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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2064_leedong76 80 님의 서재입니다.

EX급 재능러의 탑 정복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완결

딜1런
작품등록일 :
2021.11.25 23:49
최근연재일 :
2023.01.12 13:44
연재수 :
300 회
조회수 :
209,797
추천수 :
2,319
글자수 :
1,564,721

작성
22.06.06 21:30
조회
402
추천
3
글자
11쪽

156화

DUMMY

제국년 518년 X월 X일.


교회에서 사제들을 보내주었다고 한다.


그들은 배고픈 나에게 죽을 주었다. 아픈 어머니에게 약을 주었다.

일자리를 잃고 방황하던 아버지에겐 직업을 주었다. 돌을 운반하는 단순 노동이었지만, 월급을 받은 아버지는 기뻐하셨다.


드디어 제대로 된 아비 노릇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누나와 나에게 맛있는 음식을 먹일 수 있게 되었다면서.


하루는 사제들을 만났다. 등에 창을 매고 있는 남자와 허리에 검집을 찬 여사제였는데, 그들은 적극적인 구호 활동을 펼치고 있었다.

친절하게 독거노인의 이야기를 들어 준다. 싫어하는 기색은 없었다. 그저 천진난만하게 웃으며 사람들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었다.


할아버지는 그런 사제들에게 농사를 가르쳐 주었다. 농사에서 가장 중요한 건 토양이고, 토양 속에 깃든 양분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 주셨다.

이어 작물을 심는 방법과 물을 주는 주기까지.


사제들은 땀을 흘리면서 농사를 지었다. 몇 개월이 지나 자신들이 농사를 지어 난 작물들을 보여 뿌듯하다는 기색을 띠었다.

이제 막 열다섯 살이 된 나는 기뻤다. 사제들이 오기 전까지만 해도 그룬 마을은 활기 없는, 거의 죽은 마을이나 다름없었는데.


그들이 마을을 바꿔 주었다. 이제 그룬 마을은 자급자족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다른 마을과 거래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

물론 다른 사제들이 노동을 대가로 돈을 요구하기는 했다만, 일한 사람은 돈을 받아야 한다는 아버지의 말에 어머니는 기부금을 내었다.


그런데, 저 사제들은 농사 안 지은 것 같은데.


-


제국년 523년 X월 X일.


시간이 흘렀다. 사제들이 온 지도 오 년이란 시간이 지나갔다.

나는 스물이 넘도록 성장해 성숙하다고 할 수 있는 성인의 반열에 들었다.


매일매일 일기를 쓰고 있는 나였지만, 아직도 마을의 재개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신기한 일이었다.

가히 기적이라 해도 될 정도였으니. 그만큼 사제들이 그룬 마을에서 베풀어 준 것들은 많았다.


거리에서는 여전히 창을 맨 남자와 여사제가 돌아다니고 있었다.

뭐가 그리 부지런한지, 나보다 일찍 일어나는 모습은 본받을 만했다.

둘은 나를 보고서 손을 흔들었다. 기실 열다섯 살 때부터 만났는지라 그들은 나를 어린아이로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쳇, 이제 나름 컸다고 생각했는데.


-


제국년 524년 X월 X일.


어느 날, 몬스터가 마을을 습격했다.

총 여섯 마리였다. 와이번과 라큠이 하나씩, 리자드맨과 골렘이 둘씩.

사제들의 대피 명령에 가족들은 발걸음을 놀려 마을 입구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내가 볼 수 있었던 것은 몬스터와 싸우고 있는 사제들이었다.


그리고- 상처 입을 대로 상처 입어 힘겨워하는 사제들의 모습이었다.

사제가 다치고 죽어가고 있음에도 나서는 이 하나 없었다. 그저 멀찍이서, 몬스터가 오면 도망칠 수 있을 정도로 거리를 벌려놓고선 지켜볼 뿐.


그건 나 또한 같아서. 무서워서. 거의 매일 만나 왔던 사제들이 죽어가는 모습이 너무 무서워서. 가만히 있었다. 나서야 함에도 나서지 않았다.


대신 생각난 것은 다른 사제들은 어디 있느냐였다.

지금 싸우고 있는 사제들은 고작 넷에 불과했다. 내가 알기로 그룬 마을에서 구호 활동을 하고 있는 사제들만 열다섯이 넘을 텐데.


그들은 어디 가고, 싸우고 있는 건 고작 넷이라니.

아직 몬스터의 습격을 모르는 건가 싶어 사제를 찾고자 고개를 돌렸다.

