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내부 물갈이
그날 아침 시운은 여전히 승합차를 몰고 출근했다.
편한 마음에 절로 나오는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문을 열었다.
입구에 모여서 자신을 기다리는 원로들 열두 명의 눈빛을 받고는 깜짝 놀라 두 걸음이나 물러섰다.
“왜, 왜 그러세요?”
“헐헐헐. 많이 놀랐는가?”
“아유우. 그럼요. 이렇게 놀라보기는 진짜 오래간만이네요.”
원로들이 길을 열어주자 그 사이로 들어서며 시운이 말을 이었다.
그런 시운을 보며 원로들은 낄낄거렸다.
시운도 형님들과 누님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고는 피식 웃어버렸다.
생각해 보니, 이 안에만 갇혀 있어서 무척 심심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시운이 안으로 들어서자 원로들이 시운을 빙 둘러 포위했다.
시운은 지금까지 한 번도 이런 적이, ‘아, 처음 봤을 때 한 번 그랬구나.’ 없었던 이들이라 살짝 당황했다.
그래서 입에서 나오는 말도 자연스럽게 떨렸다.
“무, 슨 일이세요?”
“헐헐헐 우리가 자네에게 무슨 해코지를 할까 봐 겁이 나나? 클클클.”
“에이, 형님들이 저한테 그럴 리가 있겠어요? 대신 무슨 일이길래 이러시나 겁이 난 거죠.”
시운을 둘러싼 원로들은 시운을 공장 한쪽 구석에 마련된 회의장으로 이끌었다.
시운과 모두가 둘러앉자, 그동안 마누스가 준비해 준 강의를 케로마가 시작했다.
내용은 1400년대부터 있었던 열강들의 식민지 쟁탈전부터 지금까지 세계의 흐름에 대해서였다.
시운이 그동안 듣거나 배웠던 내용도 있었다.
하지만 그 깊이 숨겨져 있던 의미와 그로 인해 흘러온 세계의 정세에 대해서는 숨조차 죽인 채 푹 빠져서 듣게 되었다.
다른 원로들도 깊이 몰입하는 모습을 보였다.
들으면서 간간이 탄식을 흘리는 원로들도 있었다.
그렇게 세 시간에 이르러 강의를 끝낸 케르마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자 원로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을 확인한 케르마가 시운을 똑바로 보며 말을 이었다.
“시운. 어떤 생각이 드는가?”
“흐음...”
시운은 한동안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동안 자신은 아무 생각 없이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저 하루 열심히 일하고, 가족 모두가 무사하면 된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저 갈수록 살기가 힘들어진다는 생각만 하면서 살아왔었다.
이제는 돌아올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불안했던 곳에서 무사히 돌아왔다.
거기에 자신이 가진 것뿐만 아니라, 함께 온 형님들과 누님들 덕분에 누구보다 평안하고 풍족하게 살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오늘도 아무 걱정 없이, 그저 행복하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출근하지 않았는가.
거기에 사실 출근이랄 것도 없다.
그저 매일 출근하던 것이 몸에 익어버려서 집에서 빈둥거리는 것이 더 힘들기에 ‘출근’이라고 말하고 ‘놀러’ 나오는 것이다.
형님의 강의를 듣고 보니, 지금 흘러가는 대로 세상을 내버려두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기 시작했다.
당장 자신이 뭘 할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결심을 굳힌 시운이 고개를 들어 케로마를 바라보았다.
“형님의 말씀 잘 들었습니다. 저도 그동안 생각 없이 살아온 게 바보 같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부터라도 뭔가를 하긴 해야겠는데, 제가 뭘, 어떻게 하면 될까요?”
시운의 그런 굳은 얼굴을 본 케로마와 원로들이 왠지 모르게 푸근한 미소를 머금는다는 느낌을 받는 시운이었다.
케로마가 좀 전과 달리 단호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케로마의 말에 함께 한 모든 원로의 기세도 달라져 갔다.
시운은 케로마의 말을 들으면서 주변에 변해가는 기세에 절로 긴장하게 되었다.
자신도 모르게 양손의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그 분위기에 휩싸여 케로마의 말에 더욱 집중했다.
“우리는 이미 대한민국 국민이 되기로 했네. 그렇지?”
“그, 랬었죠.”
“우리가 새 몸을 입고 살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손을 낳아서 기르게 될 것이야.”
“맞습니다, 꼭 그렇게 되어야죠.”
시운은 예전에 ‘절대로 결혼하지 마세요.’라고 말했던 것을 까맣게 잊어버렸다.
그만큼 분위기는 무거웠다.
