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햄보칼수없 님의 서재입니다.

환생한 헌터는 농사 천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햄보칼수없
작품등록일 :
2023.05.10 23:15
최근연재일 :
2023.07.20 22:45
연재수 :
71 회
조회수 :
344,433
추천수 :
9,202
글자수 :
457,252

작성
23.07.07 22:45
조회
2,470
추천
75
글자
21쪽

59화. 복수

DUMMY

토벌대는 어인섬에서 잠깐의 휴식을 취한 뒤 곧바로 다음 섬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오는 중에 배를 잃었기에 그들의 이동수단은 성기사 레아의 ‘얼음길’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레아! 마나는 충분한가?”


오릭스의 걱정스러운 물음에 그녀는 흔들림 없는 미소로 답했다.


“아직까진 문제 없어요.”


“그렇군. 제롬! 레아의 옆에서 그녀를 호위해라. 레아를 잃으면 우린 섬에서 나갈 방법이 완전히 사라진다.”


“네.”


“그리고 레아! 너는 성기사단에서 둘 밖에 없는 힐러 중 하나다. 치유의 기적을 위한 최소한의 마나는 항상 남겨둬라. 마나 포션을 사용하더라도 회복엔 한계가 있으니까. 알았지?”


“네.”


토벌대는 어인섬과 개구리섬 사이의 바다사이에 새로 생긴 두꺼운 얼음의 다리 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미끄러운 얼음 위를 한참 동안 뛰는 일은 특히나 육중한 갑옷을 입은 기사들에게 어려운 일이었다.


허억 허억!

하악! 하악!


기사는 본래 말을 타는 병과. 아무리 초인적으로 단련된 육체를 지녔지만 체력이 무한하지는 않았다. 항상 미소를 띤 얼굴이 특징이었던 성기사 레아조차도 계속되는 마나 소모에 이를 악물기 시작했던 것이다.


힘든 건 고드릭 왕도 마찬가지. 판금 갑옷의 관절부에 낀 진흙과 습기가 얼어 발생한 마찰과 미끄러지지 않게 온 정신을 집중하는 일만 해도 체력 소모가 극심했다.


하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어인섬과 다음 섬의 사이가 매우 가깝다는 점이었다. 선두를 달리는 성기사 레아부터 레인저, 모험가 그리고 기사들 순으로 도착하기 시작했다.


“선두의 레인저는 산개해서 안전을 확보해라!”


먼저 도착한 레인저들은 활시위를 반쯤 당기며 질척한 진흙밭을 뛰어 사주를 경계하기 시작했다.


“여긴 왜 따뜻한 거지?”


섬에 들어서자 아까까지만해도 살이 얼어 터질것만 같던 추위대신 습하고 따뜻한 공기가 느껴졌다. 살얼음이 끼어 있던 갑옷에 따뜻한 공기가 닿으니 물방울이 응결되어 떨어지기 시작했다.


“휴··· 살것 같다.”


토벌대는 꽁꽁 얼어붙은 코와 귀를 문지르며 따뜻한 공기에 몸을 녹였지만 야만족들은 어느 때보다 긴장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여긴 뜨거운 샘이 터지는 섬이다. 샘의 열기 때문에 땅이 얼지 않는다. 여긴 원래 따뜻하다. 하지만 샘에 닿으면 살아남기 힘들다.”


야만족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들의 바로 앞 열 보 정도 떨어진 곳에서 뜨거운 샘이 하늘 높이 분출되는 것이 보였다. 어마어마한 열기를 내뿜는 간헐천이 수십미터나 치솟는 모습에 그들은 일순간 얼어붙었다.


잠시 후. 하늘 높이 분출된 샘물이 차가운 바람과 만나 우박이 되어 떨어지는 기이한 광경이 펼쳐졌다. 야만족 전사들은 두려움이 드리운 얼굴로 토벌대에 주의를 주었다.


“저기에 휩쓸리면 죽는다. 샘이 터지기 전에 조짐이 있으니 발밑을 항상 조심해야 해. 여기 개구리섬이 고르곤 군도에서 제일 위험한 섬이다.”


