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무한으로 죽어요~(2)
처음 봤을 때, 이 동굴은 참 아름다웠다.
수정처럼 빛나는 물웅덩이에 산처럼 솟아오른 종유석.
거기에 가끔 보면, 동굴에서만 찾을 수 있는 보석도 간혹 보였다.
누가 본다면 신선이 숨어 사는 곳이라 봐도 무방했다.
쑤욱! 슈아아아! 철퍽!
천장 종유석에 박혀있던 내 시체가 떨어지기 전까진.
피투성이의 시체가 된 내 얼굴을 마주하니 또 색다른 기분이다.
민망하지만, 저 때 죽음은 우현의 짓이 아니라, 내 실수였다.
선운보를 잘못 써서 몸이 천장으로 치솟아 종유석에 박힌 것이다.
음... 괜시리 쪽팔리는군.
덕분에 이제 이곳은 신비로운 신선의 동굴이 아니라,
사람 잡아먹는 귀신 소굴처럼 변했다.
‘뭐, 다르지 않나? 잡아먹진 않아도 죽여대는 건 비슷하니.’
“생각이 읽힌다. 제자여. 사형의 소중한 집을 음해하지 말거라.”
“에, 엣! 선운...”
“늦었다!”
그의 손날이 횡으로 내 어깨부터 시작해, 겨드랑이를 갈랐다.
순식간에 내 팔 하나가 허공을 날았다.
“크으읏!”
며칠 전의 나였다면, 잘린 팔을 부여잡으며 온갖 고성방가를 질러댔을 거다.
근데... 지금의 나에겐 기껏해야 팔뚝 까진 것과 다를 게 없는 고통이었다.
난, 하나 남은 내 손바닥을 쫙 편 채로, 팔을 뻗었다.
“호오, 전엔 도망만 치더니.”
“천갈뢰장(天喝雷掌)!”
난, 요 며칠간 틈틈이 비급을 읽어 배우던 장법(掌法)을 선보였다.
오색의 선천진기가 황금색의 빛이 되어 내 손을 감쌌다.
내 손을 타고 흐르는 그 황금색 내공이 내 스승에게로 쏘아졌다.
하늘의 꾸짖음 같은 번개가 거대한 파공음을 일으켰다.
콰! 콰과과과광!
동굴 전체가 울리고, 종유석 몇 개가 땅에 떨어질 정도의 충격이었다.
헌데...
“쿠, 쿨럭!”
“나쁘지 않다만... 아직 힘 조절이 서투른데다. 아직 단전에 담을 수 있는 선천진기 양도 미미하거늘... 이리 낭비하다니. 쯧, 쯧.”
그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되려 기술을 선보인 내 몸이 걸레짝이 되어버렸다.
내 몸은 진짜 번개맞은 것처럼 연기가 피어올랐다.
“어, 어떻게 한 겁니까... 사형?”
“별거 아니다. 그냥 네 장법의 흐름을 네게 되돌아가도록 바꿨을 뿐이다.”
“그, 그게 쿨럭... 별거 아니라고요?”
“흐름을 다루는 것. 그것이 모든 내가기공의 근본이자 내가 준 비급의 가장 기본적인 가르침이다. 나였다면 그런 어설픈 장법 따윈 보다 그걸 더 공부했을 것이다. 흐름을 느끼지 못하면 그 비급으론 제대로 된 무공이 불가능하다.”
“가르침 감사합니다. 대신에, 제 팔을 날려버렸지만요...”
“원... 확실히 팔이 불편할 텐데, 고쳐주마.”
“아! 그, 그럴 필요는...”
물론이다만, 내 스승은 의원이 아니다.
아니, 의원이라 쳐도 잘린 팔을 어떻게 붙이겠는가?
무슨 생전에 만난 신의도 아니고.
그가 내 다친 몸을 고치는 방법은 딱 하나.
써걱!
촤아아악!
내 시야가 한순간 천장을 향하더니, 이내 땅바닥으로 내려갔다.
그 시야의 끝엔 머리가 사라진 내 몸이 있었다.
나참, 잘린 머리조차도 나려타곤을 하다니.
무림인으로선 난 꽝인가 보다.
뭐, 이런 시답잖은 소리를 유언으로 남긴 게 더 문제려나.
결국, 동굴엔 또 하나의 시체가 추가되었다.
지금 저 동굴 안에 굴러다니는 수많은 시신.
다 내 것이었다.
*
‘또 이곳인가...?’
예전엔 죽음을 경험하면 의식을 잃은 뒤, 내가 죽은 곳에서 새 몸으로 일어났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죽음을 경험하기 시작한 뒤부턴 모든 게 달라졌다.
‘왜 또 무아에 오게 된 거지?’
처음엔, 쇠사슬에 묶인양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허나, 죽음이 네 번 오고, 여덟 번 오고... 끝내 지금 서른 번이 왔다.
내 시신이 너무 쌓여서, 이제 그 시체 위에 앉아 밥까지 먹을 경지가 될 즈음에...
무아는 이제 내겐 또 다른 집이 되었다.
덕분에 내 의식을 조금씩 조종할 수 있었다.
