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스토리공장 님의 서재입니다.

점소이의 탑 등반기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새글

스토리공장
작품등록일 :
2024.06.25 19:01
최근연재일 :
2024.07.01 13:43
연재수 :
10 회
조회수 :
193
추천수 :
0
글자수 :
63,761

작성
24.06.28 15:12
조회
16
추천
0
글자
12쪽

8화, 막대기 구멍에서 힘이 솟아난다. 그리고 난 충만한 기분이 든다.

DUMMY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상상 이상으로 별 볼 일 없는 것이다.


그건 괴상하게 생긴 막대기였다.

물론, 품에 있었던 만큼 길이도 기대 이하다.

길이는 기껏해야 날이 빠진 검자루 수준.


이런 건, 호신용 타구봉으로도 쓸 수 없다.


거기에, 그냥 일직선도 아니고, 낫처럼 기역 자로 꺾은 모습이라니...

당최 이건 뭐에 쓰는 물건일꼬?


다만, 그 용도 불명의 쓸모없는 물건에겐 딱 하나 장점이 있었다.

장식으로 써먹기엔 썩 훌륭했다.


그 막대기는 고풍스러운 유광 칠이 된 흑목(黑木)에,

금으로 장식된 용이 통짜로 그 막대 전체를 휘감고 있었다.

그리고, 용의 머리와 몸 사이엔 용의 역린(逆鱗)이 달렸었는데,

그 역린을 건드릴 때마다 막대에서 딸깍거리는 소리가 났다.


“근데 왜 막대에 구멍이 뚫려 있는 거지? 구멍 안엔 회오리치는 무늬가 있고...”


난, 그 막대 끝, 용의 입이 벌려진 곳에 구멍이 있다는 걸 알아챘다.


“음... 이 비슷한 걸 본 적이 있는 것도 같고...”


아주 옛날에 관군이 이 비슷한 구조의 물건을 가지고 다녔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니겠지.

그건, 관군 다섯 정도는 되는 수가 간신히 옮길 정도로 거대했으니까.


어쨌든, 난 그걸 내 안주머니에 넣었다.

하다못해 이런 물건은 비싸게 거래되는 법이니까.

제아무리 지옥이라도 상거래가 없을까?


난 그 생각과 함께 뒤돌았다.

거기에 수많은 ‘내’가 ‘날’ 노려보고 있다.


“아, 제길... 이걸 언제 다 치워.”


나는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한숨부터 쉬었다.

옛날에 양아버지가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곰방대에 손을 댔던데.

왠지 나도 오늘따라 연초가 땡긴다.


정말이지 신선하고도 역겨운 경험이다.

내가 내 시체를 치운다는 건.

그것도 수백구의 나 자신을.


*


시계용으로 쓰는 물그릇이 다시 가득해지기 시작했다.


“곧 오겠구만.”


그러고 보니 난 궁금해졌다.

수백 번을 죽고 살아난 나지만 정작 못 본 게 하나 있다.

그건 바로, 부활.


내 늙은 사형, 우현이야 내 부활 장면을 수도 없이 봤겠지만.

내 스스로는 내 자신을 부활 장면을 볼 수 없으니 말이다.

그러고 보니... 부활 장소란 게 정해져 있나?


일단, 내 스스로 유추를 좀 해봤다.

내 첫 부활이 낙인곡이라는 협곡.

그리고, 부활한 내 몸은 이미 죽은 내 흔적인 피에 절여져 있었다.


그 뒤에 죽음도 생각해보니 모두 다 같은 공통점이 있었다.


“생각해보니... 내가 죽은 곳에서 바로 살아났구나.”


그렇다면, 그는 지금쯤 두 팔을 잃고 기대고 있었던 그 벽에서 살아날 터.


나는 딱 하루가 되기 일다경 전에, 그 벽으로 갔다.

워낙 치워야 할 시신(하나 빼고 전부 나다)이 많아, 아직 그곳엔 핏자국과 패인 자국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똑 똑 똑 똑...


내가 침묵하고 있으니, 딱 그릇에 물방울 소리만이 들려왔다.

그렇게 내 마음속에서 세고 있던 시간이 다 지났다.


그러자, 허공에서 오색의 반딧불이 같은 빛무리가 나타났다.

