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북한도 우리나라 땅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분명히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심지어 전투기를 붙잡고 있기까지 했었다.
그런데도 눈앞에서 전투기가 사라져버렸으니, 정말 귀신이 저지른 일이 아니라면 설명할 길이 없는 일이었다.
CCTV에도 멀쩡히 잘 서 있던 전투기가 갑자기 그 옆에 생긴 시커먼 굴에 꿀꺽 삼켜지는 모습이 찍혔으니.
대한민국과 북한에서 가까운 전투 비행장에 있던 최신예 전투기부터 사라지기 시작했다.
하룻밤 사이에 여섯 곳의 전투 비행장이 털렸다.
어떤 곳은 반만 털린 곳이 있었고, 또 더 큰 비행장에서는 삼 분의 일만 털린 곳도 있었다.
다음날 새벽에는 모든 조종사가 불려 나왔다.
그리고 ‘긴급사태’라는 이름으로 모든 전투기를 서쪽 전투 비행장으로 옮기라는 특명이 떨어졌다.
새벽녘에 불려 나온 조종사들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전투기에 기름을 꽉 채운 전투기부터 시간이 되는 대로 서둘러 이륙했다.
사실 중국군은 군구별로 별도의 예산과 운영권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중앙당에서 아무리 명령을 내려도 자신들의 무기를 다른 군구에 넘기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 사태에서만큼은 중앙당의 명령을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
어차피 잃어버리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지만, 다른 군구에 맡겨두는 것은 잠시면 다시 돌려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나중에는 그에 합당한 대가를 지급해야겠지만.
하지만 그런 노력도 다음날에는 무용지물이었음이 드러났다.
어떻게 알았는지 아무리 숨겨도 사라지는 것은 막을 수가 없었다.
그것도 중국이 가장 최신예라고 자랑했던 기종들만 골라서.
중국은 다시 ‘긴급 명령’을 내렸다.
이번에는 모든 방공기지에 숨기라는 명령이었다.
산에 굴을 파고 그 속에 전투기를 숨기는 것이었다.
오래전부터 산에 굴을 파고 전투기를 숨기도록 준비해 둔 것이 있었다.
그곳에는 최신예 전투기보다는 떨어지지만, 예비 기종으로 쓰기에는 충분한 성능을 가진 전투기를 모아두었었다.
이번 긴급 명령은 그 안에 들어있는 전투기를 모두 빼내고, 최신예 전투기를 숨기라는 명령이었다.
그런 명령과 진행 사항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있는 마누스 일파는 다시 배를 잡고 웃어댔다.
‘지하 깊은 곳에 숨겨두었던 핵미사일도 잃어버린 놈들이 저런다고 안 잃을 줄 아는 건가?’
그렇게 군부에서는 전투기를 숨기느라 바빴다.
그에 반해 정보부에서는 중국 국내외 담당 가리지 않고 ‘낚시왕’을 찾거나 잡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특히 이번에 파키스탄을 통해 함정을 준비하는 담당자들은 어떻게든 잡아야 한다고 들들 볶이고 있었다.
삼 일째 되는 날 아침.
이제 막 해가 떠서 주변을 환하게 밝히는데, 전투기 비상 격납고로 쓰는 토굴 앞이 분주하다.
새벽 어스름부터 불려 나온 정비병들이 서둘러 토굴에 들어 있던 전투기들을 꺼내고 있다.
그렇게 바삐 움직였는데도 이미 도착한 최신예 전투기가 활주로에서 기다리고 있다.
이미 도착한 조종사들은 한쪽으로 물러나 본부로 귀환할 헬기를 기다리고 있다.
조종사들로서도 최신예 전투기를 잃어버리는 것은 큰 아픔이다.
비록 다른 조종사와 교대로 타기는 하지만, 최신예 전투기 조종사라는 자부심은 대단했다.
그런 자부심으로 계속 전투기 조종사로 훈련받는 것을 즐겨 왔었다.
그랬던 자신들의 애기를 날름 훔쳐가는 도둑놈들이 있다니.
어느 큰 비행장에서 온 조종사들은 자신의 애기를 잃었다며, 분통을 터트리기도 했다.
그 얘기가 남의 얘기로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이 새벽에 이런 고생을 하는 것도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랬는데, 어느 순간 한 두 조종사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어! 어! 저, 전투기들이 사라진다!”
“어! 진짜! 전투기! 내 전투기!”
그렇게 다들 안도하고 있을 때, 갑자기 전투기 근처에 검은 동굴이 생기더니 전투기들을 하나씩 집어삼키고 있다.
