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 홍익백성
“우리나라에 그 돈을 들여오면, 경제가 춤을 출 것 같은데 어디에 쓸 생각인가?”
“일단은 밝은 세상에서 서민 대출금으로 사용할 계획입니다. 대출 이자를 시중 은행의 반으로 잡고 대출을 해 주다 보니, 백성들이 너무도 좋아하더군요. 그래서 아예 중소기업 대출도 해 줄 생각입니다. 대출을 많이 해 주면, 대출 이자가 낮아도 대출해 주는 금액이 워낙 많으니까, 수익은 충분할 듯합니다.”
테라니우스가 수익에 관해 이야기하자, 케로마가 고개를 흔들었다.
“우리가 굳이 수익을 생각할 필요가 있겠는가? 아예 무이자는 어떤가?”
“뭐 그것도 좋긴 합니다만, 앞으로 우리가 계획하고 있는 큰일을 생각하면, 돈은 많을수록 좋지 않겠습니까?”
“하긴, 그도 그렇지. 그 점은 알겠네. 나는 자네 의견에 동의하지.”
“나도.”
“나 역시.”
모두가 동의하자 테라니우스가 마지막으로 시운을 바라보았다.
시운은 잠시 테라니우스와 모든 원로의 눈길이 자신에게 모이자 어리둥절해서 원로들을 돌아보았다.
그러다 뭔가를 깨닫고는 자신도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저도 찬성입니다. 사실 우리나라 속담에 공짜면 양잿물도 마신다는 말이 있는데, 무이자 대출은 해주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아참. 그러면 기존 은행들 망하지 않을까요?”
“헐헐헐. 망하지는 않을 거네. 대출 사업이 줄어들면, 이익금이 많이 줄어들어서 위축되기는 할 걸세. 하지만 요즘 은행들은 대출 사업 아니고도 돈을 잘 벌고 있네.”
“아. 그럼 다행이고요. 형님 조에서 돈 많이 벌어 주세요. 하하하.”
“헐헐헐.”
잠시 웃던 테라니우스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리고 우리만 할 수 있는 사업을 해야 할 듯합니다. 가장 큰 일로 지구온난화라는 재앙을 막는 사업이죠.”
그 말에 모두가 눈길을 모았다.
그렇지 않아도 뉴스를 볼 때마다 다른 일들은 그저 시큰둥하게 여기게 되었다.
하지만 지구 환경 문제라든가, 특히 지구온난화 문제는 그들에게도 흥미를 불러왔었다.
“아시다시피 이 지구라는 작은 별에 인구가 너무 많지 않습니까? 그렇다 보니 이 지구의 환경이 남아나질 않더군요. 그렇다고 인구를 지금보다 십분의 일로 줄일 수도 없는 일이고 말이지요.”
“그야 그렇지. 우리가 없었다면 모르지만, 우리가 있는데도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얼굴을 들지 못할 일이지.”
침중한 목소리로 케로마가 받아들였다.
그러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테라니우스가 시제를 제시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시모나가 말을 받았다.
“저쪽 세상에서 엘프들을 데려올 수도 없는 노릇이니, 우리가 일정 부분 엘프 노릇을 해야겠어요. 무엇보다 이산화탄소를 획기적으로 줄일 장치를 만드는 것부터 해야 해요. 그래서 몇 학파에서 마법사를 모아 특별 연구조를 만들었으면 해요. 예를 들면, 이산화탄소 표집기 제작이나 아니면 이산화탄소를 산소와 탄소로 분리하는 장치를 개발한다거나, 물론 거의 돈이 들지 않는 방법으로.”
“차라리 지금 우리가 만들어 사용하는 무동력 발전기만 팔아도 되지 않겠습니까? 보아하니 가장 많은 이산화탄소를 뿜어내는 곳이 발전소던데 말이지요.”
“그것도 한 방법이지요. 문제는 모든 것을 과학으로만 풀려고 하는 이 세상 사람들이 마법의 충격을 받아들일 수 있을지, 또 마법이 세상에 등장하게 되면, 우리가 자연스럽게 알려지게 될 텐데, 그 점은 어떻게 해야 할지 등등. 생각할 일이 너무 많아지지요.”
“흐음...”
다른 원로들도 시모나와 케로마의 대화에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중에 시운도 조용한 혼잣말을 웅얼거렸다.
“이 세상에 마법을 가르친다라...”
“아! 그것도 한 번 생각해 볼 만한 일이겠습니다, 그려.”
시운의 혼잣말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인물이 있었다.
바로 생활 마법 학파의 수장이다.
그동안 시운에게 생활 마법을 집중적으로 가르치던 중이라 시운의 생각과 이 세계에서 차지하는 과학의 절대적 맹신을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것이 못내 못마땅하던 중이었다.
과학보다는 마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 오던 마법사로서의 자존심에 큰 도전을 던져준 것이었다.
