변 풍경을 보고 깜짝 놀랐다.

사라졌던 사람들이 다시 나타난 것이다.


정민은 돌아다니며 그들을 살펴보았다.

다들 떠들고 있었지만, 여전히 그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정민은 어디선가 본듯한 모자를 쓴 중년의 노신사에게 다가갔다.


"저 좀 도와주세요. 여기가 도대체 어디입니까?"


노신사는 말없이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곳은 보라색과 주황색의 빛이 내려앉은 골목길이었다.

정민은 언덕길이 꽤 높아 보여서 가는 것이 꺼려졌다.


"말씀 좀 해주세요. 여기가 어딘가요?"


노신사는 자신의 모자를 벗어 그 안에 무엇인가를 정민에게 건네주었다.

그것은 오래된 동전 2개였다.


"이게 뭐죠?"


노신사는 어깨를 으쓱하고는 다시 제 갈 길을 가버렸다. 뒤에서 정민이 불렀지만, 그는 돌아보지 않았다.

정민은 일단 노신사에게서 받은 동전을 주머니에 쑤셔 넣고 다시 도움을 요청할 사람을 찾았다.


그때 빨간 털모자를 쓴 한 아름다운 미모의 여성이 정민에게 말을 걸어왔다.


"지하철은 어디서 타나요?"


'목소리가 들리잖아.'


정민은 드디어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나자 기쁜 마음이 들었다.


"지하철은 저쪽에···"


정민은 저 멀리 보이는 지하철 입구를 가리켰다.


"같이 가주시겠어요?"


여자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정민은 조금 고민이 됐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저는 바빠서요."


여자는 무표정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정민을 지나쳐 지하철 출입구로 향했다.


"저기요! 잠시만요!"


정민이 소리쳤지만, 여자는 뒤돌아보지 않았다.

정민은 조금 후회하는 마음으로 그런 여자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다가 다시 몸을 돌렸다.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을 찾자.'


정민은 지나치는 사람마다 말을 걸어대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그러나 사람들은 정민을 이상한 눈길로 쳐다보거나 아예 없는 사람 취급하기 일쑤였다.

정민은 근처의 한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가판대가 비어있어 무엇을 파는지는 알 수 없었다.

정민은 빈 유리 진열장 뒤에 서 있는 남자에게 물었다.


"말씀 좀 여쭙겠습니다."


정민은 이렇게 말하며 듬성듬성 수염이 난 남자의 턱을 바라보았다.

남자가 대답하지 않자 정민은 다시 말을 이었다.


"여기가 어딘가요?"


남자는 말없이 진열장 안에 있던 갈색의 보관함을 꺼내어 올려놓았다.


"이게 뭐죠?"


정민은 마지못해 보관함을 열어보았다.

반짝거리는 에메랄드빛의 보석이 박힌 목걸이가 들어있었다.


"이걸 왜 저한테···"


마름모꼴 모양의 펜던트와 금줄이 너무나도 아름다워 보였다.


"저한테 주시는 건가요?"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공짜로요?"


남자는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정민은 이런 비싸 보이는 물건을 그냥 준다는 것이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일단 목걸이를 챙겼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여기는 도대체 어디죠?"


남자는 아무 말 없이 정민을 묘한 눈길로 바라볼 뿐이었다.

잠시 뒤 가게 안으로 젊은 여자 둘이 서로 팔짱을 끼고 들어왔다. 그들은 아무것도 없는 진열대를 둘러보며 저들끼리 뭐라 얘기했다.


정민은 밖으로 나와 다시 주머니에서 목걸이 꺼내보았다. 에메랄드빛의 보석이 영롱했다.


'잃어버릴 것 같아.'


정민은 하는 수없이 목걸이를 자신의 목에 걸고는, 무작정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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