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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alone 님의 서재입니다.

포탈 : 지구를 지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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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ghalone
작품등록일 :
2019.05.20 21:48
최근연재일 :
2019.07.31 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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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20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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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1화

DUMMY

2019년 5월.


봄이 찾아옴과 동시에 지후는 제대를 했다.


대학을 들어가자마자 어차피 다들 군대에 가는 것, 후딱 처리하고 싶은 마음에 지원을 했지만 지원하자마자 입영통지서가 나올 줄은 몰랐다. 그것도 객기로 지원한 해병대를 말이다.


하지만 그것이 이렇듯 꼬여 버릴 줄은 몰랐다.


‘빌어먹을 부대 전산망.’


신병 교육 이수 후 자대 배치를 받고 간 곳은 일반적인 곳이 아니었다. 대테러 진압 및 국가적 위협인물 제거 등을 위한 일명 ‘특작부대’. 가고 싶다고 해도 갈 수가 없는 곳임에도 전산상의 오류로 배치되어 버렸고, 한번 내린 결정은 번복이 없다는 미친 부대장의 명에 따라 특작부대원이 되었다.


처음은 오로지 훈련이었다. 보통 제대로 된 특수 부대원들이 최소 5년에서 10년 이상의 훈련이 있어야 작전에서 큰 피해 없이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데 반해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햇병아리 지후의 작전 수행력은 ‘0’이었다.


하지만 이미 부대원이 되어 버린 상태에서 작전 투입이 없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투입 즉시 사망 확률 100%인 조건 속에서 무작정 죽음을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 떼쓰듯 지후가 얻은 훈련 기간은 1년. 그 안에 무조건 모든 훈련을 마쳐야 했다. 그래야 살 확률이 절반은 된다.


미친 듯이 했다. 처음엔 반항도 하고 항의도 해봤지만 상부에서 내려온 답은 불가. 전사자 통지가 되지 않는 이상은 벗어 날 수가 없단다. 죽지 않기 위해선 훈련만이 답이었다.

1년이 지나고 처음으로 투입된 전장에서 지후가 받은 임무는 요인 암살. 숨겨진 재능이라도 발견 했음인가. 모두의 우려를 뒤로하고 지후는 생체기 하나 없이 성공했다.


첫 작전이후 성공 할 줄 알았다며 ‘허허허’ 웃는 부대장의 낯짝을 패버리고 싶은 욕구를 참았더니 쉼 없이 임무가 내려왔다.


아마 일반 병인 지후가 알아선 안 될 사실들을 덮기 위해서거나 월등한 첫 성과에 따른 임무 부과, 둘 중 하나였으리라.


어느 쪽도 지후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다만 살아남기 위해 임무를 수행 할 뿐이었다.


끝이 없을 것 같은 임무들도 제대를 한 달 앞둔 시점에서 더 이상은 없었다.


쌓아 두기만 하고 갈 수 없었던 휴가들이 상부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그사이 임무의 위험도로 몸 여기저기에 흉터가 남아 있긴 하지만 예전과는 비교 할 수 없을 만큼 체력이 좋아졌으며, 어떤 상황 속에서도 긴장을 유지 할 수 있을 정도로 정신력도 높아졌다.


원래는 한 달 이상 장기 휴가를 다녀와야 했겠지만 눈에 담겨있는 살기들 때문에 지후는 이름만 휴가로 둔 채 부대 내에서 백수가 되어야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누워서 뒹굴기만 하는 삶, 임무로 바짝 당겨진 정신을 일반인들처럼 늘여야했다. 갑자기 누군가 뒤통수를 치더라도 목을 꺽어 버리지 않을 수 있게, 자동차 경적음에 몸을 숨기지 않을 수 있게.


처음 일주일은 불가능 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한 달을 다 채우고 나서는 누가 봐도 제대를 앞둔 놈팡이가 될 수 있었다. 흐트러진 머리에 반쯤 떨어진 슬리퍼를 끌고 한 손은 바지춤에 들어가 벅벅 긁어가며 하품을 하는 모양새는 지후의 눈에 담긴 살기가 말끔히 지워졌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5월의 봄날. 지후는 제대를 했다.


고향으로 가는 고속버스 창가에서 지후는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았다.


‘이젠 끝이다. 정말 집으로 가는 거다.’