“뭐?”


“그것만이 아니다. 단단한 땅이 없어 조금만 발을 잘못 딛어도 깊은 늪에 빠진다. 그리고 개구리 수인이 산다.”


“개구리 수인?”


“개구리 수인은 위험하다.”


야만족 전사의 말에 레인저 중 한 사람이 단검을 빼어 입에 문 채 활시위에 활을 걸었다.


“쳇! 개구리 수인족 따위 나와보라지! 이 화살로 꿰뚫어 버릴···.”


퓩!


“엇?”


그는 말하다 말고 목덜미를 만졌다. 그는 목에 박힌 다트를 뽑아들고 주위를 살폈다. 어디에도 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발밑이다!”


누군가 소리치자 토벌대의 시선은 일제히 발아래 뻘밭을 향했다. 진흙 위로 짧은 갈대 대롱이 솟아 있는 게 눈에 띄었다.


퓩! 퓩!


윽!


“독화살이다!”


개구리 수인들이 진흙속에 숨어서 바람총을 쏘아대자 레아는 랜스를 진흙 늪에 찔러 넣고 스킬을 시전했다.


“냉각.”


쩌적!


진흙째로 얼어버린 개구리 수인들이 그대로 동사하자 냉각의 영향권 밖에 있던 놈들은 진흙에서 나와 도망치기 시작했다.


“쏴라!”


레인저와 모험가들이 활을 쏴 도망가는 수인들을 쓰러뜨렸다. 개구리 수인들이 물러가고 나자 레아는 쓰러진 레인저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상처를 보여주세요. 치료해드릴게요.”


독화살에 맞은 레인저의 손은 이미 퉁퉁 부어 보라색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처음 목에 당한 레인저는 이미 쓰러져 사경을 헤메고 있었다.


“지독한 독이군. 레아! 이미 늦었다. 마나를 아껴!”


“싫어요.”


“그렇게 모든 사람을 살릴 순 없어. 그러다간 나중엔 네가 위험해질 거다.”


그녀는 단호한 눈빛으로 오릭스를 쳐다보았다.


“단장. 저는 성기사가 되기전 여사제였어요. 그러니 살릴 수 있는 사람은 살릴 거에요.”


그녀는 단장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독이 퍼지는 레인저들의 몸에 손을 얹고 치유의 기적을 행사했다. 오릭스도 그녀의 고집이 황소 힘줄보다 질기다는 걸 잘 알고 있어서인지 더는 참견하지 않고 그녀가 하는대로 내버려두었다.


화르륵!


그녀의 손에서 푸른 불꽃이 일어나 독이 퍼지는 레인저의 몸을 휘감았다.


치지직! 치지직!


놀랍게도 치유의 불꽃은 레인저의 몸에는 조금의 화상도 남기지 않고 몸속에 퍼져 있는 독만 선택적으로 불태우고 있었다.


이윽고 구멍난 신체의 상처마저 완벽히 낫자 사경을 헤메던 레인저도 이내 정신을 차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오오!


“치유의 기적이다!”


“불의 성녀다!”


“롤로아의 성흔을 입은 자를 여기서 뵙다니! 영광입니다!”


상처를 치유받은 레인저들이 그녀의 앞에 무릎을 꿇고 감사를 표하자 레아는 난감한 표정으로 그들을 일으키며 말했다.


“저에게 무릎 꿇지 마세요. 저는 신이 아닙니다.”


성화교의 성직자 중 드문 경우엔 [치유의 불꽃]이라는 기적을 행하는 이가 나타나곤 했다. 그들은 불의 신 롤로아의 성흔을 입은 자들이라고 불렸다.


그들은 그 이름처럼 신체 부위에 특유의 ‘낫지 않는’ 화상이 있었는데 놀랍게도 이러한 성흔은 예외 없이 여성에게만 나타나 사람들은 그들을 ‘불의 성녀’라는 이름으로도 불리고 있었다.


오릭스는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며 뒤따라오는 토벌대를 향해 소리쳤다.