이미 내려서 격납고로 들어갈 차례만 기다리던 최신예 전투기들이 모조리 사라지는 데는 채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때부터 비명 같은 고함이 여기저기서 들리기 시작했다.
“아직 내리지 않은 전투기들에 통신 넣어! 다른 곳으로 돌리게 착륙하지 말라고!”
새벽부터 고생하며 전투기를 몰고 왔던 조종사들은 망연자실했다.
그 시간 시운은 오늘도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공장에 들어섰다.
들어오자마자 공장 안을 한 바퀴 돌며 형님들과 누님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마지막으로 생활 마법 학파에 자리를 잡았다.
어제부터 페로로에게 붙들려 생활 마법에 대해 배우고 있다, 강제로.
전에는 마법 지식을 강제로 주입해서 억지로 마법사로 만들더니, 이제는 하나부터 세세하게 가르치고 있다.
공부에는 별 재능이 없었던 시운이 다 늦게 공부를 해야 했다.
동굴에서는 형님들에게 수시로 머리 나쁘다고 핀잔을 들었다.
그래서 시운은 페로로가 마법을 가르치겠다고 덤빌 때도 겁을 먹었다.
또 얼마나 구박과 핀잔을 받게 될지.
그런데 웬걸?
자상해도 이렇게 자상할 수가 없다.
동굴에 있을 때도 이렇게 좀 가르쳐주지.
그런 생각도 잠시, 시운은 페로로의 가르침에 집중하게 되었다.
역시 아직도 자신이 마법사라는 것을 실감하기 어렵다.
집에서 가족들과 있을 때도 몰래 마법을 쓸 수 있었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한 번도 마법을 써 본 적이 없었다.
그만큼 남의 얘기처럼 여겨져서다.
그렇게 한참 집중하며 배우고 있는데, 시운의 전화기가 울렸다.
받으려고 보니 모르는 번호다.
아마도 새 몸을 입은 어느 형님이거나 누님일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래서 서둘러 전화를 받았다.
정말 새 몸을 입은 누님이었다.
당장 달려와 줄 수 있는지부터 물어온다.
어딘지 묻고 당장 달려가겠다고 대답하고는 무슨 일인지 물었다.
내용은 참담했다.
그 몸의 부모님이 그 몸의 병을 고치려고 급전을 구하다가 사채를 쓰게 되었다나.
그런데 그 사채가 악성 사채였다.
이자가 밀리자 이율이 60%를 넘겼단다.
이자조차 내지 못하니, 병원까지 쳐들어와서 행패를 부린다고.
그동안 시모나가 이끄는 치료 학파 마법사들이 돌아가며 치료 마법과 생기 마법을 써 주고 돌아왔었다.
하지만 그런 세세한 부분은 신경을 써주지 못했다.
그저 무슨 일이 있으면 시운에게 전화하라고만 하고,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병원비 등은 신경 쓰지 않았다.
혹시라도 이쪽이 외부의 관심을 받게 될까 봐.
그래서 연락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런 문제가 있었을 줄이야.
시운이 밖으로 나가려 하자, 시모나와 케로마, 테라니우스까지 따라붙었다.
시운을 비롯한 네 존재는 시운의 승합차를 타고 구로성심병원으로 달렸다.
시운은 자신의 여동생도 사채를 빌려 쓴 적이 있었다고 얘기했다.
그나마 자신의 동생은 여러 곳을 알아보고 괜찮은 곳에서 사채를 썼기에 문제없이 사채를 갚을 수 있었다고 얘기했다.
가끔 뉴스에 사채 때문에 자살하거나 실종되는 경우도 있다고 얘기했다.
우리나라의 사채가 법적으로는 이자를 정해둬서 괜찮아 보이는데, 실재는 불법적인 사채가 많은 모양이라고 걱정했다.
시운의 걱정을 들으며 세 마법사도 ‘어디나 고리대금이 서민들의 피를 빠는구먼.’이라고 툴툴거렸다.
테라니우스는 오래 전 자기네 마탑의 마법사도 고리대금을 빌려 썼다가 자기가 마탑 돈으로 물어준 적이 있었다고 얘기했다.
병원에 도착해서 시운은 모습을 드러낸 채 병원으로 들어섰다.
세 마법사는 모습을 감추고 시운의 뒤를 따랐다.
시운이 전화로 들었던 병실을 찾아가자, 병실 입구에는 구경꾼들이 서성이고 있다.
시운이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병실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러자 간호사마저 밖으로 내몬 채 입구를 장악한 거한 둘이 서 있었다.
간호사는 계속 ‘병실에서 이러시면 안 돼요. 경찰 부르겠어요.’라며 거한 둘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병실 입구여서 그런지, 목소리를 잔뜩 죽인 채 말을 뱉어내지만, 그 목소리에는 분함이 가득 느껴졌다.
