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햄보칼수없 님의 서재입니다.

환생한 헌터는 농사 천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햄보칼수없
작품등록일 :
2023.05.10 23:15
최근연재일 :
2023.07.20 22:45
연재수 :
71 회
조회수 :
344,891
추천수 :
9,204
글자수 :
457,252

작성
23.07.15 22:45
조회
1,885
추천
68
글자
18쪽

66화. 향유고래

DUMMY

커다란 노랫소리, 술과 고기, 그리고 춤. 야만족의 연회는 리안의 그것보다 더 시끌벅적했다. 타악기로만 구성된 단순한 리듬의 음악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고래 고기는 처음 먹어보는군.’


포경이 금지된 세상에선 이렇게 신선한 고래 고기는 좀처럼 먹을 수 없는 별미였다. 야만족들은 스테이크로 굽는 최고급 부위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고기를 회로 먹는 걸 즐겼다.


“스승님 드셔보세요! 진짜 맛있어요!”


이안은 접시에 담긴 고래 고기 스테이크를 건넸다. 한입 입에 넣고 씹으니 엄청난 풍미가 입안에서 폭발했다.


고래 고기는 육고기보다 쫄깃한 식감에 해산물 특유의 비릿한 향, 그리고 기름의 맛이 어울어져 그 어떤 고기와도 비교할 수 없는 풍미가 있었다.


“음! 정말 맛있네?!”


“그렇죠? 그리고 이건 마유주래요. 고래 고기와 은근히 어울려요.”


나는 그가 건네준 술잔을 받아 한 입에 잔을 비웠다. 막걸리보다 걸죽한 목넘김에 요구르트와 비슷한 향이 나는 술이었다.


“캬~ 고래 고기의 느끼한 맛을 마유주가 잡아주는구나.”


곡식을 구하기 힘든 환경에서는 말젖과 같이 젖당의 함유가 높은 젖을 발효시켜 술을 만들 수 밖에 없다.


그간 와이번의 습격에 의해 사육하는 말의 개체수가 많이 줄었다고는 들었지만 여전히 마유주는 생산되고 있던 모양이었다.


“크! 맛있어!”


“그렇죠?”


이안은 야만족들의 틈에 어울려 춤을 추고 있는 아사에게서 눈을 못떼고 있었다. 그녀는 갑옷과 도끼를 내려놓고 대신 푸른 염료와 장신구로 치장한 채 화려한 춤을 추고 있었다.


둘러보니 그녀를 흘끔거리는 건 비단 이안 핼포드만이 아니었다. 거친 야만족 사내들의 시선이 그녀의 몸매를 응큼하게 훑고 있었다.


“어릴 땐 야만족이 마물과 동급으로 위험한 사람들이라 생각했어요. 저희 어머니도 어릴 때 형제들을 야단칠 때면 야만족이 잡아간다고 겁을 줬을 정도니까요.”


“나도 그랬어.”


내가 어릴 때 가끔 야만족 기마병이 마을을 약탈하거나 여자를 납치해 가는 일이 있었다고 듣기도 했다. 그런 말을 할 때면 마을의 어른들은 야만족에 대한 분노와 혐오의 정서를 내비치곤 했다.


“차차 나아지겠지.”


그는 마유주를 홀짝이며 내게 말했다.


“그래도 스승님에 대해서는 다들 고맙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아요.”


“왜?”


“저희 아버지가 대족장님과 동맹 맺을 때 스승님이 어떤 활약을 했는지 다 얘기했거든요. 결국 용과의 싸움에서 우린 피를 거의 흘리지 않고 승리를 거뒀잖아요. 다들 표현을 안해서 그렇지 그 일에 대한 고마운 마음이 있어요.”


대족장 비요른은 후계자인 두 아들을 잃고 본인도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돌아왔다. 그뿐이었을까? 그 많던 부족들이 대부분 죽고 여자들은 과부가 되었을 것이다.


전쟁이란 그토록 비정한 것. 대마법사 볼칸은 고드릭 왕에 대한 자신의 복수를 이루기 위해 그런 일을 했겠지만 그 복수의 과정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본 건 사실 그 누구도 아닌 야만족이었다.