“발 밑을 조심해라. 독화살을 쏘는 수인이 숨어 있다. 미안하지만 모험가 중 해독 포션이 있거나 치유의 재보가 있는 자들은 지원을 부탁한다.”


독에 당한 레인저로 인해 잠깐 지체했던 토벌대는 다시 진군을 시작했다.


“악! 목덜미가 물렸어! 몸이 마비되고 있어!”


무릎까지 빠지는 진흙 늪과 무수히 달려드는 독충이 그들의 진격 속도를 늦추고 있었다.


“으윽! 갑옷에 진흙이 들어가 움직이기 힘들잖아!”


갑옷의 관절부에 들어간 진흙 때문에 갑옷을 입은 기사단과 근위대는 더욱더 움직임이 느려질 수 밖에 없었다.


···



개구리섬에 도착한 토벌대는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늪지대를 건너느라 계속해서 체력을 빼앗겼다. 특히나 늪에 숨어 있는 독충과 독사에게 물리거나 바닥이 없는 늪에 빠진 토벌대원들을 구하느라 그들의 진행 속도는 더욱 느려졌다.


급기야 기사나 근위병 중에선 갑옷을 벗는 사람도 하나 둘 생겨나기 시작했다.


“누가 갑옷을 벗는 것이냐? 갑옷은 기사의 생명줄이다.”


일부 고참 기사들이 말려보려 했지만 진흙에 떡이된 갑옷을 벗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그 때였다. 갑옷을 벗은 근위병의 발 아래에서 갑자기 뜨거운 샘이 터져나왔다.


푸우우우!


하늘 높이 솟아 오른 간헐천의 고열과 압력에 기사는 순식간에 온 몸이 익어버렸다.


“끄아아악!”


“기다려요! 제가 치료할게요!”


레아가 나서봤지만 그는 이미 목숨이 끊어진 다음이었다. 오릭스는 그녀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레아! 이미 죽었어.”


그는 토벌대를 돌아보며 말했다.


“다들 봤지? 갑옷이 있었으면 살았을지도 모른다. 갑옷은 기사의 생명줄이니 되도록 벗지 말아라.”


그 때였다.


휘익!


깡!


어디선가 날아온 돌이 투구를 쓴 병사의 머리를 때렸다.


“투석병이다!”


“방패 앞으로!”


진흙 속에서 매복해 있던 개구리 수인들이 일제히 일어나 토벌대를 둘라싼 채 돌을 던지기 시작했다.


“방패를 들어라!”


깡! 깡!


텅! 퍼억!


끄악!


“포위 됐다! 포위망을 뚫어라.”


누군가의 외침에 한 무리의 기사들이 방패를 치켜든 채 앞으로 돌진하기 시작했다. 방패만 있다면 투석병의 공격은 그리 무서울 게 없었다.


“안돼! 맞붙으면 위험하다!”


야만족의 다급한 외침이 터져나왔지만 빠른 속도로 거리를 좁히고 있던 기사들의 귀에는 닿지 않았다.


서걱! 촤아악!


“끄아악!”


오러를 실은 검으로 수인을 두동강낸 최선두의 기사가 갑자기 끔직한 비명을 지르며 바닥을 구르기 시작했다.


치이익! 치이이이!


“으아악! 내 눈!”


뒤이어 달려든 기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검에 베인 개구리 수인들이 내뿜은 강한 산성 혈액을 뒤집어쓴 채 고통스러워 하고 있었다.


“젠장 피가 강산이다! 검으로 베면 안돼! 방패로 밀어라!”


“베지 말고 타격해라!”


쾅!


퍼억! 우득!


기사들은 검대신 방패의 넓은 면으로 개구리 수인들을 가격하거나 건틀릿을 낀 묵직한 주먹으로 때리는 방식으로 대응하기 시작했다. 성기사처럼 재보가 없을 뿐 그들 역시 전투에 있어서는 각 영지를 대표하는 기사들이었다.


검으로 베지 않고도 적을 살상하는 방법은 얼마든지 몸에 익은 전문가들 답게 그들은 피가 튀지 않는 방식으로 적들을 차례 차례 쓰러뜨려 나가며 드디어 포위를 뚫어내었다.