고속버스로 두 시간을 내리 달리면 터미널이 나온다. 터미널에서는 대략 30분 정도, 어느 누구나 살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는 아파트 12층 1203호, 복도식 아파트에 평수보다 좁아 보이는 그 공간을 머릿속으로 그려본다.


이제 한 시간 가량 고속도로를 달렸으니 아직도 한참이나 남은 거리였지만, 지후의 마음은 이미 집 앞 초인종을 누르고 있었다.


분명 맨발로 뛰어나와 지후를 반겨 줄 것이다. 2년 동안 겨우 편지 두 통이 연락의 끝이었다. 그놈의 보안이 뭔지 연락자체를 못하게 막았다. 물론 징집병인 지후만이 그랬다. 연락을 하게 두면 보안에 문제가 생긴다나 뭐라나. 진정으로 그것이 문제였다면, 애당초 지후를 잡아 두지 말았어야 하는 것 아닌가.


불만이 차오르면서도 지후는 상상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집 앞 현관에서 초인종을 누르고, 초인종을 누르고···.


아직 살기를 다 지우지 못한 것인지 그 다음으로 이어갈 수 없었다. 뜻 모를 불안감이 그 이후를 강제로 잘라먹은 느낌이었다.


답답함에 흩트려 놓았던 눈의 초점을 다잡아 보니 조금 전부터 지후의 시야에 까만 점들이 드문드문 보였다. 처음에는 너무 작아 하늘에 먹구름을 점찍어 놓은 듯하더니, 지금은 좀 더 가까워지고 커진 상태였다.


‘뭐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기이한 형태에 조금씩 경각심이 들 무렵 버스기사가 틀어 놓았던 라디오에서 뉴스 특보가 나왔다.


‘현재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곳곳에서 원인을 알 수 없는 원형의 검은 구름이 생성되고 있습니다. 이 구름은 정확하지는 않으나, 30분 전부터 발생한 듯 보이며, 그 크기는 아주 작은 점에서 현재는 지름 2미터정도로 커져있습니다. 전체적인 모양은 반구의 형태를 취하고 있으며, 지상에서 200미터 전후에 일률적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에 정부에서는 정확히 10분 전에 정찰기를 보내 원인을 확인 해보려 했으나, 검은 반구 인근에서 모든 전자 기기들의 이상 작동으로 인해 원인 파악에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국민 여러분께서는 가급적 외출을 삼가 주시고, TV나 라디오를 상시 틀어 놓고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버스 안은 이내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사람들의 시선은 온통 창가로 향했다. 당황한 버스기사는 급히 비상등을 켜고 갓길에 정차를 했다. 정차한 차 안에서 모두들 하늘 바라보기에 여념이 없을 때, 돌연 마음이 급해진 지후는 큰소리로 버스기사에게 소리쳤다.


“아저씨! 빨리 가주세요. 저 2년 만에 가는 거라 진짜 급합니다.”


“총각! 저거 보고도 그런 말이 나와? 가다가 저거 때문에 사고라도 나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지후의 군복 입은 모습을 보고서도 버스기사는 안전을 생각해서인지 움직일 마음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지후의 큰 소리에 정신을 차린 다른 승객들의 마음은 지후와 동일한 지 버스기사에게 재촉을 하였고, 마지못해 버스는 다시 출발 했다.


도착까지 남은 시간은 한 시간. 지후는 두발을 구르며 빨리 도착하기만을 바랐다. 짧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이지만, 처음 생성됐다고 추정되는 시간으로부터 30분 만에 2미터-물론 처음 크기가 얼마인지 알 수는 없지만 반구가 커지고 있는 속도를 역으로 계산 했을 시에 그 정도 시간 일 것이라고 추가 방송에서 알려왔다-가 된 검은 반구는 어느 순간 커지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더니, 지후가 터미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그 크기가 학교 운동장을 덮을 수 있을 정도였고 지후의 알 수 없는 불안감 또한 그 크기를 키워갔다.


‘빨리··· 빨리 가 봐야해.’


원칙대로라면 제대 하는 날에 맞춰 가족이 찾아 올 수도 있었을 텐데 부대는 그것을 용납 하지 않았었다. 예정된 날보다 하루 일찍 제대를 시킨 데다 부대원 한 명이 버스 터미널까지 찾아와서 집으로 연락 하는 것조차 막았었다.


정보의 누수 및 불순분자의 접촉을 막는다는 명목 하에 행해진 일이지만, 지후로서는 이해 할 수 없었다.


