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x들보얀 님의 서재입니다.

그 세계의 이름은 악몽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일반소설

들보얀
작품등록일 :
2022.10.08 17:10
최근연재일 :
2022.11.13 23:00
연재수 :
12 회
조회수 :
177
추천수 :
9
글자수 :
58,448

작성
22.10.08 17:28
조회
32
추천
2
글자
12쪽

1

DUMMY

정민은 어느 날부터 계속 같은 꿈을 꾼다.

그런데 한 가지 특이한 점은 꿈이 조금씩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도 정민은 새벽부터 깨서 눈만 껌뻑이며 조금 전까지 있었던 기묘한 세계를 떠올리려 애썼다.


'자, 천천히 생각해보자.'


꿈에서 정민은 낯설지만 어딘가 익숙한 길을 걷고 있었다.

세상은 주황빛과 분홍빛, 보랏빛이 가득 내려앉았고 조용한 길 위를 지나다니는 건 정민과 그의 앞에 걸어오는 한 쌍의 남녀뿐이었다.

서로 마주 보고 걷던 그들은 마침내 조금의 간격을 두고 섰다.


"안녕하세요."


정민은 그들에게 말을 건넸다.


'커플인가?'


여자가 남자에게 팔짱을 끼고 있는 걸 보고 정민은 생각했다.


멀뚱히 서로 마주 보고 있던 중에, 여자가 옆을 가리켰다.

정민은 그녀가 가리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보이는 건 땅속에 처박힌 아파트였다.

그것도 한 동이 아니라 적어도 세 동이 땅 밑으로 깊숙이 처박혀 맨 꼭대기인 옥상이 보일 정도였다.


이 광경은 무엇인가.

정민이 생각하는 중에 여자는 무엇인가 말하려는 듯 입을 뻐끔거렸다.


하지만 무슨 말을 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렇게 꿈에서 깨버렸기 때문이다.

정민은 더듬거리며 침대 어딘가에 놓아둔 휴대폰을 찾았다.


'으, 눈 부셔.'


정민은 인상을 찌푸리고는 휴대폰 화면을 쳐다보았다.

시간은 오전 4시 32분.

아직 더 자도 될 시간이었다.


하지만 정민은 묘한 불쾌감에 몸을 일으켰다.

그는 잠시 침대에 앉아 머릿속에 어지럽게 돌아다니는 상념들을 털어내고는 부엌으로 터덜터덜 향했다.


정민은 거실 불을 킨 뒤 냉장고를 열어 생수를 꺼내 컵에 따랐다.

식탁 의자에 앉은 그는 멍하니 부엌 찬장에 어느 한 곳을 쳐다보았다.


'왜 계속 반복되는 꿈을 꾸는 거지?'

꿈을 꾸는 것 자체는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반복된다는 점이었고, 견딜 수 없는 것은 꿈을 꾸고 난 뒤에 찾아오는 적막과 몽롱함이었다.

꿈을 꾸고 나서는 다시 잠자리에 들기도 어려워서, 그날은 종일 피곤한 상태로 있어야했다.


정민은 이런 것들이 꽤 불쾌했고, 묘하고 어딘가 기괴한 분위기의 꿈이 불길했다.

또한 이어질 듯 말듯 도중에 끊겨버린 꿈이 찝찝하기도 했다.


'여자는 무슨 말을 하려고 했을까?'


여자가 내게 무슨 말을 하려고 했다. 이것은 새롭게 추가된 부분이었다.

전에는 땅속에 처박힌 아파트를 보자마자 깼으니 말이다.


하지만 곧 정민은 이런 것들을 생각하는 것이 불필요한 행동이라 판단했다.

꿈은 꿈일 뿐인데 그 안의 내용이 어찌 됐든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중요한 건 현실이지.'


정민에게 지금 가장 중요한 문제는 취업이었다.

별다른 스펙이 없던 정민에게 취업이란 것은 넘기 힘든 문이었다.

눈을 최대한 낮춰도 소용없었다. 취업의 문 앞을 가로막는 것은 정민의 탓이 아니었다.


정민은 오늘 아침 11시에 면접 일정이 잡혀있었다.

면접을 볼 곳은 직원 수 30명가량의 의류를 취급하는 중소기업으로, 거리는 지하철을 타고 1시간 정도 걸렸다.

그는 휴대폰의 메모장을 켜 면접이 몇시까지인지, 어떻게 가야 할 지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휴대폰을 다시 식탁 위에 올려둔 정민은 그때까지 무엇을 할지 생각했다.


'게임이나 해야겠다.'


그는 다시 방으로 가서 컴퓨터를 켰다.

잠시 뒤 전원이 들어오고 정민은 마우스를 움직여 게임을 클릭했다.