“원거리 공격! 나머지 기사들도 가세해라!”


무수한 숫자의 개구리 수인들과 토벌대원들의 난전이 시작되었다.


퍽! 퍽! 퍽!


왕을 지키는 일부의 근위병을 제외한 나머지 근위병들도 가세하여 난전은 더욱 혼잡한 양산을 띄고 있었다.


그 때 목이 터져라 지휘를 하고 있던 오릭스의 눈에 이형의 개체가 눈에 띄었다. 그 수인은 근접전에 참여하지 않은 채 멀찍이 떨어져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마법사다!’


드물지만 수인족 중에서도 마법사 혹은 주술사가 있었다. 그들 대부분이 조악한 수준의 마법 사용자일테지만 이렇게 아군이 밀집한 상태라면 마법에 의한 피해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뇌전.”


그의 검끝에서 푸른 번개의 화살이 쏘아져 나가 아직 주문을 완성하지 못한 마법사의 가슴에 적중했다.


파지직!


뇌전에 직격당한 수인족 마법사는 몸이 붕 뜬 채로 수미터나 뒤로 날아간 뒤 땅에 고꾸라졌다. 다음 순간 그의 눈에 주문을 외우고 있는 마법사들이 계속해서 나타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젠장! 마법사가 몇 명이야? 전원 마법사부터 노려라! 주문을 완성하게 두면 안된다!”


그는 수십개의 뇌전을 쏘아 주문을 외우고 있는 마법사들을 쓰러뜨렸지만 그럴 때마다 더 많은 수의 마법사들이 새로 투입되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마치 돌림 노래처럼 여럿이 한가지 주문을 완성하고 있었다.


“안돼···! 함정이다.”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은 상황이었다. 그는 아군이 밟고 선 시체들이 부자연스러운 모양으로 부풀어 오르는 걸 보고는 다급하게 소리쳤다.


“마법 공격에 대비해야해! 근위병은 방패를 들어 폐하를 지켜라!”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부풀어 오른 개구리 수인의 시체들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콰아앙!

쾅! 콰앙! 쿵! 콰앙! 펑!

퍼엉! 콰광!


마법사들의 주문에 의해 발밑에 즐비하게 널려있던 시체들이 연속해서 터져나갔다. 폭발의 열기와 압력 그리고 강한 산성의 혈액과 파편들이 순간 무방비의 토벌대원들을 전방위적으로 강타했다.


···


잠시 후.


개구리 수인의 시체가 폭발하며 만들어진 강산성의 안개가 서서히 걷히고 있었다. 그 가운데 온전히 서 있는 건 성기사단과 일부 상급 기사들. 그리고 보라색의 모험가들이 소속된 파티 일부였다.


갑옷을 벗은 기사들과 근위병들은 대다수가 폭발에 휩쓸려 사망. 갑옷을 입은 자들도 노출된 얼굴과 손에 심한 화상을 입은채 피를 토하고 있었다.


“폐하는 무사하시냐!”


그의 눈길이 다급하게 닿은 곳에는 온몸에 심한 화상을 입은 채 죽어 있는 근위병들이 왕의 주변에 쓰러져 있었다. 폭발이 시작될 때 근위병이 몸을 던져 왕을 지킨 것이었다.


살아 남은 왕은 반쯤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서 있었다. 이쯤 되자 고드릭 왕 본인조차 상황이 크게 잘못 돌아가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처음부터 잘 준비된 함정에 빠졌다는 것을···.


누군가 놀라울 정도로 냉철하게 계산한 함정이 토벌대가 지나는 길목마다 마련되어 그들의 목숨과 힘을 차근차근 깎아내고 있다는 사실을···.


콜록 콜록!

우웨에엑!


일부 대원들이 심한 기침과 함께 피를 토하기 시작했다.


“숨을 깊게 들이 마시지 마라! 산성 안개를 마시면 폐가 망가진다!”


“돌풍!”