사제에게 알리고자 돌린 고개가 볼 수 있었던 것은.


나와 가족보다 멀리서 도망치고 있는, 다른 사제들이었다.

사람들도 도망가고 있는 모습을 봤는지 혼란에 빠지기 시작했다. 평화로웠던 그룬 마을에 커다란 흠이 생긴 순간이었다.


싸우고 있는 네 명의 사제들 중 셋이 쓰러졌다. 여사제가 최대한 버티고 있긴 하지만 더 이상은 무리인지 무릎을 꿇었다.

리자드맨이 여사제에게 다가왔다. 주먹을 꽉 쥐며 공격하고자.

그 순간 내가 볼 수 있었던 건, 칼질 한 번에 리자드맨의 목을 베어버린 정체 모를 사람이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몬스터의 습격은 돌발 현상이 아닌 훈련이었다고 한다.

정체 모를 사람은 훈련을 최악으로 마무리한 사제들에게 독설을 뱉었다. 너무 심한 건 아닌가 싶어 말리려 했지만, 도망친 사제들이 떠올라 그러지 않았다.


···그러지 못했다. 돌발 현상이라면 정체 모를 남자에게 그만하라고 따질 생각이었건만, 훈련이라는 전체가 깔리니 그럴 수 없었다.

그저 그룬 마을 사제들의 위기 대처 능력이 최악이라고, 실망했다고 하는 남자의 말을 듣고만 있는 것이 전부.


그리고 그날부터, 사제와 마을 사람들의 갈등이 심화되기 시작했다.


-


제국년 525년 X월 X일.


조짐이 보이고 보이다가 기어이 사달이 났다.

기부금을 요구한 사제와 마을 청년이 말다툼을 벌였다. 2년 전, 훈련을 제대로 받지 않고 도망친 사제의 말에 마을 청년은 그를 조롱했다.


싸우지도 않았는데. 만약 실전이었으면 우린 전부 죽었는데.

그렇게 내뺀 주제에 돈을 받아먹을 자격이 있냐며.

평소 신경질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마을 청년은 그렇게 말했다.


물론 사제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어린 나이를 거들먹거리며 예의가 없다는 말부터 시작해, 그동안 우리는 너희를 도왔다는 말까지.

언쟁은 다른 사제들과 사람들이 와서야 겨우 멈췄다. 오늘은 이 정도로 끝이었지만, 이젠 클대로 큰 나는 이후 어떤 일이 벌어질지 대강 짐작할 수 있었다.


-


제국년 526년 X월 X일.


사제 네 명이 마을을 떠났다.


제국년 527년 X월 X일.


사람들과 사제가 싸웠다. 말이 아닌, 주먹으로.

최근 들어 이런 일이 늘어나고 있었다.


제국년 528년 X월 X일.


사제 다섯이 마을을 떠났다.

생기를 되찾았던 그룬 마을은, 다시 생기를 잃어가기 시작했다.


제국년 529년 X월 X일.


사제 둘이···.


제국년 530년 X월 X일.


마을 사람들이···.


제국년 531년 X월 X일.


등에 찬을 맨 남자와, 여사제가 마을을 떴다.

사람들은 그 둘에게 돈을 챙겨주기는커녕 인사조차 하지 않았다.


동이 튼 날, 아침.

그들은 쓸쓸히 마을을 떠났다.


제국년 532년 X월 X일.


약이 부족해졌다.

흉년이 시작됐다.

고독사하는 노인이 늘어났다.


제국년 533년 X월 X일.


마을이 죽었다.

남은 건 사제들과의 앙금뿐.

단지 그뿐이었다. 사람들은 사제들을 원망하며 죽은 나날을 보냈다.


[마을 청년의 일기]


* * *


[46층에 진입했습니다.]


스토리 모드의 종료를 알리고, 새로운 층의 시작을 밝힌 것은 여전히 시스템 메시지였다.

설진은 46층이라는 숫자를 응시하다 고개를 돌렸다. 입맛이 쓰긴 하지만 그걸 앙금처럼 품고 있을 필요는 없었다. 최대한 빨리 털어내야 했다.


‘이제부터 진짜 싸움이 시작될 거야.’


엔딩까지 남은 층은 총 넷.

네 번의 목표를 달성하면, 헤임 제국의 에피소드가 종료된다.


설진은 숨을 삼켰다.

플레임 왕국 에피소드 때의 반란 진압은 플라임이 전면적으로 나섰기에 가능했던 것. 그때 당시 설진은 전장에 큰 기여는 하지 않았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성장한 몸으로, 레벨으로 전장에 개입해야 했다.