***


얼마나 지났을까.

의자에서 잠시 잠든 정민은 서둘러 휴대폰을 찾았다.

시간은 10시 47분.


'큰일 났다.'


씻을 시간조차 없었다.

정민은 욕지거리하며 자꾸만 뒤로 도망가는 셔츠의 소매에 어떻게든 팔을 넣으려고 애를 썼다.


그는 그러다가 모든 행동을 멈추고 곰곰이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제 10시 50분. 택시를 탄다고 해도 30분쯤 걸리는 거리였다.


정민은 체념했다.


'왜 알람이 울리지 않은 거지?'


허망함과 동시에 의문이 들었다.

지원서만 주야장천 넣다가 운 좋게 찾아온 면접 기회인데 늦잠을 자버린 탓에 그 기회가 허무하게 물 건너가 버렸다.


'왜 잠이 들어버린 거지?'


이상했다. 분명 잠들지 않을 것만 같았는데. 게다가 요즈음 꿈을 꾸고 나서는 다시 잠이 든 적이 없었다.

그런데 왜 오늘 하필이면.


정민은 어젯밤 오랜만에 꺼내 걸어둔 정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엄마한테는 뭐라고 말하지?'


정민은 걱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면접 시간을 알고 있던 어머니가 왜 자신을 깨워주지 않았는지 궁금했다.


그는 다시 셔츠를 벗고 원래의 옷으로 갈아입은 뒤 방 밖으로 나갔다.

거실을 가로질러 어머니가 자는 방으로 향했다.


'아직도 안 깨셨나?'


보통 아침 일찍 일어나 있던 어머니가 웬일로 이번에는 늦잠을 자는 건지 의아했다.

정민은 조심스럽게 방의 문을 열어 안을 살펴보았다.


하지만 방에는 아무도 없었다.


'화장실에 가셨나?'


다시 거실을 가로질러 화장실을 확인했지만 역시나 없었다.


만약 어머니가 어디 나가 있는 상태라면 정민에게는 다행이었다.

그는 다급히 정장으로 갈아입기 위해 다시 옷을 벗었다.

잠시 뒤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그는 대충 물을 묻혀 머리를 다듬고는 밖으로 나갔다.


정민은 집 앞 공원을 천천히 걷다가 잠시 쉴 겸 벤치에 앉았다.

그는 이대로 아무 데나 거닐다가 넉넉히 두 시간쯤 후에 집에 들어갈 계획이었다.

그리고서는 어떻게 됐냐고 물어보는 어머니에게 면접을 그럭저럭 잘 보았다고 답할 것이고, 며칠 뒤 결국 불합격됐다고 말하면 그만이었다.


"하아."


정민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자신이 한심하고 초라하게 느껴졌다.


'이 멍청한 놈아.'


어떻게 잡은 면접 기회인데. 열심히 적은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묵혀놨던 정장을 꺼내 세탁소에 맡긴 수고가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이런 기회가 또다시 올까? 지금이라도 회사에 전화를 해볼까? 전화해서 시간을 조금만 미뤄줄 수 없겠느냐고 부탁해보는 것이다.


하지만 정민에게 그럴만한 용기는 없었다. 게다가 회사가 그런 기회를 줄 리도 없었다.

정민은 머리를 감싸 쥐고 쥐어뜯으며 괴로움을 분출했다.


"뭐지?"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손바닥을 내려다보니 머리카락이 한 움큼 빠져있었다.


'내가 이렇게 세게 쥐어뜯었단 말이야?'


그는 놀라며 손에 있는 머리카락을 털어내고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만져보았다.


어깨 위로 머리카락이 우수수 떨어졌다.

그가 놀라며 일어나자 그것들이 다시 또 바닥과 벤치 위로 떨어졌다.


'대체 이게 뭐야?'


아무리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한들, 이렇게 머리털이 빠질 리가 없었다.


정민은 고개를 들었다.

사람들이 모두 멈춰서서 그를 무표정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뭘 보는 거야?'


정민은 불쾌한 기분을 느끼며 사람들의 눈길을 피해 황급히 그 자리를 벗어났다.


***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다.

분명한 건 지금은 밤이 되었다는 것이고 정민이 거리를 헤매고 있다는 점이었다.


'도대체 여기가 어디야?'


그는 주변에 반짝이는 네온사인 간판들을 훑어보며 집으로 향하는 길을 찾았다.


"저기요, 혹시 여기가 어디예요?"


급기야 정민은 마주 오던 한 무리의 여성들에게 물었다.

그들은 저들끼리 얘기하느라 정민의 말을 못 들은 건지, 그냥 지나쳐가고 말았다.

정민이 재차 물었지만 그들은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저기 선생님, 혹시 여기가 어디인지 아십니까?"