성기사 제롬 슈타이너를 중심으로 발생한 돌풍이 산성의 안개를 완전히 걷어내기 전까지 그것을 들이킨 사람들은 이미 호흡기를 크게 다친 상태였다.


“피해 상황을 보고하라!”


왕명에 의해 성기사단장 오릭스는 당장 서 있는 자의 머릿수를 세었다. 피해가 너무 커서 부상자보다는 싸울 수 있는 자의 숫자를 세는 편이 더 빨랐기 때문이었다.


“성기사는 총 10명으로 가벼운 부상 정도만 입었습니다. 나머지 중 싸울 수 있는 사람은 100여명. 사망자 포함 크고 작은 부상으로 움직일 수 없게 된 자들이 300명 가량 됩니다.”


고드릭 왕은 가라앉은 목소리로 성기사단장 오릭스에게 말했다.


“500명 이나 되던 토벌대원 중 아직 전투력을 보존한 자가 100여명 밖에 남지 못했다. 아직 캇네자르가 있는 본섬 백룡섬에 도달하지도 못했는데 대부분의 병력을 잃은 것이다. 자네 생각엔 우리가 정말 캇네자르를 죽일 수 있겠는가?”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오릭스가 대답했다.


“현 시점에서 폐하께 새로운 제안을 올립니다.”


사람들의 이목이 그에게 집중되자 그는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


“성기사와 상급기사 그리고 모험가 중에서도 남색 이상의 강한 자들로만 구성된 소수의 별동대를 조직하여 곧장 본섬을 치겠습니다. 그리고 폐하와 근위대는 이곳에 남아 지원 병력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지원 병력이라고? 육지와 연락이 닿은 것이냐?”


그러자 오릭스는 연락용 재보인 수정구를 들어보이며 말했다.


“왕도에 있는 법황께 연락을 취했습니다. 성기사단의 부단장이 이끄는 성기사단 나머지 인원들의 지원을 승인을 방금 받았습니다.”


“오오! 그렇다면 그들이 도착하기까지 기다렸다고 함께 쳐들어가면 될 거 아닌가?”


화색을 띠는 고드릭 왕의 말에 오릭스는 굳은 표정으로 대꾸했다.


“폐하는 다시 노보스로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뭐?”


“폐하를 지키면서 싸우는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적은 만만히 볼 상대가 아닙니다. 다수의 마물들을 수족처럼 부리는 적이 적어도 한 명.


그들은 아직 본병력을 조금도 희생하지 않고 우리 병력의 대부분을 쓰러뜨렸습니다. 폐하의 안전을 생각한다면 지금이라도 돌아가시는 게 좋을듯 싶습니다.”


오릭스의 말에 왕은 분노가 담긴 목소리로 소리쳤다.


“짐이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이제와서 돌아가라는 거냐?”


이번에는 오릭스도 물러서지 않았다.


“폐하의 안위가 저희에겐 무엇보다 중요한 일입니다. 설령 서리용과 사악한 마법사를 퇴치한다 하더라도 폐하를 잃는다면 저희에게 무엇이 남겠습니까?”


“자네들이 나를 지키면 되지 않느냐?”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적들은 폐하를 지키면서 싸워도 될 정도로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전력을 처음부터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점은 저희들의 불찰이지만 지금이라도 바로잡았으면 합니다.”


오릭스의 이치에 부합하는 말에 왕은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그 역시 위대한 업적을 세우겠다는 욕심에서 시작한 일이었지만 상황은 계속해서 꼬여만 갈뿐. 심지어 자신의 안위마저 확실하지 않은 상황이라면 처음부터 이곳에 오지 말았어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지금까지 입은 피해만으로도 국력이 기울 정도입니다. 부디 폐하의 옥체라도 보존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십시오.”


왕은 성기사단장의 간곡한 부탁에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짐도 더는 토벌대에 부담을 줄 수 없겠지. 알겠다. 짐과 근위대는 여기에 남아 지원 병력을 기다리겠다.”


왕의 결단에 오릭스는 한결 가벼운 표정이 되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


“헤아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소신 오릭스 오스몬드 반드시 서리용의 목을 따서 폐하께 바치겠습니다.”