그 말에 가뜩이나 과학 지상주의가 못마땅했던 마법사들인 원로들이 적극적으로 맞장구를 치며 좋아했다.
그 모습에 반쯤 마법사가 된 시운도 은근히 마음이 움직였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어차피 안된다고 해도 자신에게 누구 한 존재 핀잔 주는 이도 없었으니까.
“저어. 형님들. 그럼 시범적으로 제 아이들하고 조카들한테 마법을 가르쳐 볼 수 있을까요?”
“오오! 그래! 가장 가까이에 좋은 실험체들이 있었구먼!”
케토토가 대뜸 ‘실험체’라는 말을 사용하자, 옆에 있던 뚱뚱이 마법사가 바로 따지고 들었다.
“아! 말 좀 가려서 합시다! 시운에게는 귀한 아이들인데 실험체가 뭡니까, 실험체가!”
“아! 그, 렇구먼. 내 사과함세. 시운, 미안하네. 내가 너무 흥분하는 바람에... 그래도 내가 나쁜 뜻으로 한 말이 아닌 건 잘 알지?”
“아유. 그럼요. 사실 제가 1호 실험체잖아요. 하하하.”
“헐헐헐. 그도 그랬지. 아, 정말 그때 생각하면. 켈켈켈.”
“켈켈켈. 아이고야. 그때 일이 갑자기 생각나 버렸어. 켈켈켈.”
그렇게 다시 웃음이 바탕이 되어버렸다.
덕분에 시운도 웃어버렸다.
다른 것도 아니고 아이들에게도 마법을 가르칠 수 있게 되었다.
마나 친화력이니 뭐니 하는 자질 문제는 결코 제한될 수 없었다.
자신의 경우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그렇게 웃고 넘어가려던 분위기를 시모나가 다시 잡았다.
“자. 그럼 시운 아이들에게 마법 가르치는 건 시운이 해 보는 게 어때요? 자신이 배웠던 방식으로 가르쳐보면서 이 세상의 사람들에게 가르칠 방법을 생각해 보는 것도 좋겠는데 말이지요. 물론 누구 한 마법사가 옆에서 지켜봐 주면 더 좋을 테고 말이지요.”
“그건 우리 학파에서 하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시운에게 집중 교육을 해 주는 친구가 있으니까요.”
“좋군요. 그 문제는 그렇게 하는 걸로 해도 되겠지요?”
“물론이요.”
“얼마든지.”
그 문제를 재빨리 매듭지은 시모나가 다시 주제로 돌아갔다.
“그럼 제가 제안했던 지구 환경 문제 연구 특별조 편성에 대해서 허락해 주시지요. 거기에다 어느 학파에서 누구를 모을 건지도. 참고로 여러분들이 허락하시면, 그 특별조는 제가 이끌고 싶군요.”
“오! 그렇게 해 주시겠소? 요즘도 장기 세포 배양과 교체 시술 문제로 바쁜 모양이던데, 너무 힘들 것 같으면 다른 학파에 넘겨도 괜찮소.”
“그도 그렇지요. 시모나님께서 가장 잘하실 분야긴 하지만, 다른 마법사들도 다들 조금씩은 할 수 있는 분야기도 하니까.”
여러 원로가 시모나를 걱정해 주었다.
살짝 고개를 숙여 보인 시모나가 대답했다.
“걱정해 줘서 고마워요. 대신 우리 학파에서는 나만 참여할게요. 그래서 연구 방향 설정이나 연구에 관한 관리만 하도록 하지요.”
“뭐, 그것도 괜찮겠소.”
그렇게 원로들이 동의해 주었다.
아울러 미세 마법진 학파, 거대 마법진 학파, 생활 마법 학파, 각 원소 마법 학파에서도 한 명씩 모으기로 했다.
시모나를 포함해서 모두 열세 명의 대규모 연구조가 탄생했다.
그 결정을 지켜본 테라니우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이왕이면 돈을 받고 팔 수 있는 물건 생산 쪽으로 연구해 주십시오. 아울러 다른 잡다한 부품은 다른 업체에서 매입해서 쓰는 걸로 하더라도, 핵심 부품과 최종 제품 생산과 설치 업무는 우리가 했으면 합니다. 그래야 최소한의 비밀 유지와 과학 맹신자들에게 충격을 줄여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오오! 역시! 켈켈켈. 이러다 이 세상의 돈을 다 긁어모으겠구먼. 켈켈켈.”
“클클클.”
“헐헐헐.”
그렇게 웃어대는 원로들에게 살짝 고개를 숙여보인 테라니우스가 눈을 더욱 빛내며 대답했다.
“그럼 이 기회에 세계의 모든 돈을 다 긁어모아 볼까요?”
“헙!”
“헉!”