‘이들은 볼칸의 존재를 모른다.’


백룡섬에 따라갔던 야만족은 모두 죽었기 때문에 살아남은 야만족들은 흑막을 캇네자르로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 입장에선 최종보스인 캇네자르가 죽은 것으로 모든 원한은 해결되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의도적으로 숨긴 진실. 대마법사 볼칸 아주르가 복수를 위해 날뛴 결과 결과 또다른 불행의 씨앗을 낳은 셈이었다.


나는 볼칸의 뛰어난 마법 지식이 필요했다. 그리고 얼어붙은 땅의 자원과 야만족의 노동력도 필요하다. 그래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택했다.


하지만 그들이 흑막의 정체가 볼칸이었음을 알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나에 대한 고마움은 금새 증오로 변할 것이다.


‘영주가 된다는 건 이렇게 무거운 일이었던 것일까?’


그저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좀 더 잘살고 싶어서 열심히 해왔을 뿐인데 그 모든 결정들은 결국 누군가에겐 원한을 쌓는 일이 될 수 밖에 없음을 알게 되었다.


“왜 그런 표정을 지으세요?”


이안이 내 빈잔에 마유주를 따라주며 말했다.


“응? 아니야. 그냥 좀 피곤해서.”


“저도 스승님께는 늘 감사한 마음을 갖고 있어요.”


느닷없는 고백에 나는 술 때문에 벌개진 얼굴을 하고 있는 이안 공자를 돌아봤다.


“뭘 또 새삼스럽게?”


“저 스승님이 제자로 삼아주기 전까진 삶에 아무런 의욕이 없었거든요. 솔직히 아버지의 교육 방식은 저랑 너무 안맞았어요.


아버진 자식들을 군인처럼 여겼거든요. 형들도 처음엔 상냥했었는데 점차 변해갔어요. 강자만 인정하는 가풍 때문에요.”


“자작님도 힘들어서 그랬을 거다. 믿었던 친구에게 배신 당하고 아끼던 부하를 대부분 잃었잖아? 그분을 원망하지 마라.”


그는 마유주를 들이킨 다음 입을 닦으며 말했다.


“네. 저도 알죠. 아버지가 어떤 마음으로 지금까지 살아왔는지. 그걸 알기에 그냥 맞춰왔던 거에요.


하지만 스승님을 만나면서부터 겨우 제가 원하는 삶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스승님은 제가 잘하는 것을 일깨워주셨으니까. 그동안 쑥쓰러워서 말씀 못드렸는데 정말 감사해요. 이건 진심입니다.”


무뚝뚝하고 거친 북부인의 삶의 방식이 몸에 배어서 그랬을까? 나는 이런 낯간지러운 분위기는 영 체질에 맞지 않았다.


민망한 기분이 들어 애꿎은 마유주를 단숨에 들이켰다. 알싸한 마유주가 목구멍을 부드럽게 적셨다.


‘핼포드 자작 때문에 나도 술마시는 버릇이 나빠졌군.’


“이안. 그렇게 말해줘서 나도 고맙다. 넌 좋은 녀석이야.”


“저 스승님··· 부탁이 있는데요.”


“응?”


그는 내게 진지한 얼굴을 하고 우물쭈물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스승님이 키우시는 튤립 한송이만 제가 주시면 안될까요?”


“꽃을 말이냐? 어디다 쓰려고?”


나는 말을 채 끝맺기 전에 이유를 알아차렸다.


“그녀에게 선물하려고 그러는군.”


“네···.”


나는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말했다.


“제자야··· 내가 꽃을 주는 건 어렵지 않은데, 내가 알기론 비달족의 전사는 꽃을 좋아하지 않거든. 그녀는 드레스를 입은 왕국의 귀족 영애들과는 너무나 다른 삶을 살아왔어.