***



오릭스가 이끄는 소수의 별동대가 백룡섬을 향해 떠난 직후. 왕은 입고 있던 갑옷을 벗었다. 그가 벗은 흉갑의 안쪽을 덧댄 가죽을 벗기자 판금의 안쪽에 은으로 도금한 면이 드러났다. 그것은 눈부신 거울면이었다.


“하아··· 이걸 사용하는 일은 없길 바랐네만···.”


왕은 투명하게 비치는 갑옷 거울을 들여다 보았다. 거울 속에는 침울한 표정을 한 자신의 얼굴이 보였다.


그는 추위와 배고픔 그리고 전투의 스트레스에 지칠대로 지쳐 있었다. 하지만 잠시 후. 그가 한참을 거울을 들여다보자 거울 속의 풍경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거울 너머의 세계에서 그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녀는 거울의 성기사 캐서린 라니아. 거울 너머에 비친 그녀가 거울 저의 세계에서 이편으로 천천히 넘어오기 시작했다.


갑옷의 은면에 불쑥 솟아오른 건 온몸을 아름다운 은빛 갑옷으로 뒤덮은 여기사. 머리부터 어깨, 가슴, 허리, 다리순으로 거울을 빠져나온 그녀가 은빛 투구를 벗자 짙은 녹색 머리카락이 흘러나왔다.


녹색의 머리카락과 녹색의 피부, 그리고 녹색의 눈동자. 그녀는 과거 ‘숲의 주민’으로 불리던 종족인 ‘녹인’이었다. 그녀는 왕의 면전에서 한쪽 무릎을 꿇은 채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성기사 캐서린 라니아가 국왕 폐하를 뵙습니다.”


왕은 기쁜 얼굴로 그녀를 맞이하며 말했다.


“수고를 끼쳤군. 짐과 함께 싸운 토벌대원들도 옮겨줄 수 있겠나?”


“우선 폐하부터 안전한 곳으로 모시고 나머지 사람들도 옮기겠습니다.”


그녀는 갑주형 상급 재보인 ‘거울 갑옷’의 소유자. 이 재보의 능력으로 그녀는 자신은 물론이고 그녀가 지정한 사물이나 사람을 거울 저편으로 이동시킬 수 있었다.


“제 손을 잡아 주시길···.”


왕은 그녀의 손을 잡고 거울면에 발을 올렸다. 마치 잔잔한 물속으로 걸어들어가듯 그가 거울속에 발을 넣자 먼저 발목이 잠기고 그 다음은 무릎이, 그 다음은 허벅지가 천천히 잠겨 들어가기 시작했다.


이제 살았다는 안도감 때문이었을까? 동상으로 얼룩진 그의 얼굴에 회한이 떠올랐다.


“짐이 좀 더 강했더라면···.”


그 때 왕의 품속에서 나무 인형이 뛰쳐 나왔다. 그것은 왕이 출발하기 전 부관 윌리엄이 준 부적이었다.


“어?”


사람들의 시선이 무심코 나무 인형에게 쏠린 순간 나무 인형이 사라지고 대신 거대한 몸집의 남자가 나타났다.


[꼭두각시술 바꿔치기.]


나타난 것은 놀랍게도 리안의 영주 핼포드 남작이었다. 그 순간 인광이 번뜩이더니 거울의 성기사 캐서린의 머리가 툭하고 떨어져 진흙밭을 굴러갔다.


사람들의 인식이 현상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핼포드 남작만이 여유롭게 피가 묻은 검을 털며 왕을 노려보고 있을 뿐이었다.


“자··· 자네가 어째서!”


이미 거울속으로 몸의 절반이 잠긴 왕은 너무 놀라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진흙이 묻어 더러워진 성기사 캐서린의 머리를 검끝으로 찍어 올린 그는 빛을 잃어가는 그녀의 눈을 들어 왕과 마주보게 들어올렸다.


“크하하하하! 재보의 사용자가 죽으면 즉시 능력이 상실된다고 들었다. 맞지?”


