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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 님의 서재입니다.

아바타 패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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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flowerday
작품등록일 :
2018.05.13 11:42
최근연재일 :
2018.05.18 12:52
연재수 :
13 회
조회수 :
920
추천수 :
0
글자수 :
42,415

작성
18.05.13 1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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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아바타 패밀리 1편

아바타 패밀리 로그인




DUMMY

직원 20여 명 남짓한 어느 소기업 사무실.

이곳에서 그나마 다닥다닥 붙어있는 직원들 책상과는 차별되게,

누가 보더라도 관리자급 정도의 자리임이 확실할 것 같은,

책상 두 개 중 한 곳에서 얼마 전부터

부스럭부스럭

거리는 소리가 난다.


직원들은 밖에 나가 있는 직원들을 제외한 대 여섯 명 정도가,

조용한 사무실에서 들려오는 그 심난한 소리가 어서 빨리 끝났으면

하는 바람으로 조용히 눈치를 보고 있다.

그곳에서 나는 소리가 이 조용한 사무실 내 모든 사람들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고 있기 때문이다.


회사 사장은 오전부터 나오질 않고 있고,

옆자리 신 상무는 아무 말 없이 자신의 자리 앞에 컴퓨터만을 또각거린다.

그 신 상무의 옆자리와 이어져,

칸막이가 쳐져 있는 두 평 남짓한 공간에 한상구 부장이,

무표정한 표정으로 일어서서 박스 두어 개에 자신의 집기들을 담고 있다.

서랍을 열어도 보고 달력을 들었다 놨다 하기도 한다.

앞에 붙어있는 지저분한 메모들을 하나씩 뜯어보며

쓰레기통에 구겨서 넣기도 한다.


이내 어느 순간,

테이프 자르는 소리가 찌익 나더니,

그걸 끝으로 이 조그마한 사무실에서

보이지 않는 눈들로부터 무관심한 주목을 받고 있던 그 자리에서

드디어 부스럭거림이 멈춘다.


한상구 부장은 정리가 다 된 책상에서 조용히 나와

옆자리 신 상무 자리에 섰다.

그는 컴퓨터만을 무표정하게 바라보고 있는,

신 상무에게 태연한 척 웃으며 말한다.

"신 상무님 인제 그만 가보겠습니다."

그러자 신 상무도 자리에서 일어나 건조한 표정으로

한 부장에게 악수를 청한다.


"한 부장님.. 그간 수고 많으셨습니다.

앞으로 무슨 계획 같은 거 있으십니까 ? "

형식상 물어본 말인 줄은 알지만,

그 작은 사무실에 모든 직원들이 들릴 만큼 큰소리여서,

한 부장은 내심 당황스러웠다.


어제 환송 회식 자리에서 이미 몇 번이고 한 말인 데다가,

굳이 오늘 나오는 날 까지 그런 무거운 얘기를,

그것도 직원들이 듣는 앞에서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 네... 당분간 좀 쉬면서 천천히 생각하겠습니다. "

" 아 참 그러신다고 하셨죠... 내 정신 좀 봐."

"······."


"그럼 상무님 건강하시고요, 연락 드리겠습니다.

나오지 마십시오."

한 부장은 그렇게 말하며 신 상무가 내민 손을 잡고 고개를 꾸벅 하는 거로

마무리 인사를 대신했다.

한 부장은 다시 자리로 돌아가 책상 위에 놓인 자신의 집기들이 들어 있는,

박스 두 개를 들고나온다.


뚜벅뚜벅

조용히 사라지고 싶은 한 부장의 마음과는 달리 ,

스스로가 들어도 발소리가 유난히 크고 거슬린다.

사무실 직원 대 여섯 명 정도가 앉아 있었지만

누구도 그 발소리 이외엔 관심을 두지 않아,

출입구 문도 박스를 든 손으로 스스로 열어야 했다.

반쯤 열린 출입문에 서서 한 부장은 억지스러운

미소로 직원들에게 한마디 했다.


"저 이만 가보겠습니다. 모두 수고 하십시오."


그렇게 말하고 나니,

평소에 자신에게 많은 꾸지람을 들었던 남직원 하나가 일어나,

"안녕히 가십시요. 부장님" 하며,

고개를 숙인다.

한상구 부장은 억지스러운 웃음을 유지하며,

"이것 좀 닫아줘." 하며,

이 말을 끝으로 자신이 20년간 다녔던 그 조그마한 사무실을 나왔다.


사실 누가 보기엔 이렇게 감상적일 거 같은 그 날 그런 상황들이,

한 부장 스스로에게는 그렇게 감상적이지 않았다.