다른 사람과 가까워지려면 상대방이 진짜 원하는게 뭔지 아는게 중요해. 내 생각엔 급하게 들이대기보단 그냥 시간을 갖고 지켜보는 걸 추천한다. 오랫동안 그 사람을 잘 알게되면 그 때 고백하는 게 좋지 않을까?”


그는 진지한 얼굴로 내가 한 말을 되뇌었다.


“시간을 갖고 지켜보라는 거죠? 알겠어요. 그전까지 저는 그에 걸맞는 기사가 되도록 노력해야죠.”


이러니 저러니 해도 그는 한창 이성에 관심이 많을 10대 후반의 남자아이였다. 나는 이성 문제에 진지한 고민을 털어놓는 어린 검술 천재를 바라보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녀석이 사람을 베는 일은 되도록 없었으면 좋겠다.’


검으로 사람을 벨 때 손에 느껴지는 감촉은 평생가도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 된다. 날붙이가 살을 가르고 뼈를 자를 때 나는 소리, 비명 소리와 빛을 잃어가는 그 눈빛. 그 모든 것들은 뇌리에 새겨져서 지워지지 않는다.


이안이 검을 드는 날이 온다면 나처럼 그 녀석의 뇌에도 수많은 기억들이 새겨질 것이다. 되도록 그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하고 싶다. 그러려면 영지의 힘을 더욱 키워야 한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있던 귓전을 때리는 소리가 들렸다.


“우하하하! 새 영주는 어디갔느냐?”


얼큰하게 취한 대족장 비요른이 붉게 충혈된 눈으로 두리번거리며 소리치고 있었다.


“아! 거기있었군! 미안하지만 이쪽으로 오게나! 보다시피 다리가 없어서 내가 갈 수는 없거든. 우하하하!”


그는 내가 다가가자마자 거대한 대접 같은 술잔을 내밀며 말했다.


“내 잔을 받아라. 이 애송이 놈아!”


옆에 있던 아사가 새하얗게 질린 표정으로 그를 말리며 말했다.


“아버지! 이자는 이제 아버지보다 윗사람이야.”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는 태도로 소리쳤다.


“멍청한 소리 마라! 이런 젖비린내 나는 녀석이 내 윗사람이라고?”


그녀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내게 재빨리 사과했다.


“미안. 아버지가 오늘 기분이 좋아서 술을 많이 마셨어.”


나는 그녀를 보며 말했다.


“신경쓰지마. 나도 행정적인 위계는 신경 안써. 그런게 인간의 높낮이를 가른다고 생각하지 않거든. 나는 네 아버지를 존중한다. 맨몸으로 서리용과 싸워 살아남았다는 건 보통 강한 인간이 아니거든.”


나는 그의 술잔을 받았다.


“우하하하! 우리 새 영주가 뭘 좀 아는군. 남자의 위계를 결정짓는 건 결국 강함 밖에 없잖은가? 비달족은 자기보다 강한자 외엔 머리 위에 두지 않는다.


하지만 넌 로버트가 인정한 녀석이니 나도 널 인정하마. 단 내가 준 잔을 깨끗이 비울수 있다면 말이다.”


‘이 아저씨··· 결국 술마실 구실을 만들고 싶었을 뿐이잖아···. 하아··· 여기선 대충 분위기를 맞춰줘야지.’


나는 대접에 든 마유주를 벌컥벌컥 들이키고 나서 그를 도발했다.


“크··· 이것도 술이라고 가져왔나? 도수가 약해서 너무 싱겁군.”


내 값싼 도발에 비요른의 눈이 번뜩였다.


“호오! 제법 허세도 부릴줄 아는군. 난 또 네가 계집애처럼 반반하게 생겨서 술도 못마실줄 알았다.”


그 말에 나도 지지 않고 받아쳤다.


“우리 리안 사람들에게 이런건 음료수나 다름 없는데? 언제 한 번 리안으로 넘어와라. 내가 70도짜리의 진짜 술을 마시게 해줄테니.”


그는 내가 돌려준 잔에 술을 가득 채운 뒤 단숨에 비워냈다.


“크으··· 좋다. 아사! 방금 결심했다.”