그 빛무리가 합쳐지니, 곧 푸른 도깨비불처럼 불타올랐다.

우현의 푸른 선기(仙氣)가 분명했다.

그 도깨비불을 중심으로 붉은 실들이 나타났다.

그 실들이 하나둘, 엮어지더니 점차 사람의 모습이 되어갔다.

꼭 뛰어난 방직공이 비단을 짜내는 것 같은 경이로움이다.


그 붉은 실 사이로 하얀실이 뼈를 만들어내고,

붉은 실이 모여 근육을 이루었다.

보통 그러면 징그러울 만도 한데,

징그러움보단 뭐랄까, 아름다운 모습이다.


그 붉은 실과 하얀 실로 이루어진 몸체 위로,

살구빛의 비단 같은 피부가 덮여지더니,

거대한 하얀 날개 같은 옷이 그를 뒤덮었다.


동화에서 선녀들이 입을듯한 하얀 날개옷과 장포, 그리고 은빛으로 빛나는 수염과 머리칼은 진정, 선인(仙人) 그 자체였다.

만약 내가 구파의 도사라면 절로 무릎을 꿇었을 것 같았다.


그는 공중에서 몇 번 발돋움과 함께 내려왔다.

그리고.


“흐아아아암! 졸리군.”


그는 죽은 사람이라기 보단,

그저 한숨 잔 사람 마냥 기지개를 펴댔다.

그토록 신비롭고 경이로운 모습이 금방 할 일 없는 한량 할범 같은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그가 주위를 둘러보더니 꽤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음... 역시, 동굴엔 시체가 없는 게 더 좋군!”

“오셨소, 사형?”

“오냐. 이게 몇백 년 만의 사망 체험인지 모르겠구나.”

“잠깐... 그럼 그동안 옷을 안 빨았던 겁니까!”


내가 그 하얗게 빛나는 장포를 가리켰다.

잠깐만... 그거 신분을 숨기려고 일부로 더럽힌 거 아니었어?


“꼭 그래야 하나? 어차피 죽으면 알아서 깨끗해지잖나?”

“아, 사형! 진짜 더러워서 정말!”

“껄껄껄. 이미 죽어서 지옥까지 온 놈이 뭐 그리 더러운 걸 따지나?”


신선은 개뿔.

그래, 이게 계속 날 죽여대던 인간이지, 참.


*


“보아하니, 선물은 잘 챙겼구만. 그래, 어떠냐? 굉장하지 않더냐?”


저 얼굴을 보니 정말로 기대하고 있다.

물론, 내가 해줄 말은.


“예, 굉장해요.”

“그렇지?”

“예, 굉장히 쓸모없어요.”

“뭐, 뭣?”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

분명 내가 두 팔을 날려버릴 때도 기뻐하던 그였다.

그가 처음으로 당황 겸 분노한 표정으로 날 노려보았다.


“이런! 네 이놈 사제! 눈이 아니라 옹이구멍을 달고 있는 것이더냐!”

“에...?”

“아이고, 원통하다! 이딴 놈에게 내 생전의 모든 기관진식을 동원해 만든 인생의 결정체를 넘겨주다니! 통탄이도다! 통탄이야!”

“기, 기관진식이요...?”


기관진식.

이 무림은 거대하고 넓다.

그만큼 다양하고 이질적인 기술과 힘이 널려있다.


마교의 마술이나 혈교의 사혈술.

살막의 축골공이나 역용술.

방사의 진법술과 귀혼술.


그 외에도 다양한 무공이 무림에 널려있다.

그중에서 나조차도 제대로 들어본 적 없는 것이 바로 기관진식이다.


보통 아무리 괴기하더라도 결국 무공에서 비롯된 것과 달리,

순수하게 지성과 기술로만 이루어진 기술.

제갈세가와 사마세가, 그 외에 무림의 수많은 지성이 머릴 맞대 일궈낸 기술.

그것이 기관진식이다.


“이건 그냥 기관진식이 아니다! 무려 기술의 정점인 묵가기관술(墨家机关术)의 모든 것이 집약된 물건이란 말이다!”


평소 그렇게나 여유롭던 그가 처음으로 열변을 토했다.

이런, 제대로 역린을 건드린 게 분명하군.