추가로 틈틈이 읽은 비급의 가르침이 슬며시 내 정신을 적셨다.
이상하게, 내가 비급에 집중할 때만큼은 그 괴팍한 스승이 좀 손속을 주긴 했다.
물론, 한 구절을 다 읽자마자 내 몸을 두동강 내버리긴 했지만...
그래도, 더분에 난 한 가지 가르침을 얻을 수 있었다.
무아는 말처럼 단순히 아무런 자아가 없다는 뜻이 아니었다.
모든 정신의 집합, 그것이 무아다.
소림이 말하는 깨달음(知).
무당이 말하는 태극(太極)과 음양(陰癢).
화산이 말하는 피어나고 지는 순리인 매화(梅花).
그 외에도 점창의 오행(五行)이나,
곤륜의 팔괘(八卦)까지...
내가 귀동냥으로 들었던 모든 가르침.
이 모든 것이 이 무아(無我)에서 태어난 것들.
모든 가르침의 근본은 이곳,
무아다.
동시에 선천진기가 처음 나고 되돌아오는 곳.
쉽게 말해, 모든 것이 태어나고, 끝을 맞이하는 곳.
처음엔 나도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다.
그저 천마가 개방 거지에게 적선한다거나,
무림맹주가 삼류 무사에게 굽신거리는 일만큼 이해하기 힘든 진리다.
그러나, 그 구절들이 내 선천진기를 타고 흘러와 내 머리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무아의 진리를 점점 이해하기 시작했다.
꼭, 밖에 널어놓았던 빨랫감이 가랑비에 젖어버리듯.
그 가르침에 물들기 시작했다.
나는 없다.
동시에 나는 모든 것이다.
나는 무아(無我)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이 무아에서 내 몸이 다시 생겨났다.
이 무아에서 생긴 내 손과 발이 자유자재로 움직였다.
땅이 없는데도 난 서 있었다.
눈앞엔 어둠이 가득한데, 동시에 강처럼 세차게 흐르는 선천진기의 흐름이 보였다.
[놀랍군. 벌써 흐름이 보이는 것이더냐?]
우현.
그러니까 빌어먹을 스승겸 사형이었다.
[뭐에요 방금 죽여놓고선? 저 아직, 분이 안 풀렸습니다만.]
[내가 말했잖느냐.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라고. 여하튼 경이롭군!]
그는 평소 괴팍한 모습과 달리 진심으로 놀랍다는 투였다.
[보통 갓 신선이 된 수행자들도 무아에서 선천진기의 흐름을 느끼려면 십 년은 걸린다.]
[오호, 그건 제가 신선 천재란 건가요?]
[흥, 벌써부터 뻐겨대는 거냐? 그래, 뭐 뻐겨대거라. 그건 좀 자랑스러워해도 된다. 허나, 넌 아직 올바르게 죽는 법을 터득하지 못했다.]
[아직도요? 애초에 답이 있는 거긴 합니까?]
[답은 있되, 그걸 아는 자만이 지옥에서 살아남을 수 있지. 모르는 녀석들은 전부 소멸했거든! 좋아. 이제 다음으로 넘어가마.]
[다음이요? 다음은 없어요! 이런 위대한 깨달음을 얻었으니 전 무적이라고요!]
[진짜 그런지 한 번 봐주마.]
[좋습니다, 각오하세요! 사형! 아니 영감!]
[영감? 이 노옴...! 조금있다 보자.]
살짝 도발이 후회되긴 하지만.
이제 자신이 있다!
이길 수 있다!
*
“제기랄, 세상의 진리를 깨우친 것 같았는데!”
“껄껄! 깨달음만으로 모든 걸 다했다면 백면서생들이 무림 최강자를 했겠지, 천마나 무림맹주 그치들이 해 먹었겠느냐?”
제길, 너무나 맞는 말이다.
도저히 반박을 못하겠다!
그는 내 경맥을 전부 자른 채, 내 등에 걸터앉아있었다.
“그래도 제자인데 너무한 거 아닙니까, 사형?”
“너무하긴. 무력감을 느끼는 것도 중요한 공부다. 그리고 영감이라며?”
“아, 우형! 좀 그러지 말고요.”
“그래. 슬슬 무아에서 가르칠 것도 있으니. 슬슬 목숨을 끊도록 하지.”
스스로가 느끼기엔 아직 이질적인 말이긴 했다만.
그래도 이젠 자유로웠다.
뭔가 죽음과 삶의 경계란 게 이젠 희미했다.
“흠, 네 눈을 보니. 이제 어느 정도 올바르게 죽기에 가까워지는구나.”
“지, 진짜요?”
“그래. 삶과 죽음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죽음에 익숙해지는 것. 그것이 첫 관건이지. 이곳에선 자기 삶에 대해 집착을 가지는 것이 스스로 무덤을 파는 꼴이다.”
“사형. 정말... 지옥은 맘에 안 드는 곳...”
서걱!
내 경동맥에서 피보라가 솟구쳤다.
우현은 그런 내 말에 대해 그도 동감인지 고개를 끄덕였다.
*
[그렇다. 흐름을 알았다면 이제 그 흐름을 끌어와야지.]