그는 갑작스럽게 딸과 나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까짓거 이 애송이가 원하는 판에서 놀아나주지. 네놈들과 거래를 트겠다.”


“아버지!”


놀란 눈으로 그를 부르는 아사를 향해 비요른이 말했다.


“내 딸아! 너는 이것을 치욕이라 생각하느냐? 진짜 치욕은 내 사람들을 먼저 보내고 결국 나 혼자 살아 남아버린 것이 아니겠냐? 이제 비달족도 삶의 방식을 바꿔야할 때가 온 것뿐이다.”


‘역시 이 남자 로버트 핼포드와 닮았어.’


그는 결심한 바를 곧바로 실행하는 점에서 핼포드 자작과 닮은 구석이 있었다. 판단이 빠른 건 즉흥적인 것과 다르다. 그건 그간 쌓인 생각이 깊이가 깊다는 뜻.


‘역시 북쪽 동토의 야만족을 통일할 정도의 그릇.’


나는 그의 결심을 반기며 말했다.


“큰 결심을 해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한다. 나도 리안의 영주로서 비달족의 번영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하겠다.”


그는 도끼날로 팔뚝을 그어 마유주가 담긴 대접에 피를 떨어뜨렸다. 흰 마유주에 붉은 피가 점점이 떨어져 흩어졌다. 나 역시 단검을 꺼내 팔뚝을 그었다.


두 사람의 피가 담긴 마유주 대접을 나눠마신 뒤 비요른은 큰 소리로 선포했다.


“비달족의 형제들은 들어라! 우리와 리안은 동맹이 아니다! 우린 오늘부터 피를 나눈 형제가 되었다! 그러니 너희도 리안의 사람들을 형제로 대해라!”


우오오오!


대족장의 천막에 있던 장로들과 젊은 대장들이 큰소리로 함성을 외쳤다.


“와하하하! 내 잔도 받아줘! 젊은 영주!”


비달족의 장로들은 저마다 내게 술잔을 건네며 왁자지껄 떠들기 시작했다. 정말 이런식으로 해결된 게 맞나 싶을 정도로 간단한 일이었다.


“내 잔도 받아라!”


각자 술잔을 들고 하나 둘 몰려들기 시작하던 장로들을 막은건 의외로 아사였다.


“리안의 젊은 영주는 이미 많이 마셨다. 미안하지만 할아범들은 다음 기회를 노려.”


“쳇! 재미 없게 만드는군.”


그녀는 투덜대는 장로들을 일일이 돌려보내며 내게 눈짓을 보냈다. 밖으로 따라오라는 뜻이었다.



***



초봄의 얼어붙은 땅에서 올려다본 밤하늘은 유리처럼 맑았다.


“여기선 별이 더 가깝게 느껴지는군.”


내가 입을 열자 하얀 입김이 뿜어져 나왔다. 그녀는 하늘을 올려다보지 않았다. 마치 지상의 일외엔 전혀 관심이 없다는듯 내 두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결국은 네 뜻대로 되었네.”


“그렇지.”


“네 수완은 익히 들어서 알고 있어. 우리가 오늘 네 제안을 거절했어도 결국 어떻게든 원하는 걸 얻어냈을 거라는 걸··· 아버지도 그걸 알기에 빠르게 승락해준 거야.”


“나도 알아.”


그녀의 두 눈에서 눈물이 차오르는게 보였다. 강인한 야만족의 여전사 답지 않은 모습에 나는 조금 당황했다. 그녀는 울음을 참기위해 이를 악물었다.


“아버지 말이 맞아. 우린 이미 외세를 끌어들여 눈 앞의 적을 막아냈다. 그것부터가 우리 방식이 아니었어. 원래 우린 마지막 한 명이 죽을 때까지 용과 맞서 싸울 작정이었다. 네가 나타나기 전까지.”


그녀는 입술을 깨물고 있었다.


“너희를 죽게 내버려두지 않아서 원망하는 것처럼 들리는군.”