“됐다, 이리 내놔!”

“아니, 사형! 그래도 줬다 뺏는건 좀 아니지 않습니까!”

“아니! 어떻게 쓰는지 보여주겠다고 이 무식한 놈아!”


보아하니 조금만 더 고집을 부렸다간,

저 손으로 장법을 펼쳐서 날 날려버릴 기세다.

뭐, 궁금하기도 하니.

난 별 고민 없이 그 괴상하게 생긴 물건을 넘겼다.


“그러고 보니 이거 이름은 있는 겁니까?”

“당연히 있지! 벽룡포(霹龍砲)다. 기억해둬라.”

“벽룡포? 번개룡의 포? 아...!”


그래, 대포!

내 전생에 관군들이 가지고 다니던 그 거대한 공성병기!

보통 주먹 만한 벽력탄(폭탄)이면, 일류 고수조차 죽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위력이 난다.

근데 대포는 무려 사람 머리만한 특제 벽력탄을 발사하는 무식한 화약 무기.


“잠깐만요, 사형. 제가 알기에 대포는 장정 다섯은 되야 옮길까말까한 크기던데.”

“끌끌끌끌... 역시 그래도 점소이라 들은 건 있구나!”


그의 입꼬리가 귀에 닿을 정도로 웃었다.

정말 자기 작품에 대해 사랑이 크구만.

뭐, 정말 저게 그 대포라면 그럴만하다.


“농담이죠...? 사람보다 몇 배는 큰 그 무기를 이리 작게 만들었다고요?”

“아, 드디어 말이 통하는군! 마침 잘 됐다. 따라와라. 치워야할 게 있었잖느냐.”

“예? 시체요?”

“그래.”


나와 우현은 동굴의 입구로 걸어갔다.

예전 그 아귀(餓鬼)가 득시글거리던 광경을 보여줬던 그 장소로.

다만, 그곳은 막혀있었다.

예전 그가 내가 탈출 못하도록 막았던 무너진 잔해로 이루어진 벽.

처음엔 단순히 무공으로 부숴버릴 수 있으리라 믿었다.

이것 역시 그의 기관진식의 일부란 걸 알기 전까진.


“천갈뢰장이 씨도 안 먹히더라고요.”

“당연하지. 이 잔해 자체가 이 몸의 진법이다. 내공이 주입되면, 그래도 흩어지도록 만들었지. 이걸 뚫어버리는 방법은 두 가지다.”

“뭔데요?”

“이 진법의 원리에 따라 돌을 단계별로 치우거나... 아니면, 압도적힌 힘으로 부숴버리던가.”

“이걸요?”


난 그 앞에 잔해를 가리켰다.

일단 말하자면, 동굴의 입구는 결코 작지않다.

내 이년 간의 흔적인, 수백여 구의 시체를 쌓아놨음에도,

입구는 완전히 메우지 못했다.

이 정도면 웬만한 성문의 넓이라 봐도 무방하다.


“심지어 사형의 말대로 제 시체와 사형의 시체도 쌓여있는데요? 일단 삼매진화(三昧眞火)같은 걸로 시체부터 태워야 하지 않아요?”

“이놈아! 안 그래도 동굴 입구를 막아뒀는데, 연기에 질식할 일 있더냐!”


그 말과 함께, 그가 그 괴상하게 생긴 막대를 만지작거렸다.


“잘 봐라, 사제. 묵가기관술과 무공을 접목해 만든 내 작품의 결정체를.”


그가 그 막대기를 전방으로 향했다.

꼭 활을 조준하는 것 같다.


저 막대기로?

에이, 설마.

그는 그런 내 얼굴을 보며 비웃었다.


그러더니, 그가 그 막대기에 달린 용의 역린을 꾹 당겼다.

분명 내가 건드릴 땐 딸깍거리던 소리만 나왔는데.

그가 역린을 건드리자, 그의 손에 있던 그 작은 새끼용의 입에서...


푸른 태양이 떠올랐다.


“뭐, 뭐야 저게...”


태양과 같은 거대하고 둥근 내공의 힘이 번개처럼 쏘아졌다.

그 거대한 힘이 벽과 시체에 부딪치자,

그 힘이 우습다는 듯 먼저 내 시체를 잿더미로 만들더니...