“우리가 살아가야 할, 그리고 우리가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할 대한민국이 세계열강이라는 것들에게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모습을 보면서 살아갈 수는 없네. 아울러, 이런 나라를 우리의 후손에게 물려줄 수는 더욱 없는 일이지.”
“그, 렇습니다. 그럼요.”
시운은 그 박력에 밀려 그저 맞짱구를 쳐대기에 바빠졌다.
시운의 그런 모습에 다른 원로들은 속으로 안도하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 분위기를 흐트러뜨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케로마를 돕기 위해 기세를 더욱 끌어올렸다.
시운은 주변의 기세가 올라갈수록 저도 모르게 긴장하게 되어 온몸이 쑤셔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그 이후로 다시 두 시간이 넘도록 케로마의 강의 2탄이 시작되었다.
이번 강의의 주제는 세계 질서 재편이라고 할까.
그 중심에 ‘대한민국’을 놓고, 세계의 질서를 다시 짜야 한다고 역설했다.
지금의 세계는 1강인 미국과 그 뒤를 바짝 쫓고 있는 중국, 잠재력을 잃지 않고 계속 최강의 자리를 수복하려는 러시아.
그 외에 미국과 힘을 합쳐 계속 세계를 손아귀에 쥔 채 놓지 않으려는 영국, 프랑스 등에 대해서도 강변했다.
특히 서방 열강들의 뒷공작으로 살기 좋았던 나라가 휘청거리는 사례를 열거했다.
그들 나라 다음으로 먹잇감이 될 수밖에 없는 나라가 대한민국이라고도 꼬드겼다.
시운으로서는 그 열정적인 말에 푹 빠져버렸다.
케로마가 말을 마치고 그저 묵묵히 시운을 바라보기만 했다.
그 모습에 시운은 짧은 침묵을 마치고 입을 열었다.
그동안 보여줬던 시운의 모습은 사라지고, 단호하고 강인한 모습이 등장했다.
“합시다. 해요. 아니, 해야겠습니다. 언제까지 우리만 이렇게 당하고 살 수는 없어요. 우리는 그래도 된다고 하겠지만, 우리 후손들이 계속해서 그렇게 살게 하고 싶지는 않아요. 합시다. 꼭 해냅시다.”
그렇게 내뱉고 보니, 시운은 ‘아차’ 했다.
뭘, 어떻게.
지금까지 별생각 없이 살아왔는데, 갑자기 하겠다고 덤빈 들 뭘, 얼마나, 어떻게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시운의 목소리가 기어들어가게 되었다.
그래도 할 말은 해야겠다고 생각한 시운이 말을 이었다.
“그, 런, 데. 뭘, 어떻게 해야 하지요?”
시운의 결심이 굳은 걸 확인한 케로마가 주위를 다시 둘러보았다.
원로들은 그런 케로마의 눈짓에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였다.
원로들의 뜻을 확인한 케로마가 이번에는 세 번째 강의를 시작했다.
강의 내용은 크게 두 가지로 압축할만했다.
첫째는 내부 물갈이.
둘째는 외세 누르기.
다시 두 시간에 가까운 강의가 이어졌다.
시운이 기억하게 된 것은 그 두 제목뿐이었다.
어쨌거나 자신과 후손들에게 좋은 일이라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원로들은 시운이 허락해 주었다고 믿었다.
영혼의 주인으로 묶인 시운의 허락으로 원하는 일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시운의 허락이 떨어지자, 슬며시 원로들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시운을 버려두고 자신들끼리 삼삼오오 모여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시운은 ‘어허. 또 버려졌구나.’라고 속으로 탄식했다.
하지만 그런 모습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다.
저쪽 세상에 있을 때는 백여 년 동안 매일 마주친 일상이었다.
그래서 지금도 그 모습이 자연스럽게 와 닿았다.
사실 형님들의 대화에 끼어보려고 이십여 년 동안은 노력해 봤었다.
형님들도 시운이 옆에 있건 없건 신경 쓰지 않았었고.
그렇게 노력해 본들, 자신이 알아들을 수도 없는 말들이었다.
거기에 한번 빠져들면 주변을 전혀 돌아보지 않았다.
시운이 뭔가 질문이라도 던지면, 대답은 해 주는데, 알아들을 수가 없는 말들뿐이었다.
그래서 20여 년을 노력하다가 그 이후부터는 그것도 때려치웠다.
그냥 자기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노는 것이 최고라고 여기게 되었다.
지금도 그때와 마찬가지다.
형님들이나 누님들이 자신을 필요하게 되면, 알아서 찾아올 것이다.
그날부터 공장 내부의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마누스의 정보부에서는 업무를 크게 두 가지로 나누었다.
하나는 여전히 세계 정보 검색.
또 하나는 국내 분야별 나쁜 놈 때려잡을 정보 캐기.