‘내가 어떻게 부대에서 행했던 작전에 대해 알릴 수가 있단 말인가. 따지고 보면 나도 살인자인 것을. 지난 일 년 동안 내가 죽인 인원만 해도 백이 넘는데, 무슨 염치로 또 무슨 죗값을 받으려고 세상에 부대의 존재와 작전의 유무를 알린다 말인가.’


지후의 생각과 사정은 중요한 것이 아닌지 결국 터미널에 도착할 때까지 부모님께 제대 사실을 알릴 수 없었다. 이는 터미널에 도착 하고 나서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터미널 공중전화는 통화 불능 상태였고 사람들은 어느 누구 하나 휴대폰을 빌려 주질 않았다.

터미널 내에서 가족에게 연락 할 방법을 찾기 위해 한참을 헤매다 대로변으로 나온 지후의 눈에 보인 상황은 더욱 암담했다.


이미 도로에 차는 꽉 막혀 움직일 수가 없는 상태였고 커질 대로 커진 검은 반구가 서서히 지상으로 내려오는 것이 느껴졌다.


마음이 급해진 지후가 달리기 시작했다. 보통 집까지 거리는 버스를 타고 30분 정도지만 지금 도로 상황은 언제 버스가 올지 알 수도 없다. 설사 버스가 온다고 해도 이 많은 차량을 피해 집까지 가기 위해선 몇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그래서 지후가 선택한 방법은 달리는 것이었다. 체력적인 부분은 마라톤을 뛰어도 될 정도라 문제가 되지 않지만 시간은 달랐다. 적어도 검은 반구가 지상에 닿기 전에 집까지 가야 할 터였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손 놓고 연락할 방법만을 찾는 것보다는 직접 몸으로 뛰는 것이 지후에게는 최선이었다.


얼마나 달렸을까. 대략 반 정도 남았다고 느껴지는 곳에서 지후는 멀리서 검은 반구가 지상에 완전히 내려앉은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저긴 집 근처 같은데···. 제기랄.’


경기를 하는 것이 아닌지라 페이스 조절 같은 건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지후는 이미 숨이 턱 끝까지 차오름에도 발걸음에 박차를 가했다. 저게 뭔지는 몰라도 결코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검은 색의 안개가 낀 듯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모습은 흡사 지옥에서 온 저승사자의 아우라 같았다. 거기다 수포가 생기듯 울룩불룩하게 올라오는 것들도 보였다. 마치 검은 반구가 수백 수천 개의 알을 내뿜을 준비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한참을 더 달려 집과 더 가까워 졌을 때 검은 반구의 수포가 하나 둘씩 터지고 그 속에서 깨어난 덩어리들에게서 팔다리가 펼쳐지며 상체가 생겼다.


허리가 반 정도 굽은 모습에 키는 1미터 50정도로 보이는 형체들은 깨어나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갓 잉태한 듯 엉겨 붙어있는 털들이 몸짓에 따라 흩어져 생기를 찾는다. 그리고 튀어나오는 기다란 손톱과 하얗게 드러낸 날카로운 이빨이 꽤 먼 거리에서도 선명하게 보였다.


‘저기를···, 저기를 지나가야만 집으로 갈 수 있는데···.’


당장 무기가 될 만한 것들을 고개를 돌려 찾아봤지만 도움 될 만한 것들은 보이지 않았다. 무기도 없이 저길 지나쳐 갈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스치듯 들었지만, 그건 그냥 정말 잠깐 떠오르다 사라진 것일 뿐 될지 아닐지에 대한 의문 자체가 사라졌다. 이건 가능과 불가능의 문제가 아니라 반드시 해야만 하는 것이니까.


생각의 길이와 시간의 길이는 다른 것. 아주 짧은 고민을 끝낸 지후는 다시금 달리기 시작했다. 괴생물체는 이미 활동을 시작해 사방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고, 가장 가까이에 있던 사람들이 첫 제물이 되었다. 도망가며 비명을 지르는 사람들과 쫓아가는 괴물. 몇은 등을 보이며 달리고, 몇은 가방을 방패삼아 괴물의 손톱을 막으려 했고, 또 몇은 이미 허공으로 피를 쏟으며 빛을 잃어 가고 있었다.