오른보다 까다롭다고 평가되는 요한과.

죽여도 죽지 않는 괴물과 싸워야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꽉-.


품에 넣어두고 있던 단절석을 꺼내 들었다.

최종적으로는 50%의 확률.

누구의 의지가, 누구의 마력이 더 뛰어나냐가 요한의 봉인 여부를 결정할 터.


‘후우.’


숨을 삼켰다. 천천히 고개를 돌려 주변 상황을 확인했다.

생각했던 대로 시연, 채린, 찬우는 옆에 있었다.


그리고 장소는···.


‘음?’


이윽고 어디에 배치받았는지 확인하려던 설진의 눈이 좁혀졌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설진의 주변에 있는 건 새하얀 벽지였다.


마치 1층을 오르기 전, 슌을 만났던 그 장소에 있는 것 같았다. 이상함을 짐작한 건 비단 설진만이 아닌지 옆에서 의문 어린 소리가 터져 나왔다.


“여긴··· 제국이 아닌 것 같은데요?”


채린의 목소리였다.


“그러게. 46층이 하얀 방이라는 소리를 들은 적은 없는데.”


이윽고 답한 시연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만 아무리 고개를 돌려도 바뀌는 건 없었다. 네 명이 서 있을 정도의 크기의 방. 단지 그뿐이었다.


어떤 장치라도 있나 벽지를 향해 손을 뻗어보았으나 나오는 건 없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생각을 이어가려던 찰나.


[당신들은 누구의 편입니까.]


시스템 메시지가 나타났다.

느닷없이 떠오른 메시지는 다소 엉뚱한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누구의 편이라니. 대체 무엇을 말하는 건지.

삼 초 정도가 더 흐를 시점에, 설진의 궁금증을 풀어주듯 시스템 메시지가 이어졌다. 그제야 설진은 이곳이 무슨 방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황실의 편이라면 왼쪽으로.]

[교회의 편이라면 오른쪽으로.]


‘선택지?’


최후의 격돌 전 시스템 메시지는 확인을 받고자 한다.

황실이 편인지, 교회의 편인지. 아니라면-


[그 누구의 편조차 아니라면, 가운데로.]


누구의 편도 들지 않고 그저 방관자로 남을 것인지.


‘그러고 보니 게임할 때도.’


게임할 때, 그런 루트가 있었다.

황실도 교회도 돕지 않고 그저 방관자로 지켜보았던 적이 있었다.


그러자 엔딩은 다소 희한하게 났다.

전쟁 후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두 사람의 결말이 나왔었다.


시간이 지나 엘리나는 자살했고, 요한은 외려 죽음을 갈망했다.

아닌 것 같았으나 실제로 그는 그랬다. 처음에는 분명 불사의 몸에 기뻐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시간수록 요한은 망가졌다.


애시당초 당연한 일이다. 어지간히 유별난 인간이 아니고서야 몇백 년이 넘는 세월을 살면서 제정신을 유지할 리가 없었다.

죽다 못해 살아가던 요한은 결국 흑마법사 오엘의 몸에 흡수되어 봉인 당했다. 처음 그 엔딩을 봤을 때 설진은 적잖은 충격을 받았었다.


특히 오엘의 몸에서 썩은 얼굴을 하며 겨우 이성을 유지하는 모습을 봤을 때란.

그 찰나의 순간은 잊을 수 없을 정도로 강렬했다. 만일 설진이 가운데로 들어가 방관자의 길을 선택한다면 작금의 그 장면이 되풀이될 터.


“왼쪽으로···.”


선택의 길은 애초부터 정해져 있었다.


“왼쪽으로 가죠.”


황실, 엘리나의 편을 들기로.

엘리나의 편을 들지 않을 것이었다면 그녀에게 접근하지조차 않았을 터였다.

방금 전, 스토리 모드에서 선량한 사제를 망가뜨리지도 않았을 것이었다.


그러나 설진은 황실의 편을 확고히 들고자 하기에.

그렇기에 행동했다. 그렇기에 움직여 왔다.


그렇기에 지금, 그는 왼쪽의 길을 걷고자 한다.

당연한 수순이었다. 고개를 끄덕이고 있는 셋을 바라보며 설진은 걸음을 옮겼다.


설진과 시연이 선두로, 맞잡은 손이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이윽고 옮기던 걸음이 왼쪽으로 닿은 순간,


그 직후 설진이 볼 수 있었던 건.

하얗기만 했던 방에서 뿜어져 나온 방대한 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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