콰과가가가가!


그대로 동굴을 막고 있던 잔해를 통째로 뚫어버렸다!


아니!


뚫다 못해 아예 산산조각 내버렸다.

그 힘이 벽을 뚫다 못해 저 멀리 붉은 지옥의 하늘 너머로 일직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쿠구구구구궁! 콰르르르!


동굴 전체가 무너질 듯 거대한 굉음이 일어났다.

거대한 폭발음이 내 귀를 파고들어 어마어마한 이명을 만들어냈다.


그 이명에 순간 정신을 잃을 뻔했다.


“끄으으... 대체 이게 뭔... 세상에.”


내 눈을 믿을 수가 없다.

우현과 내 앞엔 코끼리도 들어갔다 나올만한 거대한 구멍이 생겨나 있었다.

그는 한껏 콧대 높아진 표정으로 날 바라보았다.

딱 봐도 ‘어떠냐? 이러고도 이게 쓸모가 없느냐?’라고 묻는 얼굴이다.


난 그저 멍하니, 그 동굴 밖을 나섰다.


저 멀리, 내가 떨어졌던 곳.

낙인곡이 어렴풋이 보였다.


확실친 않지만, 그 낙인곡의 단단한 벽에도 둥근 흔적이 보였다.


“미친...”


이 말 밖에 나올 게 없다.

만약 천하 십대 고수, 아니 천하제일인이 모든 내공을 쏟아 절기를 선보인다면 이런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


“고작, 저 막대기에서 절세고수의 무공 수준의 파괴력이 나온다고요...?”

“아니네.”

“그, 그렇죠...? 이게 아무리 대단해도, 십대고수나 절대 고수는 이것보다...”

“딱 이 할 정도의 힘만 썼네. 기능을 전부 끌어내면 천하제일인도 뼛조각 하나 안 남겠지.”

“...저, 사형... 그, 있잖아요.”

“끌끌, 불쌍하고도 무지한 사제야 뭐라 했더냐? 뭐라 했던고? 쓸모가...?”


그 인간은 일부로 손에 귀를 댄 채 끌끌 웃었다.

나는, 무슨 말인지 곧바로 알아챘다.

난 점소이로서 익힌 최고의 절기를 선보였다.


난 우현 앞에서 물구나무를 섰다.

그 다음, 절했다.

이른바, 동방예의지국인 고려인 출신 상인에게 배운 최고 예절인 그랜절(土下座)이다.


“스승 사형님. 이 불초한 제자가 입을 놀렸습니다. 부디, 가르침을 주십시오.”

“어험...! 무지한 제자를 이끌어주는 게 스승의 몫. 어떻게 쓰는지 알려주겠다. 다만... 조건이 있다.”

“예! 뭐든 하겠습니다, 스승님.”

“뭐든지?”

“뭐든지!”


무려 수백 번의 죽음도 견딘 나다!

뭐가 무섭겠는가?

그리 생각했다.

그가 이 말을 하기 전까진.


“마침 잘됐구나. 요즘 아귀들 숫자가 늘어났던데. 마침 이 물건 때도 벗길 겸. 네가 아귀 사냥 좀 나가야겠다.”


난 처음으로 수백 번 죽는 것보다 딱 한 번 잘못 죽는 게 더 무섭다는 걸 깨달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점소이의 탑 등반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0 10화, 장송의 운도명(2) NEW 18시간 전 5 0 14쪽
9 9화, 장송의 운도명(1) 24.06.29 9 0 14쪽
» 8화, 막대기 구멍에서 힘이 솟아난다. 그리고 난 충만한 기분이 든다. 24.06.28 17 0 12쪽
7 7화, 무한으로 죽어요~(3) 24.06.27 16 0 15쪽
6 6화, 무한으로 죽어요~(2) 24.06.26 14 0 12쪽
5 5화, 무한으로 죽어요~(1) 24.06.25 15 0 12쪽
4 4화, 어떻게 이름이 우현(2) 24.06.25 19 0 12쪽
3 3화, 어떻게 이름이 우현(1) 24.06.25 24 0 15쪽
2 2화, 부정한 재판과 지옥 탑 24.06.25 26 0 20쪽
1 1화, 특급 점소이 24.06.25 49 0 15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