그녀는 내 말에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 넌 네 일을 한 거다. 원망하지 않아. 오히려 고맙게 생각한다. 하지만 한가지만 부탁할게.”


“뭔데?”


“아버지가 다시 싸울 수 있게 해줘. 전사는 전장에서 죽어야만해. 이대로 아버지가 늙어 죽으면 아버지는 조상님을 뵐 면목이 없어진다.”


나는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그건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야. 네 아버지 비요른 역시 다시 두 발로 일어서게 해주겠다고 약속할게. 비달족 최강의 전사는 반드시 전장에서 죽을 거야.”


그녀는 추운듯 양팔을 감싸쥐며 시선을 내리깔고 내게 물었다.


“고마워. 그거면 됐어. 그럼 날 언제 가질 거야?”


나는 잠깐 동안 뇌정지가 왔다.


···


“뭐?”


그녀는 턱끝으로 구석에 있는 천막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쪽에 빈 천막이 있어. 할 거면 빨리 끝내자.”


“가··· 가만! 그게 무슨 소리냐?”


그녀는 당황한 나를 빤히 올려다 보며 당연하다는듯 말했다.


“왕국의 영주는 속지의 딸에게 하룻밤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고 들었다. 그건 우리 비달족도 마찬가지. 우리의 족장들도 정복한 부족의 딸을 취할 수 있어. 나도 대족장의 딸이라 그 정도의 각오는 이미 되어 있다.”


이제야 그녀의 말이 무슨 의미인지 깨달았다.


“야! 헛소리 마!”


그녀는 되려 내게 발끈하며 물었다.


“뭐냐? 날 갖지 않겠다는 거냐? 너 영주잖아?”


“언제적 얘길 하는 거냐? 그런 풍습은 이제 왕국 내에서도 사라진지 오래야. 나참 난 또 무슨 얘긴가 했네.”


당황하여 돌아서려는 내게 그녀는 손목을 잡아채며 다급하게 말했다.


“얼어붙은 땅에 이제는 남자가 씨가 말랐어. 이대로 가다간 비달족 쳐녀들은 늙은 장로들의 첩으로 들어갈 수 밖에 없어. 그건 죽어도 싫어.”


두 집단이 통합된다는 건 여러가지 성가신 일들도 함께 생긴다는 것을 의미했다.


점차 집단간 인적 교류가 활발해지면 자연히 남녀 간의 일들도 늘어날 거라 생각해두긴 했지만 저쪽에서 오히려 적극적으로 나올 거란 건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아사, 대족장의 딸이라고 해서 너무 많은 걸 떠안으려고 하지마. 부족을 부흥시켜야할 의무가 있다고 해서 아무에게나 몸을 바쳐도 되는 건 아니야. 내가 경영을 잘하면 이곳에도 점차 사람들이 와서 살게 될 거다.”


그녀는 그제야 내게서 눈을 떼고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넌 좋은 녀석이네. 돌집에 사는 영주들은 모두 사악한 놈들이라 들었는데···.”


“내게도 여동생이 있어. 그 애를 건드리는 놈은 누구라도 죽여버릴 거기 때문에 나도 다른 여자는 함부로 건드리지 않아.”


그녀는 내 말에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 내 오빠들도 그렇게 말하곤 했지. 부족의 남자들은 목숨이 아까워서 감히 내게 눈도 마주치지 못했어. 그 덕분에 내가 이 나이까지 혼자인걸지도···. 아무튼 조금은 안심했다. 너라면 우릴 잘 다스릴 것 같아.”


나는 자연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그런 것보다. 오늘 잡은 고래 말이다.”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


“응. 고래가 왜?”


“그 고래의 부산물을 가져가도 될까?”


그들은 고래의 고기는 먹고 경뇌(鯨腦)에서는 기름을 짠다. 하지만 내장과 뼈는 활용하지 않고 버리는 모양이었다.


크기와 형태로 보면 그들이 잡은 건 이빨고래에 속하는 향유고래의 일종. 내장을 뒤져보면 고급 향수의 재료가 되는 용연향(龍涎香)이란 향료를 발견할 수도 있어 조사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내장이랑 뼈 말이야? 그런 건 어디다 쓰게?”