날이 선 듯 한 손톱이 허공을 한 번 가를 때마다 비명 소리가 하나씩 더해졌다. 도망을 가건, 맞서 싸우건, 그건 약간의 시간차이일 뿐이었다. 한 번의 휘두름에 도로가에 세워진 차량의 외피가 썰려 나갈 정도니 덩치가 크지 않다고 해도 그 괴력이 주는 공포는 무시무시했다. 지후는 괴물을 향해 달리면서도 사방을 주시했다.


‘어떻게 하면 저기를 빠져 나갈 수 있을까.’


숨이 차게 달리면서도 지후의 눈은 괴물의 움직임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유난히 어두운 몸체와 손톱, 이빨 때문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


‘이놈들 생각보다 빠르지 않아.’


개의 뒷다리와 비슷한 형태를 가진 괴물의 하체는 보기엔 엄청난 속도를 가진 듯 했지만 실상 사람들을 쫓아가는 모습에선 의아할 정도로 느렸다. 손톱의 휘두름도 그 위력은 굉장했지만 시선만 유지하고 있다면 충분히 피할 수 있을 듯했다. 단지 몸에 비해 상대적으로 하얗게 날이 선 손톱이 그 움직임을 더욱 빨라 보이게 만들 뿐이었다. 두려움이 약간 사라지자 괴물들 사이로 길이 보였다.


처음 괴물에게 죽음을 맞이한 자들은 곧 먹이가 되어있었다. 날카로운 이빨이 그 쓰임을 발휘해 머리를 시체의 뱃가죽에 처박고 게걸스럽게 턱을 움직이는 모습이 잡혔다.

지후의 움켜진 주먹이 그 힘에 못 이겨 떨리고 꽉 다문 턱에 힘줄이 솟아나지만 달리기를 멈출 수는 없었다. 알지 못하는 타인보다 자신의 가족이 먼저였다. 외면하듯 돌려버린 시선 사이로 그놈의 주위를 돌아 도망가는 사람의 발이 보였지만, 먹기 시작한 놈은 신경 쓰지 않는 듯 했다.


‘저거다.’


고개를 처박고 있는 놈들은 한두 마리가 아니었고, 그 사이로 지후가 움직일 수 있는 동선이 보였다. 문제는 지후와 가장 가까이 있는 놈이었다. 그 놈만 피한다면 집까지 가는 길은 문제가 전혀 없어 보였다. 나머지 놈들은 대로변을 피해 골목길로 뛰어든 사람들을 쫓아갔다.


처음부터 지후만을 보고 있는 괴물. 사냥감을 지정이라도 하듯 바로 옆에 다른 사람들이 있어도 그 놈의 시선은 지후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물론 지후도 그 사실을 모를 수가 없었다. 그 놈에게서 뻗어 나오는 살기에 조금 전부터 한기가 느껴지던 터였다.


거리는 가까워지고 어느덧 지후의 손엔 각목이 잡혀 있었다. 누군가 흘리고 간 것을 달리던 중 발 끝으로 차올리고 바로 손을 뻗어 잡았다. 물론 달리기는 멈추지 않았다. 지난 2년간의 시간이 이를 가능토록 한 모양이다.


지후의 계획은 단순했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괴물의 첫 공격을 회피하고 각목으로 일차 충격을 준 후 빠르게 시체들 사이를 지나 집까지 쉬지 않고 달리면 되는 것이다.


괴물과의 거리는 이제 3미터, 한걸음이면 맞닿는 거리. 놈의 양손이 좌우로 높이 들렸다 엑스자로 교차하며 떨어졌다. 공격전 이미 상체가 앞으로 기울어진 형태를 보고 대비가 되어 있던 지후는 손톱 날이 닿기 직전까지 시선을 놓지 않고 있었다.


‘역시 빠르지 않아.’


빠르게 내딛었던 오른 발의 근육을 뒤틀었다. 갑작스러운 방향전환은 지후에게 많은 부담이 되지만 이제 목적지까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그런 걸 걱정할 이유는 없었다. 내딛은 발의 발목에서부터 뒤틀어진 근육은 허벅지를 타고 떨리며 지후의 신형을 좌측으로 빠르게 이동시켰다. 곧바로 왼발을 뻗어 진행방향을 바꾼 지후는 왼손에 들린 각목으로 괴물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이제 달려가기만 하면 되.’