[제게 끌어온다고요? 흐름을 느끼는 것도 벅찬데요?]
아직 난 무아에 있는 선천진기의 흐름을 느끼는 데에도 온 집중을 다해야 했다.
그런데도 우현은 내게 무리한 요구를 거듭 이어갔다.
[무아에 있는 선천진기의 내공은 물과 같다. 끊임없이 흐르지. 이제 그 내공을 네게 오도록 해야 한다. 무아가 거대한 선천진기의 강이니. 그 강에 네가 원하는 방향으로 선천진기가 흐를 도랑을 파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도랑을 따라 네 몸에 있는 단전이 선천진기를 담을 개울이 되는 것이다. 그 도랑과 개울이 점점 넓어질수록 네 무공 수위가 올라가게 될 것이다.]
한 마디로, 무아에 있는 선천진기를 내 것으로 만들란 소리.
그리고, 그 선천진기를 담는 그릇은 내 단전(丹田)의 크기도 늘려야 한다.
근데... 이게 단번에 되는 거긴 한 건가?
보통 무림인들도 내공 하나 쌓으려고 별별 짓을 다하던데...
[되긴 하는 겁니까, 그거?]
[그게 안 되면 넌 소멸 한다.]
[소, 소멸요...?]
[지금 네가 쓰고 있는 내공은 선천진기다. 물론 네 자신이 가진 선천진기가 있다만. 계속 그런 방식으로 싸우면 얼마 못 가 선천진기를 빼앗기기도 전에 바닥나 소멸해버릴 것이다.]
그제야 난 지금의 내가 전갈뢰장 같은 신선의 무공을 쓰는 게 얼마나 위험한 짓인지 깨달았다.
그리고 내가 ‘천갈뢰장’을 썼을 때,
내 선천진기가 바닥나지 않도록 그가 다시 기를 되돌려 준 것을 이제 깨달았다.
[알겠느냐? 이건 할 수 있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해야만 한다는 뜻이다.]
[그럼 제가 장법을 펼쳤을 때... 제가 무리하게 힘을 썼으면... 사형 감사합니다.]
[허, 크흠, 감사 인사는 됐다, 애초에 깡도 없는 놈 가르칠 생각 자체를 않았으니.]
내가 감사에 그가 민망한 듯 헛기침했다.
이럴 땐 참 스승 같기도 한데 말이지.
[여하튼 중요한 건 흐름을 네 쪽으로 돌리는 것. 그것이 지금 네가 해야 할 일이다. 다만 전처럼 무리하게 무공을 썼다간 고통스럽게 찢어 죽여버릴 테다!]
[그, 그거 스승으로서 할 말은...]
[불만 있느냐?]
[아뇨.]
그 뒤부터, 살아있을 때든 죽어있을 때든 바빠졌다.
살아있을 땐, 쫓고 쫓기는 추격전과 생사결을.
죽어있을 땐, 무아에서 수련과 깨우침을 이어갔다.
우현 영감, 아니 사형은 내가 살아있을 땐, 최강의 추격자 겸 살인귀였고.
반대로 내가 죽어있을 땐, 뛰어난 스승이었다.
내가 살아있을 땐, 그는 진짜 악귀 그 자체였다.
처음엔 일다경(15분)도 안 돼서 날 계속 죽이더니.
이젠 전략을 바꿨다.
두 시진(12시간)을 버텨내야 하는 내게.
딱 두 시진이 되기까지, 일다경을 남겨놓을 때마다 족족 죽였다.
그 전엔 잡힐 듯 말 듯 하며, 내 심장을 들었다 놨다 했다.
[정말 너무한 거 아닙니까?]
[뭐가?]
[아니 제가 부족해서 죽는 건 불만 없습니다.]
[뭐 잘 아네. 근데?]
[아니, 근데 왜 약속 시간이 되기 딱 직전에 절 죽이시는 겁니까! 절 갖고 노시는 것도 아니고!]
[가지고 노는 거 맞다만.]
[아니, 사형!]
[꼬우냐? 그럼 나보다 세지던가.]
나참, 그래 이런 괴인을 상대로 말싸움하는 건 의미 없지.
차라리 배고픈 맹호를 설득하는 게 더 쉽겠지.
결국, 그의 말대로 내가 충분히 강해져야 했다.
이 ‘무아’에서.
난 올바르게 죽는 것에 대한 답과 선천진기의 흐름을 내 쪽으로 끌어오는 것을 익혀야 했다.
그게 얼마나 걸릴 진 몰랐다.
얼마나 걸리든 해야했다.
다시 살아난 뒤, 난 동굴 구석으로 가 돌멩이로 벽을 긁었다.
일(一)
“이제부터 시작이야.”
난 다짐하며, 일어섰다.
왠지 뒤에 수상한 기척이 느껴지긴 했지만, 아니겠지.
우현이었으면, 단숨에 날 공격했을 테니까.
그 뒤로, 난 삶과 죽음을 넘나들며, 수련을 이어 나갔다.
그렇게 그어진 일자가 칠백 개를 넘어갈 즈음...
나는 완전히 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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