마누스의 요청으로 또 최고 사양의 컴퓨터가 배달되기 시작했다.
이제는 이 공장 전담의 택배 직원이 정해진 모양이다.
그 택배 직원은 으레 물건을 가지고 오면, 공장 입구에 가지런히 정리해 놓고 돌아간다.
택배 트럭이 돌아가면, 공장 문이 자동으로 열리고, 배달된 물건들이 하늘에 둥둥 떠서 안으로 들어간다.
주변에 사람이 없기에 할 수 있는 마법이었다.
그런 모습을 구경하는 시운은 그저 ‘이번엔 또 어떤 일을 하시려나?’하고 넘어간다.
테라니우스의 심부름을 하게 되었다.
공인중개사를 찾아가서 주변 땅을 사들이고, 공장 건물을 짓고 각종 내부 공사를 할 업체를 선정하는 것이다.
물론 이미 업체 선정은 마누스가 다 해 뒀다.
시운은 그저 테라니우스가 하라는 일만 하면 된다.
시운은 드디어 할 일이 생겼다고 좋다고 하며 뛰어 나갔다.
다들 바쁜데 요즘 좀 한가해진 부류가 있다.
사령술파 바그리드 일당이다.
너무 많은, 그리고 자주 젊은 사람들이 죽었다가 살아나서 언론에까지 오르내리게 되었다.
마누스가 사전에 차단하긴 했지만, 당분간은 자중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그래서 이들은 손가락만 빨고 있다.
대신 우주선에 무기를 하나씩 더 달고 있다.
암흑 환영술이다.
이 마법을 쓰면, 그 대상이 되는 지역이나 물건에서는 그 지역에 있는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들이 튀어나와 그 사람들을 공격하게 된다.
중국 핵잠수함도 결국 인디아에 팔았다.
지금 인디아는 중국의 잠수함 전력 증강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그래서 아예 메일에 앞으로도 잠수함이 나오면 자신들이 사겠다고 부탁까지 해 왔다.
이왕이면 러시아와 미국의 핵잠수함을 구해 달라는 요청까지.
금액도 상상 이상으로 불렀다.
마누스가 인디아의 정보부와 중국의 정보부를 훑어보며, 과연 인도에 잠수함을 팔아도 될지 검토했다.
결론은 ‘적의 적은 동지다.’라는 말로 합리화했다.
중국의 시선을 인디아 쪽으로 돌릴수록 대한민국에 유리해질 걸로 생각했다.
비록 중국의 잠수함이었지만, 그래도 핵잠수함이었기에 22억 달러를 받았다.
그 돈은 파나마의 유령회사 계좌에 입금되었다.
인디아에는 자체적으로 핵무기가 있었기에 핵미사일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모양이었다.
덕분에 핵미사일은 비록 중국제였지만, 메이슨이 무기 보관 아공간 팔찌에 잘 쟁여놓았다.
입금은 물건을 원하는 자리에 가져다 놓으면, 하기로 했었다.
그날 밤 인디아의 잠수함 조병창에는 아무도 얼씬거리지 않았다.
한번의 전력이 있었던 인디아는 약속시간에 근처 10km를 무인지대로 만들었다.
어떤 탐색 장비도 켜지 못하게 했다.
괜히 이들의 심기를 거슬러서, 다음 물건을 받지 못할까 봐 걱정한 것이다.
그렇게 정해진 시간에 딱 물건을 놓고 돌아온 메이슨이다.
마누스가 이제 막 돌아온 메이슨에게 인디아의 요청을 전했다.
그에 메이슨은 다른 대답 없이 그저 ‘헐헐헐’ 웃었다.
메이슨에게 말을 전한 마누스가 다시 계좌를 확인하고 이제는 테라니우스에게 말을 전했다.
입금 완료.
마누스에게 얘기를 들은 메이슨은 수호 조를 불렀다.
이제부터 바쁘게 생겼다고 즐거워하면서.
한 조에는 일본에 있는 미사일이란 미사일은 몽땅 긁어오라고 지시했다.
이왕이면 발사관도 챙겨올 수 있으면 모조리 챙겨오라고.
생활 마법 학파에 요청해서 아공간 팔찌를 대량으로 만들어 달라고 요청했다.
앞으로 보관해야 할 무기가 너무 많다는 이유로.
다음 다섯 조에는 잠수함 사냥을 지시했다.
특히 핵잠수함을 위주로.
가능하면 미국이나 러시아제를 우선으로.
중국과 일본 것은 보이는 데로 긁어모을 것을 명령했다.
한국 주위에 잠수함은 씨를 말리자는 지시였다.
함께 한 수호 조원들은 두 눈을 반짝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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