시원스럽게 갈긴 각목이 괴물의 뒤통수에 닿을 즈음 괴물이 가지고 있는 아우라가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튕겨나가는 각목. 타격 때의 반동으로 좀 더 빠른 움직임을 가져가기위해 온 힘을 쏟았던 지후의 신형이 순간 휘청였다.


순간 붉게 한번 깜빡이는 시야. 눈 한번 깜빡 할 정도의 시간이지만, 시야가 붉어지는 상황은 지후로서도 처음 겪어 보는 일이었다. 당황스러운 마음에 괴물의 움직임을 잠시 놓쳐 버렸다.


큰 동작 후 상체가 앞으로 기울어져 넘어 질 것 같은 괴물이 왼 팔을 뻗었다. 몸에 비해 상대적으로 긴 팔과 거기에 더해져 40cm가량 나와 있는 손톱 날. 기울어진 상체에서 휘둘러져 힘은 실리지 않았지만, 지후의 생각보다 긴 길이와 그 움직임을 놓쳐버린 잠깐의 시간 때문에 지후의 가슴팍이 피로 물들어 버렸다. 스미듯 배여 나오는 핏자국에 지후의 눈썹이 구겨졌다.


‘상처는 깊지 않아. 약간 베인 정도.’


빠르게 판단해야 했다. 여기서 공방을 더 나누던지, 집으로 달려갈지. 계획과 살짝 어긋나긴 해도 고민할 문제는 아니었지만 이미 몸에 배인 피 비린내에 괴물들이 어찌 반응 할지 알 수 없었다.


‘집이 먼저다. 고민은 나중에 해도 늦지 않아.’


지후의 신형이 시체들 사이를 지나자 고개를 박고 있던 괴물들의 고개가 들려지다 다시 내려갔다. 다행히 처음 지후를 공격했던 놈도 거리가 벌어지고 나서는 관심을 잃었는지 쫓아오지 않았다.


괴물들을 지나치고 검은 반구를 스쳐 갈 때 지후는 검은 반구로부터 반탄력, 즉 지후를 밀어내는 힘을 느꼈다. 마치 자석의 서로 같은 극을 붙여 놓은 것처럼 지후의 몸이 자연스럽게 반구와 5미터 이상 떨어진 곳까지 밀려나감을 느꼈다. 달리면서 대충 반구와 허용된 거리를 알았으니 지후에게도 득이었다.


아파트 정문이 보이는 곳까지 달려 온 지후의 눈에 여전히 시체들이 보였다. 단지 다른 점이 있다면 이미 포식을 끝낸 건지 내장이 싹 다 비워진 껍데기만 있었다. 머릿속에서 맹렬히 돌아가던 경보기에 빨간 등이 켜졌다. 사냥과 포식을 하던 괴물들은 보이지 않았다. 돌아갔다고 보긴 힘드니, 필경 또 다른 사냥감을 찾아 떠났을 터.


정문과 아파트 입구를 지나 엘리베이터를 눌러 보았지만 응답은 없었다. 비상구를 따라 달려가는 지후의 시야가 또 붉게 깜빡였다. 12층까지 전력을 다해야 하는 지후에게 다시 찾아온 깜빡임은 더 이상 정신을 빼앗지 못한다. 같은 반응에 2번이나 신경을 쓸 정도로 지후가 호락하지는 않았다. 아니 이런 일에 일일이 반응 할 수 있을 정도로 마음의 여유가 없다고 보는 게 맞았다. 그리고 시야 오른쪽 하단에 깜빡이는 붉은 색 알림창이 있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했다.


3층, 5층, 9층, 12층에 가까워질수록 지후의 호흡은 가빠졌다, 허리는 앞으로 숙여져 고개를 들기 힘들었고, 가슴에 배인 핏물은 바지를 적시고, 12층까지 비상계단에 기다란 족적을 남겼다. 비상구와 엘리베이터랑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1203호가 드디어 눈에 보였다.


아파트 현관과 이어진 복도의 벽을 짚으며, 잔기침을 하면서도 지후는 움직임을 멈추지 않았다. 눈에 보인다고 만족하기에 머릿속 위험신호가 너무 강하다. 쓰러지더라도 가족을 보고 난 후가 되어야 한다는 마음 하나로 지후는 몸을 끌었다.


그리고 현관 옆에 있는 초인종을 강하게 눌렀다.


작가의말

쓸데 없는 말들이 많은 듯 해서 수정했습니다.

따로 찾아서 보실 만한 부분은 2015년이 2019년으로 바뀐 것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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