“내장에도 기름이 많이 있어. 얇게 저며서 끓이면 기름을 더 짜낼 수 있거든. 향유고래의 기름은 품질이 좋아서 한 방울도 놓치고 싶지 않아서 그래. 그리고 고래의 뼈는 가볍고 튼튼해서 장인에게 넘기면 좋은 물건을 만들 수 있고.”


향유고래의 기름으로는 고급 양초를 만들 수 있었다. 바엘 마을에 실력 좋은 초장이들을 늘려 양초를 만들어 팔면 큰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았다.


게다가 좋은 조명을 쓸 수 있으면 사람들은 밤에도 일하거나 공부할 수 있게 되어 영민들의 교육 수준과 경제력이 같이 올라간다.


게다가 고급유로 만든 비누는 세척력과 보습력이 뛰어나 영민들의 위생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다.


마지막으로 용연향은 고급 향수의 재료. 영지에 막대한 부를 가져다 줄 수 있다.


백해에 고래가 얼마나 있는지는 더 조사해봐야 알겠지만 포경은 앞으로 얼어붙은 땅을 먹여살릴 핵심 산업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였다.


한결 홀가분해진 얼굴을 한 그녀가 해안가의 고래 사체를 가리키며 말했다.


“뭣하면 같이 가볼래? 내가 조사하는 걸 도와줄게.”


작가의말

.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환생한 헌터는 농사 천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중단 공지 드립니다 +3 23.07.21 623 0 -
공지 연재 주기 조정 공지 (주 6일) 23.07.17 54 0 -
공지 67화 후반부 내용 수정 공지 및 드리는 말씀 23.07.17 106 0 -
공지 64화 지각 죄송합니다. 23.07.13 91 0 -
공지 7월 10일 월요일 하루 휴재하겠습니다. 23.07.09 70 0 -
공지 연재시간을 매일 22:45로 소폭 변경하겠습니다. 23.06.24 74 0 -
공지 추천글 써주신 qortjf2011님 감사드립니다! 23.06.12 87 0 -
공지 23화 일부 내용 수정 했습니다 23.06.02 85 0 -
공지 이 제목으로 정착하겠습니다. (환생한 헌터는 농사 천재) 23.05.25 177 0 -
공지 소중한 후원금 감사드립니다(후원자 명단) 23.05.18 3,862 0 -
71 70화. 터널 개통 +3 23.07.20 1,120 51 12쪽
70 69화. 농지를 개간하다 +3 23.07.19 1,255 51 13쪽
69 68화. 교역을 시작하다 +3 23.07.18 1,359 56 17쪽
68 67화. 온천의 발견 +9 23.07.16 1,727 65 17쪽
» 66화. 향유고래 +2 23.07.15 1,886 68 18쪽
66 65화. 인재 등용 +1 23.07.14 2,112 67 15쪽
65 64화. 마석의 사용법 23.07.13 2,147 73 13쪽
64 63화. 마석 수집 +1 23.07.12 2,179 71 16쪽
63 62화. 내가 영주라니 23.07.11 2,325 73 17쪽
62 61화. 결착 +3 23.07.09 2,359 80 14쪽
61 60화. 불꽃 놀이 +1 23.07.08 2,380 76 17쪽
60 59화. 복수 +4 23.07.07 2,474 75 21쪽
59 58화. 세이렌의 바다 +2 23.07.06 2,376 68 13쪽
58 57화. 최강의 기사 23.07.05 2,485 74 16쪽
57 56화. 신경전 23.07.04 2,575 79 17쪽
56 55화. 서리용 토벌대 +2 23.07.03 2,701 73 15쪽
55 54화. 매크로 생성 +2 23.07.02 2,804 76 14쪽
54 53화. 스카우트 +3 23.07.01 2,940 91 19쪽
53 52화. 어둠을 뒤로 하고 +1 23.06.30 2,984 82 14쪽
52 51화. 연줄 +3 23.06.29 3,141 97 15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