고드릭 왕의 커진 동공이 아래를 향했다. 거울면은 이미 평범한 거울로 되돌아가 있었다. 그의 몸에서 흘러나온 피가 검은 진흙 땅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허··· 허리 아래쪽에 감각이···.”


“있을리가 없지. 네놈의 아랫도리는 이미 노보스에 가있을테니까. 크하하하!”


“바··· 반역이다! 리안의 영주가 반역을 일으켰다! 전원 검을 뽑아라!”


그제야 상황을 인지한 근위기사대장 알시온경이 검을 뽑아들고 핼포드 남작을 향해 달려들었다. 하지만 알시온 경은 몇 걸음 더 걷기도 전에 목과 머리가 분리되고 말았다.


그는 검에 묻은 피를 털며 담담하게 말했다.


“반역이라··· 내 원수가 우연히 왕이었을 뿐이다. 그러니 이건 반역이 아니다.”


부상당한 기사들과 모험가들 그리고 근위병들은 왕의 갑작스런 죽음 앞에 무력함과 공포 그리고 분노를 느꼈다. 그들은 아드레날린의 힘으로 지친 몸을 일으켜 검을 잡았다.


그를 향하는 무수한 창검과 살기 앞에서 리안의 영주 핼포드 남작은 한마디 덧붙였다.


“이건 복수다.”


[꼭두각시술 바꿔치기.]


잠시 후 그의 등 뒤로 윌리엄 애커만, 헥토르 마이어, 그리고 핼포드 기사단 전원이 모습을 드러냈다.


작가의말

.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환생한 헌터는 농사 천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재 중단 공지 드립니다 +3 23.07.21 620 0 -
공지 연재 주기 조정 공지 (주 6일) 23.07.17 54 0 -
공지 67화 후반부 내용 수정 공지 및 드리는 말씀 23.07.17 106 0 -
공지 64화 지각 죄송합니다. 23.07.13 91 0 -
공지 7월 10일 월요일 하루 휴재하겠습니다. 23.07.09 70 0 -
공지 연재시간을 매일 22:45로 소폭 변경하겠습니다. 23.06.24 73 0 -
공지 추천글 써주신 qortjf2011님 감사드립니다! 23.06.12 86 0 -
공지 23화 일부 내용 수정 했습니다 23.06.02 85 0 -
공지 이 제목으로 정착하겠습니다. (환생한 헌터는 농사 천재) 23.05.25 176 0 -
공지 소중한 후원금 감사드립니다(후원자 명단) 23.05.18 3,861 0 -
71 70화. 터널 개통 +3 23.07.20 1,113 51 12쪽
70 69화. 농지를 개간하다 +3 23.07.19 1,253 51 13쪽
69 68화. 교역을 시작하다 +3 23.07.18 1,352 56 17쪽
68 67화. 온천의 발견 +9 23.07.16 1,724 65 17쪽
67 66화. 향유고래 +2 23.07.15 1,882 68 18쪽
66 65화. 인재 등용 +1 23.07.14 2,109 67 15쪽
65 64화. 마석의 사용법 23.07.13 2,145 73 13쪽
64 63화. 마석 수집 +1 23.07.12 2,176 71 16쪽
63 62화. 내가 영주라니 23.07.11 2,321 73 17쪽
62 61화. 결착 +3 23.07.09 2,357 80 14쪽
61 60화. 불꽃 놀이 +1 23.07.08 2,377 76 17쪽
» 59화. 복수 +4 23.07.07 2,471 75 21쪽
59 58화. 세이렌의 바다 +2 23.07.06 2,369 68 13쪽
58 57화. 최강의 기사 23.07.05 2,481 74 16쪽
57 56화. 신경전 23.07.04 2,572 79 17쪽
56 55화. 서리용 토벌대 +2 23.07.03 2,697 73 15쪽
55 54화. 매크로 생성 +2 23.07.02 2,800 76 14쪽
54 53화. 스카우트 +3 23.07.01 2,932 91 19쪽
53 52화. 어둠을 뒤로 하고 +1 23.06.30 2,977 82 14쪽
52 51화. 연줄 +3 23.06.29 3,137 97 15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