“억! 아, 아닐세! 참으시게! 자네 조에서 마음먹으면 그 정도야 쉽겠지. 다들 잘 알고 있으니, 그건 좀 참아주시게.”
모든 원로가 테라니우스의 자존심을 세워 주려 애를 썼다.
다들 알고 있었다.
테라니우스가 마법사가 지녀야 할 자존심마저 살림 관리를 위해 버려야 했던 것을.
그 한이 얼마나 컸을 것인지도.
테라니우스가 돈 얘기를 꺼내자, 생활 마법 학파의 수장이 소리쳤다.
“아! 맞다! 테라니우스군. 이 물건 좀 봐 주겠는가?”
그리고는 잠시 음성 전달 마법을 사용했다.
그러자 저만치에서 뭔가를 뚝딱거리던 한 마법사가 수장 바로 옆으로 옮겨 와서 뭔가를 건넸다.
슬쩍 쳐다보니 꼭 얇은 연필처럼 생겼다.
그 뒤쪽에는 투박하지만 주먹 반 만한 뭉치가 붙어 있다.
모두가 그것을 지켜보는 가운데.
“이건 뭐하는 물건입니까?”
“아. 그건 휴대용 치료 마법기라네. 전기로 마나를 만들고, 그 마나로 치료 마법을 일으키는 것이지. 전기는 요즘 스마트폰처럼 충전으로 채울 수 있게 만들었네.”
“오호. 아주 재밌는 발상을 했습니다, 그려.”
“컬컬컬. 그렇지. 우리 학파의 말썽꾸러기 마법사가 재밌는 발상을 했어. 컬컬컬.”
그때 주위에 있던 원로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 원로가 대표로 물었다.
“그따위 것이 돈이 되겠는가?”
그의 질문에 생활 마법 학파장도 움찔거렸다.
하지만 테라니우스는 두 눈을 반짝이며 마누스를 돌아보았다.
“마누스님. 이거 만들어서 팝시다. 이 세상에서는 의사들이 수술이라는 걸 하지 않습니까? 수술할 때 보니 실과 바늘로 상처를 꼬매던데, 그러면 최소 일주일 정도가 지나야 어느 정도 치료가 되더군요. 보통 한 달이 지나야 상처에 물을 댈 수 있고요.”
테라니우스가 거기까지 말하자 마누스가 바로 말을 받았다.
“이걸 만들어 팔면, 수술 시간과 완치 시간을 거의 한 달 이상 줄일 수 있겠구먼. 아니지. 바로 즉각 치료까지 되겠네, 그려.”
“오오! 그럼 이건 이 세상 말로 대박 상품이구먼! 이야! 대단하네, 그려!”
“오!”
다들 생활 마법 학파를 칭송하기 바빴다.
그런 반응에 생활 마법 학파장은 언제 움찔했던 건지 잊은 채 큰 소리로 웃어댔다.
정말 으스댈 만한 큰일이었다.
모든 원로가 인정할 정도로.
생활 마법 학파장 옆에서 눈치를 보고 있던 마법사도 슬쩍 어깨를 추어올렸다.
테라니우스는 그 제품을 생산할 준비에 들어가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생활 마법 학파에 지원하는 금액을 5% 올려주겠다고 공포했다.
그러자 다른 원로들이 한목소리로 말했다.
“우리도 올려주시게.”
“우리도 예산이 더 필요하네.”
그러자 테라니우스가 살짝 턱을 치켜 들었다.
그리고 담담하게 말했다.
“실적을 가져오시면, 얼마든지 더 올려드릴 수도 있겠지요?”
“크, 크흠. 그, 실적...”
“큭. 실적이라니...”
사실 테라니우스는 마법사들이 원하는 대로 지원해 주고 있었다.
원로들도 사실 따로 예산을 정해서 받는 것도 아님을 잘 알고 있었고.
하지만 이렇게 해야 테라니우스 조에 더 큰 격려가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오랜 전통이 테라니우스 조에 예산을 더 지원해 달라고 조르는 시늉하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며 시운은 피식 웃었다.
아울러 고개도 저으며 말을 더했다.
“형님, 그럼 저도 돈 벌 상품이나 계획을 제시하면, 예산 지원을 해 주십니까?”
“크흠. 그야 당연하지. 아무리 자네라도 무조건 지원은 안될 말일세. 크흠.”
“켈켈켈.”
“컬컬컬.”
“하하하.”
- 작가의말
함께 해 주시는 분들이 많아지면서
댓글도 많아지더군요.
많은 댓글을 읽는 것은 정말 저의 기분을
띄워주기에 차고 넘치는 느낌입니다.
그저 추천만 누르고 가셔도 고마울 따름인데,
댓글까지 달아주시니 뭐라고 고마움을 표해야 할지.
그저 고맙습니다.
참고로 답댓글 달지 못하는 점은 이미 양해해 주고
계실 것으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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