정민은 이번에는 중절모자를 쓴 한 노신사에게 다가가 물었다.

노신사는 정민을 바라보다가 말없이 한 곳을 가리켰다.

그가 가리킨 곳은 굉장히 어두침침해 보이는 좁은 골목길이었다.

골목길을 보자 정민은 어딘가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감사합니다."


정민은 노신사에게 고개를 숙이고 골목길로 향했다.

시끄러운 거리와는 상반되게, 골목길 안은 어둡고 조용했다.

옆을 바라보니 교회가 있었는데, 그 불이 꺼진 교회의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묘하고 기괴한 느낌이 들었다.


'뭐지?'


저 멀리 사람의 형체가 보였다.

불현듯 목덜미에 소름이 끼쳤다.

아니나 다를까, 앞에 있던 그 형체가 갑자기 정민에게로 달려오기 시작했다.


정민은 미친 듯이 뛰었다.

마침내 그는 다시 거리로 나와 뒤를 살펴보았다.

정민을 뒤쫓던 사람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거리는 아까와는 다른 모습이 되어있었다. 네온사인 간판은 어디 가고, 평범한 주택가의 길거리와 유사한 모습이었다.

어쨌든 골목을 벗어나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정민은 편의점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편의점 직원은 그를 멀뚱히 쳐다보았다. 정민은 그를 지나 가판대에서 음료수 하나를 집어 왔다. 그런데 그때 한 무리의 여성들이 편의점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그 목소리가 정민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저 사람들 목소리 들려요?"


정민은 이상하다는 생각에 편의점 직원에게 말을 걸었다.

직원은 정민을 쳐다보며 어깨를 한 번 으쓱거렸다.


"도대체 여기가 어디예요?"


직원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고 서 있는데 편의점 안으로 또다시 한 무리의 여성들이 들어왔다.

편의점 안이 사람들로 북적였다.

그중에 단발머리를 한 여자가 웃으며 정민에게 말을 걸어왔다.


"뭐라고요?"


여자는 정민에게 말하고 있었지만 도무지 뭐라고 말하는지 잘 들리지 않았다.

편의점 안으로 들어온 그들은 저들끼리 계속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그 소리가 들리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시끄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정민은 문득 그들이 외국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외국인이에요?"


여자는 미소를 지은 채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아무래도 말을 못 알아들은 듯했다.


'관광이라도 온 건가?'


그렇지만 이런 곳에 관광객이 있을 리가 없었다.

정민은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여자들을 지나쳐 그 공간을 빠져나왔다.


정민은 걷다가 자기 오른손에 있는 음료수를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가만있어 보자. 내가 계산하고 나왔나?'


계산하지 않았는데 직원이 왜 자신을 그냥 보낸 건지 의아했다.

정민은 주머니를 뒤져 지갑을 찾았다. 지갑 속에는 음료수를 계산하고도 남을만한 충분한 현금이 들어있었다.


이상했다.

평소 카드를 많이 사용하는 정민은 지갑 속에 그 정도의 현금을 잘 들고 다니지 않았다.

정민은 문득 옆을 바라보았다.


'원래 강이 있었나?'


잔잔하게 요동치는 검은 강물 위로 거대한 달이 보였다.

정민은 그 광경을 바라보며 마침내 이 모든 것들이 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정민은 순간 서늘한 느낌에 뒤를 돌아보았다.

사람들이 모두 멈춰서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편의점 안에 있던 여자들도 창문에 다닥다닥 붙어 모두 그를 무표정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꿈에서 깨야 해.'


정민은 악몽에서 일어나는 방법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는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눈꺼풀을 들어 올리기 위해 애를 썼다. 이것이 정민이 악몽에서 벗어나는 방법이었다.


기괴하고 공포스러운 느낌을 받은 순간 상황은 더 악화되었다.

사람들이 그에게 점점 다가오기 시작한 것이다.


'깨라. 빨리 좀 깨라.'


그들에게 절대 붙잡히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정민은 필사적으로 눈꺼풀을 들어 올리기 위해 노력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아들, 일어나."


그때,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그 세계의 이름은 악몽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2 11 22.11.13 5 0 11쪽
11 10 22.11.12 6 0 12쪽
10 9 22.11.06 8 0 11쪽
9 8 22.11.05 11 0 12쪽
8 7 22.10.30 10 0 12쪽
7 6 22.10.29 10 0 12쪽
6 5 22.10.23 14 1 12쪽
5 4 22.10.22 11 1 12쪽
4 3 22.10.16 13 1 12쪽
3 2 22.10.15 17 2 12쪽
» 1 +1 22.10.08 33 2 12쪽
1 0. 누군가의 일기 22.10.08 40 2 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