그런 생각들은 요 며칠 밤마다 술을 마시면서 지겹도록 해왔으며,

오늘 출근하자마자 짐 정리 할 때부터

그가 생각한 유일한 일이라곤,

어서 빨리 거추장스러운 이런 일들이 끝나고,

집에서 따뜻한 침대에 누워,

며칠간의 숙취로 혹사당한 몸을 뉘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시원 섭섭

섭섭하다는 생각보다 시원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기다리던 엘리베이터를 타고,

그 안에서 삼삼오오 재잘재잘 대고 있는 같은 건물

사람들이 아직은 낯설지 않다.

친절하게도 박스를 들고 있는걸 배려해주듯이,

문이 열리자 오픈을 눌러주며 누구도 먼저 내리려 하지 않는다.

한 부장은 그런 사람들에게도 웃음을 보이며 가볍게 인사를 했다.

건물 경비 아저씨도 떠나는 한 부장을 웃으며 반긴다.

그 아저씨는 한 부장이 회사를 그만둔 지 모르기는 했지만,

오늘따라 뭐가 그리 좋은지 싱글벙글 이다.


그렇게 또 웃으며 건물을 나오는데,

이 택시 잡기 힘든 이 동네에,

나오자 마자 어디서 왔는지 택시가 한 대 대기하고 있다.

이상한 일이다.

막상 회사를 그만두고 나오니,

모든 사람이 환영이라도 해주는 듯,

자신에게 친절한 것 같아 씁쓸한 미련이 남는다.

"아저씨 오류동이요."

거리가 평온해 보인다.

사람들도 모두 평안한 얼굴들이다.


평일 이 시간에 이렇게 택시 안에서 거리를 감상하는 게 얼마 만이던가.

전혀 맞지 않는 상황인 건 알겠지만,

한 부장은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

20년간 족쇄와도 같았던 회사생활에서 벗어난 첫날,

그 지나간 세월만큼이나 홀가분하다.

20년간 많은 일이 있었지만,

이 순간 만큼은 기억나는 일은 없다.

기억하고 싶은 일도 없다.


그에게는 20년간 그가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지금 다시 혼자가 되어,

새로운 세상으로 다시 나왔다는 게 더 의미 있는 듯 보인다.

그러나 한 부장은 알고 있었다.

이런 홀가분한 청량감은 잠시 뿐이라는 것을.

사표를 내기 전날부터 시작된 요 며칠 동안의 생각 정리도,

시작은 항상 지겨운 일상에서 탈출한 모종의 기쁨으로 시작했다가,

끝에는 미래에 대한 알 수 없는 두려움과 불안함으로 마무리 짓는 반복이었다.

두려움과 불안함.

그것들을 당장 표출하지 않는 것.

억지로 억눌러두고서 나중에 조용히 꺼내 보는 것.

그것은 그가 20년간 회사생활에서 다져진,

그의 적지 않은 나이에 할 수 있는 유일한 기술이었다.


초창기 젊은 시절,

그 역시 열정적인 애사심으로 누구보다도 성실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또 몇 번의 크고 작은 실수들로 인해,

그는 성실함 만이 조직 생활에 진리가 아님을 깨달으면서,

어느 순간 자신의 무능력함을 감추기 위해 그는 입을 닫아 버렸다.

남을 험담하거나 쓸데없는 말은 하지 않았으며,

모든 일을 신중히 조심스럽게 처리하고자 하였다.


그런 행동들이 그의 성실한 본성으로 인해 고착화 되면서,

그에게는 어느 날부터 "우유부단"이라는 수식어가 늘 붙어 다녔고,

그런 그의 성향은 좋게 되지 않은 그에게 "신중함" 보다는

"무능력"이란 낙인으로 점차 바뀌었다.


한순간,

자금관리를 맞고 있는 그의 무능력은,

곧 회사 내에서의 골칫거리였고,

사장을 비롯한 회사 내의 모든 이들에게는 불만 거리였다.

그 스스로 평가해도 잘했던 일은 묻혀서,

못했던 일은 두각이 되는 악순환으로 전개되더니,

결국엔 얼마 전 사장의 조용한 퇴사 권유로,

자진 퇴사라는 형식을 빌려 오늘 이렇게 회사를 나오게 된 것이다.

사장이 이혼전력을 들먹이며,

자신과 같이한 20년간의 회사생활을

깎아내릴 때도 그는 사장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인생은 늘상 이런 식이었다.

남들이 오해하거나 스스로 변론할 기회나 명분이 충분히 있음에도,

한 번도 그렇게 시원하게 표출하지 못하고,

스스로 이 모든 게 자신의 무능이라고 치부하는 겸양 아닌 버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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