두 거한은 히죽거리고 웃으며 간호사를 놀려대는 모습을 보였다.
어차피 불법 추심으로 걸려도 벌금만 얼마 내면 상관없다고 거들먹거리기까지 했다.
그런 모습에 화가 난 시운이었지만, 일단은 새 몸을 입은 누님을 먼저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시운이 그 거한 둘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려 했다.
그러자 그 거한이 양쪽에서 두 눈을 부라리며 문을 가리고 섰다.
“이 노털은 또 뭐야? 이 양반이 병실에서 바로 응급실로 실려 가고 싶나? 어딜 밀고 들어와 들어오길?”
“아씨. 자꾸 밀고 들어오면 우리도 가만 못 있어? 괜히 깽 값 물지 말고 잠시 기다리쇼. 앙?”
시운은 헛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예전 같았으면 겁이 나서 오금이 저렸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명색이 이 세상에 형님들과 누님들을 제외한 유일한 마법사다.
여기서 깜짝 불 쇼라도 보인다면, 바로 통구이를 만들어 줄 수도 있다.
그렇게 시운은 들어가려 하고, 두 거한은 그런 시운을 밀쳐내고 섰다.
비록 잠깐이었지만, 그 모습을 본 마법사들이 가만둘 리가 없었다.
뒤에 서 있던 케로마가 먼저 시운에게 마법 무효 마법을 걸었다.
시운이 그 마법을 느끼고 뭔지는 모르지만, ‘일 나겠구나.’ 생각했다.
역시나 시운이 두 거한을 양손에 한 명씩 잡고 미는 중에 갑자기 두 거한은 온몸에 전기 충격을 받은 듯 온몸을 미친 듯 떨어대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시운이 깜짝 놀란 척하며 소리쳤다.
“으어어어억!”
“으지지지지!”
“어익후! 이 사람들 왜 이래? 난 아무 짓도 안 했는데.”
그때 뒤에 서서 시운을 걱정하면서도 은근한 기대를 보이던 간호사도 깜짝 놀랐다.
“어머! 왜 저런대?”
잠시 후 두 거한은 거품을 물고 기절한 채 너부러졌다.
여전히 잠깐씩 몸을 움찔거리는 모습이 안쓰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시운은 두 거한을 발로 툭툭 밀어버리고는 안으로 들어섰다.
안으로 들어서자 6인 실 병실에 환자와 가족들이 구석에 있는 병상 쪽을 바라보며 옹기종기 모여있다.
시운이 그쪽으로 시선을 돌려보자, 그곳에는 검은 양복을 입고 날렵하게 생긴 삼십 대 후반쯤의 사내가 뒤를 돌아보고 섰다.
몸은 여전히 병상 앞을 막고 선 중년 여인을 향한 채, 고개만 돌려 뒤를 보고 선 모습이다.
날렵하고 사나워 보이는 눈매로 병실 문을 들어서는 시운을 위아래로 훑어 보고 섰다.
“뭐냐? 밖에서 얘기 못 들었어?”
목소리는 꼭 쇠 긁는 소리를 억지로 흉내 낸 것처럼 징그럽게 들리려 하고 있다.
그 모습에 오히려 피식 비웃음을 한 방울 던진 시운이 가까이 다가갔다.
이미 몸에는 신체 강화 마법과 근력, 속도 강화 마법까지 걸어둔 채다.
이 정도 저차원 마법은 숨 쉬는 것만큼 쉽게 할 수 있다.
양손은 뒷짐을 쥔 채다.
자세히 보면 양손에는 엷은 보라색 투명 장갑이 씌워져 있는 것 같다.
이는 생명력 강탈 마법의 효과다.
저차원의 백마법 중에 하나로 약한 저주계열 마법이다.
이 마법을 손에 건 채 상대의 몸을 만지면 상대는 기력을 빼앗긴다.
그래서 처음에는 몸에서 힘이 빠지는 것을 느끼고, 잠시의 시간이 지나면 속이 울렁거린다.
그러다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식은땀이 나면서 오한이 들고 피부의 윤기가 빠져나간다.
시운은 처음에는 마법을 쓸 생각도 하지 못했다.
그저 누님이 걱정되어 서둘러 달려온 것이다.
하지만 등 뒤에서 어느 마법사가 마법을 쓰자, 그제야 자신도 마법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 낸 것이다.
그만큼 시운으로서는 마법이 생활화되지 않았다.
시운은 매서운 눈으로 노려보는 사내 앞으로 당당히 다가갔다.
그리고 왼손으로 사내의 오른팔 팔꿈치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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